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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묶음’을 하나의 단위로 세는 말

_ 권혜진 / 겨레말큰사전 선임연구원

어느 날 놀이터를 지나가다가 비둘기를 본 나는 “건우야, 저기 비둘기 있다.” 하고 다섯 살 된 아들을 불러 세웠다. “한 개, 두 개, 세 개. 엄마, 비둘기가 세 개나 있어.” 물건뿐만 아니라 사람도, 동물도 ‘~개’로 세던 아들도 일곱 살이 되니 ‘강아지 한 마리, 사람 두 명, 장난감 세 개’로 구분해서 쓰게 되었다.

잘못된 표현을 쓰는 어린 아들에게 바른 표현을 알려 주고 싶은 엄마의 마음으로 한동안 나는 수를 세는 일을 반복하기는 했지만, 일상생활 속에서 어떤 것을 하나씩 세어 보는 일이 생각보다 자주 일어나지는 않는다. 더군다나 각각의 사물을 낱개로 세는 말은 물론이고 ‘묶음’을 하나의 단위로 세는 말을 사용하는 경우는 더욱 드물다. 최근에 언제, 무엇을 세어 보았는지 곰곰이 한번 생각해 보았다.

달걀 지난주에 샀던 ‘달걀 한 ’이 냉장고에 몇 개나 남았는지, 언젠가 주전부리로 먹으려고 냉동실에 쟁여 두었던 ‘마른오징어 한 ’ 중에 몇 마리가 남았는지를 확인할 때 수를 세어 보았던 것 같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달걀 한 판’은 달걀 30알을 이르고, ‘오징어 한 축’은 오징어 20마리를 이른다. 여기서 ‘우리’는 남측 사람들만을 포함한다. 남측 사람들에게는 익숙한 단위명사인1) ‘판(板)’과 ‘축’을 북측 사람들도 똑같이 이해할 수 있을까? 그 대답은 현재로서는 ‘아니다’이다. 각각 달걀과 오징어를 묶어 세는 단위를 나타내는 ‘판(板)’과 ‘축’을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있지만 《조선말대사전》(증보)에는 없다. 남측과 북측의 실제적인 쓰임을 확인할 수 있는 남북공동회의 협의 과정을 거치기 전까지는 단위명사 ‘판(板)’과 ‘축’이 북측에서는 쓰이지 않는 말이라고 볼 수밖에 없겠다.

다음과 같은 상황을 각각 남측의 사람과 북측의 사람에게 똑같이 제시하고, 그 결과물을 가져오는 과제를 주었다고 가정해 보자.

◈ 건어물을 파는 가게에 가서
“북어 한 , 김 한 , 미역 한 주세요.” 라고 했다.
그랬더니 주인아저씨가 북어 ○마리, 김 ○장, 미역 ○장을 주었다.
◈ 바느질을 배우려고 바느질 수업에 등록을 했더니 안내문에
‘준비물: 넉베로 만든 옷감, 바늘 한 , ….’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래서 나는 ~한 옷감과 바늘 ○개를 미리 준비했다.
과연 남측의 사람과 북측의 사람이 시장에서 사 온 건어물과 바느질 수업에 가져간 준비물은 같은 물건과 같은 개수일까? 역시나 이 질문에 대한 대답도 현재로선 ‘아니다’이다.

앞서 언급된 단위명사와 그 뜻풀이를 《표준국어대사전》과 《조선말대사전》(증보)에서 찾아보면 다음과 같다.

올림말 《표준국어대사전》 《조선말대사전》(증보)
① 북어를 묶어 세는 단위. 한 쾌는 북어 스무 마리를 이른다. ×2)
김을 묶어 세는 단위. 한 톳은 김 100장을 이른다. 이름수의 단위의 하나. 김 같은것의 마흔장을 한 단위로 이른다.
④ 미역을 묶어 세는 단위. 한 뭇은 미역 열 장을 이른다. ×
피륙의 날을 세는 단위. 한 새는 날실 여든 올이다. 천의 날을 세는 단위. 날실 마흔을 한새로 친다.
① 바늘을 묶어 세는 단위. 한 쌈은 바늘 스물네 개를 이른다. ② 바늘 20개를 단위로 하여 싼것.
넉새베
[명사]
석새베보다 품질이 좀 더 나은 삼베. 320올의 날실로 짜는데, 삼베 가운데 품질이 낮다. 전날에,《석새베보다 올이 좀 가늘고 품질이 나은 베》를 이르는 말. 날실이 160올로 되여있다.

남측의 사람은 북어 20마리, 김 100장, 미역 10장을 사고, 320올로 짠 베와 바늘 24개를 준비할 것이다. 이에 반해 북측의 사람은 김 40장과 개수 확인의 필요성도 모른 채 주인이 담아 주는 대로 북어와 미역을 사고, 160올로 짠 베와 바늘 20개를 준비할 것이다. 결국, 남측과 북측의 사람은 동일한 물건을 샀으나 물건의 전체 수량이 서로 다르고, 삼베로 만들어진 같은 옷감은 맞지만 질적인 차이가 있는 물건을 준비하게 된다.

그리고 남측과 북측의 사람들은 사 온 물건과 준비물을 펼쳐 비교해 보고, 서로 다른 것에 대해서 각자 의구심을 가지게 될 것이다. 뒤늦게 국어사전을 찾아보고서야 ‘같은 물건이지만 몇 개를 묶어서 이르는 말이냐’, 또한 ‘그 묶음을 나타내는 단위명사가 사전에 존재하느냐’ 등과 같은 남측과 북측의 차이를 알게 될 것이다. 왜 같은 상황이 주어졌음에도 불구하고 각자가 개수가 다른 물건을 사고, 질이 다른 물건을 준비하게 되었는지를 깨닫게 될 것이다.

‘수를 세는 행위’ 자체, 다시 말해서 낱으로 세는 말과 묶음을 하나의 단위로 세는 말과 같은 단위명사를 일상생활에서 쓰는 일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북어 한 쾌 주세요” 대신에 “북어 스무 마리 주세요” 라고 쉽게 풀어 말할 수도 있다. 묶음을 하나의 단위로 세는 말을 굳이 선택하지 않아도 대중들은 자연스럽게 대화를 할 수 있다. 하지만 ‘단위명사’가 대중들의 실제 경제활동에 주는 영향력과 위와 같이 동일한 상황에서 남측과 북측의 대중이 각각 다른 결과물을 도출하게 된다는 가정은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문제이다.

《겨레말큰사전》은 남북 분단 이후 ‘뜻이 달라진 낱말’의 뜻을 풀이에 적극 반영하는 사전이다. 단위명사에서 나타나는 남측과 북측의 차이에 대한 설명은 《겨레말큰사전》의 ‘붙임’ 정보에서 볼 수 있다. 예를 들면 아래와 같다.

[톧] [명] (의존) 《수량을 나타내는 말 뒤에 쓰여》
 김을 묶어 세는 단위. ∥ 김 세 {톳}. | 파래를 말려 뜬 파래김이 열 {톳이었고} 조갯살은 무려 세 관이 넘었으며 말린 새우만 해도 일곱 근이나 됐던 것이다.《이문구: 추야장》
[같은말] 속(束)③.
 [붙임] 한 톳은 남에서는 김 100장, 북에서는 김 40장을 이른다.
우리말은 위에 제시된 몇몇 단위명사 외에도 ‘신발 세 켤레, 마늘 두 , 조기 한 두름’ 등과 같이 그 앞의 명사에 따라 각각의 단위명사가 다양하게 구분되어 쓰인다. 그래서인지 ‘단위명사’는 퀴즈 프로그램이나 시험 등에서 심심찮게 출제되기도 하는, 대중들에게는 헛갈리거나 정확한 뜻을 알기 어려운 말이기도 하다. 더군다나 앞서 언급된 것과 같은 남과 북의 차이가 있다면, 《겨레말큰사전》에서는 남측과 북측이 얼마나 같게 또는 다르게 사용하고 있는지를 정확하고 쉽게 알려 줄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 ‘[붙임]’과 같은 방법으로 정확한 뜻풀이를 제시하는 것은 물론이고, 실제 쓰임을 직접 확인할 수 있는 남북공동회의 협의 과정도 반드시 필요하다.

현재 반쪽짜리로 남아 있는 원고의 끝마무리는 ‘왜 바늘 한 쌈의 개수가 남북이 달라졌는지’, ‘쾌가 북측에서는 실제로 쓰이지 않는 말인지’ 등에 대한 의문이 해결되는 남북공동회의가 열리고 난 후에야 가능하다. 곧, 그날이 오기를 기다려 본다. 겨레말

1)
《겨레말큰사전》에서는 언어학용어로서 ‘수효나 분량 등의 단위를 나타내는 의존명사’를 ‘단위명사’라는 용어로 기본올림말을 삼기로 하였다.
2)
《조선말대사전》(1992)에 ‘①이름수의 하나, 북어 스무마리씩 세는 단위로 쓰인다.’의 뜻풀이가 있었으나 증보판에서 이 뜻풀이가 삭제되었다.

| 권혜진 |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석사. 현재 겨레말큰사전남북공동편찬사업회 편찬1부 선임연구원으로 재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