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DF인쇄 지난호보기
겨레말은 겨레얼 입니다 겨레말큰사전 누리판

남녘말 북녘말

사람들이 바보라고 ‘몰아주는’ 온달 장군

_ 이형주 / 겨레말큰사전 연구원

한동안 SNS상에서 ‘외모 몰아주기’가 유행이었다. 친구들과 셀카(셀프 카메라)로 사진을 찍을 때 한 사람만 멀쩡하게, 그리고 남은 친구들은 엽기적이거나 우스꽝스럽게 표정을 지어 외모를 돋보이게 해주는 것이 바로 외모 몰아주기이다. 외모를 몰아줄 때는 보통 교대로 한 사람씩 외모를 뽐낼(?) 기회를 주기 때문에 “다음엔 유정이 몰아주자” 같은 표현도 심심치 않게 쓰이곤 한다.

그런데 앞뒤 문맥을 생략하고 “다음엔 유정이 몰아주자”라는 말을 북측 사람이 듣게 된다면 의도치 않은 오해가 발생하여 상황이 꼬일 수도 있다. 북측에서는 ‘몰아주다’를 “괴롭히다, 따돌리다”라는 의미로 쓰기 때문이다. 《표준국어대사전》(웹)과 《조선말대사전》(증보)에서 ‘몰아주다’는 각각 아래와 같이 풀이되고 있다.

《표준국어대사전》(웹) 《조선말대사전》(증보)
몰아주다 [동사]

① 여러 번에 나누어 줄 것을 한꺼번에 주다.
예) 사장이 직원들에게 밀린 임금을 몰아주었다.

② 여러 사람에게 나누어 줄 것을 한 사람에게 모아 주다.
예) 이번 선거에서도 지역 인사에게 표를 몰아주는 경향이 여전했다./우리가 받은 품삯을 생활이 어려운 친구에게 몰아주었다.
몰아주다 [동사]

① 마구 나무라며 핀잔을 주거나 추궁하다.


② 여럿이 하나를 공격하거나 따돌리다.
예) 그는 동무들이 입을 모아 금옥이를 몰아주는 일이 어쩐지 마음에 거슬리고 불쾌하였다. (장편소설《령마루》)


남측의 ‘몰아주다’는 주로 받는 횟수나 받는 사람을 하나로 합한다는 의미로 쓰인다. 또 무엇을 몰아주는가, 혹은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가에 따라 그 행동이 긍정적으로 해석될 수도 있고 부정적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외모 몰아주기’나 위의 사전 용례 중 ‘친구에게 품삯을 몰아주다’ 등은 긍정적인 의미가 될 수 있지만, 사회‧경제 분야에서 사용하는 ‘일감 몰아주기’는 규제 대상을 가리키는 표현이고 사전의 ‘지역 인사에게 표를 몰아주는 것’도 긍정적인 행동으로 보기 어렵다.

반면 북측의 ‘몰아주다’는 누구를 몰아주더라도 부정적인 행위를 의미한다는 점이 인상적이다.1) 사전에 풀이된 의미가 어떻게 쓰이고 있는지 말뭉치의 용례를 통해 좀 더 자세히 살펴보도록 한다.2)

ㄱ. 이렇게 착하기에 순사놈을 업어줘도 아이들이 용준이를 몰아주지 않는것 같다. 몰아주지 않을뿐아니라 잘 노는것 같다. 《강영희: 쌍바위》(북)
ㄴ. 당신을 담당한 구경찰서 대공과의 홍형사 있잖아요? 홍형사의 막내아들이 창완이하구 한반이거든요. 그 애가 창완이를 몰아주는 왕따의 두목이라는군요. 《홍석중: 폭풍이 큰 돛을 펼친다》(북)
ㄷ. 평강공주님은 사람들이 바보라고 몰아주는 온달을 랑군으로 맞아 나라의 장수로 키우지 않았나이까. 《김호성: 흥망》(북)
(ㄱ)-(ㄷ)은 모두 북측 용례로, 주로 《조선말대사전》(증보)의 뜻갈래 ②와 관련된 것들이다. 이들 용례를 통해 북측에서 ‘몰아주다’가 누구를 괴롭히거나 따돌린다는 의미로 쓰이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ㄴ)은 배경이 서울임을 드러내기 위해 남측 표현 ‘왕따’를 빌려 쓴 덕에 ‘몰아주다’의 의미를 분명히 알 수 있게 하는 매우 흥미로운 예이다.3) 다만 ‘몰아주다’의 이러한 용법이 생소하더라도, 심지어 그 의미를 미리 알지 못하더라도 (ㄱ)-(ㄷ)을 이해하는 데에는 어려움이 없다.

《조선말대사전》(증보)의 뜻갈래 ①과 관련된 예는 많지는 않지만 분단 이전부터 확인된다. 최정희의 《천맥(天脈)》(1940)에는 다음과 같은 표현이 나타나는데, 작가가 함경도 단천 출신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이 또한 당시 북측 지역에서만 주로 쓰이던 의미가 아닌가 한다.

“아이가 조금만 떠들믄 시끄럽다 야단이구……, 남 듣는데 밤낮 몰아주구……, 왜 당신 눈엔 걔 흉만 뵈세요.
이외에도 문화어(북측 규범어)는 아니지만 양강도 지역어로 ‘몰려주다’라는 표현도 북측에서 사용되고 있고, 최근에는 따돌림을 당하는 아이를 ‘모서리’라는 표현으로 부르기도 한다. 이처럼 북측에서도 ‘왕따’와 비슷한 표현들이 여럿 관찰되는 것으로 보아, 북측에도 청소년들 사이의 따돌림 문제가 존재함을 짐작해 볼 수 있다.

사회적 심각성은 다를 수 있겠지만, 남에서든 북에서든 괴롭힘을 당하거나 따돌려져 받게 되는 상처는 결코 경중을 따질 수 없다. 서로 다른 환경이기는 해도 남과 북의 청소년들이 마음에 흉터를 남기지 않고 건강하게 자라기를 바라는 마음은 누구라도 같을 것이다. 언젠가 남북의 청소년들이 함께 모여, 누구 하나 ‘몰아주지’ 않고 ‘외모 몰아주기’하며 추억을 쌓을 수 있을 그날을 기다려 본다. 겨레말

1)
종이사전인 1999년판 《표준국어대사전》에도 유사한 의미의 ‘몰아주다2’가 함경도 방언으로 등재되어 있다.
[참조] ‘몰아주다2’: 여러 사람이 한 사람을 다그치며 몰아세우다(함경).
2)
북측 용례는 띄어쓰기, 맞춤법 등 표기 방식에 대한 수정 없이 원문 그대로 제시하였다.
3)
(ㄴ)의 출전인 《폭풍이 큰 돛을 펼친다》(2005)는 서울을 배경으로 한 북한 소설로, 대하소설 《임꺽정》의 작가 홍명희의 손자이자 국어학자 홍기문의 아들인 홍석중의 작품이다. 소설 원문에는 (ㄴ)에 앞서 ‘왕따’에 대한 설명이 제시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소설의 배경을 반영해 작가가 의도적으로 남측 어휘를 사용한 것이라 짐작된다.
[참조] 왕따란 학교에서 아이가 동무들한테 몰리워서 고립당하는것을 말한다.《홍석중: 폭풍이 큰 돛을 펼친다》

| 이형주 |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서 석사 학위를 받고 박사 과정을 수료하였다.
현재 겨레말큰사전남북공동편찬사업회 연구원으로 재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