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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보물찾기

옛날이 더 좋았어

_ 이상배 / 동화작가

“일하는 것, 이것만이 ‘살고 있다’는 증거이다.” 파브르가 한 말입니다. “아직 해가 지지 않았다. 일하라, 지치지 말고. 그동안에 어느 누구에게도 일할 수 없는 죽음이 온다.” 괴테의 <서동시집>에 있는 말입니다.
사람은 죽을 때까지 노동을 해야 합니다. 그것이 삶이지요. 부지런히 성실하게 일을 하면 바로 일 속에 행복이 있겠지요. 동화 속의 나귀처럼 파니 놀면서 배부를 수는 없지요.

어느 방앗간에 나귀가 있었습니다. 나귀는 찧은 곡식을 마을 집집마다에 나르는 일을 하였습니다. 짐을 나르는 일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지만, 한 가지 견딜 수 없는 게 있었습니다.
“히힝, 배고파. 여기서 이러구러 지낼 수 없어. 배불리 먹을 수 있는 데를 찾아야 돼.”
그날부터 나귀는 하느님에게 기도를 하였습니다.
“하느님, 배가 고파 못 살겠습니다. 일이 고달파도 좋으니 배부르게 먹을 수 있게 해주십시오.”
나귀가 밤마다 소원을 비니, 어느 날 하느님이 나타났습니다.
나귀 “네 기도가 간절하여 소원을 들어주겠다. 후회하지 않겠지.”
“배부르게 먹을 수만 있으면 무슨 일이든지 다 하겠습니다.”
다음 날, 나귀는 방앗간에서 농부의 집으로 팔려 갔습니다.
새주인 농부가 여물죽을 쑤어 왔습니다.
“어서 먹어라. 일을 하려면 많이 먹어야 한다.”
나귀는 도리깨침을 흘리며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습니다. 실컷 먹었습니다.
“끄윽, 배부르다. 이제 낮잠이나 자 볼까.”
그때 농부가 다가왔습니다.
“배불리 먹었으니 이제부터 밥값을 해야지.”
농부가 나귀 고삐를 잡고 끌어냈습니다. 때 이른 일더위도 아랑곳없이 멍에를 씌우고 짐을 실었습니다. 나귀는 무거운 짐을 지고 뒤뚱거리며 걸었습니다. 여태껏 이토록 무거운 짐을 지어 보기는 처음이었습니다.
그날부터 나귀는 힘든 농사일을 하였습니다. 달구리에 일어나 일터로 나갔습니다.
“방앗간 시절이 좋았구나. 그때는 배는 좀 고팠지만 이렇게 고달프지는 않았는데.”
농부는 배불리 먹여주는 대신 일을 많이 부리고, 방아꾼은 먹을 것은 적게 주는 대신 일은 어렵지 않았습니다.
“배부르고 쉬운 일이 없을까?”
나귀는 게정거리며 다시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느님, 부디 새로운 일을 하게 해주십시오.”
나귀의 기도가 얼마나 간곡했는지 이번에도 하느님이 나타났습니다.
“무슨 일을 원하느냐?”
“하느님. 농사일만 아니라면 무슨 일이든 좋습니다.”
“네 소원을 들어주기 전에 한 가지 지킬 약속이 있다.”
“하느님과의 약속이라면 무엇이든 지키겠습니다.”
“네 기도를 들어주는 것은 이번이 마지막이다.”
“예, 하느님. 다시는 귀찮게 하지 않겠습니다.”
젖소 다음 날, 나귀는 목장으로 팔려 갔습니다. 넓고 푸른 풀밭에 젖소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었습니다.
“풍경 좋다. 이곳이야말로 내풀로 놀 수 있는 낙원이로구나.”
나귀는 좋아 어쩔 줄 몰랐습니다. 목장에는 다른 나귀들도 많았습니다. 모두들 끙끙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젖소들은 일은 하지 않고 풀을 뜯어 먹었습니다.
“그래도 농사일보다는 쉽겠지.”
나귀는 목장에서 일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일이 어렵지 않았지만, 점점 힘든 일을 시켰습니다. 그것도 젖소들이 실컷 먹고 싼 똥을 져 나르는 일이었습니다.
“퉤퉤, 이런 일을 하다니?”
나귀는 젖소들이 부러웠습니다.
“왜 나는 젖소로 태어나지 못하고 나귀로 태어났을까?”
나귀는 그런 생각을 하며 노량으로 움직이고 슬그머니 가로새기도 하였습니다.
“이 배퉁이 같으니, 먹음새는 황소 못지않으면서 꾀를 부려.”
주인은 채찍으로 나귀 엉덩이를 후려쳤습니다.
“이놈의 나귀는 힘든 일만 시키게.”
주인이 목동에게 일렀습니다. 그날부터 나귀는 목장에서 가장 힘든 일을 하며 먹이도 째마리만 먹어야 했습니다.
“끙. 방앗간에서 일할 때가 그립구나. 배는 좀 고팠지만 편안했지. 농부 집도 좋았어. 배고프지 않았고, 일도 여기보다는 훨씬 쉬웠지.”
나귀는 지난날, 자신이 택한 길을 후회하였습니다.

동화에 나오는 순우리말 뜻풀이
파니: 아무 하는 일 없이 노는 모양.
이러구러: 이럭저럭 시간이 흐르는 모양.
여물죽: 말이나 소에게 먹이기 위해 말려서 썬 짚이나 풀로 쑨 죽.
도리깨침: 도리깨가 꼬부라져 넘어가는 모양으로 침이 삼켜진다는 뜻으로, 너무 먹고 싶거나 탐이 나서

저절로 삼켜지는 침을 이르는 말.

밥값: 밥을 먹은 만큼의 일이나 대가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일더위: 첫여름부터 일찍 오는 더위.
멍에: 마소의 목에 얹어 수레나 쟁기를 끌게 하는 농기구. 이런 모양(∧)으로 생겼음.

* 마소는 말과 소를 이름.

달구리: 이른 새벽의 닭이 울 때.
방아꾼: 방아를 찧는 일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
게정거리다: 불평을 품은 말과 행동을 자꾸 하다. 게정제정하다.
내풀로: 내 마음대로.
노량으로: 어정어정 놀면서 느릿느릿.
가로새다: 중간에 슬그머니 다른 곳으로 빠져나가다.
배퉁이: 제 구실은 제대로 못 하면서 배가 커서 밥을 많이 먹는 사람을 놀림조로 이르는 말.

‘배’를 속되게 이르는 말. ≒배통.

먹음새: 음식을 먹는 태도.
째마리: 사람이나 물건 가운데서 가장 못된 찌꺼기.

이상배


| 이상배 |

동화작가. 한국아동문학인협회 회장을 지냈으며, 현재 도서출판 좋은꿈 대표이다. 대한민국문학상, 윤석중문학상, 방정환문학상, 한국동화문학상 등을 수상하였으며, 저서로는『책읽는 도깨비』,『책귀신 세종대왕』,『부엌새 아저씨』,『우리말 동화』,『우리말 바루기』, 『맛있는 순 우리말』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