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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의 복잡한 언어 상황 혹은 ‘언어 제국주의’를 넘어

_ 고인환 /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아프리카 대륙은 거대한 심상 지리의 일부로 인식되곤 한다. 어둠의 심연, 야생의 대륙, 기아와 질병, 종족 갈등(내전, 분쟁 등), 미개한 인종, 서구 열강의 식민주의 쟁탈전 등의 이미지가 아프리카 대륙의 고유성을 잠식하고 있다. 외부자(특히 서구인)의 규범적 틀로 조작된 허상이 아프리카의 실체를 왜곡하고 있는 것이다. 아프리카 대륙을 ‘영어권’, ‘프랑스어권’, ‘포르투갈어권’ 등 구 식민 지배 국가의 언어를 기준으로 나누는 경우도 여기에 해당한다. 아프리카 문학 연구 또한 예외가 아니어서 영어권 문학, 불어권 문학 등 과거 식민 지배국의 언어로 문학을 정리한 경우가 많다. 아프리카 개별 국가들의 문학사는 찾아보기 어렵다.1) 과거 식민 지배국의 언어가 여전히 아프리카의 문학을 지배하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언어 지형도는 아프리카의 실제 언어 상황을 완전히 무시한 사례이며, 아프리카에 살고 있는 대다수의 주민을 ‘타자화’한 경우라 할 수 있다.

아프리카의 언어 상황은 복잡하고 다층적이다. 프랑스어권 중서부 아프리카 국가들의 프랑스어 사용 실태를 살펴보자. 실제로 이 지역에서는 50여 어족에 속한 1,000여 개가 넘는 다양한 언어가 사용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프리카 행정, 교육, 통신에서는 프랑스어가 공식적으로 통용되지만, 주민의 일상생활에서는 토착어나 지방 언어가 주로 사용되고 있다. 이 지역 아프리카인의 5∼10% 정도만 프랑스어를 구사하며, 이마저도 공식 담화나 몇몇 법령 때문에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2) 이 지역의 언어 사용 실태는 다중적이다. 교육과 행정에 사용되는 공식어인 프랑스어는 일부 도시 엘리트들이 사용한다. 다양한 부족들 사이의 소통은 초지역적인 아프리카어, 즉 교통어3)가 주로 담당한다. 대다수 주민은 일상생활에서 지역적 토착어를 사용한다.

연구년으로 남아공 케이프타운에 머물 때의 일이다. 거기서 만난 한 친구가 느닷없이 물었다. “너희 집에서는 무슨 언어를 사용하냐?” 의도를 몰라 당황하는 나에게 그는 다양한 부족들이 모여 사는 남아공에서는 밖에 나와서 사용하는 말과 집에서 쓰는 언어가 다르다는 말을 덧붙였다. 여러 부족의 언어를 구사할 줄 아는 그 친구는 케이프타운 의과대학에서 부족어를 강의하고 있었다. 의대 교과 과정에 부족어 수업이 있다는 사실이 인상적이었다. 한국은 단일 민족 국가라 국어가 하나라고 말하자 그는 매우 의아해했다. 이어서 그가 물었다. “그럼 북한 사람들과는 무슨 언어로 소통하느냐?” 남한과 북한은 한 민족이라 같은 언어를 사용한다는 말에 그는 다시 한번 놀랐다. 내친김에 그에게 들은 에피소드 하나를 소개하기로 하자. 1994년 정권을 잡은 만델라는 다양한 부족의 대표들을 초청해 소통하며 국민 대통합을 시도했다고 한다. 그때 한 소수 부족의 장이 만델라의 초청을 거절했다고 한다. 나를 만나고 싶으면 직접 오라는 것이었다. 만델라는 통역사를 대동하고 그를 찾아갔다. 그는 자신의 부족어를 익히지 못한 만델라에게 호통을 쳤다고 한다. 그 후 만델라는 다양한 부족의 언어를 습득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한다.

현재 남아공은 11개의 언어를 공식어로 채택하고 있다. 식민 제국의 언어인 영어와 아프리칸스어를 제외하면 줄루어, 코사어 등 9개의 토착어가 공식어로 지정된 셈이다. 모어(母語) 사용 비율은 줄루어, 코사어, 아프리칸스어 순이라 한다. 이는 남아공의 인종 구성 비율과 일치한다. 영어는 모어 사용 비율이 높진 않지만, 대부분의 도시 지역에서 통용되며 정부와 언론에서 많이 쓰이고 있다. 이러한 남아공의 시도가 고무적이긴 하지만 아프리카에서 효과적인 언어 정책의 실행은 여전히 갈 길이 멀다. 지난 수십 년간 식민 지배 언어에 의존해 온 언어 정책은 모어와 국경의 경계가 일치하지 않는 대다수 아프리카 나라들의 국가적 통합을 이루는 데 성공하지 못했다. 영어와 프랑스어 등 서구의 언어는 일부 도시 인구에 한정된 소수 엘리트 층의 특권적 언어로 전락했다. 지배층이 강요한 이러한 외국어들은 모어(토착어)를 사용하는 다수의 일반 대중들에게 외면당하기 일쑤였다. 다수가 문맹인 아프리카 주민에게 영어나 프랑스어를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것은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외국어를 공부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에 동의할 것이다.

언어는 단순한 의사소통의 도구, 혹은 신분 상승이나 성공의 도구에 머물지 않는다. 식민주의를 경험한 공동체에게는 더더욱 그러하다. 언어는 공동체의 문화와 정체성을 담고 있는 거울이기도 하다. 언어 생태학자 루이-장 칼베의 ‘언어적 상부구조의 전복을 동반하지 않는 모든 명목상의 해방은 피지배 언어를 말하는 민족의 해방이 아니라 지배 언어를 사용했고 계속 사용하는 사회 계층의 해방(『언어와 식민주의』)’이라는 전언을 되새기며 글을 맺는다.

1)
2017년 케이프타운에 머물 때 남아공 문학을 공부하고 싶어 케이프타운 대학 도서관 검색 사이트에서 영어로 ‘남아공 문학사’를 치니 한 권의 책이 검색되었다. 기쁜 마음에 도서관에 달려가 대출해 살펴보니 남아공의 아프리칸스어 문학을 영어로 정리한 문학사여서 당황한 적이 있었다.
2)
오은하, 「‘프랑스어권 아프리카’라는 이름」, 『검은, 그러나 어둡지 않은 아프리카』, 사회평론, 2014, 42∼43쪽 참조.
3)
서로 다른 모국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소통어를 말한다. 넓은 의미에서 보면, 영어와 프랑스어 등의 유럽어들도 이러한 교통어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이를 제외한다면, 아프리카 서부의 밤바라어, 중부와 동부의 키스와힐리어, 서부와 중부의 하우사어, 세네갈과 감비아의 월로프어, 토고와 가나, 베넹의 에웨어 등이 있다. 이러한 교통어들은 아프리카 각지에서 다양한 종족을 연결하며 역동적 진화를 거듭하면서 정치적 국경을 초월하여 국가와 지역공동체의 정체성 함양에 기여하고 있다(폴랭 G. 지테, 「언어와 발전」, 『프랑스어권 아프리카의 언어와 문화』, 홍미선 편, 한울아카데미, 2009, 36쪽 참조).

고인환


| 고인환 |

문학평론가. 2001년 <중앙일보> 평론 등단. 저서로는 『공감과 곤혹 사이』(2007), 『정공법의 문학』(2014), 『문학, 경계를 넘다』(2015), 번역서는 『프랑쎄파의 향기』(2019) 등이 있다.
현재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경희대 범-아프리카문화연구센터 센터장으로 재직하고 있으며, 2017년 한 해를 남아공 케이프타운 대학에서 방문 교수로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