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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르고 같은 남북 건설 분야 용어

_ 김두환 / 토지주택연구원 연구위원

인간사회를 엮는 기본은 사람들 사이 의사소통이고, 의사소통은 대부분 말로 이루어진다. 말이 다르면 의사소통과 사회 동질성 유지가 어려울 수밖에 없다. 남과 북의 언어는 얼마나 다를까? 오랜 세월 따로 살아온 탓에 많은 우려도 있지만 대체로 북측과 함께 작업 해 보거나 공동 사전편찬에 참여해 본 사람들 생각은 남과 북 사이 언어 차이로 인한 의사소통의 문제는 거의 없다는 것인 듯하다. 개성공단에서 북측 노동자들과 함께 일 해 본 남측 관리자나 직원들도 개성공단이 다른 나라 공단보다 나은 가장 큰 이유는 언어가 같다는 것이라고 한다. 지리적으로 가깝고 인건비가 저렴한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의사소통이 원활해서 난이도 있는 기술을 전수하거나 공동 작업을 하는 데 장애가 없다는 것이다. 건설 용어도 다르지 않다. LH 토지주택연구원은 2015년에 중국 연변대 과학기술대학 건축 분야 교수진들과 함께 국토교통부 수탁과제로 「북한건설용어집」을 편찬한 바 있다. 여기에는 국내 건축, 토목 분야 교수 등 여러 전문가들이 감수로 참여하였는데, 전문가들 대다수 의견도 ‘생각보다 다르지 않다’라는 것이었다. 남쪽 지역 간 사투리 차이와 비교해 봐도 그 이상 남과 북의 건설용어가 다르지는 않다는 것이다.
남과 북 사이 언어의 다름이 지역 방언 수준으로 의사소통에 거의 지장이 없다는 것은 향후 남북협력과 통일 과정에서 다른 어떤 것보다 큰 자산일 것이다. 그럼에도 남북 언어를 조사하고 다른 것을 찾아보고 맞추어 보고 공동사전을 편찬하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가장 큰 의미 중 하나는 역설적이지만 그리 다르지 않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다른 것을 맞추어 보며 우리 언어와 생활을 더 풍부하게 하는 의미가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또 하나 남북 언어를 맞추어 보는 것은 남북협력을 위해서도 중요한 일이다. 건설 분야처럼 전문성이 필요하고 사소한 오해나 실수로 큰 사고가 발생할 수 있는 영역에서는 언어사용의 전문적 엄밀함이 매우 중요하다. 예를 들어, 남과 북이 공동으로 도로나 철도를 건설한다든지, 공장을 건립하고 운영한다든지 했을 때, 계획서나 설계도에 있는 용어의 뜻이 서로 다르거나 현장에서 달리 사용한다면 고도로 전문적인 작업을 하는 데 장애가 될 것이 분명하다. 건설 등 전문 분야별로 남과 북의 전문가들이 해당 분야 용어들을 서로 비교 정리하는 것은 큰 의미가 있을 것이다. 향후 협력 과정의 시행착오를 줄여주고 그에 따른 위험을 방지하고 비용을 줄여줄 것이다. 용어를 매개로 한 학술적 공동작업이 실제 공동사업을 위한 예비 훈련 같은 효과도 덤으로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같은 부분이 더 많다는 사실이 덮일까 다소 우려스럽기는 하지만, 여기서부터는 다른 점을 좀 더 부각해서 보면, 먼저 북에서는 남에 비해 한자어나 외래어 사용이 많지 않고, 남측에 비하면 순수 우리말이 훨씬 많은 편이다. 「북한건설용어집」에 대표로 소개된 것만 봐도, 남측의 ‘지하도’는 북측에서는 ‘건늠굴길’, ‘환기’(換氣)는 ‘공기갈이’, ‘방음벽’은 ‘소리막이벽’, ‘내한성’(耐寒性)은 ‘추위견딜성’ 등으로 쓴다. 이런 말들을 보다 보면 왜 남쪽에서는 이렇게 쓰지 않을까 좀 부러운 생각도 든다. 건늠굴길, 공기갈이 등은 비록 남측은 쓰지 않는 말들이지만 들으면 어떤 뜻인지 바로 알만한 것들이고 조금 익숙해지면 더 자연스러울만 한 것들이다. 주택 관련 용어들도 보면 ‘주택’은 ‘살림집’, ‘베란다’는 ‘내밈대’나 ‘내민층대’로, ‘형광등’은 ‘받디빛등’, ‘주차장’은 ‘차마당’, ‘산책로’는 ‘유보도’나 ‘거님길’로, ‘보도’는 ‘걸음길’, ‘피뢰침’은 ‘벼락촉’, ‘내화성’(耐火性)은 ‘불견딜성’으로 쓴다. 이외 ‘압축강도’는 ‘누름세기’, ‘슬라이딩공법’은 ‘미끄럼공법’, ‘준설’은 ‘바닥파기’, ‘경작지’는 ‘부침땅’ 식으로 순우리말로 쓰고 있다.
외래어에서는 남측이 미국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에 비해 북측은 러시아어의 영향을 받은 기술용어가 많은 편이다. 남측의 ‘트랙터’는 북측에서는 ‘뜨락또르’, ‘레일, 철도 선로’는 ‘레루’, ‘홀형’은 ‘쌕찌야식’으로 쓴다. 러시아어에서 유래한 말들이다. 순수 우리말을 쓴다든가 러시아어의 영향을 더 받았다든가 하는 것과 관계없이 서로 다른 사용으로 굳어진 말들도 많다. 예를 들어 ‘화장실’은 ‘위생실’, ‘컨테이너’는 ‘짐함’, ‘건설 허용오차’는 ‘건설공차’, 응결속도가 빠른 ‘조강시멘트’는 ‘급결세멘트’, ‘실시설계’는 ‘기술설계’, ‘단열’은 ‘보온’, 벽돌을 쌓아 올리는 ‘조적조’는 ‘적체구조’ 등으로 쓴다. 외래어 표기만 다소 다른 말들도 있는데, 남측의 ‘아파트’는 북측에서는 ‘아빠트’, ‘시멘트’는 ‘세멘트’, ‘콘크리트’는 ‘콩크리트’로 쓴다. 북측 용어에는 북측 사회체제의 특수성을 고려해야 이해가 되는 것들도 있다. 예를 들어 북측 「토지법」에 나오는 ‘협동경리’는 협동 단체들이 생산수단을 함께 소유하면서 이를 경제적으로 경영하고 관리하는 활동으로 남측에서는 사용하지 않는 단어이다.
북측 말을 처음 들었을 때는 생소하지만 대부분 조금 생각해 보거나 한두 번 들어보면 바로 이해하고 기억할 만 하다. 북에서 “레루 아래 건늠굴길에 뜨락또르”는 남에서는 “철길 선로 아래 지하도에 트랙터”가 된다. 많이 다른 듯도 하지만 알고 보면 그리 다르지 않은 것이 남쪽 말 북쪽 말이다. 여기서는 일부러 ‘레루’로 썼지만 ‘레루’를 북측에서 ‘철길’로도 쓴다. 북측 말 남측 말은 다른 분야도 그렇지만 건설 용어에서도 다른 듯 다르지 않다. 그래서 당초 “남북 건설 분야 용어의 차이”라는 제목으로 글을 쓰다가 제목을 “다르고 같은 남북 건설 분야 용어”로 고쳤다. 서로 같은 것도 소중하고 다른 것도 소중하다. 같아서 함께 하기 좋고 달라서 더 풍부해지고 상상력을 자극해 주니 좋다. 말이 서로 다른 것을 찾아보고 맞추다 보면 뜻도 서로 맞추게 되고 일도 같이할 마음도 더 생기기 마련이다. 이런 생각으로 남과 북 건설 용어의 다름과 같음을 나눠보았다.

| 김두환 |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에서 도시계획학 석사와 박사를 취득하였으며, 현재 LH 토지주택연구원 연구위원으로 국토지역연구실장을 맡고 있다. 2014년부터 2016년까지 같은 연구원에서 북한연구센터장을 역임하였으며, 2015년에 토지주택연구원 연구진, 중국 연변대학교 과학기술대학 건축 분야 교수들과 함께 국토교통부 수탁으로 「북한건설용어집」을 편찬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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