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천리 방언곡곡
꾸레미
이길재
겨레말큰사전 수석편찬원
  • 북측 파견원:
    거기서 신문, 방송 자료를 보니까 대학교는 돈이 많이 드는 모양이더군요. 우리는 학교에서 돈 받는 거 없는데, 거기는 공납금이 높아진다고 말이 많더군요.
  • 남측 파견원:
    그만큼 개인의 능력도 높아지고 있어요. 선생님은 모든 일을 국가에서 지원한다고 하시는데, 개인의 능력을 그렇게 무능화시켜서 되겠어요?
  • 북측 파견원:
    ‘소 웃다가 꾸레미가 터진다’는 말이 있어요.
  • 남측 파견원:
    소가 웃는 것 일평생 못 봤고⋯.
위의 대화1)는 1971년 9월 16일에 열렸던 5차 남북 적십자 파견원 접촉 회의록의 일부이다.2) 이 회의록 속 대화에서는 남북이 서로 다른 체제에서 각 측의 교육 환경이 더 좋다는 것을 앞세우며 기(氣) 싸움을 벌이는 묘한 분위기를 감지할 수 있다. 그것을 ‘소 웃다가 꾸레미 터진다’는 속담으로 주고받는 것은 지역어를 연구하는 필자의 눈에 더욱 흥미롭게 다가왔다.
남북적십자 파견원 제1차 접촉(1971)
남북대화 사료집(1970.8.~1972.1.)
사진: 통일부
북측 대표가 말한 ‘소 웃다가 꾸레미가 터진다’는 남북 사전에 모두 실려있는 속담이다. 《표준국어대사전》과 《조선말대사전》에서 ‘삶다’라는 표제어를 찾아보면 ‘삶은 소가 웃다가 꾸레미 터지겠다’라는 속담이 실려있는데, ‘웃을 수 없는 삶은 소조차 너무도 어이없고 우스워서 한껏 입을 벌리고 웃다가 꾸레미가 터지고 말겠다는 뜻으로, 하는 품이 하도 어이없고 가소로움을 놀림조로 이르는 말’로 풀이되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속담 중에 북한에서만 쓰이는 것으로 ‘삶은 게가 다 웃는다’도 있다. 남북 사전에 모두 실려있기는 하지만 겨레말 말뭉치에서 남, 북, 중국 연변 지역의 문학작품을 검색해 보면 남측보다는 북측과 중국 연변 지역에서 훨씬 많이 쓰이는 속담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 삶은 소가 웃다가 {꾸레미} 터지겠다.《웃음》(북)
  • 허, 네 주제에 누굴 놀리려 들어? 삶은 소대가리 웃다가 {꾸레미} 터질노릇이구나.《어처구니》(북)
  • 너 일한 덕분? 정말 소 웃다 {꾸레미} 터질 일이구나.《허춘희: 다투던 매돌》(중국)
‘꾸레미’는 소를 부릴 때 소가 곡식이나 풀을 뜯어 먹지 못하게 소의 주둥이에 씌우는 것으로, 가는 새끼로 그물처럼 엮어서 만든다. 남측에서는 ‘부리망’과 ‘주둥망’을 규범어로 사전에 올렸고, ‘꾸레미’는 ‘부리망의 북한어’로 다루고 있다. 북측에서는 ‘꾸레미’를 기본올림말3)로 놓고 ‘부리망’은 ‘꾸레미를 달리 이르는 말’로 풀이하고 있다.
농촌에서도 ‘부리망’은 이제 거의 찾아볼 수 없게 되었지만, 소를 이용해 농사를 짓던 때에는 우리의 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던 물건인 만큼 그 방언형도 다양하게 남아 있다. 다음은 모두 ‘부리망’과 관련된 어휘들이다.
올림말 뜻풀이 분포 지역 변이형
구리망 부리망. 경기
구리매 부리망. 중국
꺼럭지 부리망. 함남
꺼레기 부리망. 경북, 중국 꺼래기. 꺼러그. 꺼러기
커레기 부리망. 함북
꺼레 <꺼레기>의 준말. 함북 꺼래
꺼리 부리망. 함북, 중국
꾸러기 부리망. 함북 꾸래기. 꾸레기. 끄레기. 끄르레기
꾸레미 부리망. 평안, 중국 꾸래미
꾸리 부리망. 함북 끄리
마울 부리망. 제주
망 부리망. 경기, 경남, 전라, 충남
망올 부리망. 제주 망울. 망을. 몽올
모알 부리망. 평안
망태기 부리망. 경기 망테기
머구리 부리망. 경북, 충북 머거리. 머고리. 머구레
머그대 부리망. 경북
멍 부리망. 경남, 전북, 충북 믕
멍구럭 부리망. 전북, 충북 멍구락
멍구리 부리망. 충북
멍드리 부리망. 전남
멍에 부리망. 강원 멍이
멍지 부리망. 강원
세꾸레기 부리망. 중국 세꾸래기
소꺼러지 부리망. 경북
소꺼리 부리망. 함북
소꺼찌 부리망. 경북
소머이 부리망. 강원
소찌거리 부리망. 경상 소찌그리
소앞이 부리망. 함남
소허거리 부리망. 경북
소홍 부리망. 경남
쇠그래기 부리망. 경북 쇄그래기. 쉐그래기. 쇠끄레기
쇠머거리 부리망. 경북 쇄머거리. 쉐머거리
쇠꺼럭지 부리망. 함남
쇠꺼리 부리망. 함북
소망 부리망. 전라, 충남, 황북 소멍
쇠망 부리망. 경기, 경남, 전라, 충남 세망. 세멍. 세믕. 쇄망. 쉐망
쉐망 부리망. 제주
쉐망우리 부리망. 제주
쉐망울 부리망. 제주
입망 부리망. 전라, 충북 입멍. 입몽
입마개 부리망. 경남
찌거리 부리망. 경남
풀망 부리망. 전북
허거리 부리망. 경북 허가리
허구레 부리망. 경북
홍 부리망. 경남
호소리 부리망. 경남
호어리 <홍어리>의 준말. 경남
호리 <호어리>의 준말. 경남
홍소리 부리망. 경남
홍어리 부리망. 경북 홍오리
홍태기 부리망. 경남
‘구리망’과 ‘구리매’는 각각 경기와 중국 지역에서 조사된 어휘로 ‘구리’와 ‘망’이 결합된 어휘이다. ‘부리>구리’는 ‘ㅂ’이 ‘ㄱ’으로 변화한 결과인데, 이는 현대국어의 ‘북’이 ‘붚>붑>북’과 같은 변화를 경험한 것과 같은 것이다. 경북과 중국 지역에서 조사된 ‘꺼레기’는 함북과 중국 지역에서 나타나는 방언형 ‘꺼리’와 접사 ‘-어기’가 결합된 ‘꺼러기’가 마치 ‘어미’가 ‘에미’로 변한 것과 마찬가지로 ‘꺼러기>꺼레기’와 같은 변화를 겪은 것이다. 또한 함남 지역에서 조사된 ‘꺼럭지’는 ‘꺼리’와 접사 ‘-억지’가 결합된 말이며, 함북 지역에서 쓰이는 ‘꺼레’는 ‘꺼레기’의 준말로 ‘꺼레기>꺼레이>꺼레’와 같은 변화를 경험했을 것으로 추정되나, 변화의 중간 단계에 있는 ‘꺼레이’는 아직 조사된 바 없다. ‘커레기’는 함북 방언형으로 ‘거레기>커레기’와 같은 변화를 생각해 볼 수 있으나, ‘거레기’의 형태 역시 지금까지 조사된 바 없다. ‘꾸러기’는 ‘꾸리’와 접사 ‘-어기’, ‘꾸레미’는 ‘꾸리’와 접사 ‘-어미’와 결합된 어형이다(꾸러기>꾸레기, 꾸러미>꾸레미).

경기, 경남, 전라, 충남 지역의 방언형인 ‘망’은 ‘부리망’의 ‘망’이 단독으로 쓰인 것이며, 평안 방언형인 ‘모알’은 ‘망올’이 변한 말이다. ‘망올, 모알, 망태기’는 모두 ‘망’과 ‘올, 알, 태기’가 결합된 방언형들이다. 또한 ‘멍구럭, 멍구리, 멍드리, 멍에, 멍지’ 등은 ‘망’의 변이형인 ‘멍’이 결합된 어휘들이다. ‘소꺼리, 소꺼찌, 소망, 소머이, 소찌거리, 소허거리, 소홍’ 등은 ‘부리망’을 나타내는 방언형 앞에 ‘소’가 결합되어 만들어진 말이며, ‘세꾸레기, 쇠그래기, 쇠머거리, 쇠꺼럭지, 쇠꺼리, 쇠망, 쉐망, 쉐망우리, 쉐망울’도 ‘소의’ 뜻을 더하는 접사 ‘쇠-(세-, 쉐-)’가 결합된 말들이다. 이들 중에 ‘쉐망, 쉐망우리, 쉐망울’은 제주어로 ‘쇠’가 단모음 ‘쇠’로 발음되지 못하고 이중 모음 ‘쉐’로 발음되어 생겨난 독특한 방언형들이다. 함남 지역어인 ‘소앞이’는 단어를 만들어 낸 방식이 ‘소’가 결합된 다른 단어들과는 다르다. ‘소앞이’는 ‘소’와 ‘앞’이 결합된 ‘소앞’에 접사 ‘-이’가 결합된 방언형이다. 즉 ‘소 앞에 있는 것’이라는 의미에서 ‘부리망’을 가리키는 셈이다. ‘입망, 입마개’는 ‘입’에 각각 ‘망’과 ‘마개’가, ‘풀망’은 ‘풀’과 ‘망’이 결합된 방언형이다. 어쩌면 ‘입망, 입마개, 풀망’ 등은 ‘부리망’의 기능을 가장 잘 표현하고 있는 방언형일지도 모른다.

경남 지역의 ‘찌거리’는 그 어원을 파악하기 어렵다. 또한 경상 지역의 방언형인 ‘허거리, 호소리, 호어리, 호리, 홍소리, 홍어리, 홍태기’ 등은 모두 ‘홍’과 관련된 방언형이나, ‘홍’이 어디에서 온 말인지 짐작하기 어렵다.
  • 소로 밭 갈라며는 소 이끄는 사람 없을 때는 꼭 {머그대로} 달아야 소가 풀을 안 먹습니더.
  • 밭을 갈거나 논을 갈거나 할 때는 소 입에 {멍구럭을} 씌워 놓아야 밭을 갈아.
  • 풀 못 뜯어 묵게 {멍드리럴} 씨이불제.
  • 소로 밭일 할 때는 {소끄레기로} 꼭 해야될다.
  • 이거 쇠에 씨우는 옛날이두 여거서 {쇠꺼럭지라} 말이.
  • {풀망얼} 안 씨우먼 소가 풀을 뜯어 먹은깨 쟁기질을 지대로 헐 수가 웂어.
  • 소로 밭으 갈 때느 {허가리로} 하면 좋습니더.
  • 밭일할 때 {홍오리} 안 씨만 소가 눈에 띠는 대로 다 먹을라카거든.
소도 ‘일터’를 잃어버린 요즘, ‘꾸레미, 머그대, 멍구럭, 멍드리, 소끄레기, 쇠꺼럭지, 홍오리’와 같은 말들은 어느새 쟁기를 소에 메워 쟁기질을 하던 사람들의 머릿속에만 남아 세상의 뒤편으로 사라질 처지에 놓여 있다. 그 단어로 만들어진 속담의 운명은 더 말할 것도 없다. 50년 전 남북 최초의 대화 속에서 건져 올린 단어, ‘꾸레미’를 생각하며 어느덧 7년째 중단된 남북공동회의 장면들이 겹쳐 떠올랐다. 말들이 가지고 있는 문화와 정서를 오롯이 기록하고 보존하려는 노력의 하나로 《겨레말큰사전》 편찬, 특히 지역어의 조사, 발굴 작업과 남북 공동의 논의가 계속되어야 할 것이다. 겨레말
  • 1) 안정식, (2022. 5. 4.). “[취재파일] 북 “소 웃다가 꾸레미 터진다”... 남 “소가 웃는 것 못 봤고””. SBS뉴스, https://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6738455(접속일: 2022.08.22.)
  • 2) 통일부는 지난 5월, 남북회담이 시작된 1970년대 초반의 남북회담 사료 일부를 국민에게 처음으로 공개했다. 공개 대상 사료는 남북회담본부, 국립통일교육원, 북한자료센터 3곳에서 열람할 수 있다.
  • 3) 사전에서, 같은 뜻의 여러 올림말을 대표하여 뜻을 풀이하는 올림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