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레말 blog
2022.05.25
매년 5월 넷째 주는 통일교육지원법에서 정한 통일교육주간입니다.
집중 탐구
작은 동네책방에서 북한학 책을 팔다
이나영
이나영책방 대표
이나영책방의 시작, 최초의 북한학 전문서점
이 글을 쓰는 지금, 창밖을 내다보니 1년 전 이맘때 책방 공간을 계약했던 것이 생각난다. 서울 2호선 지상철이 지나다니는 길, 녹음이 짙은 창밖으로 풍기는 편안한 분위기가 우리 모두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때였다. 나와 출판사 힐데와소피는 불광동 서울혁신파크 내 청년청의 한 사무실을 공유하고 있었는데 사무실 계약 종료가 얼마 남지 않았던 2020년 연말, 조촐한 종무식을 하며 동네에서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과거에도 여러 차례 우리들은 각자 서점을 운영하는 것에 대한 이상을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아무래도 책을 (읽는 것을 혹은 사는 것을) 좋아하고, 이제는 책을 만들기도 하고 있으니 책에 대한 애정으로는 어디 가서 뒤지지 않는다는 걸 제대로 인지하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다 술자리에서 툭 튀어나온 이름이 있으니, 그건 바로 ‘이나영책방’이었다. 우리는 책을 통해서 새로운 세상을 만나고 영감을 받으며, 삶의 동력을 찾는다. 책에서 나와 힐데와소피가 얻고자 하는 영감을 다른 이들도 공유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담긴 서점. ‘이것이 나의 영감’이라는 말의 줄임말이자 대표인 나의 이름을 딴 책방이 갑작스럽게 시작되었다. 이나영책방의 시작이 치밀하게 설계된 계산에 의한 것이 아니었을까 짐작하신 독자가 있다면 미안한 마음이 들 정도로 충동적이었다. 이름이 정해짐과 동시에 우리는 부동산 어플을 켜 인근의 상가를 검색하기에 이르렀고 술을 먹다 말고 부동산 탐사까지 나섰다. 대단한 행동력이 아닐 수 없었다.
그렇게 동네책방을 만들기로 하면서 제일 먼저 고려해야 했던 것은 바로 우리 책방의 성격이었다. 책을 읽는 독자의 절대적 수가 줄어들고 있는 점, 독자가 소규모의 지역서점·독립서점에서 책을 많이 구매하지 않는다는 것, 대형서점 중심의 온라인 서점이 맹위를 떨치고 있다는 것 정도는 이 글에서 다시 언급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동시대의 독자라면 이미 인지하고 있는 현실이다. 그렇다면 우리 책방으로 독자를 유인할 방법은 무엇일까. 이에 대한 답은 우리가 잘할 수 있는 전문 분야를 내세우는 것뿐이었다. 소규모 서점, 독립서점들은 사실 모두가 같은 고민을 거쳐서 창업한다. 각 서점만의 뾰족한 콘셉트는 그 자체로 모객의 마케팅 전략이 되기 때문이다.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북한학을 공부한 것, 북한이탈주민지원센터에서 근무한 이력, 통일교육 커리큘럼을 만들고 기획을 해 본 경험 등의 교집합을 통해 우리는 북한학을 전문으로 하는 동네서점을 만드는 것으로 결정했다. 시작부터 순조로운 기분이었다. 우리가 아마 최초의 북한학 서점이 되지 않을까라는 기대감에 벅찼다.
이나영책방 서가의 세 가지 입고 원칙
북한학 전문서점을 내세우니 슬며시 걱정이 밀려들었다. 과연, 대체, 누가! 북한과 관련한 책을 사서 볼 것인가. 한 달에 한 권은 팔릴까? 그렇지만 명색이 북한학을 다루는 서점인데 연구하는 사람들이 읽는 필독 도서와 북한사회 분야별 맥락을 살펴볼 수 있는 도서를 빼놓을 수는 없었다. 필독 도서 중에는 저자들의 헌신이 담긴 존경할 만한 연구들이 많기 때문이다. 대중에게는 미처 가닿지 못한 북한 연구의 성과를 널리 알리고 싶은 욕심이 컸다.
그러나 연구자들이 읽는 책들이란 두껍고, 대중이 널리 사용하지 않는 전문용어들이 가득한, 어려운 논문을 엮은 책들이 대다수다. 애당초 독자 자체가 한정된 책들이었다. 그러다 보니 북한학 서가를 채울 책들을 선정하는 것이 더 어려웠다. 아니, 어렵다기보다 서가를 채울 책들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북한을 다루는 책은 논문을 기반으로 한 학술서와 기초적이거나 다소 자극적인 도서들로 양극화되어 있다. 소위 말하는 ‘중간’이 없어서 대중의 흥미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북한 서가를 꾸리면서 북한학이라는 학문이 많은 성과를 이루었음에도 한국 사회에서 어느 정도에 있는지와 우리 사회가 어떻게 북한을 소비하는지를 절감했다.
고민 끝에 북한 서가에 입고할 책을 결정하는 데 있어 책방 크루가 타협한 지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책방 특성상 연구자들이 찾아올 것을 고려하여 북한학 전문서점의 이름에 걸맞은 필수도서는 비치한다. 대신 책을 상품으로 규정했을 때 필연적으로 맞닥뜨리는 재고관리 차원에서 위험부담이 적을 수 있도록 크루가 소장한 중고책 위주로 선정한다.
둘째, 북한에 국한하여 사고를 한정하지 않는 것이다. 논쟁의 여지는 많지만 북한은 사회주의 이데올로기를 근간으로 시작한 국가다. 비록 외피뿐이라고는 해도 기본적으로 사회주의에 대한 이해를 거치지 않으면 북한의 맥락을 살피기 쉽지 않다. 그래서 자본론 해설서를 비롯해 사회주의가 무엇인지, 현시대에서 사회주의를 이해하는 방법 등 사고의 확장을 돕는 도서를 함께 비치해둔다. 더 나아가 북한 문제를 한반도 문제로 확장하고 국제질서 내에서 북한을 보려는 시도와 함께 우리 사회에서 두루뭉술하게 사용하는 평화 개념을 정립할 수 있는 책도 고려한다. 한반도에 도래해야 할 평화는 우리가 추구해야 할 가치임이 분명하기에 평화에 대한 이해와 공통의 정의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북한을 가볍게 소비하는 데 그치는 자극적인 방식의 도서는 취급하지 않는다. 누가 객관적이고 누가 주관적이라고 평가할 수 있겠냐마는 최대한 다양한 루트로 확인할 수 있고, 한 제도의 집합체로서 북한의 정책과 현실에 기반한 정보를 다루는 책들을 발굴하려 애쓴다. 스낵처럼 간단히 취하는 정보, 허위 조작정보가 넘쳐나는 이 시대에, 직접 방문해서 우리 눈으로 확인할 수 없는 북한은 ‘카더라’ 정보로 버무려 우리가 원하는 대로 이미지화하기 쉬운 대상이 되어 있다. 『어쩌다가 북한학』(힐데와소피, 2021)에서도 나오는 이야기지만 북한을 타자화하지 않는 연구자의 태도는 북한학을 공부하면서 배우게 된 원칙이었다.
학문이 권력을 가지지 못한 약자, 배제되는 존재를 비가시화하는 데 무기로 사용되는 것은 바람직하다 볼 수 없다. 현재의 북한학 역시 연구대상을 이해하고 향후를 예측하여 충돌을 방지하고 평화로운 한반도를 만들어가기 위한 것이지 반목과 대결을 위한 학문 영역이 아니다. 이를 대중에게 잘 전달하는 것이 우리 책방의 소박한 의무이자 북한학 전문서점을 시작한 이유이기 때문에 북한 서가를 꾸리는 데 깐깐할 수밖에 없고, 이는 새로운 북한 관련 도서를 자주 입고할 수 없는 장애물이기도 하다.
북한학 외에 다른 분야의 책을 입고할 때의 기준도 사실 비슷하다. 구조의 근본적인 문제를 외면하고 개인에게 모든 책임과 의무를 지우는 자기계발서는 기피하는 편이다. 사회과학, 자연과학, 문학, 인문학, 실용서 등 다양한 책을 입고하는데 매출을 위해 대형서점의 베스트셀러 목록을 참고하기도 한다. 하지만 당장 회자하는 이슈들을 여러모로 보는 시각을 제시할 수 있는 책, 시간의 흐름에 구애받지 않는 고전 등 책방을 찾는 이들의 삶에 영감이 되었으면 하는 책들을 선택한다. 그렇다고 깊이와 무게만 가득한 책만 있는 건 아니다. 먹고 마시는 생활에 윤택함을 더해 줄 실용서부터 가볍게 빨리 읽을 수 있는 책도 꽤나 있다. 책에서 항상 교훈과 지식만 얻어야 하는 건 아니니 말이다.
이나영책방이 추천합니다
우리 책방에 오는 손님은 대체로 두 가지 부류로 나눌 수 있다. 우선 북한이라는 대상에 관심이 많거나 북한학이 궁금해서 오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나머지는 책방이 위치한 동네와 이 부근에 사는,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다. 전자의 경우 우리가 북한학 전문서점이란 것을 인지하고 오기 때문에 북한에서 출판된 도서가 없는 것에 대한 아쉬움(?)과 각 분야를 망라한 다종다양한 북한 관련 도서가 없는 것에 실망감을 표할 때도 있다. 앞서 구구절절 우리의 책 선정기준을 언급했다시피 깐깐한 기준을 통과할 책이 많지 않은데 사실 그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일단 북한 책을 소비하는 독자층이 형성되어 있지 않아 대중을 위한 북한 관련 책이 출판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호기심을 가지고 북한을 알아가고자 하는 이들에게 적극적으로 추천할 만한 책이 한정적일 수밖에 없다.
이 즈음에서 처음 북한을 접하는 사람들이 읽기에 편하고 쉬운, 그리고 생각할 거리를 얻어갈 만한 책을 소개해 본다. 김준연의 『북한 여행 회화』(온다프레스, 2019)와 정재연의 『평양, 제가 한번 가보겠습니다』(넥서스BOOKS, 2019)이다. 두 권 다 공교롭게 여행을 소재로 하는데 한 권은 북한 여행을 상상하고 있고 한 권은 실제 평양 여행기이다. 『북한 여행 회화』는 사람들이 해외여행을 할 때 그 나라 언어로 간단한 인사말을 배워가서 여행국과 거리를 좁히려는 노력에 착안하여 쓴 가상의 여행기로, 북한을 여행할 때 서먹함을 줄이고 그곳에서의 에티켓을 친절히 가르쳐준다. 말이 통하는 한민족 다른 국가라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북한을 완전한 타지로 상정하는 사고의 전환을 제시한다. 그에 비해 『평양, 제가 한번 가보겠습니다』는 한국에서 나고 자란 호주 국적의 한 젊은이가 평양 패키지여행을 다녀온 이후 쓴 에세이로 우리가 아는 세상과 반대로 돌아갈 것 같은 나라의 일상과 평범함을 드러낸다. 남북교류 호시절에 대학 생활을 한 나로서는 금강산 육로관광도 여러 차례 다녀왔고 주변에는 평양 아리랑 공연을 관람하고 온 친구들도 있었기 때문에 그다지 새로운 내용은 아니었다. 하지만 핵실험과 무력 충돌에 관한 뉴스로 점철된 시기만 접해온 세대에게 이 책은 신선할 수도 있겠다 싶다.
문화공간, 이나영책방
아이러니하게도 책만 팔아서는 동네책방이 생존하기는 불가능하다. 그래서 다양한 동네서점들이 독서모임이나 북토크, 공연, 전시 등 문화행사를 기획하고 사람을 모은다. 물론 이익만을 위해 행사를 진행하는 건 아니다. 많은 이들이 말하고 있듯 동네책방 기능의 무게 중심이 문화를 향유하는 공간 쪽으로 옮겨가고 있기 때문이다. 책방을 열었을 때부터 찾아오는 손님들은 유독 문화공간이 부족한 우리 동네에서 갈증을 느낀 이들로 판단되었다. 산책하다가, 집으로 돌아가다가 편하게 들러 책을 둘러볼 수 있는 공간이 생긴 것에 반가움을 표하는 사람들이었다.
직접 정보를 찾아 방문하는 손님들은 대체로 서점 방문에 거리낌이 없고 서점이 어떤 기능을 하는 곳인지 잘 알고 있다. 여기서 의문이 생길 수 있다. ‘아니 그럼 서점이 뭐 하는 곳인지 모르고 오는 사람도 있단 말이야?’ 놀랍게도 내 대답은 ‘그렇다’ 이다. 특히 20대 초반의 손님들은 ‘책방’이라는 명사에 의문을 표하는 경우가 있다. “책방이 뭐 하는 곳이에요?”, “여기 책 파는 곳이에요, 아님 빌려보는 곳이에요?”라고 물을 때도 있다. 설명하고 나면 “아, 여기도 교보문고 같은 곳이에요?”라고 대답하기도 한다. 온라인 서점에서 할인을 받고 적립금을 써서 책을 싸게 사는 것이 기본 값으로 설정된 세대에겐 어찌 보면 당연한 의문이기도 하다. 동네책방에 들러서 비치된 책을 꺼내서 둘러보고 책장을 넘겨보면서 책 냄새도 맡아보는 오감 충족의 경험, 제목이나 뒤표지를 보고 마음에 드는 책을 고르거나 책방 주인과 대화하면서 책을 고르는 일은 작은 서점에서만 누릴 수 있는 특화된 경험이다. 더불어 책이 중심이 된 상업공간에서 책이란 상품을 다루는 방법과 태도를 자연스레 습득할 수도 있다. 동네서점이 다양한 문화행사를 기획하는 건 이처럼 책방이라는 문화공간에서 얻을 수 있는 경험을 더 많은 이들이 공유했으면 하는 마음도 있을 것이다. 일면 공익적 역할에서 말이다.
그래서 이나영책방도 여러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강화되는 시기에 책방을 시작했기 때문에 오프라인으로 행사를 기획하는 데에는 제약이 있었다. 그래서 초반에는 인스타그램 라이브를 자주 활용했다. 애초에 책방의 첫 문화행사로 『어쩌다가 북한학』 출판기념회를 하겠다고 점찍어두었던 우리는 라이브 방송으로 발간 소식을 알렸다. 연말에는 이나영책방에 대한 퀴즈대회를 준비해 우리 책방을 응원하고 찾아주는 이들과 함께 라이브 송년회를 진행했다. 현재의 이슈를 다루고 그 기저에 깔린 구조적 문제를 파헤치는 책들을 선정해 오프라인 책모임을 할 때면 2시간 동안 열띤 토론이 이어지기도 했다.
올해부터는 동네서점을 지원하는 사업을 통해 문학가들이나 초청하고 싶은 강사를 초빙하여 문화프로그램을 기획·진행하고 있다. 전국적으로 홍보할 수 있는 지원사업의 특성을 활용하여 우리의 콘셉트인 ‘북한’ 테두리에서 여러 북토크도 기획했다. 힐데와소피, 이나영책방 크루가 시작될 수 있었던 책인 『나는 통일을 땡땡합니다』(힐데와소피, 2020)를 가지고 진행한 북토크, 백석과 정지용 등 월북작가의 작품을 읽는 모임, 북한의 초대 문화선전상인 허정숙을 통해 여성들의 사회주의 독립운동과 북한 여성들의 정치활동을 알아보는 시간 등을 준비하고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해제되면서 이나영책방 역시 오프라인 모임을 우선으로 고려하고 있지만 이미 비대면이 익숙해져 버린 시대라는 점을 고려하여 정기적으로 인스타그램 라이브 방송도 활용할 생각이다.
이나영책방이 나아갈 길
동네책방을 운영하면서 사람들이 직접 만나고 교류하는 활동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됐다. 책 『한낮의 어둠』(한겨레출판, 2021)에서 사람들이 온라인을 통해 자신과 생각이 비슷한 커뮤니티에 합류하고 내가 원하는 정보만 취하여 확증편향을 증폭시키면서 극단주의 경향이 강화되고 있다는 내용을 보았다. 사람들이 가진 근본적 외로움, 타인과 연결되고 싶은 욕망이 전염병 시대를 맞아 온라인을 통해 불필요하게 너무 많은 연결을 지속케 한다. 비대면 만남의 한계와 단점이 점차 드러나고 있다. 동네책방은 책과 문화를 매개로 사람들이 직접 교류할 수 있는 장을 만든다. 내가 사는 곳에 얼굴을 아는 이웃이 있다는 것, 각자가 가진 작은 공간에 매몰되는 것이 아니라 그 공간들이 건강하게 이어져 시너지를 만들 수 있다는 경험은 소중하다.
동네책방에서 문화를 통해 교류하는 과정이 어쩐지 남북이 평화롭게 교류하고 협력하던 시기 만들어 낸 힘과 안전함을 경험한 과정과 비슷하다고 느껴지지 않는가. 북한학 전문서점을 운영하는 입장에서 작은 바람이 있다면 그건 남북관계의 개선이다. 북한을 연구하는 교육현장과 북한과 사업을 하는 모든 영역은 남북관계 온도에 따라 움직일 수밖에 없다. 남북이 협력하는 시대여야 이 분야에 대한 관심이 대폭 늘어난다. 대결의 시대는 국가 안보의 불안과 더불어 북한 분야 종사자들에게는 생존의 문제까지 겹친다. 더는 남북관계가 퇴보하는 길을 걷지 않길 바란다. 어느 순간엔 법 제도와 사회의 변화로 이나영책방에서 금성청년출판사나 사회과학출판사에서 출간되는 책도 팔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겨레말
이나영
로컬지향 북한학 전문서점 이나영책방 대표.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북한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