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레의 창
새로운 통일 비전 구상을 위해
청년의 상상력이 필요하다
- 『통일교육 에센스』를 다시 보며
몇 년 전 한 세대에 걸친 탐구와 고뇌를 담은 책을 냈다. 북한 문제, 통일과 관련한 핵심 주제를 추렸다고 자부했기에 ‘에센스’를 제목에 붙였다. 기조는 크게 세 가지였다. 우선, 거대 담론으로 민족 중심 관점의 통일을 다시 고민하자고 제안했다. 다음으로, 청년들에게 다시 자신의 사명으로서 통일을 고뇌해주기를 요청했다. 마지막으로, 통일로 인한 긍정적 비전에만 갇히면 안 된다며 균형적인 관점을 제시했다.
민족통일 비전의 회고
독재 시절에는 오랫동안 같은 민족이기에 통일해야 한다는 논리가 일반적이었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노래에 ‘이 겨레 살리는 통일’이라는 가사가 있다. 민주화가 되고 나서 학생운동과 재야의 뜻있는 분들은 통일을 적극 주창했다. 이때 민족의 자주를 확보하는 방법이 통일의 주된 관심이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를수록 민족의 통일이라는 비전은 점차 희석되어 갔다. 학계 일각에서는 서구의 이론을 빌어 민족은 ‘상상의 공동체’일 뿐이라는 견해도 제기했다.
1988년 7.7선언 이후 남북교류협력이 전개되는 시절에는 통일로 인한 실리가 많다는 점이 더 큰 이유로 언급됐다. 다양한 교역과 투자, 개성공단은 통일로 인한 경제적 성과를 눈으로 보여 주기에 충분했다. 실리의 논리에는 경제적인 차원을 넘어 평화의 보장이나 민주와 인권의 증진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가 보태졌다. 이후 민족 관점의 통일 비전은 공론장에서 거의 보기 힘들어졌다. 민주화 직후 학생운동과 재야에서 주장했던 자주적 관점의 통일은 학생운동이 사그라들고 재야의 분화로 상당히 왜소화됐다. 때론 지나치게 친북적이라는 비판도 무시할 수 없었다.
1990년대 후반 이후 법륜 스님은 민족 관점의 통일 비전을 제시했다. 북한의 대량 아사 위기 시에 민족을 살리는 일이 가장 급선무라는 견해였다. 종교 일각에서 민족을 중시하는 통일 비전을 내놓기도 했는데 공적 담론장까지 들어서기는 무리였다. 2000년대로 접어들면서 “굳이 통일을 해야 하느냐”는 인식이 상당히 확산했다. 통일을 실리의 논리로 접근하는 비전은 그나마 통일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었지만, 이제 그마저 다른 인식이 자리하게 된 셈이다.
『통일교육 에센스』(2019, 정독)에서 다시 민족 중심의 통일관을 제시한 이유는 결국 통일은 민족의 진로 또는 운명과 관계되는 문제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물론 구체적으로 통일의 비전을 뒷받침하는 논리가 더 발전되었다.
근대 민족국가 완성 과제는 여전히 유효하다
북한과 통일을 연구하는 학계(북한학 또는 통일학)에서 민족통일의 비전은 근대 민족국가 완성 담론으로 정리되었다. 일반적으로 통일의 의미를 근대 민족국가의 완성에서 찾았지만, 한민족은 분단으로 인해 아직 근대 민족국가를 달성하지 못했다. 20세기 초에는 식민지로 전락하면서 근대 민족국가로 나아가지 못했고, 20세기 중반 이후는 분단이 걸림돌이 되었다.
근대 민족국가라는 말은 복잡한 이론적 논의가 많긴 하지만, 간략히 정리하면 이런 뜻이다. 일정한 영토와 그곳에 사는 민족 단위로 국가들이 형성되어 독립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국제질서. 17세기 유럽의 베스트팔렌조약을 근대 민족국가의 시발로 본다. 오늘날 유럽 지도와 같은 국제질서가 그때 형성됐다. 영국, 프랑스, 독일 같은 나라들이 차례로 정착했다. 유럽의 경우 근대 민족국가 이전의 역사는 오랫동안 교황이 중심이 된 봉건 체제였다. 더 이전에는 로마 같은 제국의 질서가 존재했다. 다른 대륙도 사정은 다르지 않아서 동아시아의 경우 약 2천 년 전 형성된 진나라의 후예를 세계의 중심으로 섬기는 중화 체제가 19세기 말까지 이어졌다.
한국사에서 구한말이라고 하는 시기에 우리 민족은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공식으로 중국(청나라)에 대한 사대교린의 국제질서에서 벗어났다. 미약한 국력으로 일본 제국주의의 마수를 이겨내지 못한 아픈 역사로 이어졌지만, 민족사에서 처음으로 우리 민족의 자주적인 지향을 선포했던 시기다.
2차 대전 이후 오랜 세월 식민지로 점령됐던 거의 모든 대륙의 민족들이 독립하여 오늘날과 같은 전 지구적 판도의 근대 민족국가 체제로서 국제질서를 형성했다. 한민족은 식민 지배에서 독립했지만 우리의 뜻과는 다르게 남과 북이 분단된 상태가 되어 한반도는 근대 민족국가 체제를 완수할 수 없었다. 민족의 통일 비전을 모색하면서 지금까지의 근대 민족국가 완성 논리를 완전히 부정할 수 없다. 여전히 우리 민족에게는 분단의 극복을 통해 한민족의 근대 민족국가 완성 과제가 유효하기 때문이다.
더 크고 새로운 민족통일의 비전, ‘大한민국’
『통일교육 에센스』에서는 일반적인 근대 민족국가 완성의 과제를 ‘大한민국’의 비전으로 재정립하여 한 걸음 더 나아갔다. ‘大한민국’은 그저 ‘대’ 자를 ‘大’ 자로 바꾸었지만, 의미는 단순하지 않다. 조선이 중국의 속국이나 다름없던 역사를 뒤로하고 새로운 진로를 잡을 때 우리 국호를 ‘대한제국’이라고 했다. ‘한’은 우리 민족의 고유한 이름이다. 처음에는 ‘제국’이었다가 식민지로 전락하고 ‘민국’, 곧 민주공화국을 지향했다. 식민 지배에서 독립하고 정부가 수립된 후 오랜 시간 독재자들에게 시달리기도 했고 민주화를 달성하여 실질적인 ‘민국’이 되었다.
그렇지만 ‘대’ 자는 우리가 깊게 생각하지 못했다. 분단과 전쟁, 가난과 독재로 강대국의 원조를 받아 겨우 연명하는 나라로 출발했다. 경제개발을 조금씩 이뤄가면서 국력이 커졌다. 하지만 4대 강국에 둘러싸인 우리의 위치는 항상 후진국, 그나마 개발도상국일 수밖에 없었다. OECD에 가입하고 경제와 문화 등 여러 면에서 우리의 위상이 높아졌지만 자신의 위상에 대해서는 계속 왜소한 상태로 머물렀다.
2019년 『통일교육 에센스』를 냈을 때 이제는 ‘大한민국’ 곧, ‘큰’ 한민족의 민주주의 공화국을 지향하자는 비전을 제시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대한민국에서 ‘한’과 ‘민’과 ‘국’은 이뤘기에 ‘대’를 이루자는 뜻을 민족통일의 비전으로 제시한 셈이다.
전 세계가 코로나 사태를 거치면서 불과 몇 년 만에 우리 사회의 공론장에는 선진국 담론이 거세게 확산했다. 일본은 제쳤다고 자부하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특히 문화 분야의 놀라운 활약상은 해방 전후 위대한 지도자였던 김구 선생의 문화국가론이 실현되는, 그야말로 선진국 현상이다.
사실 책의 초고는 이미 2014~2015년경에 거의 마무리했다. 그때만 해도 주변의 반응이 떨떠름했다. 대놓고 얘기하지는 않았지만 “어디 감히, 4대 강국에 둘러싸인 처지에!” 하는 눈치를 줬다. 그렇지만 불과 몇 년 만에 우리는 ‘大한민국’의 비전이 이미 현실화되고 있음을 목도하고 있다. 코로나 사태가 아니었다면 판문점 회담, 북미 정상회담에 이어 남북관계의 엄청난 진전이 있었을 것이라 추측된다.
‘大한민국’ 젊은이들의 미래
민족통일의 새로운 비전으로서 ‘大한민국’의 통일 비전을 제시하면서도 딱딱한 이론적 논의에만 머무르지 않았다. 책의 주요 독자 대상층이 청년들이었기에 큰 나라, 큰 민족의 ‘大한민국’에서 우리 젊은이들이 세계 어디든 마음껏 진출할 수 있는 미래를 제시했다. 영어권 젊은이들은 단지 모국어로 영어를 쓸 수 있기에 전 세계 어디를 가든 선생님 대접을 받을 수 있다.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적어도 다음 세대에는 통일을 통해 더 큰 ‘大한민국’이 되어 민족의 성원인 코리안 젊은이들도 오늘날 영어권 젊은이들처럼 세상을 누리는 미래를 꿈꿨다.
‘88만원 세대’ 이후 우리 사회의 청년 담론이 아쉽다. 일제시대 광주학생운동, 독재 시절 민주화운동, 민주화 이후 통일운동까지 청년들은 대의를 위해 앞장서 나갔다. 그런데 이제는 ‘아프니까 청춘’이라거나 신자유주의의 무한경쟁에 지원이 필요한 존재가 되어 버렸다. 그렇지만 언론과 SNS에서 광범위하게 유포된, 청년의 위상을 낮춰보는 담론은 오늘의 청년 전체를 대표한다고 볼 수 없다. 그래서 비록 양적인 숫자는 적더라도, 우수하고 열정 있는 청년들이 민족의 새로운 통일 비전에 따라나설 수 있는 관점을 제시했다.
민족 중심 관점의 새로운 더 큰 통일 비전, 청년들의 희망찬 미래 비전과 역할에 이어 마지막으로 긍정 일변도의 통일론은 문제가 많다고 보기에 균형적인 시각에서 몇 가지 주요한 요소들을 언급했다. 예컨대 ‘통일되면 군대에 안 가도 된다’는 유의 단순한 사고에서 오늘의 청년들이 벗어나야 한다고 보았다. ‘大한민국’의 통일 비전은 궁극에는 ‘4대 강국’을 능가하는 민족의 큰 비전을 예비한다. 부국강병으로 대표되는 하드파워가 국력으로 뒷받침되어야 함은 당연하다. 기술 발전으로 인해 인력을 대체할 수는 있겠지만, 단순히 통일을 통해 평화가 왔으니까 군대 문제는 걱정 안 해도 된다는 식의 사고는 적절치 않기 때문이다.
지구화의 물결, ‘大한민국’ 비전의 업데이트가 필요하다
『통일교육 에센스』를 다시 보니 약간의 업데이트만 해도 될 정도로 북한과 통일 문제에 대해서는 잘 정리되었다. 한편으론 거대한 세계적 흐름 속에서 근본적으로 새로운 패러다임을 덧붙여야 한다. 북한 연구나 통일교육에서 거의 관심을 두지 않는 주제들, 바로 지구화의 물결이다. 지구화 시대의 도래에 따라 새로운 패러다임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민족 중심의 통일관은 과연 어떻게 더 발전해야 하는가?
우리 사회에서 공적 담론으로 먼저 등장한 말은 세계화였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국가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세계화를 해야 한다는 국정 방향을 제시했다. IMF를 겪으면서 그야말로 세계화는 더욱 가속화됐고 전화위복으로 경제를 비롯한 나라의 수준이 높아졌다. 그렇지만 자본주의 선진국의 다국적기업이 주도하는 세계화에는 문제점이 많았다. 작은 나라의 빈곤, 소수자집단(minority)의 인권 소홀, 전 세계적 차원의 환경 위기 등 문제는 계속 늘어났다. 국민국가 차원에서, 한 나라만 나서서 해결할 수 없다는 성찰로도 이어졌다. 이론적 연구와 실천적 흐름은 지구시민운동으로 범주화되었고 어느덧 국민국가 체제 이후의 세계를 상상하고, 구상하는 단계에까지 이르렀다.
지구화 시대에 우리는 민족통일의 비전을 한 발 더 진전시켜야 한다. 구체적인 과제의 실현은 앞으로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겠지만, 대안적 지구시민운동의 과제를 운동가들의 몫으로만 남겨두어서는 안 된다는 점은 분명하다. 통일을 지향하는 한민족이 분단을 극복하는 과정 자체를 대안적 지구시민운동의 하나로 진행될 수 있도록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개인적으로 근래에 연구의 초점을 맞추고 있는 주제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저 같은 민족이기에, 통일이 되면 유리한 점이 더 많기에, 고통받는 민족의 반쪽도 함께 살아야 하기에, 우리도 세계 최강국의 대열에서 당당하게 살 수 있기에 같은 민족의 통일 비전은 여전히 유효하다.
여기에 더해 지구화 시대에는 지구시민운동의 가치를 실현하는 곧, 지구적 가치를 선도하는 새로운 ‘大한민국’의 통일 미래 비전을 요청한다. 지속 가능한 개발 목표(SDGs), 사회적 가치, 환경·사회·지배구조(ESG)와 같은 내용이다. 아직 한반도 문제와 관련하여 함께 다뤄지지 않고 있을 뿐, 새로운 민족통일의 비전으로 접목되어야 하는 주제들이다. 앞으로 함께 모색할 수 있는 분들, 특히 젊은이들의 참여를 기다리고 있다.
‘大한민국’ 젊은이, 지금 무엇을 할 것인가
새롭고 더 큰 민족 관점의 통일 비전에 공감하는 젊은이들이라면 지금 도대체 무엇을 해야 할지 궁금할 것이다. 그 답은 우리 현대사의 위대한 성취를 돌아보는 데 있다. 3.1운동도 6월항쟁도 야학을 통해 가능했다. 일제의 엄혹한 무단 통치 속에서도 독립을 꿈꾼 선각자들은 야학을 조직해 독립의 비전을 설파하고 ‘해방이 가능하다’라는 확신을 심어주었다. 독재 시절도 마찬가지였다. 교과서와 언론은 독재자들을 옹호하는 논리로 가득 차 있었으나 야학에서는 민주주의와 인권을 가르쳤다. 지금은 과거와 같이 야학을 운영할 필요가 없다. SNS를 활용해도 되고 각자가 잘하는 온·오프라인 활동을 통해 비전을 확산해 나가면 된다.
새롭고 더 큰 비전을 공부하고 확산한다고 걱정할 일도 없다. 민주화의 진전과 세계적인 보편 가치의 확산으로 옛날처럼 목숨을 걸거나 감옥에 가지 않아도 된다. 또한 이제는 자신의 진로에 대한 관심과 결합해서 통일의 비전도 실현해갈 수 있다. 방법을 찾기 나름이다.
민족통일의 비전은 더 세련되어지고 더 커졌다. 그렇지만 첫 출발은 남과 북이 한민족이라는 점이다. 기초가 없는 상태에서 기둥을 세우고 들보를 올릴 수는 없다. 그런 의미에서《겨레말큰사전》 편찬사업과 같은 남북교류 사업은 남과 북이 한민족임을 직접 확인할 수 있는 새롭고 더 큰 민족통일 비전의 기초라 할 수 있다. 나아가 앞으로 ‘大한민국’의 한글이 세계 인류에게 얼마나 더 크게 이바지하게 될 것인지도 상상해 보길 당부한다. 이미 문자가 없는 나라에서 한글을 활용하는 국제적인 사업이 진행된 바 있다.
오늘 젊은이들의 새롭고 더 큰 상상력이 ‘大한민국’의 민족통일 비전을 더 크고 새롭게 만들어 갈 것이다. ‘大한민국’의 민족통일 비전은 ‘나’만의 것으로 끝나선 안 된다. 더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고 그 열매를 오늘의 젊은이들과 미래 세대가 향유하게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 1) 2009년 ‘피스멘토링커뮤니티 DMZ’로 창립해서 새로운 관점과 형식의 통일교육, 정치교육을 시도해왔다. 당시 청년들이 스펙에만 몰두한다는 담론이 광범위하게 확산되고 있었다. 이에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발전을 위해 노력한 선배 세대가 가치를 지향하는 후배 세대의 멘토가 되어야 한다는 관점에서 가치 멘토링을 주창했다. ‘피스멘토링커뮤니티 DMZ’는 가치 멘토링의 관점에서 북한학, 통일학 전공자인 창립자가 평화의 가치에 초점을 맞춘 단체다. 2018년, 민족의 새로운 세기를 예비한다는 차원에서 ‘좌표22’로 명칭을 바꾸었다.
권영태
북한학 박사. 한국NGO학회 이사, 남북학술교류위원. 좌표22 대표. 통일교육원 공공부문 통일교육 전문강사. 2009년 피스멘토링커뮤니티 DMZ를 창립한 이후 통일교육의 버전업에 매진해왔다. 『통일교육 에센스』, 『남도 북도 모르는 북한법 이야기』, 『Life & Law』, 『우리가 불러온 노스코리언송즈 : 남과 북이 함께 부르는 통일 노래 시리즈 I』 등 다수의 저서를 냈고 여러 대학에서 강의하고 있다. 역사교사인 아내와 함께 왕릉을 답사 중인데, 노스코리아 지역 왕릉 답사길을 찾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