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DF인쇄 지난호보기
겨레말은 겨레얼 입니다 겨레말큰사전 누리판

남녘말 북녘말

쭉 내다, 그리고 미용실/미용원

_ 김완서 / 겨레말큰사전 책임연구원

쭉 내다

1990년 3월 대학교에 입학하고 신입생 환영회를 갔다. 신입생들이 다 모이자 한 선배가 우리 앞에 섰다. 그러면서 우리 과의 전통은 공동묘지에 가서 막걸리 마시는 거라고 하면서 신입생 모두를 끌고갔다. 예나 지금이나 술을 전혀 못하는 나로서는 빼도 박도 못하는 매우 난감한 상황이었다. 그리고 장소마저 공동묘지라니 어느 것 하나 내키는 것이 없었다. 그러나 빠질 묘책도 생각나지 않아 에라 모르겠다, 라는 심정으로 신입생 환영회를 따라갔다. 막걸리가 가득 담긴 술잔이 모두에게 주어졌다. 당연히 안주는 별 볼 일 없었다. 술잔을 앞에 두고 마시지 않고 버텼다. 마셨다가는 그 뒤의 일어날 상황을 너무나 잘 알기에 마시지 않고 시간 버티기에 돌입한 것이다. 그러고 있는데 89학번 선배 중에 한 명이 내게로 왔다. 아무리 봐도 잘생긴 얼굴은 아니었다. 나랑 비교해도 내가 훨씬 나은 얼굴인 것은 분명해 보였다. 그런데 그 선배가 내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더니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넌, 나와 생김새가 닮은 것 같다.”
기분이 상하는 순간이었다. 생김새가 닮다니. 나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나도 모르게 술잔에 손이 갔고 냅다 원샷을 해버렸다. 그리곤 누구의 묘인지는 모르지만 죄송스럽게도 그 앞에다 먹은 것을 다 토했다.
군대에서 회식하던 날, 평소 술을 못 먹는 나를 위해 콜라를 시켜주던 중대원들이 그날은 작심을 한 것 같았다. 소주를 따른 잔을 내게 건네더니 고참 하나가 일어나 이렇게 외쳤다.
“완서의 아버지를 위하여!”
안 마실 도리가 없었다. 원샷했다. 그걸로 끝이려나 했다. 내가 원샷을 한 것을 확인한 고참은 내게 또 술을 따라주었다. 그러곤 또 외쳤다.
“완서의 어머니를 위하여!”
그날 우리 가족은 다 나온 것 같았다. 그날 몇 잔이나 마셨는지 모르겠으나 확실히 안 건 술 먹고 토할 때 먹은 것 역순으로 나온다는 것이었다.
겨레말큰사전남북공동편찬사업회에 들어와 평양에 가서 남북공동편찬회의를 마치고 만찬이 있었다. 근 5년만에 이루어진 회의이고 만찬이어서 분위기가 한껏 달아올랐다. 처음에는 맥주로 시작하더니 40도가 넘는 술이 나왔다. 40도 넘는 술은 먹어본 적도 없고 먹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그런데 나와 함께 조를 이뤄 회의를 했던 북쪽 선생님이 내게 40도 술을 따라주며 원샷을 요구했다. 어쩔 수 없었다. 원샷을 했다. 그리고 시간이 차츰 흐르자 남쪽 선생님들이 쑤군거리기 시작했다. 술기운이 돌아 얼굴이 벌겋게 되더니 급기야는 대머리인 내 머리까지 빨갛게 달아오르는 모습에 하는 쑤군거림이었다.
“완서 선생님 머리 신호등 됐다. 빨간불 들어온 신호등.”
그렇게 내 머리에 신호등이 들어오고 양각도 호텔 화장실에 가 그 비싼 음식을 다 토했다.
남쪽에서는 술자리에서 ‘술잔을 들고 한 번에 남김없이 마시라’는 의미로 ‘원샷’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영어 표현을 쓰지 않는 북에서는 이와 같은 의미로 쓰는 것이 ‘쭉 내다’이다. 남북공동편찬회의를 할 때 북쪽 선생님들과 만찬을 하면서 술을 마실 경우 항상 이런 표현을 쓴다.
“완서 선생 쭉 냅시다.”
즉 이 말은 우리의 ‘원샷’과 같은 의미로, 술을 한 번에 남김없이 마시자는 요구인 것이다. 북측 용례에 나타나는 ‘쭉 내다’를 보면 아래와 같다.
-
박위는 윤통에게 술대접을 내주며 은근한 어조로 말했다. 《부원수, 행동속에 사내대장부의 말이 있나니 우리 각자가 서뿌르게 말로써 행동을 약속하지 맙시다. 자, 부원수도 속이 활 풀리게 {쭉 내우}.》 <저자:리평><출전:검이여 불타라><지역:북>
-
원정립은 유리잔에 찰랑거리도록 술을 부어 전문태에게 내밀었다. 《{쭉 내게}. 그럼 속도 훈훈해질걸세.》 <저자:김용한><출전:기쁨><지역:북>
양각도 호텔의 빨간색 신호등. 다시 그 신호등이 켜지기를 바라며 오늘 아침 커피를 쭉 내본다.

미용실/미용원

“헤어숍, 미용실, 미용원, 미장원.”
이 말 모두 《표준국어대사전(웹)》의 풀이를 빌리면 ‘파마, 커트, 화장, 그 밖의 미용술을 실시하여 주로 여성의 용모, 두발, 외모 따위를 단정하고 아름답게 해주는 것을 전문으로 하는 집’의 뜻을 갖고 있는 단어들이다. 그 가운데 ‘헤어숍’은 아직 사전에 올라 있지 않은 미등재어이다.
내 주관적인 판단으로 위의 단어 사용 연령층을 분류하면 ‘헤어숍’을 사용하는 사람들은 젊은층. ‘미용실’을 쓰는 사람은 40대 이상, ‘미용원’이나 ‘미장원’은 60대 이상일 것이다. 나도 초등학교 시절에는 ‘미장원’이라는 말을 많이 쓰다가 49살인 지금은 ‘미용실’이 입에 붙는 걸로 보면 이 분류가 얼토당토하지는 않는 것 같다.
그건 그렇고 내가 미용실에 갔다오면 간혹 나에게 이렇게 묻는 사람들이 있다.
“네 머리도 미용실에서 제값 다 받니? 깎을 것도 얼마 없는데 말야.”
머리숱 없는 것에 자유를 누리고 사는 내게는 놀리는 말로도, 농담 같지도 않은 말들일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내 머리를 미용실에 가서 깎는 것이 돈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 <아저씨>의 원빈처럼 거울 앞에서 이발기 하나 사서 밀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바로 가격 검색을 해보니 3만원 이내로 괜찮은 이발기를 살 수 있고, 이 이발기로 세 번만 깎으면 본전은 챙길 수 있다는 계산이 나와 냉큼 질러버렸다.
그리고 첫 번째로 아내의 도움을 받아 이발기로 머리를 깎았다. 결과는 성공적이었고 9000원이 아껴지는 순간이었다. 앞으로 두 번만 더 깎으면 이발기 산 본전은 뽑는 셈이었다. 또 시간이 지나 없는 머리털이지만 제법 자라났다. 난 이번엔 원빈처럼 혼자 깎아보기로 했다. 그러곤 아내가 오기 전에 화장실에 가서 거울을 보며 머리를 깎았다. 앞, 옆, 뒤 등 골고루 깎았다. 손에 느껴지는 감촉이 제법 미용실에서 깎은 듯 했다.
이내 아내가 퇴근하고 집에 왔다. 그리곤 아내에게 자랑스럽게 나 혼자 깎은 머리를 보여줬다. 그러나 아내의 반응은 내 기대와 달랐다. 외마디 비명이 나왔다.
“당신 뒷머리 어떤지 알아? 내가 사진 찍어서 보여줄게.”
아내가 찍은 사진을 보고 나도 경악을 금치 못했다. 대참사가 벌어지고 만 것이다. 그날의 내 뒷머리 사진을 공개하면 왜 대참사라고 하는지 알 것이다.
이 대참사를 수습하러 동네 미용실로 갔다. <#헤어숍>이라는 곳에 들어가서 미용사에게 내 머리의 수습을 부탁했다. 내 부탁에 미용사는 수습책이 ‘완삭(완전삭발)’ 밖에 없다는 답변을 했고. 그날 나는 머리털 빠지고 처음으로 ‘완삭’을 했다. 그날 미용사는 내게 한마디를 더 했다. 뒷머리는 깎고 왔으니 원래 만원인데 9000원만 받겠노라고.
《표준국어대사전(웹)》과 《조선말대사전》을 살펴보면 기본올림말이 다른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헤어숍’은 아직 미등재어인 까닭에 그건 배제한 상태에서 살펴보면 《표준국어대사전(웹)》은 ‘미용실’이 기본올림말이고 《조선말대사전》은 ‘미용원’이 기본 올림말이다. 그리고 《조선말대사전》에는 ‘미용실’이 표제어로 올라있지 않다. 이상만 놓고 볼 때 남쪽에서는 ‘미용실’이 북쪽에서는 ‘미용원’이 더 많이 쓰인다는 결론을 유추할 수 있다. 각 사전의 내용을 보이면 아래와 같다.
《표준국어대사전(웹)》
미용실 [명]
파마, 커트, 화장, 그 밖의 미용술을 실시하여 주로 여성의 용모, 두발, 외모 따위를 단정하고 아름답게 해 주는 것을 전문으로 하는 집. =머리방, 미용소, 미용원, 미장원.

《조선말대사전》
미용실 (표제어 없음)1)
미용원 [명]
얼굴과 머리모양을 곱게 단장해주는것을 전문으로 하는 편의봉사기관. =미장원.
이는 말뭉치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겨레말큰사전 말뭉치>에서 북쪽은 ‘미용원’이, 남쪽은 ‘미용실’이 더 많이 출현한다. 결론적으로 같은말 관계에 있으면서 남과 북 모두 쓰고 있지만 사용 빈도에서 차이가 나는 말 중에 하나가 ‘미용실’과 ‘미용원’인 것이다.
참고로 현재 내 머리는 ‘완삭’에서 벗어나 ‘반삭’의 형태를 잘 유지하고 있다.
1)
《조선말대사전(2006)》과 《조선말대사전(2017)》에 ‘미용실’이 표제어로 올라 있지 않지만 <겨레말 말뭉치>에서 검색을 해보면 ‘미용실’이 일부 검색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