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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 기고

중국 대륙과 대만의 ‘전문용어 사전 공동 편찬 경험’을 묻다

_ 윤소정 / 겨레말큰사전 연구원


최근 의료‧보건, 법률, 국어, 건설, 체육 등 각 분야에서 남북 전문용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이는 2018년 ‘4.27 판문점 선언’을 기점으로, ‘9월 남북 정상회담’을 거쳐 올 6월 ‘남북미 판문점 회담’에 이르기까지 남북관계 회복에 대한 기대가 탄력을 잃지 않고 평화와 공존의 가능성을 더해가고 있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남북 전문용어 통합에 대한 요구는 1990년대부터 있었는데1) 남북 전문용어 구축과 실제적 통합안 마련은 비교적 최근에야 시도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2) 이에 필자는 기존의 연구 성과와 최근의 연구 흐름을 바탕으로 주변국의 전문어 통합 경험을 살피고, 이를 통해 남북 전문어 통합 과정에 얻을 수 있는 시사점을 짚어보고자 지난 5월 중국 북경에 있는 <전국과학기술명사심정위원회(全国科学技术名词审定委员会)>3)를 찾았다.
양안(兩岸)은 중국 대륙의 <전국과학기술명사심정위원회>와 대만 <교육연구원(敎育硏究院)>의 합작 아래 2015년 19,500개의 표제어를 수록한 《양안과학기술상용사전(两岸科技常用词典)》을 발간하였다. 이 사전은 수학, 물리, 화학화공, 천문, 기상, 지질지리, 생물기초, 동물, 식물, 의학 등 31개 분야의 기본 어휘를 표제어로 선정해 묶은 것으로, 중국 대륙의 규범자와 대만의 표준자를 병기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이 글에서는 《양안과학기술상용사전》의 편찬 주임 리우칭(刘青) 선생님과 <전국과학기술명사심정위원회> 부주임 페이야쥔(裴亚军) 선생님을 모시고 진행한 인터뷰 자료를 바탕으로 양안 전문용어사전 공동편찬 과정과 경험을 소개하고자 한다.

인물사진

중국 대륙에서 ‘인터넷(网络)’, ‘정보(信息)’, ‘소프트웨어(软件)’, ‘우주왕복선(航天飞机)’, ‘플라스마(等离子体)’라고 하는 것을 대만에서는 각각 ‘网路’, ‘资讯’, ‘软体’, ‘太空梭’, ‘电浆’로 달리 칭하는데, 중국 대륙측 통계에 따르면 이처럼 차이가 나는 과학기술 분야의 명사는 전체의 30% 이상이다. 1949년 중국 대륙과 대만이 서로 다른 체제를 유지하면서 시작된 양안 대립은 1980년대 떵샤오핑(鄧小平)이 구상한 일국양제(一國兩制)와 장징궈(蔣經國)의 중국 ‘친지 방문 허용’을 발판으로 해빙 분위기를 맞는데, 이후 개최된 1993년의 왕고회담(汪辜會談)에서 ‘양안 과학 기술 명사 통일’에 관한 본격적 협의가 시작되었다.

중국 대륙과 대만의 전문가들은 직접 대면, 전화, 이메일, 화상회의 등을 통해 전문어 통합 작업을 진행하는데, 주요한 공동편찬 원칙은 크게 두 가지로 압축할 수 있다. 하나는, “양안이 공통으로 쓰는 것을 먼저 합의하고 다른 것은 보류하여 차츰 일치시킨다(求同存异,逐步一致)”이고, 다른 하나는 “기존의 말에는 기존의 방법을, 새로운 말에는 새로운 방법을 적용한다(老词老办法、新词新办法)”이다. 후자에 대해 리우칭 편찬 주임은 설명을 덧붙였다.
“신어에 대해서는 양안의 학자가 한데 모여 토론하고, 하나의 용어를 선정하는 방식으로 전문용어의 통일을 실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기존의 용어에 대해서는 어쩔 수 없이 대조 작업만을 할 수 있을 뿐입니다. ‘천체(天体)’라는 단어로 기존 용어의 단일화에 대한 어려움을 설명할 수 있습니다. 사실, 양안의 천문물리학계 학자들은 모두 ‘天体’라는 용어가 더 적합하다는 데 동의합니다. 그러나 대륙의 ‘天体’라는 말은 대만에서 ‘나체(裸体)’의 의미로 쓰이므로, 섣불리 단일화할 수 없죠. 이미 양쪽에서 공표한 전문용어들은 각 측의 언어습관으로 자리잡았기 때문에 단일화하는 것이 오히려 언중(言衆)들에게 더 큰 혼란을 줄 수 있습니다.”
양안의 전문용어 차이 발생 원인은 1949년의 역사적 요인을 제외하고도 양측이 다르게 실시한 언어 정책과 어원의 다름에서도 찾을 수 있다. 중국 대륙과 대만은 양측의 전문가들이 선정한 전문용어를 영어를 매개로 하여 대조 작업을 벌이는데, 이때 양측이 수용한 영어의 계통이 달라 어려움을 겪는다. 이에 리우칭 편찬 주임은 말했다.
“‘영어’라고 하면, 다 같은 듯하지만 사실 미국식 영어, 영국식 영어, 심지어 중국식 영어 등 어떤 계통의 것을 거두어 썼느냐에 따라 언어는 상당히 다른 양상을 띠게 됩니다. 대만은 구미(歐美)식 영어를 받아들였죠. 북한은 러시아어의 영향을, 한국은 영어의 영향을 많이 받았기 때문에 전문용어 대조에 있어 양안보다 더 복잡할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전문용어 통합에 앞서 각 측의 전문용어 표준화가 급선무입니다. 서로 전문용어에 대한 표준화가 잘 되어 있다면 후의 통합 작업에서는 표제어 선정이나 작업 지침 마련에서 수월하게 일을 진행할 수 있겠죠.”
<전국과학기술명사심정위원회>에서는 지금까지 130개 영역에서 양안 전문용어 대조 작업을 마쳤다.《양안과학기술상용사전》발간 이후 현재는 96개 전문 영역에서 500여 명의 양안 전문가가 참여한 《중화과학기술대사전(中华科学技术大词典)》을 편찬 중이며, 약 50만 개의 표제어가 수록될 예정이다.
“구축한 전문용어 자료는 웹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4)《양안과학기술명사차이어편람(两岸科学技术名词差异手册)》도 참고할 수 있죠. 2019년 올해 《중화과학기술대사전》이 발간될 예정인데, 발간되면 제일 먼저 연락을 하죠. 또 봅시다.”
리우칭 편찬 주임, 페이야쥔 부주임과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고 한국으로 돌아오는 길, 남북의 전문용어 통합, 그리고 남북 언어 통합을 위해 애쓰는 이들이 나누고 쌓아야 할 ‘경험’에 대한 고민이 깊어졌다.
1)
“남한과 북한의 학술 교류는 컴퓨터 정보 처리 분야에서 먼저 시작되어 컴퓨터 자판 통일 등 국어 정보화 관련 통합 논의가 활발히 전개되어 왔다.” 이찬규 외(2014), <남북 언어통합 종합 계획 수립>, 국립국어원, 31쪽.
2)
이와 관련하여 국립국어원에서 펴낸 신중진 외(2015) <2015년 남북 기초 전문용어 분석: 수학 및 자연과학 분야>, 신중진 외(2016) <2016년 남북 전문용어 구축>, 신중진 외(2017) <남북 국어 분야 전문용어 구축>, 신중진 외(2018) <남북 역사 분야 전문용어 구축>을 참조할 수 있다.
3)
국무원(중화인민공화국의 최고 행정기관)의 승인을 받아 설치된 기구로, 과학기술부와 중국과학원의 지도하에 있으며, 중국 과학기술용어 표준화를 위한 지침, 정책 등을 수립한다.
4)
http://www.termonline.cn/index.htm 참고. 이 글에서 언급한 사전들의 정보는 다음과 같다.
李行健主编等(2013), 《两岸常用词典》(珍藏版), 高等教育出版社.
海峡两岸学者共同编写(2015), 《两岸通用词典》, 高等教育出版社.
全国科学技术名词审定委员会事务中心(2015), 《两岸科技常用词典》, 高等印书馆.
全国科学技术名词审定委员会事务中心(2015),《两岸科学技术名词差异手册》, 大连理工大学出版社.