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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레말은 겨레얼 입니다 겨레말큰사전 누리판 2015.06

남녘말 북녘말

북녘 농촌공동체의 흥겨운 결혼잔치 풍경

_ 오창은 / 중앙대 교양학부대학 교수, 문학평론가

   남한과 북한은 동일한 민족 언어를 사용하고 있다. 지금은 분리되어 있지만, 문자적 기원도 같다. 분단 70년이 지나가고 있는 시점에서는 ‘같음 보다는 다름’이 커져가고 있다. 남한의 관점에 보자면, 북한의 언어가 ‘점점 이질화되어가고 있고, 특수한 변화과정을 겪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남한의 언어가 보편적이고 북한의 언어는 특수하다는 인식은 편향적이다. 고유한 원형의 언어는 없다. 언어는 변화하기 마련이고, 처해 있는 환경에 따라 선택한 길도 달라질 뿐이다.
   남한 언어의 관점에서 북한 언어를 바라볼 것이 아니라, 상호성의 관점에서 남북의 언어를 성찰할 필요가 있다. 남과 북은 서로를 ‘향해 있음’으로써 오히려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다. 같아야 한다는 과도한 강박에서 자유로워질 필요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낯선 북한의 언어’를 그대로 접하고, 존재하는 자체로 인정하는 것도 중요한다.
   문학 작품은 남북이 서로의 언어를 깊이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원자료이다. 그 시대의 언어의 정점은 문학작품에 담겨 있다. 문학작품의 언어는 현장언어이면서, 외부를 상상하지 않는 내부의 언어이다. 최근 흥미롭게 읽은 작품이 「내 고향은 아름답다」이다. 김홍균이 쓴 이 작품은 북한을 대표하는 문학잡지인 <조선문학> 2009년 12월호에 실렸다.
   작가는 이른 겨울 아침, 귀남이와 귀향이 오누이가 집을 나서는 풍경을 제시한다. 이 날은 귀향이의 결혼식이 예정되어 있다. 온 마을이 잔치를 벌이는 날이라고도 할 수 있다. 동네 아이들까지 나서서 눈사람을 만들어 《축》자를 붙이고 환호할 정도로 온 동네가 떠들썩하다. 귀남이와 귀향이 오누이는 결혼식 당일인데도 서둘러 일터로 나선다. 농장의 작업반 일을 서둘러 마쳐야 하기 때문이다. 그 사정은 다음과 같이 제시되어 있다.
   농장적인 휴식일이지만 니탄캐는 막개펄이 협소하여 작업반에서는 캐놓은 것을 제때제때 뽑아낼셈으로 대휴제작업조직을 했다. 작업반에 배속된 뜨락또르를 분조마다 돌려가며 리용했는데 공교롭게도 귀향이네 분조가 오늘 차례였다. 분조원들이 결혼식을 못 보게 됐다고, 하필이면 분조장의 결혼식날에 차례가 올건 뭐냐고 서운해했다.
   인용문에 등장하는 ‘니탄’은 ‘이탄(泥炭)’을 말한다. 남한에서는 ‘토탄(土炭)’이라고도 한다. ‘니탄’은 탄화 작용이 충분히 되지 않은 석탄의 일종이다. 발열량이 적으며, 비료나 연탄의 원료로 쓰인다. ‘대휴’는 ‘쉬는 날 일을 한 대신 쉬는 날’을 지칭한다. 인용문은 대휴 날에도 ‘뜨락또르’(트랙터)가 배당되어 일을 하게 된 사정을 설명하고 있다. 2009년은 북한이 ‘고난의 행군’으로 고통을 받던 시기였다. 개펄을 비료나 연료로 사용하기 위해 애쓰는 농장의 상황이 비교적 소상히 「내 고향은 아름답다」에 그려져 있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북한 언어에 두음법칙이 적용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남한에서는 ‘이탄’으로 쓰는 것을 ‘니탄’이라고 하고 있다. ‘이용’도 ‘리용’으로, ‘노인’도 ‘로인’으로 적고 있다. 이러한 표기의 차이는 남과 북의 어문규정의 차이 때문이다.
   소설 속 신부인 귀향의 결혼 상대는 오철윤이다. 오철윤은 “부상을 입고 돌아온 영예군인”이다. 북한의 영예군인은 남한에서는 ‘상이군인’에 해당한다. 북한에서는 영예군인을 “군사복무기간 부상을 입고 제대하여 국가적 배려를 받는 사람”이라고 해설한다. 오철윤은 ‘삼륜차’에 몸을 싣고 움직여야 할 정도로 군복무 중 심각한 부상을 당했다. 귀향은 고향마을인 인봉리의 빼어난 규수로, 어느 집에서나 욕심을 가져보는 신부감이었다. 그런 그녀가 영예군인과 일생을 함께 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이 소설은 온 마을 사람들이 나서 분조장인 귀향과 영예군인인 오철윤의 결혼을 축하하는 풍경을 그리고 있다. 평소 술 때문에 말썽을 일으켰던 학술이가 나서서 생화를 구하는 일을 훌륭하게 한 것이나, 말에 거침이 없던 장안순이 신방 장식을 훌륭하게 해낸 일, 모두 한 몸이 되어 니탄 생산에 열심인 분조원들의 상황까지 활기 넘치게 제시한다. 잔치를 여는 마을 풍경답게 공동체적 일체감이 곳곳에서 빛을 발하는 흥미로운 전개를 보인다.
   신혼집 풍경은 다음과 같이 묘사되어 있다.
   어데선가 꾸꾸- 거리는 닭울음소리가 들렸다. 리당비서가 사위를 두릿거리다 짐작이 가는게 있어 마당 한구석의 새 닭장으로 다가갔다. 장문을 열자 꼬꼬댁! 하는 급한 소리와 함께 두마리의 닭히 홰를 치며 날아나왔다.
   《에쿠!》
   한발 뒤로 물러서면서도 자못 즐거워 싱글거렸다.
   《벌써 새 주인이 입사하셨구만.》그옆 토끼우리앞에 다가선 관리위원장도 우리안의 실한 엄지토끼를 보며 웃었다.
   이번엔 오철윤이네 집으로 가보자며 대문밖을 나서는 그들의 발치에 목사리를 한 하얀 강아지가 낑낑 감겨들었다.
   영예군인의 신혼집에 마을 사람들은 부조하는 마음으로 장작을 패어주고, 닭을 갖다 놓는가 하면, 엄지토끼와 하얀 강아지까지 가져다 놓았다. ‘엄지토끼’에서 ‘엄지’는 “다 자라서 새끼나 알을 낳을 수 있는 짐승”을 일컫는다. 그리고 ‘목사리’는 “소나 개 같은 짐승의 목에 두르는 가죽으로 만든 띠나 줄”을 지칭한다. 작가는 오철윤과 로귀남의 결혼식을 위해 온 동네가 나선 것을 흥겨운 정취로 묘사해냈다. 그러면서 “아름다운 사람만이 아름다움을 사랑할 수 있다”고 했다.
   「내 고향은 아름답다」는 한 마을의 결혼식 풍경을 세밀하게 그리면서, 북한의 농촌 인정이 펼쳐져 있어 인상적이다. 공동체적 인정이 살아 있는 전근대 사회의 풍경을 보는 듯하다. 경쾌한 필치로 ‘노동과 사랑’의 조화를 그려낸 작가의 필력도 만만치 않다. 이 작품의 주제는 부상을 입고 제대한 영예군인의 결혼이라는 이데올로기적 내용을 담고 있다. 하지만, 특별한 사건을 제시하지 않으면서도 고향 마을에 대한 정감어린 풍경을 형상화하고 있어 문학적 성취를 일궈냈다.
   결혼식 당일날까지 맡은 바 일을 해내야 하는 급박함이 소설 곳곳에 드러나지만, 잔치에 모든 마을 사람들이 참여하기 위해 합심하는 모습이 감동적이다. 남북의 언어적 차이는 곳곳에서 발견된다. 특이한 언어로는 ‘송아지동무’ ‘괄랭이’ ‘세괃다’ ‘시까스른다’ 등도 거론할 수 있다. ‘송아지동무’와 ‘괄랭이’는 ‘소꼽동무’와 '말괄량이'를 말하고, ‘세괃다’는 “성질이나 기세가 세다”의 의미이다. ‘시까스른다’는 “남의 비위를 상하게 놀리다”라는 뜻이다. 하지만, 이러한 언어의 차이가 소설 전체 서사에 대한 독해를 방해하지는 않는다. 약한 자를 도와주고 싶어 하는 마을 사람들의 마음, 마을 공동체의 인정이 남과 북을 아우르는 고향에 대한 향수를 자아낸다. 남북의 언어의 차이는 세심하게 이해될 필요가 있다. 그렇다고, 남북의 인간적 심성의 차이로까지 확대하여 과장할 필요는 없다. 인간의 정(情)은 어디에나 따뜻한 온기로 흐르고 있다.



| 오창은 |

중앙대학교 교양학부대학 교수, 문학평론가. 2002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문학평론 부문 당선. 지은 책으로 『비평의 모험』, 『모욕당한 자들을 위한 사유』, 『절망의 인문학』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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