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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레말은 겨레얼 입니다 겨레말큰사전 누리판 2015.06

우리말 보물찾기

모두에게 주는 선물

_ 이상배 / 동화작가

   욕심이 가득한 세상입니다. 충분히 갖고 있으면서 더 가지려고 합니다. 그러다보니 싸우게 됩니다. 친구끼리 싸우고, 형제끼리 싸우고, 부모 자식 간에도 싸우는 부끄러운 세상이 되었습니다.
   처음에 이 세상 모든 것은 누구의 것이었을까?
   순우리말의 아름다운 동화 한 편을 읽으면서 욕심을 내려놓아 보세요.
   옛날에 한 사람이 처음으로 이 땅에 살려고 왔습니다.
   땅은 끝 간 데 없이 넓고 넓었습니다.
   사람은 외롭고 쓸쓸하고 무서웠습니다.
   “어떻게 나 혼자 살아갈까?”
   사람은 하늘을 바라보며 걱정했습니다.
   “나 혼자는 못살아요.”
   언덕에 올라가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그러자 숲 속의 나무들이 일제히 술렁거렸습니다.
   나무들은 사람을 만난 것이 기뻤고 그를 도와주고 싶었습니다.
   “당신은 혼자가 아니에요. 우리는 형제이며 서로 도움이 필요하답니다.”
   나무들이 이파리를 흔들며 말했습니다.
   그제야 사람은 안심이 되었습니다.
   “나는 당신이 마실 수도 있고 단물로도 만들 수 있는 물을 드리겠소.”
   잎이 우거진 단풍나무가 말했습니다.
   “자, 잠깐만 비켜 보세요.”
   밤나무가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후드득!”
   소리를 내며 알밤들이 떨어졌습니다.
   “자, 여기 또 있어요. 나도 당신이 배가 구쁠 때 먹을 수 있는
아람을 드리겠소.”
   키가 큰 나무가 빨간 열매를 수북이 떨어뜨려 주었습니다.
   그러자 그 옆의 느릅나무가 말했습니다.
   “열매를 주워 담으려면 그릇이 필요하겠지요. 내 부드러운 껍질을 벗겨서 바구니를 만들고 끈도 만들어 보세요.”
   “고맙습니다, 나무님들.”
   먹을 것과 마실 것, 그리고 여러 나무 친구들이 생겼으니, 사람은 행복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사람은 다른 곳으로 여행을 떠나기로 하였습니다. 다른 세상을 살펴보고, 또 다른 친구들을 사귀고 싶었습니다.
   넓은 숲을 가로질러 가자 큰 강이 앞을 막았습니다. 푸른 물이 넘실거리며 흐르고 있었습니다.
   사람은 앞으로 더 나아갈 수가 없었습니다.
   “어떻게 강을 건널 수 있을까?”
   사람은 안타까웠습니다.
   그때, 강가에 서있던 자작나무가 사람이 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내가 도와주겠소. 어서 내 껍질을 벗겨서 느릅나무를 묶으시오. 그러면 강을 건널 수 있는 배를 만들 수 있어요.”
   사람은 자작나무가 가르쳐준 대로 배를 만들어 무사히 강을 건넜습니다.
   그런데 사람이 강을 건넜을 때는 해가 져 어두워졌습니다.
   사람은 할 수 없이 산에서 밤을 지내기로 하였습니다.
   “으으, 캄캄하고 추워!”
   사람은 어둠 속에서 덜덜 떨었습니다.
   그때 산등성이 위로 온달이 떠올랐습니다. 메숲이 환해졌습니다.
   “저런, 저런!”
   미루나무가 추위에 떠는 사람을 보았습니다.
   “나그네님. 나는 불을 지필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어서 내 가지를 꺾어서 서로 비벼 보십시오.”
   사람은 미루나무가 시키는 대로 하였습니다. 그러자 곧 불이 일었습니다.
   사람은 모닥불을 피웠습니다. 온몸이 따뜻해지자 하품이 자꾸 나왔습니다.
   “이제 우리 차례가 되었군.”
   여태껏 지켜보고 있던 소나무와 참나무가 소곤거렸습니다.
   두 나무는 이파리를 수북이 떨어뜨렸습니다. 나무 밑은 푹신한 잠자리가 되었습니다.
   사람은 그 위로 스르르 쓰러졌습니다.
   긴 밤이었습니다. 차가운 바람이 불었지만 사람은 모닥불 옆에서 귀잠이 들었습니다.
   다음날, 사람이 잠에서 깨났을 때, 세상은 눈부시게 햇귀가 빛났습니다.
   나그네는 저절로 생긴 옹달우물에서 얼굴을 씻고 나무들을 올려다보았습니다.
   “고마워요, 나무님들!”
   사람은 고마운 마음으로 나무들을 올려다보았습니다.
   “나무님들, 이 고마운 선물에 어떻게 보답해야 하겠습니까. 당장 나는 줄 것이 없으니….”
   “걱정 마십시오. 우리는 아무런 도움도 바라지 않습니다. 우리는 오로지 주는 것만이 우리들의 행복이니까요.”
   큰 나무들과 보드기들이 푸른 가지를 흔들었습니다.
   “한 가지 부탁이 있다면 이 숲을 오래도록 간직하기 바랍니다. 하느님께서 거저 주신 선물은 누구 한 사람의 아람치가 아니고, 이 땅의 모든 생명이 다 같이 누리는 귀한 선물입니다. 그러니 낭비하거나 파괴하지 마십시오.”
   “잘 알겠습니다, 나무님들!”
   사람은 나무들과 약속했습니다.
   그 후, 사람들은 나무들이 한 말을 잊지 않았습니다. 사람의 후손들은 오직 필요한 것만 가지고 살며, 서로 돕고 사랑하고, 그 땅의 나머지는 다른 사람들을 위해 고이 남겨 두었던 것입니다.

*동화 속의 순우리말 뜻

단물: 단맛이 나는 물.
구쁘다: 배 속이 허전하여 자꾸 먹고 싶은 것.
아람: 밤이나 상수리 같은 열매가 익어 저절로 떨어질 정도가 된 상태. 또는 그런 열매.
온달: 조금도 이지러진 데 없는 둥근달.
메숲: 산에 나무가 우거진 숲.
모닥불: 잎나무나 검불 따위를 모아 놓고 피우는 불.
잠자리: 잠을 자기 위해 사용하는 이부자리나 침대보 따위를 통틀어 이르는 말.
귀잠: 아주 깊이 든 잠.
햇귀: 해가 처음 솟을 때의 빛.
옹달우물: 앉아서 바가지로 물을 퍼낼 수 있도록 작고 오목한 우물.
보드기: 크게 자라지 못하고 마디가 많은 어린 나무.
아람치: 개인이 사사로이 차지하는 몫.

| 이상배 |

동화작가. 한국아동문학인협회 회장을 지냈으며, 현재 도서출판 좋은꿈 대표이다. 대한민국문학상, 윤석중문학상, 방정환문학상, 한국동화문학상 등을 수상하였으며, 저서로는책읽는 도깨비,책귀신 세종대왕,부엌새 아저씨,우리말 동화,우리말 바루기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