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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레말은 겨레얼 입니다 겨레말큰사전 누리판 2015.06

우리말 돋보기

몸매나 살과 관련된 우리말

_ 박남일 / 저술가

   “몸피가 작은 민영수가 깍짓동만 한 사내한테 질질 끌려 나왔다.”
   송기숙의 소설 『녹두장군』에 나오는 구절이다. 여기서 ‘깍짓동’은 콩이나 팥의 깍지를 줄기가 달린 채로 묶은, 원통 모양의 큰 단을 뜻한다. 흔히 허리가 굵고 뚱뚱한 사람을 이에 빗대어 놀림조로 깍짓동이라 이르기도 한다. 이와 비슷한 말로 ‘절구통’도 있다. 또 ‘드럼통’이니, ‘우체통’이니 하는 속어로 뚱뚱한 사람을 놀리기도 한다. 다만 깍짓동이 앞 예문처럼 우람한 남성의 몸집을 빗대어 쓰는 데 비하여 절구통, 드럼통, 우체통 따위는 주로 여성의 몸집을 비하하는 뜻으로 흔히 쓰인다. 이밖에 피둥피둥 살이 찐 사람을 ‘양돼지’에 빗대기도 한다. 토종 돼지보다 서양 돼지가 훨씬 살집이 좋다는 데서 생겨난 말로 보인다.
   마른 사람을 놀림조로 이르는 말도 있다. 흔히 몸이 홀쭉한 사람은 ‘홀쭉이’라 한다. ‘뚱뚱이’에 상대되는 말이다. 살가죽이 쪼그라져 붙을 만큼 야윈 사람은 ‘빼빼’라 부른다. 과자 이름으로 상품화되어 널리 쓰이는 말이기도 하다. 이와 비슷한 ‘말라깽이’도 있다. 바짝 말라서 갈빗대가 드러나 보이는 사람은 ‘갈비씨’, 또는 ‘갈비’라 한다. 겨울나무처럼 앙상하게 마른 사람을 ‘앙상쟁이’라 부르고, 늙은 누에처럼 말라서 늘어진 사람은 ‘누에늙은이’라 한다. 이들 가운데서 유별나게 허리가 가늘어 보이는 사람은 ‘개미허리’이다. 몸매에 죽고 사는 사람들이 그토록 갈망하는 바로 그 개미허리.
   이처럼 뚱뚱한 몸과 빼빼한 몸에 시비를 거는 말에 이어, 키가 크거나 작음을 놀리는 말도 많다. 키가 무척 큰 사람을 흔히 ‘키다리’라고 한다. ‘꺽다리’, ‘장승’, ‘전봇대’ 따위도 비슷한 뜻으로 쓰이는 말들이다. 더불어 키는 큰데 좀 멍청한 사람은 ‘멀대’라 놀린다. 본래는 충청도에서 쓰던 말인데 이즈막에는 ‘멀대같다’는 식으로 널리 쓰인다. 또 키도 크고 목이 유난히 길지만 몸이 여위어 가냘파 보이는 사람은 ‘거위영장’이라 한다. 이러한 말들에는 단지 키가 크다는 것뿐만 아니라 멋대가리 없는 사람이라는 뜻도 곁들어 있다.
   이밖에 키와 몸집이 매우 큰 사람을 빗대어 ‘어간재비’라 부른다. 어간재비는 어떤 것들 사이에 칸막이로 둔 물건을 가리킨다. 사람들 사이를 가르는 칸막이가 될 정도로 몸집이 크다는 뜻이다. 그런데 어간재비보다 더 큰 사람도 있다. 바로 ‘천왕지팡이’이다. 하늘의 왕이 짚는 지팡이라니. 허풍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키다리에 상대되는 말은 ‘작다리’이다. 작달막하다는 뜻이다. 보통 사람보다 키가 훨씬 작은 사람은 ‘난쟁이’이다. 또 키도 작고 몸집도 작아 하찮아 보이는 사람을 ‘따라지’라 한다. 따라지는 하찮은 처지의 사람이나 물건을 속되게 이를 때 두루 쓰이는 말이다. 예컨대 노름판에서 ‘삼팔따라지’는 세 끗과 여덟 끗을 합하여 된 한 끗으로, 가장 낮은 끗발을 뜻한다. 옛적에는 38선 이북에서 월남한 사람을 ‘삼팔따라지’라 부르기도 했다. ‘따라지 인생’, ‘따라지목숨’, ‘따라지신세’ 따위도 여기에서 나온 말들이다.
   이밖에 키가 작고 마음씨가 옹졸한 사람은 ‘쫄쫄이’, 몸집이 작고 마음이 좀스러운 사람은 ‘좀팽이’라 이른다. 그런데 작다고 다 좀스러운 것은 아니다. 키는 짤막해도 옆으로 딱 바라져서 왠지 강단 있게 보이는 사람도 있다. 그런 사람은 ‘땅딸보’라 부른다. 줄여서 ‘딸보’라 한다. 또 키는 작은데 배만 볼록한 사람은 ‘맹꽁이’라 놀린다. 더불어 이렇다 저렇다 말하기도 뭣하게 아무렇게나 생긴 사람은 ‘만무방’이라 한다.
   몸집 생김새보다도 근육질이 일으키는 강약의 느낌에 따른 말도 있다. 덩치에 상관없이 몸이 허약한 사람은 ‘물컹이’라고 한다. 단단하지 않고 물컹물컹하다는 뜻이다. 살은 쪘는데 막상 힘이 없는 사람은 ‘물퉁이’이다. 물컹이나 물퉁이는 겉만 봐서는 알기 어렵고, 힘쓰는 모양을 봐야 안다. 반면 겉보기에도 잔약하고 보잘 것 없는 사람을 이르는 말은 ‘연생이’이다. 연생이보다 더 허약한 사람은 ‘앤생이’라 한다. 또 힘없어 보이고 몰골이 추레한 사람을 가을에 알에서 깨어 시들한 병아리에 빗대어 ‘서리병아리’라 부르기도 한다. 딱 보기에도 비쩍 마르거나 병약해 보이는 사람은 ‘사시랑이’이다.
   겉으로는 무척 튼튼해 보이는데 속은 허약한 사람도 있다. 그런 사람을 ‘텡쇠’라 한다. ‘텅 빈 쇠’에서 비롯된 말로 추측된다. 단단하고 야무지면서도 표독스러운 느낌을 풍기는 사람은 ‘대추방망이’라 부른다. 이에 비해 겉도 속도 야무진 사람은 흔히 ‘차돌’이라 한다. 그 가운데서 조금도 빈틈없이 여무지게 생긴 사람은 ‘모도리’이다. 차돌과 모도리는 몸집과 관련하여 사람들이 가장 듣기 좋을 말일 성싶다. 하지만 여성이 이런 변말로 불리고 싶지는 않을 터. 다행히도 몸매와 관련하여 여성이 듣기에 좋은 말이 있다. 바로 ‘마늘각시’이다. 살갗이 희고 몸매가 예쁜 여자를 이르는 말이다. 요새 말로 ‘우유빛깔 그녀’라 할 수 있다.
   마늘각시 소리는 못 듣더라도 깍짓동은 되지 않기 위해 ‘살과의 전쟁’을 벌이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무작정 살을 빼려다간 몸을 망치기 쉽다. 살에도 여러 가지가 있다. 운동 부족이나 영양과잉으로 생긴 살은 ‘군살’이다. 포동포동하면서도 건강미가 넘치는 살은 ‘참살’이라 한다. 또 운동으로 다져서 단단하고 야무진 살은 ‘대살’이다. 이에 비하여 물렁물렁한 살은 ‘무살’, 푸석푸석한 살은 ‘푸석살’이다. 또 살빛이 허여멀겋고 무른 살은 ‘두부살’이라 하며, 이를 낮잡아 ‘비곗살’이라고도 부른다.
   참살이나 대살은 건강한 살이고, 무살이나 푸석살이나 비곗살은 주로 군살이다. 그 가운데서도 배를 에워싼 ‘뱃살’은 당연히 퇴치해야 할 군살로 여겨진다. 우리 몸에 넘쳐서도 안 되지만, 없어서도 안 되는 게 바로 살이다. 무작정 살을 빼려 할 게 아니라 군살을 잘 다스려 참살이나 대살로 만드는 것이 건강한 몸매를 가꾸는 일이다. 게다가 세상에는 살을 빼려고 애쓰는 사람만 있는 게 아니다. 오히려 살을 더하려고 애쓰는 사람도 있다. 심지어 빼는 일보다 더하는 일이 어렵다는 사람도 있다.
   사람의 몸집과 살에 대한 토박이말 가운데는 요새 기준으로 논란을 일으킬만한 것도 있다. 그러나 사람은 누구나 제멋대로 생겼다. 뚱뚱이도 있고 홀쭉이도 있다. 키다리도 있고 작다리도 있다. 이도저도 아닌 어중간한 사람도 있다. 이른바 몸매에 대한 미적 기준도 사람마다 다르다면 물퉁이와 대추방망이가 서로 잘났다며 우겨도 큰 탈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몸이 상품화되고, 그에 대한 미적 기준이 획일화 되면서 문제가 생겼다. 대중적 상업매체가 만들어낸 이미지가 우리의 미적 감각마저 뒤틀어버린 까닭이다.

| 박남일 |

저술가, 우리말 연구가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는 『좋은 문장을 쓰기 위한 우리말 풀이사전』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