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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에 얽힌 이야기

<돌각다리>

_ 이길재 / 새어휘팀장

  오빠가 덕원 농업학교 2학년까지 다니다가 집안 사정으로 중퇴하였다는 것, 평강 구석의 {돌각다리} 땅뙈기로는 그 뒷감당이 안 되었던 모양이라는 것, 늙은 양친께서 그때도 평강서 농사를 짓고 계신다는 것⋯《이호철: 문》

  이호철의 소설 ‘문’의 한 대목이다. 여기에서 ‘돌각다리’는 ‘돌밭’이 ‘돌이 많은 밭’인 것처럼, ‘돌각다리’는 문맥상 <‘땅뙈기’의 어떤 특성>을 나타내는 말이다. 이러한 사실은 다음의 예들에서 더욱 분명해진다.

  이런 큰 히망을 품고 바위 우에다가 흙을 저다 부어 밭을 맨들고 거기다가 농사를 짓기도 하고 {돌각다리} 못쓸 땅은 돌을1) 줏어다 버리고 채전을 맨들고 채소를 심기도 하야 적은 땅이라도 남겨두지 안코⋯《노양근: 히망을 가집시다》2)
  그러나 그 領土는 그들의 祖上들이 애급에서 종살이를 하다가 모세라는 지도자에게 끌려나와서 찾던 肥沃한 가나안 牧地는 아니며, {돌각다리} 沙漠에 不過한 것이다. ▼워낙 박토인지라, 아무리 잘 다루더라도 기름진 옥토가 될 수는 없은 즉 ⋯《동아일보》3)
  하지만 {돌각다리} 밭에 그냥 씨를 뿌린다면 싹도 트지 못할 뿐더러 농부의 수고는 모두 헛수고가 되듯이 우리 나라에는 무엇보다도 사람농사를 잘 지어야 한다.《정화국: 자연은 위대한 교사》4)
  그 덕택에 영애의 발바닥은 얼마 가지 않아서 구두바닥같이 굳어지고 말았다. 아무리 {돌각다리를} 밟고 다녀도 아픈 감각이 없어졌다.《전무길: 무한애》

  위의 예 ‘돌각다리 못쓸 땅’, ‘돌각다리 밭’, ‘돌각다리 사막’5) 등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돌각다리’는 ‘돌이 많은 곳, 혹은 그러한 특성을 갖는 지대’를 이르는 말이다. 기존 사존에서 ‘돌각다리’의 뜻풀이는 다음과 같다.

  <문세영 조선어사전>(1938): 돌:각다리 [명] 「돌사닥다리」의 사투리.
  <큰사전>(1957): 돌각다리 [이] <돌사닥다리>의 사투리.
  <조선말사전>(1961): 돌각다리 [명] (방언) 돌사닥다리.
  <금성판 국어대사전>(1991): 돌각다리 [명] ⇒ 돌사닥다리(방언).
  <우리말큰사전>(1992): 돌:-각다리 [이] → 돌사닥다리.
  <표준국어대사전>(1999): 돌각-다리 [명] ‘돌사닥다리’의 잘못.
  <고려대 한국어대사전>(2009): 돌각다리 [명] ☞ 돌사닥다리.

  기존의 모든 사전에서 ‘돌각다리’는 <‘돌사닥다리’의 잘못>이나 <‘돌사닥다리’의 방언(혹은 사투리)>로 풀이되어 있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 ‘돌사닥다리’의 뜻풀이는 다음과 같다.

  돌-사닥다리 [돌ː--따-] [명] 돌이나 바위가 많아 매우 험한 산길을 사닥다리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 ≒돌사다리.

  필자는 지금까지 확인한 어떤 문헌자료에서도 ‘돌각다리’가 ‘돌이나 바위가 많아 매우 험한 산길’이라는 의미로 쓰인 예는 찾아 볼 수 없었다. 그런데 왜 대부분의 사전에서 ‘돌각다리’가 ‘돌사닥다리’의 지역어나 비규범어, 혹은 동의어로 풀이되었을까? 그 발단은 1920년 일제강점기 때 조선총독부에서 간행된 《조선어사전》(1920) ‘돌사닥다리’의 뜻풀이에서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돌사닥다리 [명] 山中の巖石多き險阻なる路. (돌가닥다리).
  돌가닥다리 [명] 「돌사닥다리」に同じ。

    위의 뜻풀이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조선어사전》(1920)에서 ‘돌사닥다리’와 ‘돌가닥다리’를 동의어로 풀이하였다. 이러한 사전적 풀이는 후에 간행되는 사전에도 영향을 미친다. ‘돌각다리’가 처음으로 실린 사전은 1938년에 간행된 문세영의 《조선어사전》이다. 한글 맟춤법이 적용된 최초의 사전인 《조선어사전》(1938)에서는 《조선어사전》(1920)에서 규범어로 풀이한 ‘돌가닥다리’를 지역어로 처리하였는데, 이는 ‘돌가닥다리’의 ‘가닥다리’를 ‘사닥다리’의 지역어로 인식한 결과이다. ‘돌각다리’ 또한 《조선어사전》(1938)에서는 사투리로 풀이되어 있는데, 이는 ‘돌각다리’를 ‘돌가닥다리’의 준말로 보았기 때문이다. 이후 ‘돌각다리’ 혹은 ‘돌가닥다리’에 대한 풀이는 모든 사전에서 《조선어사전》(1920)의 관점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돌각다리’와 마찬가지로 ‘돌가닥다리’ 또한 ‘돌사닥다리’와 동의어로 풀이할 근거는 쉽게 발견되지 않는다. 웹 상에서 몇몇 ‘돌가닥다리’의 쓰임이 보이는데, 기존 사전의 ‘돌사닥다리’의 뜻풀이와 같은 것으로 보기 어렵다.

  교회 앞마당 {돌가닥다리} 같이 쓸모없는 땅에서 주먹만한 수박과 참외, 오이, 가지가 주렁주렁 달리고⋯(http://www.bmch.co.kr)

  ‘돌가닥다리’나 ‘돌각다리’는 공교롭게도 어떤 방언사전에서도 조사된 바가 없다. 이는 현재 일반사전들이 ‘돌가닥다리’나 ‘돌각다리’에 대한 별다른 검증 없이 《조선어사전》(1920)의 ‘뜻풀이’를 그대로 받아들였다는 반증이다. ‘돌가닥다리’뿐만 아니라 어쩌면 ‘돌사닥다리’의 뜻풀이도 첫 단추부터 잘못 채워진 것인지도 모른다.

  {돌사닥다리가} 끝나고 길이 편평해져 산을 오를 만하였다. / 현의 발길은 {돌사닥다리가} 시작되는 산기슭까지가 고작이었다.《박완서: 오만과 몽상》
갈가 십으지 안타 며 다시 요긔를 든든이  뒤에 산이로 조차 나려오 긔구 {돌사닥다리} 빗탈길에 발 붓치기가 어렵고⋯《김교제 번안: 비행선》

  다음 호에는 ‘돌사닥다리’의 뜻풀이를 재검토하고, 그 결과를 토대로 ‘돌각다리, 돌사닥다리’에 대한 《겨레말큰사전》의 뜻풀이 안을 제시해 보고자 한다.

1) 원 신문기사에는 ‘몰’로 표기되어 있었는데, 이는 ‘돌’의 오자인 것으로 보인다.
2) 1940년 3월 31일 동아일보 기사.
3) 1960년 1월 13일 동아일보 촌평 ‘횡설수설’.
4) 2006년 3월 13일 강원일보 기사.
5) 암석사막. 돌사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