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살이

 

낱말 이야기

조재수
(겨레말큰사전 편찬실장)

 사전 이야기에서 ‘낱말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단어’ 대신 ‘낱말’을 쓰기로 한다. 사전에 다루어 싣는 말을 ‘올림말’이라 하는데, ‘표제어’, ‘등재어’라 하는 이도 있다. ‘표제어’는 제목말, ‘등재어’는 올려 싣는 말이니 ‘올림말’과 비슷한 용어다. 사전의 주된 올림말은 낱말이다. 낱말 이상의 것으로 숙어, 속담도 있고 낱말 이하의 것으로 토·말끝(어미), 접두사·접미사 들도 있지만 대부분의 올림말은 낱말이다. 접두사·접미사를 최현배 선생은 ‘앞가지·뒷가지’라 하였고, 북에서는 ‘앞붙이·뒤붙이라 한다.
 ‘낱말’이란 글자 그대로 낱낱의 말이다. 낱말은 일정한 뜻을 가지고 따로 설 수 있는 말의 낱덩이다. 그래서 낱말은 말(언어)의 가장 작은 표현 단위가 된다. 아이가 처음 말을 익힐 때도 낱말부터 띄엄띄엄 말한다. 누구나 첫 국어 공부는 낱말 공부였다. 아무개가 말을 많이 안다는 것도 바로 낱말을 많이 익히고 있다는 평가다. 요즘 관심을 끄는 우리말 실력 겨루기 방송 프로그램에서도 주로 낱말 알아맞히기를 하고 있다. 국제 정치판에서는 낱말 하나를 놓고 협상이 되기도 하고 판이 깨지기도 한다.
 낱말에도 짜임새가 있다. ‘옷, 밥, 집’ 같은 한 소리마디(음절)로 된 간단한 것에서부터 ‘넉점박이각시꽃하늘소’나 ‘헐레벌떡헐레벌떡하다’처럼 여러 소리마디로 된 복잡한 짜임새들이 있다. 낱말을 만드는 요소로 ‘형태소’라는 것이 있다. 일정한 소리와 뜻을 가지는 가장 작은 말의 조각(형태)을 형태소라 한다. 형태소에는 뿌리(어근·어간), 어미, 토(조사), 접미사, 접두사들이 있다. 뿌리 형태소에는 ‘먹었다’의 ‘먹-’이나 ‘밝다’의 ‘밝-’처럼 자립적이지 못한 것도 있고, ‘얼’, ‘말’, ‘글’과 같이 자립적인 것도 있는데 이렇게 따로 설 수 있는 뿌리 형태소는 곧 기본 낱말이기도 하다. 형태소가 이어져 낱말을 만들고, 낱말이 이어져 말마디(어절)를 만들며, 말마디가 이어져 한 문장을 만든다. 낱말은 문장을 이루는 기본 요소로서 한 문장 속에서 주어=임자말(‘아이’가), 목적어=부림말(‘글’을), 서술어=풀이말(‘읽는다’) 등으로 일정한 노릇을 한다.
사전 편찬에서 중요한 일거리가 형태소와 낱말의 의미를 잘 파악하고 밝히는 일이다. 우리말의 낱말 수는 얼마나 되며, 형태소의 가짓수는 얼마나 될까? 사전을 통하여 낱말의 수는 몇 만, 몇 십만으로 잘 알려지는데 형태소의 수량을 밝힌 통계는 없다. 이는 우리말의 형태소를 샅샅이 챙겨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는 아직 형태소 사전이 없다. 그러면, 형태소의 결합에 따른 우리 낱말의 유형을 살펴보자.
 한 형태소로 된 낱말에 ‘물, 불, 쌀, 구름, 하늘, 고사리’ 같은 것이 있다. 둘 이상의 형태소로 된 낱말에는, (ㄱ) 뿌리와 뿌리가 합친 ‘달-밤, 밤-낮, 늘-푸른-나무, 오르-내리-다, 검-붉-다’ 들이 있고, (ㄴ) 뿌리에 접두사가 붙은 ‘헛-일, 짓-밟-다’ 들과 / 뿌리에 접미사가 붙은‘높-이, 사랑-스럽-다’ 등이 있다. 뿌리와 뿌리가 합쳐진 낱말을 ‘합성어=합친말’이라 하며, 뿌리에 접두사·접미사가 붙어서 된 낱말을 ‘파생어=가지친말’이라 한다. 낱말에도 일정한 갈래가 있다. 사람의 지혜는 일찍이 세상의 온갖 사물을 그 성질과 모양 등에 따라 갈라볼 줄 알았다. 사물 현상을 나타내는 수많은 낱말도 그 특성에 따라 갈래를 지을 수 있었다. 이른바 ‘품사’라는 것이다. 기원전 3세기께 그리스의 스토아 학파가 처음으로 여덟 가지 품사를 생각해 냈다고 한다 <최현배: 우리 말본>. 일정한 뜻을 지닌 수많은 낱말이 각각 어떤 형태적 특성이 있으며, 문장에서 어떤 구실(기능)을 하는가에 따라 나눈 갈래가 품사다. 우리의 학교 문법에서는 명사, 대명사, 수사, 동사, 형용사, 관형사, 부사, 감탄사, 토(조사)로 분류해 온다. 최현배 선생은 낱말이 말의 씨라는 뜻으로 ‘품사’를 ‘씨’라 하여, 이름씨, 대이름씨, 셈씨, 움직씨, 그림씨, 매김씨, 어찌씨, 느낌씨’라 하였다. 사전 편찬에서 품사에 대한 지식은 매우 중요하다. 품사의 특성에 맞게 말을 풀이하고 바른 쓰임새를 보여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각 품사에 대한 설명은 지나가기로 한다.
 겨레의 삶이 그렇듯이, 한 언어권에도 말은 세월 따라, 지역 따라, 또 사람과 직업 따라 차이가 있다. 옛말의 ‘사랑하다’에는 ‘생각하다’ 뜻이 있었으나 오늘날에는 쓰이지 않는다. 요즘의 ‘개미’라는 말은 단순히 벌레만이 아니다. ‘일반 투자자, 소액 투자자’를 가리키는 말로 쓰인 지도 오래다. ‘마당발’은 볼이 넓은 발이기도 하고, 발이 너른 사람이기도 하다. 우리의 지역어로는 행정 구역상의 각 도의 토박이말, 국토의 분단으로 말미암은 남녘·북녘의 달라진 말들이 있다. 또 중국 속의 조선말과 옛 소련 지역의 고려말 등 나라 밖 동포의 모국어도 챙겨야 할 지역어다. 사람에 따라 속된말을 잘 쓰는 이가 있고, 노름꾼·소장수·심마니·죄수 같은 특정 집단인에게는 저들끼리 주고받는 변말(은어)이 있다. 요즘 젊은 세대의 인터넷 통신 언어도 일종의 변말이라 할 수 있다. 또 각종 전문 학술 분야의 용어는 오죽 많은가.
 낱말에도 질과 양이 있다. 일반적인 것(일반어)과 특수한 것(전문 용어), 규범적인 것(표준어/문화어)과 비규범적인 것(사투리), 어려운 것과 쉬운 것, 전통적인 것과 외래적인 것들이 있어 낱말의 품격과 분포를 서로 달리한다.
 낱말 하나하나에도 깊이와 넓이가 있다. 각 낱말의 의미와 쓰임의 영역이 바로 그것이다. 낱말에는 한 가지 뜻뿐인 것도 있고, 여러 뜻을 나타내는 것도 있다. 같은 부류의 말인데도 ‘흙’은 흙 이외의 딴 뜻이 없는데, ‘땅’에는 여러 뜻이 있다. ‘땅’은 지구의 겉면(‘땅 속’), 논이나 밭(‘땅을 부치다’), 영토(‘독도는 우리 땅’), 곳이나 지방(‘고향 땅’, ‘만주 땅’) 등으로 넓게 쓰인다. ‘가다, 오다’나 ‘먹다’ 같은 말은 열에서 스무 가지 이상의 뜻갈래가 있다. 이처럼 낱말에는 기본뜻이면서 일반적인 뜻에 머무는 것, 또는 비유나 상징적으로 널리 번져 쓰이는 것들이 있다. ‘여물다’의 쓰임을 보자.
 ‘날씨가 좋아 열매가 잘 여물고’, ‘아직 뼈가 여물지 못한 어린 몸’, ‘가을이 감빛으로 여물고’ <조정래: 태백산맥>, ‘일이 잘 여물어 간다’ 들에서 각각의 ‘여물다’는 뜻바탕이 다르면서 품사로는 자동사로 쓰였다.
‘전 선생은 말끝을 여물자 술을 다시 따르라 하였다’ <이기영: 봄>에서 ‘여물다’는 타동사로 쓰였다.
 ‘여문 알사탕’, ‘손끝이 여물다’, ‘씀씀이가 여물다’, ‘아침부터 햇볕은 여물었다’ <유주현: 하오의 연가>, ‘실개천 물소리도 제법 여물다’ <이무영: 제1과 제1장> 들에서 ‘여물다’는 모두 형용사로 쓰였다. 세 가지 문법 형태에다 쓰임의 갈래가 여러 가지다. 그 쓰임새를 간추려 보면, 물리적이거나 자연현상적인 것, 사람의 행동 양상, 일의 진행 정도 등으로 뭉뚱그릴 수 있다. 어떤 낱말이 번져 쓰이는 깊이와 넓이에 관해서 일정한 법칙을 끌어 내기란 쉽지 않다. 언어 행위 곧 말의 표현이란 사람마다의 창조적 활동이기 때문이다.
사전 편찬인은 이러한 말의 쓰임새를 간추려서 갈래를 짓고 그 뜻과 문법적 바탕을 밝혀 주는 일을 주로 하는 연구자들이다.
  낱말의 갈래에 대해 좀 더 살펴보자. 낱말들을 문법적 특성에 따라 품사별로 나눈 것은 앞에서 보았다. 낱말들을 소리나 의미의 관련성에 따라서 나누어 볼 수도 있다.
 소리가 같은데 뜻이 다른 낱말이 있다. ‘눈’, ‘말’, ‘배’에는 각각 세 가지 이상의 다른 뜻의 낱말이 있다. 이런 말들을 한자 용어로 ‘동음이의어’라 한다.
 뜻이 같거나 비슷한 낱말도 있다. 같은 뜻을 나타내는 말을 이윤재(1888~1943) 선생은 ‘같은말’, 한글 학회 우리말 큰사전에서는 ‘한뜻말’, 북에서는 ‘뜻같은말’이라 하고, 한자 용어로는 ‘동의어’라 한다. ‘옥수수·강냉이’, '옷·의복·입성’, ‘감·재료’, '말본·문법' 등은 뜻이 같은 명사들이다. 뜻은 같은데 품사를 달리하는 것도 있다. ‘모자라다’는 동사인데 ‘부족하다’는 형용사다. 일반적으로 뜻바탕이 일치하는 말이면 동의어라 한다.
 
뜻이 비슷한 말을 우리말 큰사전에서는 ‘비슷한말’, 북에서는 ‘뜻비슷한말’이라 하고, 한자 용어로는 ‘유의어’라 한다. 뜻이 꼭 같은 말보다는 뜻이 비슷한 말이 훨씬 많다. '가게·상점', ‘값·가치’, ‘껍데기·껍질’, ‘궁둥이·엉덩이·방둥이’, '가난하다·구차하다·궁하다·애옥하다', ‘끝내다·끝맺다·마치다·마감하다·마무르다’, ‘마침내·드디어’ 따위는 각각 비슷한 말이다. 가게와 상점은 둘 다 물건을 파는 곳이지만 규모면에서 상점이 큰 것이 일반적이다. ‘상품의 값’, ‘상품의 가치’에서 보듯, ‘값’에 비하여 ‘가치’는 학술 용어로 더 잘 쓰인다. ‘꽁지’는 보통 새의 꼬리를 가리킨다. ‘궁둥이’는 엉덩이의 아랫부분으로 앉으면 바닥에 닿는 부분, 엉덩이는 볼기의 윗부분, ‘방둥이’는 짐승의 엉덩이<문세영>를 가리킨다.
 이처럼 비슷한 뜻바탕에서 차이 나는 바탕을 가려내어 표현하는 능력이 사전 편찬인에게는 중요하다. 비슷한 말무리를 잘 정리하면 각 언어의 낱말 특성과 분포를 알 수 있다(이에 대하여는 뒤에서 다시 이야기하기로 함). 한 올림말에 비슷한 말을 모아서 보이는 사전이 ‘비슷한말/유의어 사전’이다. 또 ‘비슷한 개념 사전’이라 하여 영국 사람 로제(Peter Mark Roget. 1779~1869)는 영어 시소러스(Thesaurus 보물 곳간)를 편찬하기도 하였다. 미국 웹스터 칼리지에이트 시소러스는 비슷한 말과 반대말 사전을 겸하는 사전이다.
 낱말끼리는 뜻이 반대되는 것도 있다. '남자 : 여자', ‘삶 : 죽음’, '있다 : 없다'처럼 둘 사이에 중간 대상이 없는 것과, '위 : 아래', '크다 : 작다', ‘더위 : 추위’처럼 중간 대상이 있는 것이 있다. 둘 사이에 중간 대상이 없는 반대개념을 논리학에서는 ‘모순개념’이라 한다. ‘젊다’와 ‘늙다’는 반대말이긴 한데 ‘젊다’는 형용사고, ‘늙다’는 ‘늙는다, 늙어 간다’에서 보듯 주로 동사(자동사)로 쓰인다. ‘젊는다’는 말이 안 된다.
 논리학이나 분류학의 개념 나누기에 유(類)와 종(種)이 있듯이, 낱말에도 전체와 부분 관계에 있는 말, 또는 같은 갈래에 딸린 또래말들이 있다. ‘생물’의 아랫갈래에 ‘동물’과 ‘식물’이 있고, 식물의 아랫갈래에 ‘나무’가 있으며, 나무의 갈래에 소나무, 감나무 등의 온갖 나무들이 있다. 이런 관계에 있는 낱말을 ‘계열어’라고도 하는데, 이를테면 ‘꽃’이나 ‘바람’을 나타내는 낱말이라든지, 물소리 ‘졸졸’이나, 햇빛의 ‘반짝’에 어감이 ‘큰말과 작은말’, ‘여린말, 센말, 거센말’ 같은 것이 있다. 이런 큰말과 작은말 따위는 비슷한 말의 범주에 넣을 수도 있다. 술집의 종류로 군치리, 날밤집, 내외술집(안침술집), 니나놋집, 다모토릿집, 대폿집, 매밋집, 목로술집(목로주점), 받힘술집, 방석집, 선술집, 옴팍집, 주막 등이 사전에 올라 있다.?
다른 품사끼리도 밀접하게 어울리는 낱말이 있다. 명사 ‘꽃’은 동사 ‘피다’나 형용사 ‘붉다’ 등과 어울려 한 문장을 만든다. ‘짓다’의 대상이 될 수 있는 낱말은 ‘옷, 밥, 집’, ‘약’, ‘농사’, ‘글, 노래’, ‘이름’, ‘웃음, 표정’ 등이다. 이처럼 각 낱말에는 문법적으로 꼭 어울리는(선택하는) 낱말들이 따로 있다. 서로 어울리지 않는 말끼리 어울려서는 말이 안 된다.
 낱말은 각 겨레의 삶터와 사회 문화적 환경에 따라 독특하게 발달한다. 각 겨레말에서, 어떤 부류의 낱말수는 많기도 하고 적기도 하며 드물기도 하다. 아랍어로 낙타를 설명하는 데 쓰이는 용어가 5~6천이나 되는데 낙타의 모양, 크기, 빛깔, 나이 및 걸음걸이에 관한 구체적이고 세밀한 점을 표현한다. 또 미국 인디언 언어에는 걸음걸이라든가, 때리는 행동에 대해 무척 많은 말을 볼 수 있다 <에른스트 카시러: An Essay on Man>(최명관 옮김). 몽골 사람들은 말을 색깔에 따라 부르는데, 그 색깔들을 나타내는 말이 거의 100가지나 된다 <람스테드: 일곱 차례 동방 여행>(고송무 옮김). 오아시스 주변 거주민들은 야자수를 나이, 크기, 수확력 등에 따라 구분하기 위해 60개 이상의 낱말을 가지고 있다 <레오 바이스게르버: 모국어적 중간 세계의 의식화>(허발 옮김). 시베리아의 소수 민족어 어웡키말에는 눈을 가리키는 낱말이 30가지나 되며, 사슴과 관련된 낱말은 무려 500가지 이상이 된다. <권재일: 퉁그스 말겨레> (한겨레. 2007. 3. 30.)
 우리말에는 어떤 분야의 어휘가 발달하였을까? 우리 겨레는 사계절이 뚜렷한 날씨와 금수강산이라 일컫는 복된 땅에서 살아온다. 봄꽃, 여름숲, 가을단풍, 겨울눈 등 좋은 자연을 두루 누리며 산다. 또 들과 바다에서 갖가지 물산을 거두어 살았다. 그래서 우리말의 낱말도 골고루 발달해 온 것으로 판단하고 싶다. 그런데 어떤 이는 지적하기로, 우리말에는 감각어는 풍부하나 관념어는 부족하다 하였다.
 그럴 수도 있겠다. 사물의 소리나 모양을 그려 내는 의성어(소리흉내말)와 의태어(짓흉내말) 같은 낱말이 무척 많은 것을 들어 감각어의 발달로 볼 수 있겠고, 철학 용어 등의 학문 용어에 토박이말이 잘 안 쓰이는 데서 관념어의 부족을 말할 수도 있겠다. 참고로, 일본 조총련 산하 조선어 연구회는 1971년에 올림말 약 4,000 단어의 <조선말 의성의태어 사전>을 낸 적이 있고, 일본 학자 靑山秀夫가 1991년에 약 9,000 어휘의 <조선어 상징어 사전>을 낸 적이 있음을 밝혀 둔다.
 지적한 대로 우리말에 감각어가 풍부하다는 것은 우리 겨레가 섬세한 감각력을 우리말로 잘 나타낸 결과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말에 관념어가 부족하다는 것은 우리에게 관념적인 지식이나 사유하는 능력이 모자랐거나, 아니면 그것을 표현하는 언어가 우리말이 아니었음을 말해 준다. 이른바 관념어라 할 우리의 학문 용어를 되돌아보면 대부분 중국, 일본, 서양에서 들여온 것이 사실이다. 우리에게도 전통 학문과 사상과 이념이 있었지만 그것을 담아내는 말과 글은 우리 것이 아닌 주로 한자와 한문이었다. 대부분의 학문 용어는 한자의 옷을 입게 되었고 오늘날에는 영어 용어가 더해지고 있다.
 우리는 우리말로 학문 용어를 만들면 안 되는가? 우리 지식인들 가운데는 일본 사람이 서양말을 번역한 용어는 그대로 받아 쓰면서 조금도 거리끼지 않고, 우리 학자가 우리말로 번역하거나 지어 쓰면 어색해 하는 이가 많다. 일본이나 중국 학자는 그들 식으로 외국 용어를 번역해도 되고, 우리는 우리말 식으로 번역하여 쓰면 안 되는 것일까? 그래서, ‘사전’은 ‘말모이’나 ‘말거울’이 되지 못하고, ‘문법’은 ‘말본’이 되지 못했으며, ‘명사·동사’는 ‘이름씨·움직씨’가 되지 못하였다. '기체’를 ‘김몬’, ‘고체’를 ‘굳몬·얼음몬’, ‘액체’를 ‘묽몬·물몬’, ‘시계’를 ‘때알이’, ‘그녀'를 ‘그미’라 하는 것은 어색하다고 돌아보지도 아니하였다.
어느 나라고, 말은 민중들 사이에서 알게 모르게 태어나며, 또 전문 지식인들이 생각하고 다듬고 하여 지어 쓰게 된다(일본, 중국에서처럼). 우리말로 된 학문 용어를 늘리기 위해서는 우리 민중들의 말에도 관심을 가져야 하고, 필요에 따라서는 우리 식으로 말을 다듬고 짓기도 해야 한다(일본, 중국의 지식인들처럼). 우리에게 그러한 낱말 만들기의 능력이 없었거나 부족한 것은 아니었다. 한자말이나 서양말만 학문 용어로 적합한 언어는 아닐 것이다. ‘존재’, ‘무’, ‘인식’이라야 되고, ‘있음’, ‘없음’, ‘앎’은 되잖은 말일까?
 마무리하면서 글 한 단락을 인용한다.

 단어들이 각기 다른 의미로 나타나는 삶의 형식들을 비트겐슈타인은 ‘말게임’이라 부른다. 말게임은 그들이 각기 다른 뜻으로 말해지는 구역들이다. (중략)
비트겐슈타인이 이해하는 철학의 과제는, 사색이 언어가 쳐놓은 함정들에서 벗어나도록 보살피는 일이다. 전통에서 전해진 철학적 문제들의 엄청난 혼란에서 구원하는 길은 말게임들을 밝히고 묘사하는 데 있다. “우리가 파괴하는 것은 그냥 공중누각일 뿐이다. 우리는 말이 서 있는 그 바탕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러므로 철학은 최종적으로 풀 수 없는 문제들을 언급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현실에서 순수하게 ‘기술(記術)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러니까 단어들의 사용을 서술하는 것이다. <빌헬름 바이셰델(안인희 옮김): 철학의 에스프레소, 32. 철학의 붕괴 혹은 비트겐슈타인(끝부분)>

 전통적인 철학의 허구를 지적하면서 바르게 철학하기를 논한 내용이다. 우리에게도 와 닿는 말이 아닌가? 지금도 철학 강의에서나 석학들의 글에서 느끼는 일이다. 그 알 수 없이 어렵기만 한 용어와 베껴 온 이론들 말이다. 철학뿐이 아닐 것이다.
 낱말! 언어의 중심이면서 철학의 중심이기도 하다. 우리 낱말과 용어로 우리 철학도 해보자.

 

조재수

조재수 : 1941년생. 한글학회 우리말큰사전 수석 편찬원. 한글문화 연구회 '자연어 검색 전자사전'편찬 자문위원을 지냈으며, 한글학회 사전 편찬위원과 외솔회 이사로 활동 지은 책으로 국어사전 편찬론, 북한의 말과 글, 남북한말 비교사전, 남북한말 사전, 윤동주 시어사전 등
 
겨레말 현장을 찾아서


《겨레말큰사전》 새 어휘 조사를 마치고

유 형 천
(순천청암고등학교교사)

 
유형천  6차 교육과정 고등학교 국어(상)에 「북한의 말과 글」이 란 단원이 있다. 고등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는 필자는 이 단원을 학생들에게 가르치면서 참으로 난감했던 경험이 있다. 북한말이라면 북한 방송 외에 별로 들어본 적이없어 솔직히 아는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필자가 북한 주민의 말을 생생히 듣게 된 것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북한 방문과 6·15 공동선언 이후이다.
나는 그때 미디어를 통해 들을 수 있는 북한 말을 녹음해 이 단원을 가르칠 때마다 활용하곤 했다.
남북한의 언어는 분명히 다르다. 말소리뿐만 아니라 어휘의 의미까지 다르다.
 본시 동일한 언어를 사용함에도 불구하고 과거의 불행한 역사로 인하여 이처럼 이질화된 언어를 사용하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최근 한반도에도 통일의 기운이 싹트기 시작했다. 그러나 통일이란 단순히 국토가 합쳐지고 정치적으로 하나 되는 것을 말하지는 않는다. 진정한 통일은 같은 민족끼리 동일한 언어를 사용하고 의식의 공감을 갖게 된 상태를 말한다. 그러면 이러한 진정한 통일의 시대를 맞이하기 위해 우리가 준비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또 어떤 방법이 있을까?
 그것은 남북한이 공동으로 사용할 수 있는 ‘국어사전 편찬 사업’이다. 이것이야말로 그동안의 언어장벽을 뚫어줄 수 있고 자유로운 의사소통을 가능하게 해줄 수 있다. 이 국어사전 편찬을 위해 남북 공동으로 《겨레말큰사전》남북공동편찬위원회를 구성하여 남과 북이 별도로 사무실을 마련하여 집필 중에 있다.
 이처럼 역사적으로 매우 의미 있고 가치 있는 국가적인 대사업에 감히 필자가 참여하게 된 것은 지난해였다. 남측 편찬위원장인 연세대학교 홍윤표 교수로부터 사전편찬 연구원으로 참여할 것을 제안 받고 많이 망설였다. 개인적으로는 가슴 벅찬 일이지만, 혹 연구과정에 있을지도 모를 나의 실수가 이 사업에 흠으로 남지 않을까하는 염려로 며칠을 고민하다 참여하게 되었다.
 필자가 맡게 된 분야는, 정신문화연구원에서 편찬했던 「한국구비문학대계」 전남편과 전북편을 읽고, 지금까지 남북한 국어사전에 실려 있지 않으면서 우리 민족의 언어 유산으로서 가치가 있는 어휘를 찾아 밝히는 일이다.
 이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15여 권이나 되는 「한국구비문학대계」의 책을 읽는 일도 그러했지만, 남측의 《표준국어대사전》과 북한의 《조선말대사전》에 실려 있지 않는 어휘가 얼마나 되겠는가? 처음에는 파일로 된 자료를 온라인상에서 찾았다. 매일 밤은 물론, 토요일과 일요일까지 제대로 쉬지 못하고 자료를 검색하다보니 눈이 튀어 나오려고 했다. 그래서 순천대학교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읽으면서 찾으니 한결 편했다.
 ‘새 어휘 조사’에는 새로운 어휘를 찾는 일보다 더 힘들고 전문성이 필요한 과정이 있다. 새로 찾은 어휘의 뜻풀이를 하는 일이다. 그 뜻을 밝히기 위해 어휘가 사용된 문장, 문단은 물론 쪽 전체를 거듭거듭 읽고 문맥을 고려하여 의미를 규명하는 일은 대단한 집중력과 의지가 필요했다. 뜻풀이뿐만 아니다. 음운변종, 어원, 관용구, 품사, 대응표준어, 그리고 그 어휘가 사용된 용례를 3개 이상 찾아 제시해야 한다. 어떤 경우는 하나의 어휘를 연구하는 데 이틀이 걸리는 경우도 있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어휘입력시스템’이란 프로그램에 해당 어휘에 관한 모든 정보를 입력해서 편찬실로 보낸다. 편찬실에서는 《겨레말큰사전》의 어휘로서 적절한가? 해당 어휘에 대한 연구는 완벽하게 되었는가? 등을 기준으로 삭제, 재검토, 검토, 반영 등으로 구분하여 연구원들에게 다시 통보해 주었다. 물론, 반영 판정을 받은 경우만 연구비가 지급되고 목표량에 해당된다. 간혹 며칠에 걸쳐 힘들게 연구한 어휘가 다른 연구원이 이미 연구를 했거나 사전에 올릴만한 가치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삭제 판정을 받은 경우가 있다. 이럴 경우 얼마나 서운했는지 모른다.
 어휘 조사와 연구는 모두 7-8회 걸쳐 이루어졌다. 매회 제출기간이 있는데, 이 기간을 놓치지 않기 위해 얼마나 애를 썼는지 모른다. 한번은 모친상을 당해 불가피하게 결과물을 조금 늦게 제출한 적도 있었지만 대체로 필자는 기간에 충실했다.
 필자가 연구한 어휘 가운데 최종적으로 반영 판정을 받은 어휘는 25% 내외에 불과했다. 다른 연구원들도 마찬가지다. 그러니까 전국의 모든 연구원들이 연구한 어휘 가운데 75% 내외는 반영되지 않은 셈이다. 편찬실에서 얼마나 세심하고 정확하게 검토했는가를 짐작해볼 수 있다. 필자가 연구해야 어휘가 330개였으니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대략 1200여 개의 어휘 정보를 찾고 연구한 것 같다.
 간담회가 있는 날이다. 재직하고 있는 학교에 하루 연가를 내고 편찬실에서 주최하는 회의에 참석하였다. 전국에 있는 연구원들이 다 모였다. 간담회의 목적이 연구과정에서의 어려움, 연구원 상호간 정보 교환, 편찬실의 연구 방법 및 지침 전달 등 이었지만, 대다수 연구원들은 연구과정의 어려움을 봇물처럼 쏟아내고 말았다. 어떤 연구원들은 연구를 3-4달 동안이나 했는데도 최종 반영을 받은 어휘가 고작 2-30개 밖에 안 된다며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울분을 토하기도 했다. 결국 모든 연구원들의 계약기간이 3개월 연기해야만 했다.
편찬실에서도 시행착오가 있었다. 일의 순서가 왔다 갔다 하는 경우도 있었고 연구지침이 바뀌는 경우도 있었다. 나를 괴롭히는 것은 이것뿐 아니었다. 나에게는 무척 낯선 프로그램인 ‘엑세스’라는 파일로 자료를 입력해야 하는데 자료를 입력하는 과정에서 손상되거나 날아가 버린 경우가 몇 번 있었다.
 글을 써 놓고 보니, 연구과정의 어렵고 힘든 일만 나열하고 말았다. 그러나 작년에 이 일을 하면서 얼마나 즐겁고 자부와 긍지를 가지고 임했는지 모른다. 지금도 우리 민족의 역사적인 사업에 기여했다는 사실과 《겨레말큰사전》이 출판되는 날, 사전 뒷장 모퉁이에 새겨질 이름을 생각하면 가슴이 뿌듯하다.
 우리 민족의 대 역사인 이 《겨레말큰사전》 편찬 사업은 앞으로 몇 년 동안 지속될 것이다. 지구상에서 가장 의미 있고 훌륭한 사전으로 탄생되기를 바라며 이 사전이 단순히 남북의 의사소통이라는 매개체로서의 역할을 넘어 진정으로 남과 북 우리 겨레가 하나 될 수 있는 겨레말 총서가 될 것으로 믿는다.
 
겨레말 나란히

 


남녘말과 북녘말

김태훈
(겨레말큰사전 자료관리부 연구부장)

 
김태훈

 남한-북한, 남조선-북조선, 이남-이북, 남측-북측,
남녘-북녘, 남쪽-북쪽

  남과 북을 가리키는 말은 여러 가지가 있다. 예로 든 말 가운데, ‘남한-북한’은 남녘에서만 쓰고, ‘남조선-북조선’은 북녘에서만 쓴다. 이들 말은 정치적인 이념이 포함되어 있어서 ‘남한-북한’을 북녘 사람에게 쓰거나, ‘남조선-북조선’을 남녘 사람이 듣기에 좀 껄끄러운 형편이다.
 나머지 말들은 한반도를 ‘한국’으로 보거나 ‘조선’으로 보는 것이 아니므로 비교적 중립적인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이 가운데 최근 널리 쓰이는 말은 ‘남측-북측’이다. 이 말은 금강산 관광에서 권장되고 있다.
 남북이 쓰는 말을 구별할 때에도 여러 가지 용어가 쓰이는데, ‘남한어-북한어’ 혹은 ‘남조선어-북조선어’는 ‘남한-북한’과 같은 이유로 좀 껄끄럽다고 하겠다. 그래서 중립적인 표현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 여러 용어 가운데 ‘남쪽 지역’의 의미가 잘 드러나기 때문에, ‘남녘’이 그래도 좀 나아 보인다. 또, ‘남녘말, 남녘어’ 중에서는 ‘녘’이 고유어이기 때문에 고유어인 ‘말’을 붙이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된다.
 필자는 2006년 3월부터 ‘겨레말큰사전 남북공동편찬위원회’에 참석하였다. 지금까지 모두 5차례의 회의에 참석했고, 북녘 사람과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그 경험에 의하면, 남북말의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그리 심각한 수준은 아니라고 본다. 대화를 하다보면 같은 말을 다른 뜻으로 쓰기도 하고, 처음 듣는 말이 나오기도 하지만, 정상적인 대화는 가능하기 때문이다. 처음 듣는 말은 대부분 문맥에서 해석이 되고, 그 뜻을 물어보아서 이해해야 하는 말은 그렇게 많지 않다. 이 정도의 차이는 남녘 내에서 다른 방언을 쓰는 사람의 대화에서 겪는 어려움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된다.
 필자는 2007년 1월부터 한겨레신문에 ‘북녘말’을 주제로 ‘우리말 칼럼’을 쓰고 있다. 매주 월요일에 칼럼이 실리는데, ‘북녘에서 쓰임이 확인되거나 북녘 사전에 있는 말 가운데 남녘 사전에서 확인되지 않는 말’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대상이 되는 북녘말은 주로 <조선말대사전>, <북한의 말과 글>, <남북 통일말사전>, <세계화 시대의 남북 언어>에서 찾는다.

 ※ 조재수, 1986, 북한의 말과 글, 한글학회.
 ※ 관정이종환교육재단 편, 2006, 남북 통일말사전, 두산동아.
 ※ 전수태, 2007, 세계화 시대의 남북 언어, 대한교육문화신문출판부.

 북녘말의 뜻을 파악하는 데에는 남북의 여러 사전을 두루 동원한다. 필자도 북녘말 화자가 아니기 때문에 북녘말을 이해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사전에 설명된 내용과 예문의 문맥을 보고 짐작할 따름이다. 어찌 보면 남녘 사람이 이해할 수 있는 수준에서 북녘말을 설명한다고 하는 것이 정확하겠다. 예문도 다양하지 않고, 문맥도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혹시 잘못 설명한 것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칼럼을 쓰면서 다시 한 번 느끼는 것은 앞에서도 얘기했던 것처럼 남북말의 차이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알려진 것처럼 심각한 ‘이질화’는 아니라는 점이다. 50년이 넘는 기간 동안 교류 없이 각자 우리말을 발전시켜 왔으므로 차이가 생기는 것은 당연하다. 이제 그 차이를 서로 인정하고 존중하고 받아들여서 우리 모두의 것으로 더욱 발전시키려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런 생각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① 남북말이 심각하게 다르지는 않다.
 ② 남북말이 좀 다르더라도 모두 우리말이기에 비교적 쉽게 이해할 수 있다.
 ③ 생소한 북녘말이라도 남녘 생활에 도움이 되는 말이 있다면 적극적으로 써 보자.
 ④ 외국말이나 생소한 한자어보다는 우리말로 다듬은 말이 직관적으로 잘 이해된다. 다듬은 말이 생소하더라도 한번쯤 써보면 어떨까?
 ⑤ 외국어에 점점 밀려나고 있는 고유어를 살려서 쓰자.

 한겨레신문에 실었던 칼럼을 몇 개 소개하면서 이 글을 마치려 한다. 다음은 우리에게 생소한 ‘깍지다리’와 ‘가닥덕대’를 소개한 것인데, 북녘에서 새로 만든 말로 보인다. ‘깍지다리’는 ‘한 다리를 다른 다리 위에 포개어 앉은 자세’를 말한다. ‘가닥덕대’는 ‘지하철 내부에 있는 선반’을 부르기에 적절한 것 같다. 이처럼 남녘 생활에 적용해도 좋을 북녘말을 사용해 보면 어떨까?
 http://www.hani.co.kr/arti/SERIES/61/185561.jspl (깍지다리)
 http://www.hani.co.kr/arti/SERIES/61/192716.jspl (가닥덕대)

 다음은 어려운 한자어나 외국어를 우리말로 바꾸면 이해가 빠르다는 취지로 쓴 글이다. ‘구순포진(口脣疱疹)’을 ‘입술물집, 입치리, 입뇌리, 물퉁게’로 쓰고, ‘헤르페스 바이러스(herpes virus)’를 ‘물집균’이나 ‘물집 바이러스’로 쓰면 얼마나 이해하기 쉬운가? 또, ‘M형 탈모, O형 탈모, U형 탈모’라는 말을 우리말로 바꾸려고 할 때, ‘M형 탈모’가 문제였다. 해당 부위를 가리킬 적절한 말이 없는 것이다. 그런데, 북녘말 ‘이마귀’를 받아들이면 모두 고유어로 바꿀 수 있게 된다. ‘이맛귀 탈모’, ‘정수리 탈모’, ‘윗머리 탈모’가 바로 그것이다.
 http://www.hani.co.kr/arti/SERIES/61/219516.jspl (입뇌리·물퉁게)
 http://www.hani.co.kr/arti/SERIES/61/182620.jspl (이마귀)

 우리가 남녘말과 북녘말을 구별하지 않고, 모두 우리 겨레말로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다면 우리말은 더욱 풍성해질 수 있다. 남과 북에서 각기 노력하여 발전시킨 우리말을 모두 모아서 우리의 언어생활을 풍부하게 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우리에게 필요한 일이 아닐까 한다.

 마지막으로 이 자리를 빌어서, 사전에 오르지 못한 말을 정리하여 세상에 알려주시는 모든 분께 감사의 뜻을 표한다. 초야에 묻혀 있는 말을 찾아서 그 뜻을 밝히고 정리하여 세상에 소개하는 일이 정말 쉽지 않음을 새삼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다. 필자가 주로 참고하는 책을 간단히 소개하면, <북한의 말과 글>에는 여러 북녘 사전과 남녘 사전을 비교하여 정리한 어휘가 있고, <남북 통일말사전>에는 김현식 교수께서 오랜 기간 정리하신 북녘 어휘가 있고, <세계화 시대의 남북 언어>에는 북녘 소설 등을 통해 정리한 어휘가 있어서 남북말의 차이를 파악하는 데에 많은 도움이 된다.

 
겨레 작품읽기


말과 사회, 말과 사람 (1) : ‘아바이’

 

이 선 미
(동국대 한국문학연구소 연구교수)

 
이선미 ‘말’은 사람들 사이의 의사소통 수단이다. 따라서 말에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삶의 방식이나 문화의 특성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이 단순한 사실은, 오랜 역사를 공유하고 있으면서도 50년이 넘게 일반인들의 교류가 통제된 상태로 다른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남북한의 ‘말’을 찬찬히 들여다보게 하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말을 통해서 북한사회의 문화적 특성을 구성해볼 수 있고, 말을 통해서 남북한이 서로를 존중하는 힘을 기를 수 있기를 기대한다. 말은 만남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광철은 앞에 앉아있는 성만아바이의 얼굴에 가로세로 얽힌 잔주름들을 그제야 똑똑히 알아보았다. 모자밑으로 삐여져나온 희끗희끗한 머리칼이 눈을 아프게 찔렀다. 별로 구부정해보이는 자세, 정말 이제는 완전한 아바이였다. 광철은 부지중 한숨을 쉬며 눈길을 떨구고말았다. (한웅빈, 창고앞에서, 조선문학, 1993.6)

 주물공인 3호집 아바이는 혼자 조용히 담배를 맛있게 피우고 있었다. 언제 봐야 우리 7층 ‘동네’적으로 제일 말수가 적은 아바이였다. 전쟁 참가자이며 전후복구건설과 천리마운동을 거쳐 사회주의 대건설에 이르기까지 간고하고 영광스러운 우리 혁명의 매 단계를 살아온 아바이는 그 사이에 다 자란 아들 딸들을 세간내고 늘그막에 마누라와 단둘이 조용하게 산다. (최성진, 이웃들, 조선문학, 1991.10)

 북한 사회에서 아바이는 흔히 쓰는 말이다. 조선말 대사전에는 “나이가 지긋한 남자를 친근하게 부르는 말”이라 풀이되어 있다. 각각 다른 소설가에 의해 쓰여진 두 소설의 아바이는 북한사전에 명기된 아바이의 의미를 구체적으로 상상할 수 있게 한다.
아바이란 세월의 연륜을 지니고 있는 장년, 혹은 노년에 해당하는 세대적 의미이다. “잔주름”, “희끗희끗한 머리칼”, “구부정해 보이는 자세” 이런 것들은 신체적인 아바이의 징표이며, 아바이의 세월을 아는 젊은 세대가 그 늙음을 아쉬워하게 하는 삶의 끝자락을 지칭하는 표현이다. 이것은 남한사회의 노인, 혹은 늙음을 지칭하는 표현과도 흡사하다.
 그러나 북한에서, 특히 북한소설에서 아바이는 이런 신체적 늙음이나 생의 말미에서 상상할 수 있는 회환으로 표상되지 않는다. 북한에서 아바이는 “조용히 담배를 피우며 말수가 적은” 사려깊은 모습이며, “전쟁 참가자이며 전후복구건설과 천리마운동을 거쳐 사회주의 대건설에 이르기까지 간고하고 영광스러운 우리 혁명의 매 단계를 살아온” 사회적 연륜을 지닌 자로 표상된다. 아바이는 오랜 세월 살아온 자이지만, 그 세월은 그냥 세월이 아니고 북한 사회주의 역사의 과정을 의미하기 때문에 이 세월의 무게가 고스란히 남아있도록 기대되는 인물이다. 아바이는 북한 사회주의 역사가 평범한 사람들의 삶에 어떤 식으로 남아있는지를 확인하는 상징적 형상인 것이다.
 사실, 북한문학은 모두 사회주의 역사를 기념하는 영웅적 형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문학의 계몽성과 도식성이 강한 탓에 다른 사회주의 국가의 문학에 비해서도 기념비적인 성격이 더 강하다. 특히 한국전쟁의 경험과 천리마 시기의 경험은 북한 사회주의의 정통성을 구축하는 데 가장 기본이 되는 역사적 경험이다. 개별적인 삶의 양상을 통해 사회구성원 대부분이 공감할 수 있는 역사적 정체성 형성을 중요한 문학적 과제로 삼는 북한문학에서 전쟁의 경험과 천리마의 경험을 지닌 구체적 개인으로서 아바이의 형상은 더없이 중요한 개인의 모습인 것이다. 문학이 평범한 개인들을 사회 구성원으로 통합하는 이데올로기적 기능을 수행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북한사회에서 아바이의 형상은 역사적 의미를 환기할 수 있는 중요한 미학적 장치로 역할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아바이의 형상은 천리마 시기라는 화려했던 과거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경제상황이 열악해지면서 자원이 부족해지자 생산실적보다는 자재를 재활용하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이 되어버린 북한사회에서 아바이들은 또 다른 방식으로 사회적 모범으로 역할한다. 늙어서 더 현명하고 사회적으로 귀중한 존재로 이상화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늙는다는 것은 젊은 날 화려한 경력을 지녔다 하더라도 그와 무관하게 삶의 끝에 서 있는 자로서의 절망과 회환을 겪어야 하는 과정을 동반한다. 화려한 경력을 지니고 은퇴한 사람들이 큰 건물의 수위가 되었다는 사실이 기사거리가 되는 것은 화려한 젊은 날을 기억하면서 평범하게 늙어가는 일이 그만큼 어렵기 때문일 것이다. 은퇴 나이는 앞당겨지고, 평균 수명은 점점 늘어나면서 은퇴한 후 건물을 지키고 관리하는 일을 떠맡는 노인들의 모습은 이제 남한에서도 그다지 희귀한 사건도 아니지만, 여전히 평범한 일은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젊은 날의 기억에 의한 정체성을 쉽사리 지워버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북한의 아바이들 역시 늙어가는 과정의 이런 역설적 상황에서 예외는 아니다. 그들도 사회적으로 화려했던 기억을 과거로 간직하고서 허드렛일로 전락해야 하는 상황에서 쓸쓸해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러나 북한에서 아바이들은 천리마 시기의 노력일꾼들인 까닭에 더 귀한 존재가 되기도 한다. 천리마 시기의 역사적 정통성이 고난의 행군 시기에 더욱더 이상적인 과거로 회상되듯이, 천리마 시기에 젊은이였던 아바이들은 사회적인 어른으로서 모범적 형상으로 이상화된다는 점에서 그 사회적 의미는 사뭇 다르다.

 “나에게는 한 친구가 있다. 전쟁 때는 나의 분대장이었고 제대해서는 광산에서 수리공으로 일했다. 지금도 일하고 있구……. 이젠 거의 40년이 되어오는구나. 그런데 그 사람에겐 훈장 메달이라는 게 모두 해야 공로메달 네 개가 있을 뿐이다. 그는 아직 물배관이나 공기배관이 터져 그것을 막느라고 소리내며 뛰어다닌 적도 없었고 소문날 만한 일을 한 것도 없었다. 표창하려고 해도 눈에 띄게 한 일이 없었지. 미리미리 잘 관리하고 보수하니 고장이란 있을 수 없을 게 아니냐.
 영순아, 난 그런 사람이 진짜 수리공이라고 생각한다. 일이 생기면 물론 몸으로만이 아니라 목숨이라도 막아야지. 그건 훌륭한 것이다. 그러나 일이 생기지 않게 하는 것은 더 훌륭한 것이다. 어떤 일이 생겨 희생적으로 막았다면 그 수리공에게는 영광일지 몰라도 나라에는 어떻든 손해가 아니겠냐? 수리공의 노력은 자기 이름에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실적에서 나타는 것이다……. 영순아 난 그렇게 일하고 싶구나. 그렇게 일하려고 애썼지. 그런데 그렇게 안 되는구나. 내일에는 그렇게 하겠다 그렇게 하겠다 하는 사이에 이렇게 늙었구나.”(한웅빈, 딸의 고민, 신념의 대오, 문예출판사, 1992)

 젊은 날, 전쟁터에서 또는 천리마 시기의 일터에서 청춘을 다 바쳤던 아바이들은 ‘고난의 행군’ 시기에도 여전히 살아가고 있다. 이제 늙은이가 되었지만, 젊은 날 공동체(나라)를 생각하며 성실히 살아내던 삶의 태도는 하나의 철학이 되어, 어려운 경제상황을 헤쳐나갈 사회적 모범으로 역할하기에 이른다. “설비관리를 잘 할수록 고장이 없어야 하”고, “고장이나 돌발적인 일이 없도록 하는 게 수리공의 할 일”이라고 생각하는 아바이는, “수리공의 노력은 자기 이름에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실적에서 나타나는 것”이라는 인식에 이르면, 단순 노동자가 아니라 삶의 철학적 태도를 지닌 ‘도인’의 풍모까지도 보여준다. 수리공은 아바이의 직업의식 속에서 인간의 도덕적 삶의 방식으로 승화되고, 아바이의 직업의식은 ‘설득력’을 넘어 ‘감동’으로 다가온다. 아바이는 늙어서 소일삼아 일하는 늙은이가 아니라, 숭고한 정신을 일깨우는 시대의 ‘귀감’이 되어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아바이들은 “수리작업반이 실적이 좋다고 1등을 주는 건 환자 많은 진료소를 칭찬하는 것과 비슷”하다며 비판하고, 그럼 수리반은 무엇으로 평가받을 것인가, 그저 일만하는 사람이냐는 힐난에는 “일만 하는 게 뭐 나쁜가?”라며 심드렁하게 대답한다. 파철(버려진 고철더미:북한말) 수집으로 실적을 평가할 때는, 모아놓은 파철더미에서 쓸모있는 것들이 나와서 모으느라 고생만 하고 실적은 별로 쌓이지 않아서 평가를 못 받아도, 쓸모있는 것을 많이 남겼으니 잘된 일이라고 흡족해한다. 누가 자기 집 수리하려고 시멘트를 갖다 쓰는 게 나쁜 것만큼 비에 젖어 못쓰게 되거나 반복시공으로 초과낭비되는 것도 결국은 시멘트를 잘 못 쓴 것이기 때문에 똑같이 나쁜 것이라며 시멘트 관리를 철저히 하라고 면박을 준다. 아바이들은 고난의 행군이라는 자원부족과 식량부족의 시대에 생산실적에 연연하는 젊은이들을 나무라며 이 작업장 저 작업장을 돌아다니는 잔소리꾼이지만, 성과에 집착하지 않고 묵묵히 자기 자리를 지키며 공동체(나라)를 살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끊임없이 강조하는 사회적 어른이다.
 이 아바이들은 북한의 여느 작업장에서나 흔히 마주칠 수 있는 평범한 ‘아바이’이다. 그러나 자원 부족의 시대에 잔소리를 늘어놓으며 절약과 재활용을 외치는 아바이는 고난의 행군을 이끌어야 하는 북한의 현실에서 가장 필요한 사람이다. 현실에서는 까탈스럽고 째째한 고약한 성미의 노인일 수 있지만, 소설에서는 사려깊고 선한 사회적 어른으로 이상화됨으로써 아바이는 그 젊은 날인 천리마의 역사도, 고난의 행군에 필요한 사회적 윤리도 담아내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지니게 된다. 천리마 시기의 노력영웅으로 생산력 향상을 주도했던 아바이는 늙어서 하찮은 존재로 전락하는 것이 아니라, 경제적 난국을 해결할 모범 국민이 된 셈이다. 북한에서 아바이가 사회적으로 꼭 필요한 사람으로 인식되는 것은 이런 북한사회의 현실적 조건과 긴밀히 연관되어 있다.

 
말에 얽힌 사연

 

뽀 리

 

하 재 영 (소설가)

 

 처음 물건을 훔쳤을 때 나는 열여덟 살이었다. 햇빛에서 달짜근한 맛이 날 것 같은 화창한 토요일 오후, 친구들과 함께 중앙로에 갔다. 그날 중앙로에는 산타페 풍으로 꾸며진 예쁜 선물가게가 문을 열었다. 실내는 인근 학교 교복을 입은 학생들로 북적였고, 자연광보다 눈부신 조명 아래에서 물건들은 탐나도록 반짝였다. 함께 간 두 친구가 다이어리를 고르는 동안 나는 테디베어를 구경했다. 발레리나 의상을 입은 베이지색 곰이 유난히 눈에 띄었지만 교복 주머니에 들어 있는 천 원짜리 몇 장으로는 엄두도 낼 수 없을 만큼 비쌌다. 인형매장을 나와 문구와 잡화매장을 기웃거리는데 삐삐가 진동했다. 8282. 발신번호는 함께 온 친구의 것이었다. 가게 밖으로 나가자 아이들은 뜻 모를 미소를 지으며 얼른 오라는 손짓을 했다.
 우리는 근처의 커피숍으로 갔다. 번화가에는 교복을 입고 출입해도 제지받지 않는 커피숍이 많았다. 어둑한 구석 테이블에 자리를 잡은 친구들은 담배를 피우며 키득거렸다. 의미심장한 눈빛을 주고받을 뿐 아무 말도 해주지 않던 그들은 한참 뒤에야 가방 속에서 뭔가를 꺼냈다. 다이어리, 동전지갑, 머리핀, 장식용 구슬……. 작고 앙증맞은 물건들이 테이블 위에 쌓여갔다.
 “이걸 다 산 거야?”
 친구들은 또 깔깔 웃었다.
 “우리가 돈이 어딨냐? 뽀리 깐 거지.”
 생소한 말이지만 훔쳤다는 말의 다른 표현이라는 것쯤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다음 주 토요일, 우리는 또 같은 선물가게에 갔다. 가게에 들어서자 친구들은 잰걸음으로 사라졌다. 인형매장의 발레리나 곰은 여전히 같은 자리에 있었다. 얼마나 오랫동안 테디베어를 바라봤을까. 일 분일 수도 십 분일 수도 있으리라. 한쪽으로 둘러멘 책가방을 가슴 앞으로 당겨 끌어안았다. 그 행동만으로도 심장박동이 빨라졌다. 가방 지퍼를 열면서 주변을 살펴보았다. 인형매장에는 나뿐이었지만 멀지 않은 곳에 똑같은 유니폼을 맞춰 입은 점원들이 서 있었다. 들키면 어떻게 될까. 엄청난 망신을 당하겠지. 어쩌면 집이나 학교에 연락할지도 모른다.
 지금이 기회라고 수십 번쯤 되뇌었던 것 같다. 눈치를 살피다 심상하게 둘러보던 점원과 눈이 마주친 것 같기도 하다. 들키지 않겠다는 확신이 들기도 전에, 아니 훔치겠다는 결심이 확고해지기도 전에, 내 손은 곰 인형을 교과서 사이에 쑤셔놓고 지퍼를 올리고 있었다. 순식간의 일이었다. 태연한 표정을 지으며 다시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제 안심이다. 심호흡을 하며 무심코 위를 올려보는데 감시카메라가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어떻게 그곳을 빠져나왔는지 모르겠다. 막 달리기를 끝낸 사람처럼 거친 숨을 몰아쉬며, 어느새 나는 오후의 햇볕 아래 서 있었다. 누군가 내 뒷덜미를 낚아챌 것 같은 불안, 내 안에 응어리진 뭔가를 파괴했다는 쾌감, 공존이 불가능할 것 같은 감정들이 뒤섞이자 머리가 희끈거렸다. 긴장으로 굳어 있던 팔다리에서 동통이 느껴지는 것 같기도 했다. 누구든 눈이 마주치면 “도둑년!”이라고 고함을 지르며 뺨을 후려칠 것 같아 하릴없이 땅만 보며 걸었다. 지난번에 갔던 커피숍에 들어가 친구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8282’ 뒤에는 커피숍 번호를 찍었다.
 친구들이 올 때까지 나는 줄담배를 피워댔다. 잠시 후 나타난 아이들은 재범자 특유의 여유로운 몸짓으로 훔친 물건들을 꺼내놓았다. 초범자인 나는 그들보다 덜 여유로운, 아니 사실대로 말하면 무척 떨리는 손으로, 가방 속에 구겨져 있던 테디베어를 꺼냈다.
 “야아, 너도 하나 뽀린 거야?”
 한 친구가 대견하다는 듯 내 어깨를 두드렸다. 별 일 아니었다는 듯 어깨를 으쓱해보였다. 물건을 훔칠 때의 긴장과 흥분이 사라지자 가지고 싶은 것을 가졌다는 뿌듯함과 뭔가를 해냈다는 성취감만 남았다. 다른 친구는 테디베어를 요리조리 살펴보더니 황당하다는 얼굴로 내 눈앞에 인형을 디밀었다. 인형 엉덩이에는 도난방지용 텍이 붙어 있었다. 왜 경보음이 울리지 않았는지, 어떻게 무사히 빠져나왔는지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들키기 않았으므로 아무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서로의 물건을 보며 “와, 이거 예쁘다”, “나도 담에 이거 해야지” 같은 말만 했다.
 한동안 나는 그 선물가게에 가지 못했다. 감시카메라에 찍힌 나를 알아볼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곳에 가지 못한 동안에도 몇 번인가 더 도둑질을 했다. 학교 앞 문방구에서 참고서를 슬쩍하기도 했고, 동네 슈퍼마켓에서 과자 따위를 훔치기도 했다. 가세가 기울어 가난한 시절이긴 했다. 하지만 죄책감을 이길 만큼 참고서나 과자에 대한 욕망이 절실한 것도 아니었고, 무엇보다 쌀이나 빵이 아니었으니 이제와 장발장인 척할 수도 없다.
 그렇다고 같이 다닌 아이들이 도둑질을 부추긴 적도 없으니 나쁜 친구 운운하며 순진한 척하는 것도 우스운 일이다. 물건을 훔친 빈도와 죄책감은 반비례했다. 횟수가 잦아질수록 나는 대담해졌다. 친구보다 더 많이 뽀리 까고 싶다는 마음만으로 갖고 싶지도 않은 물건을 경쟁하듯 가방 속에 처넣기도 했다.
 생일날, 함께 어울려 다니던 두 친구에게 선물바구니를 받았다. 크고 아름다운 흰 바구니 안에는 큐빅이 촘촘히 박힌 머리핀도 있고 정교하게 만들어진 수제인형도 있었다. 아크릴 꽃으로 장식된 액자, 내가 좋아하는 가수의 시디……. 그 외에도 내가 가지고 싶어 했던 갖가지 물건들이 가득했다. 그날 저녁, 왜 그 바구니를 들고 혼자 선물가게에 갔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떠오르는 건 아무것도 훔치지 않고 그곳을 나가는데 온 가게가 들썩이도록 경보음이 울렸던 것, 뛰어나온 점원이 내 머리채를 휘어잡으며 어린년이 도둑질이나 한다고 욕설을 퍼부은 것뿐이다.  십대는 위태롭고 우울했다. 열일곱 살 때부터 흐트러지기 시작한 나는 열여덟 살 때 골초가 되었다. 열아홉 살 때는 세 번이나 가출했다. 도벽을 비롯한 내 비행의 이유는 간단했다. 그것은 한없이 삐뚤어지고 싶은 욕망을 충족하는 수단이었다. 사업에 실패한 뒤 술로 허송세월하던 아버지가 음주운전을 하다 인사(人死)사고를 냈을 때, 오랫동안 살던 아파트를 나와 재래시장 어물전 상가에 있는 컨테이너 집으로 이사를 했을 때, 키가 자라지 않는 나를 무용학원 선생님이 박대했을 때,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해 음식에 탐닉했을 때, 어느 날 무용실 거울 속에 일자로 늘어선 그 무리 가운데 가장 키가 작고 뚱뚱한 여자아이가 나라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비운이 켜켜이 쌓여갈 때마다 걷잡을 수 없이 어그러지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곰팡내 뭉글뭉글 피어나는 짜증스런 사춘기를 견디는 방도는 그 시절을 낭비하는 것뿐이었다. 생각해 보면 뽀리 까고 싶었던 건 한낱 인형이나 참고서가 아니었다. 진부한 불운을 비웃을 냉소, 그것이 바로 그때의 내가 진정으로 욕망하는 대상이 아니었을까. 결핍을 해소하는 건 물건이 아니라 필요하지도 않은 물건을 뽀리는 위악일지 모른다.

 
하재영





 하 재 영

 1979년생. 2006년 계간 『아시아』로 등단.

 
내가 만난 북녘말

 

“일없습네다”


김 근(젊은시인포럼 회장)


 ‘없’자에 강세를 두고 ‘다’자의 말꼬리를 살짝 들어올리는, 금강산 호텔 라운지 ‘접대원 동무’의 이 말은 경쾌했다. 남측 사람들에 대한 수줍음 때문이었는지 말하는 그녀의 볼이 붉었다. ‘남북의 창’에서나 들었을 법한 말을 막상 직접 듣자니 낯설면서도 정감이 갔다. 덩달아 내 얼굴도 붉어졌다. 밤시간에 선배 작가들과 주점에 앉자마자, 나는 가장 먼저 그녀에게 ‘여기서 담배를 피워도 되느냐’고 물었던 터였다. 사소한 질문과 대답이었지만, 아침부터 쌓여온 긴장이 그 말 한 마디에 스르르 풀리는 것 같았다. 그 여성 접대원은 우리가 제법 거나하게 취할 때까지 몇 번이나 경쾌하게 ‘일없습네다’ 하고 말했다. 그때마다 가슴이 시원하게 뚫리는 느낌이었다. 우리는 너무 조심에 조심을 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2006년 2월 30일 우리는 ‘6.15민족문학인협회’ 결성식을 위해 금강산에 있었다. 분단 이후60년 만에 남과 북, 그리고 해외의 작가들이 만나 최초의 민간 단일 조직을 만들어내는 일은 가슴 벅찬 일이었다. 그러나 사정은 만만치 않았다. 북한의 핵실험 이후 남북관계는 그야말로 냉각되어 있었다. 그 얼어붙은 관계의 한가운데 남북의 작가들이 서 있는 셈이었다. 남과 북의 만만찮은 시선이 집중되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불필요한 구설수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 행사 내내 우리는 무척 조심스럽게 행동할 수밖에 없었다.
 처음 북녘 땅을 밟는 나로서는 출발부터 여간 긴장되는 게 아니었다. 북측 군사분계선을 통과할 때 억지웃음을 웃었지만, 북측 세관원이 행사에 쓰일 선물에 대해 지적을 했을 때는 긴장은 최고조에 이르렀다. 몇 년 전에 인도와 네팔의 육로 국경을 넘은 적이 있었는데, 그때 국경과 국경 사이를 걸어가면서 느꼈던 평화로움이 문득 떠올랐다. 울창한 나무 사이를 걸어가 나는 맞은편 국경에 아무렇지도 않게 닿았다. 거기에서 국경은, 다만 편의상 구분처럼 느껴졌다. 분단 60년은 남과 북의 군사분계선 사이뿐 아니라 우리들 마음속에 더 강고한 경계선을 지어 놓았는지 모른다.
 ‘일없다’는 북한말로 ‘괜찮다’는 뜻이다. 남쪽에서는 ‘소용없다’ ‘필요 없다’ ‘걱정할 필요 없다’, 부사로 씌었을 때는 ‘실속 없이’ 따위의 뜻으로 쓰인다. 이를 테면 “아무리 애써봐야 너한테는 일없다” 같은 말이나 “밥 한 끼면 일없을 것인데, 괜한 걱정이다”, 또 “너 자꾸 일없이 싸돌아다니기만 할래?” 같은 말로 쓴다. 대체로 부정적인 어휘로 상용된다. ‘일없다’만 따로 떼어 쓸 경우에는 강한 부정의 의미를 지닌다. 매몰차게 “일없다” 하고 뒤돌아서버리면, 그 뜻은 대개 “너 같은 놈은 볼 일 없다”나 “그 따위 일에는 관심 없으니 꿈도 꾸지 마라”라는 강한 부정의 뜻을 담고 있게 마련이다.
 그에 비해 북한말 ‘일없다’는 꽤 긍정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처음에 그 말은 북한 특유의 억양 때문에 왠지 뾰로통한 말로 들리기 일쑤지만, 뜻을 알고 들으면 그 느낌은 사뭇 다르다. 그 말은 매우 다정한 말로 들린다. 일없다, 일없다, 괜찮다, 괜찮다…… 하고 발음하다 보면 주눅 들어 잔뜩 움츠린 어깨를 다독거리는 따뜻한 손길이 느껴지기도 한다. 그날 밤 금강산 호텔 라운지에서 들은 ‘일없습네다’는 비록 사소한 물음에 대한 사소한 답이었지만, 내 마음 속에 공고히 질러진 경계에 대해 괜찮다, 괜찮다고 쓰다듬는 말이었는지도 모른다.
통일도 이와 같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마음속에 쌓인 수많은 경계에 대해 해묵은 상처에 대해 그저 괜찮다, 괜찮다, 일없다, 일없다고 다독거리며 쓰다듬는 일, 거기서부터 어쩌면 시작해야 하는지 모른다.
 “일없습네다.”
 불현듯 그 여성 접대원의 경쾌한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내 얼굴이 붉어진다. 따뜻해진다.

 
김근





 김 근

 1973년생. 시인. 시집으로 『뱀소년의 외출』.

 
겨레말 소식

■ 개소식

· 일시 : 2007년 6월 8일(수) 오후 5시
· 장소 : 겨레말큰사전사업회 회의실

 사업회에서는 6월 8일(금) 개소식을 가졌다. 이재정 통일부장관 등 1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국회에서 '겨레말큰사전남북공동편찬사업회 특별법'이 통과된 것을 기념했다.
 고은 이사장은 인사말에서 "겨레말에는 남과 북이 공유해온 민족의 얼이 담겨 있다"면서 "남북의 언어적 차이를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되는 사전으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이재정 장관도 축사에서 "반세기 만에 남북간 통일열차가 연결된 것처럼 남과 북의 언어도 겨레말큰사전을 통해 연결되기를 기원한다"고 했다.
 개소식은 이재정 통일부장관, 고은 이사장, 박용길 장로, 백낙청 6·15 공동선언실천남측위원회 상임대표, 이해동 목사 등이 떡을 자르고 기념촬영을 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 한글과컴퓨터 ‘한글’ 소프트웨어 지원-소프트웨어 증정식

· 일시 : 2007년 6월 12일(수) 오후 4시
· 장소 : 겨레말큰사전사업회 회의실

 한글과컴퓨터는 본 사업회에 편찬 연구 및 업무 목적으로 사용할 '아래아한글'과 '한글과컴퓨터 오피스2007' 등을 지원하였다. 한컴은 이날 겨레말큰사전 편찬이 완료되는 오는 2013년까지 지속적으로 최신 버전 업그레이드 및 기술지원을 제공할 것을 약속했다.
 고은 이사장은 이날 "그 동안 사용해온 외산 대신 국산 소프트웨어로 편찬, 사무 업무를 진행하게 됐다"며 "북측에서는 이미 자체 개발한 창덕 등의 워드프로세서를 사용하고 있었는데, 이 자리를 통해 비로소 우리말 편찬에 남북 모두가 자국어 소프트웨어를 사용하게 되어 뿌듯하다"고 밝혔다.
 한컴의 백종진 사장은 "남북이 함께 펴내는 첫 우리말 사전인 겨레말큰사전 편찬에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문서작성 소프트웨어인 '아래아한글'이 일조하게 되어 매우 기쁘다"며 "북측 편찬위원들에게도 남한의 문서작성기를 소개하고 싶다"고 말했다.



 

제8차 임시이사회

· 일시 : 2007년 7월 11일(수) 오후 5시
· 장소 : 겨레말큰사전사업회 회의실

 

 고은, 권재일 등 7명의 이사가 참석한 제8차 임시이사회에서는 계약 직원 정규직화 추진 심의의 건을 시작으로 위임전결규정 제정 심의의 건, 업무 집행 위임 범위 심의의 건 및 임원 사표 처리에 관한 심의의 건 등을 심의하였다.
 

초청 토론회


*<연세 현대한국어사전>의 편찬과정과 성과


· 일 시 : 2007년 7월 18일(수) 오후 4시
· 장 소 : 겨레말큰사전사업회 회의실
· 초청강사: 안의정(연세대 언어정보연구원 사전편찬팀장)

 사업회에서는 안의정(연세대 언어정보연구원) 사전편찬팀장을 불러 <연세 현대한국어사전>의 편찬과정과 성과에 대해 이야기하는 자리를 마련하였다. 토론회에서는 <연세 현대한국어사전> 편찬실의 조직 운영 방식과 올림말 및 속구조, <연세 현대한국어사전>과 다른 사전의 차이점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전자사전 편찬에 대하여

· 일 시 : 2007년 7월 19일(목) 오후 5시
· 장 소 : 겨레말큰사전사업회 회의실
· 발표자 : 정 철(다음(daum) 웹사전 팀장)

 또한 전자사전 편찬을 고려하여 다음 웹사전 정철 팀장을 불러 <겨레말큰사전> 올림말의 (속구조)미시구조와 전자사전 데이터베이스 구현의 실제, 온라인 서비스를 위한 전자사전의 조건 등을 알아보고 질의 응답하는 시간을 가졌다.

 
우리말 소식


■
2007년 한글 발전 유공자 포상 계획 공고

 문화관광부와 국립국어원은 561돌 한글날(2007. 10. 9)을 맞아 우리 민족의 위대한 유산인 한글의 진흥 및 발전에 공적이 큰 인사를 포상 시상하고자 적합한 후보자 추천을 받는다.
 자세한 내용은 문화관광부 누리집(www.mct.go.kr), 국립국어원 누리집(www.korean.go.kr)에서 볼 수 있다.

 
통일 소식


■ 어머니 통일 백일장 및 통일문화기행(사)

 통일맞이는 2007 통일교육협의회 공익활동 지원사업의 한 프로그램으로 어머니들과 함께 통일문제에 대한 고민과 사회 참여를 이어가기 위하여 어머니 통일 백일장 및 통일문화기행을 마련하였다. 어머니 통일백일장은 2007년 7월 23일(월) ~ 9월 9일(금)까지이며, 통일문화기행은 9월 8일날 개최된다. 자세한 내용은 통일맞이 누리집 www.moon.or.kr, 전화 02-392-3615 또는 전자우편 tongilmoon@hanmail.net으로 문의하면 된다.

 


겨레말누리판 2007년 8월
 
우리말살이
겨레말 현장을 찾아서
겨레말 나란히
겨레 작품 읽기
말에 얽힌 사연
내가 만난 북녘말
겨레말 소식
우리말 소식/통일 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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