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레말 톺아보기
-
- 글쓴이
- 한성우
-
- 작성일
- 2026.10.01
-
- 조회수
- 36
‘사과배’를 다시 바라보다

글 한성우 인하대학교 한국어문학과 교수
옥을 닮은 옥수수
“그 먼 길을 어이 가겠슴둥. 옥시 철에 꼭 다시 오오.”
1997년 여름 중국 길림성 용정시 삼합진 북흥마을의 아바이와 아매는 이렇게 마지막 인사말을 남겼다. 두만강을 사이에 두고 북녘땅 회령시와 마주한 이 마을, 갈 수만 있다면 두만강을 건너 열차를 타고 한나절 만에 서울에 다다를 수 있다. 그러나 그때는 연길까지 버스로, 다시 연길에서 심양까지 국내선, 심양에서 서울까지 국제선 비행기로 가야 하니 이틀이 걸리는 여정이다. 과연 이 먼 길을 다시 가서 옥수수를 먹을 수 있을까? 30년이 되도록 그 마을에 가지 못했다.
그런데 왜 하필 옥시를 먹으러 오라는 걸까? 요즘에는 옥수수가 주전부리이거나 가끔 별미로 먹을 음식이지만 먹을 것이 귀하던 과거에는 달랐다. 안데스 산지의 주민들에게 옥수수는 이 지역의 토양과 기후 조건에 가장 잘 맞게 하늘에서 내려준 곡식이었다. 그러나 연변 지역에 자리 잡은 우리 교포들에겐 달랐다. 쌀의 민족에게는 쌀 이외의 곡식은 모두 잡곡이니 옥수수는 쌀이 없어 대신 먹는 작물에 불과하다. 그래도 가을의 추수까지 아직 먼 시기에 옥수수는 배를 불릴 수 있는 고마운 작물이다. 그것이라도 후히 대접하겠다는 약속이니 그것이 인사말로 굳어진 것이다.
함경도에서는 ‘옥시’라고 하는 것을 한반도의 중부 지역에서는 ‘옥수수’라고 하니 큰 차이가 느껴지지 않는다. 우리가 받아들인 이름은 중국에서의 이름 ‘옥촉서(玉蜀黍)’와 ‘옥미(玉米)’가 경쟁한 결과이다. 탱글탱글 반짝이는 알곡이 마치 옥처럼 보인대서 ‘옥(玉)’을 붙이는 것은 두 말 모두 같다. 그러나 쌀의 민족이 쌀 아닌 것을 쌀로 부를 수 없으니 우리의 선택은 ‘촉서’와 대응하는 ‘수수’일 수밖에 없다. 수수는 ‘수끼’와 ‘수시’로도 나타나니 옥시는 물론 이와 유사한 방언형이 모두 이해된다.
그런데 이것이 한반도의 남부에서는 ‘강냉이’ 계열로 나타난다. 중부 지역 사람들에게 강냉이는 옥수수에 고온과 고압을 가해 뻥튀기로 튀겨 낸 것을 가리키기도 하니 펄쩍 뛸 만하다. 그러나 이 작물이 중국의 남방에서 들어오다 보니 남쪽에서는 강남에서 들어왔다는 의미에서 유래한 강냉이라 부른다고 본다. 한반도의 남쪽은 기후나 토양 모두 좋은 편이니 적어도 이 지역에서는 강냉이 철에 다시 오라는 인사말은 없다.
자두와 돼지
“자두를 왜지라고 하는데 왜지?”
1990년대 끝자락의 여름은 굳이 옥시 철을 기다리지 않아도 될 만큼 먹을 것이 풍부했는데 새콤달콤한 자두도 그중의 하나였다. 방언 조사를 멈추고 잠시 쉬는 틈에 아매가 바가지 가득 들고 온 것은 틀림없는 자두인데 이미 제보자로서 잘 훈련된 아매는 그것의 이름이 ‘왜지’라고 알려 주신다. 왜지? 이전에 조사한 적도 없고 자료집에서 본 적도 없어 꽤 낯설다.
자두는 억울하다. 색깔 때문에 자줏빛 복숭아란 의미의 ‘자도(紫桃)’였다가 그마저도 발음이 바뀌어 자두가 되었다. 그래도 우리말에선 복숭아의 아류 취급을 하지 않고 따로 이름을 붙여 주었는데 ‘오얏’이 그것이다. 우리나라와 중국에서 매우 흔한 성씨인 ‘李’가 천자문에는 ‘오얏 리’라고 되어 있는데 바로 그 오얏이다. 성씨로는 흔하지만 이 한자가 막상 한자 본래의 뜻으로 쓰는 것은 잘 안 보이고 다만 오해를 받을 짓을 하지 말라는 의미를 담은 ‘이하부정관(李下不整冠)’에서 보인다. 이 ‘오얏’과 ‘왜지’의 거리는 꽤 멀어 보인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돼지가 그 사이를 메워준다. 돼지는 본래 ‘돝’이었다. 방언을 뒤져보면 ‘도투’가 나오고 씨돼지를 ‘씨돝’이라고 하기도 하니 여전히 그 흔적이 남아 있다. ‘돝’에서 끝소리가 탈락하고 새끼를 뜻하는 ‘아지’가 붙으면 ‘도야지’가 된다. ‘오얏’의 15세기 어형은 ‘오 ’이니 ‘도야지’가 ‘돼지’가 되는 과정에서 밟은 길을 ‘오 ’도 비슷하게 밟아 ‘왜지’가 된 것이다.
자두의 방언형은 ‘고약, 귀타리, 꽤기, 놀, 농구, 시우리, 애기, 추리, 풍개, 홍글래, 머지’ 등 매우 다양하다. 산과 들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과일이니 지역마다 각기 다른 이름으로 불렀음을 알 수 있다. 그래도 이것을 대표하는 것은 역시 ‘오얏’인데 이마저도 1988년 이후에는 옛말의 흔적일 뿐 현대 국어의 어휘로는 쓰이지 않으므로 고어로 처리한다고 못 박고 있다. 각지의 수많은 방언형을 비표준어로 보는 것도 모자라 '오얏'을 고어로만 보겠다는 선언인 셈이다.
기티디 말라요
“기티디 말라요. 썅저래 맛 돟아요. 다 드시라요.”
2003년 겨울 압록강변 단둥, 조사를 잠시 쉴 때마다 먹을 것으로 끊임없이 괴롭히는 것은 의주 출신 클마니도 다를 바가 없었다. 한겨울인데 노란색의 길쭉하게 꼬부라진 과일을 내오신다. 그런데 클마니 입에서 끊임없이 나오는 ‘썅저’와 ‘기티다’가 계속 귀를 쫑긋하게 한다. 눈앞에 실물이 있으니 썅저가 가리키는 것이 무엇인지는 알겠는데 도무지 그 말의 연원을 알 수가 없다. 맥락을 통해 ‘기티다’의 쓰임은 알겠는데 이 말 역시 낯설기만 하다.
“썅저 헌 호츠.” 썅저의 비밀은 클마니의 이 짧은 중국어 한마디로 풀렸다. 중국어로 바나나를 가리키는 샹자오(香蕉 xiangjiao)였던 것이다. 클마니가 의주 땅을 떠날 무렵에는 바나나를 몰랐다. 중국에 자리를 잡은 클마니는 노년에 중국의 남방에서 온 바나나를 접했다. 그것을 가리키는 우리말이 없으니 클마니는 자연스럽게 중국어 단어를 빌려 쓴 것이다. ‘땐쓰, 뗀노, 삥샹’도 마찬가지다. 텔레비전과 컴퓨터, 그리고 냉장고도 과거에는 없었으니 ‘电视(dianshi), 电脑(diannao), 冰箱(bingxiang)’을 중국어 그대로 쓰는 것이다.
우리말에 없으니 중국어가 영향을 끼치는 것은 당연한데 이 ‘끼치다’가 ‘기티다’ 풀이의 열쇠가 된다. 구개음화를 감안하면 ‘기티다’는 ‘기치다’이고 어두경음화까지 일어나면 ‘끼치다’이다. 표준어에서는 이렇게 바뀌어 ‘영향을 끼치다’나 ‘소름이 끼치다’ 정도에만 남아 있는데 의주 말에는 여전히 ‘남기다’의 뜻으로 쓰이고 있던 것이다. 생각해 보니 문을 잠그지 말고 조금 열어 두라는 의미의 ‘문을 지쳐 두다’에도 그 흔적이 남아 있기는 하다. ‘ㄱ’과 ‘ㅌ’ 모두 구개음화를 겪긴 했지만 여전히 남아 있는 옛말의 생명력에 소름이 끼쳤으니 썅저는 기티디 말고 다 먹어야 했다.
사과배, 그리고 '뚱리'
“도사님, 핑궈리 드셔 봅소. 용정의 특산물입니다.”
2024년, 옥시 철은 놓쳤지만 한겨울에 연변 일대를 돌아볼 기회를 얻었다. 연길 서시장을 방문하니 옛 제자가 낯선 과일 하나를 권한다. 핑궈리? 틀림없이 ‘평과리(苹果梨)’일 텐데 그렇다면 ‘사과배’다. 겉모습 또한 그러해서 사과와 배의 모양과 색이 같이 보이고 껍질의 질감도 사과와 배를 섞어 놓은 듯하다. 한 입 베어 물어 보니 사과의 향이 약간 도는데 배를 씹는 느낌이다. 말 그대로 사과와 배가 묘하게 섞인 듯한 과일이다.
조율이시(棗栗梨柿). 과거 우리의 제사상에 오르는 과일은 이러한데 빠진 것이 하나 있다. 요즘에는 흔히 올리는 핑궈(苹果), 즉 사과가 없는 것이다. 당연히 있어야 할 1음절의 한자 대신 ‘苹果’라고 하는 것을 보면 과거에는 한국과 중국 모두 사과가 없었던 것일까? 지금의 사과와 비슷한 능금이 있었고 중국에도 1음절 한자 ‘柰(능금 내)’가 있었지만 조상들이 기티디 않았으니 사과와 ‘苹果’가 더 널리 쓰이고 있는 것이다.
이런 사과가 용정의 조선족 농부에 의해서 묘한 새 생명을 얻었다. 함경남도 북청의 참배나무를 연변의 돌배나무에 접목하니 사과를 닮은 배가 탄생한 것이다. 이들은 이것을 ‘사과배’라 부르며 자신들의 뿌리와 현재의 삶을 투영한다. 이름처럼 사과와 배가 합쳐진 것으로 봐도 한반도에서 떠난 이들이 중국 땅에 자리를 잡은 자신들의 삶과 겹친다. 둘 다 배이지만 접목을 하니 사과의 색과 향이 나는 것으로 봐도 중국 땅에 접목돼서도 고유의 색을 유지하는 조선족의 모습과 유사하다.
사과배가 겨울 추위에 얼면 ‘뚱리’가 된다. 중국어로는 ‘冻梨(dongli)’라고 하니 ‘언 배’ 또는 ‘동리’라고 해야 하겠지만 이들은 중국어 발음이 들리는 대로 받아 ‘뚱리’라고 부른다. 추위에 껍질은 새카맣게 변하지만 맛은 더 달아진다. 이 뚱리가 연변 지역의 동포와 이 지역 겨레말의 미래와 닮았다. 조선족 공동체가 무너지면서 젊은 세대의 말 또한 급격히 중국어로 대체되고 있다. 한반도에서 넘어온 참배나무의 맛, 향, 색이 퇴색되는 상황이다. 그래도 이들의 삶의 흔적과 말은 뚱리로 남을 것이다. 추울수록 맛이 더 달아지면서.
한성우
인하대학교 한국어문학과 교수.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나와 동 대학원 국어학 석사, 박사 학위를 받았다. 국립국어원 국어규범위원회 위원, 한국방언학회 수석부회장을 역임했다. 주요 저서로는 『평안북도 의주방언의 음운론』, 『인천 토박이말 연구』, 『우리 음식의 언어』, 『문화어 수업』, 『말과 글의 풍경』 등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