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레말 톺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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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김강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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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6.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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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회수
- 25
후사경(後寫鏡)과 백미러(back mirror)

글 김강출 겨레말큰사전 책임편찬원
올 여름도 여느 해 여름처럼 몹시도 무더웠다. 그래도 입추가 지나고 나서부터는 40도를 넘나들던 폭염도 그 기세가 조금씩 숙어 드는 듯하다. 곧 있으면 말복인데 말복이 지나면 이 극한 폭염도 한풀 더 꺾이지 않을까 한다.
말복 다음날은 광복절이다. 광복절이나 한글날에 즈음하면 필자도 남들 못지않게 갑자기 애국자가 된다. 적어도 이날만큼은 국어를 더 사랑하고 싶어지고, 한글을 더 애용하고 싶어지기 때문이다. 우리 국민의 국어 사랑, 한글 사랑은 남다른 데가 있다. 그래서인지 필자가 어린 시절에 많이 쓰고 듣던 ‘다꽝, 다마네기, 벤또, 빠케쓰, 쓰메끼리, 쓰봉, 와이로, 우와기’ 등과 같은 일본말은 지금은 국어에서 그 흔적을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는데, ‘단무지, 양파, 도시락, 양동이, 손톱깎이, 바지, 뇌물, 윗도리’ 등과 같은 바르고 고운 우리말이 이 자리를 채우고 있는 것은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모르겠다.
쟁글리시와 재플리시
그런데 ‘노트북1), 스킨십, 와이셔츠, 애드벌룬, 핸들, 비닐하우스’ 등과 같은 소위 ‘쟁글리시(Janglish)’ 또는 ‘재플리시(Japlish)’라고 하는 일본식 영어 단어는 위에서 든 몇몇의 일본말들과는 달리 끈질긴 생명력을 보이며 여전히 쓰이고 있다. 이러한 생명력은 아마도 이들 단어가 모두 영어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에게 거부감이 덜한 까닭도 있겠지만 그보다도 이를 대체할 마땅한 우리말이 아직은 없어서가 아닐까 한다.
ㄱ. 운전수가 후사경으로 영식을 힐끔거리며 대꾸하는데 그도 밉보았는지 말투가 툽상스럽다.《윤정모: 들》
ㄴ. 기형은 조수석 후사경을 통해 뒤쪽을 살펴보았으나, 울퉁불퉁한 바위들과 삐죽삐죽한 나무들뿐 특별한 것은 보이지 않았다.《최수철: 페스트》
ㄷ. 차안에 달린 후사경을 통해 얼핏 바라보니 털수건끝을 입에 물고있는 룡례의 두눈에 물기가 고이는듯했다.《북방의 눈보라》
ㄹ. 순간 후사경에 자기 차를 따르는 모터찌클이 보였다.《50년 여름》
위 ㄱ-ㄴ은 남한 문학 작품의 용례이고 ㄷ-ㄹ은 북한의 문학 작품의 용례인데 이들 문장에 공통으로 들어 있는 ‘후사경(後寫鏡)’은 무엇일까? 조금 어려운 질문일 수도 있겠으나 정답은 백미러!
‘후사경’은 한글학회에서 펴낸 《조선말큰사전(1947~1957)》에는 수록되어 있지 않은 말인데 이 말이 처음으로 올림말로 수록된 국어사전은 북한의 《현대조선말사전(1981)》으로 보인다. 이 사전에서는 ‘후사경’을 “[명] (자동차 같은데서) 뒤를 비추어보게 되여있는 거울.”로 풀이하고 있다. 남한에서는 《표준국어대사전(1999)》에서 처음으로 올림말로 수록한 것으로 확인된다. 남한에서는 위의 ㄱ-ㄴ 용례에서 보듯이 1990년대 초 문학 작품에서도 확인된다.2)
아무튼 ‘후사경’은 남한에서는 일상생활에서보다는 「자동차관리법」이나 「자동차 및 자동차부품의 성능과 기준에 관한 규칙」 등과 같은 법조문에 주로 쓰이는데 때론 이때의 ‘후사경’을 ‘간접시계장치’라는 용어로 바꾼 표현도 확인된다. ‘백미러’라는 쉬운 말을 두고 ‘후사경’이니 ‘간접시계장치’니 하는, 일반인에게는 다소 어려운 말을 굳이 쓰고 있는 이유가 따로 있겠지만, ‘백미러’가 외래어이되 정식 영어가 아닌 재플리시라는 데에도 그 이유가 있지 않을까 싶다.
‘백미러’의 북한말은?
한편, 남한에서 널리 쓰이는 ‘백미러’는 북한에서 발간된 국어사전에서는 아직까지 확인되지 않는다. 북한에서 전혀 쓰지 않는 말이라고까지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널리 쓰이는 말은 분명 아니다.
그러면 ‘후사경’과 ‘백미러’를 동의관계에 있는 말로 다룰 수 있을까?
필자가 알고 있는 ‘백미러’는 운전자가 뒤쪽을 살필 수 있게 자동차나, 오토바이, 자전거 등에 다는 거울을 말한다. 그리고 차량에 부착하는 백미러는 다시 세 종류로 나뉘는데 먼저 차량 내부 앞쪽 중앙의 상단에 설치하는 ‘룸미러’가 있고, 차량 앞쪽 바깥 양옆에 하나씩 설치하는 ‘사이드미러’가 있으며, 승합차나 SUV 같은 차량의 뒤쪽 바깥 중앙의 상단에 설치하는 ‘트렁크백미러’가 있다. 그런데 요즘 웬만한 차량에는 카메라가 내장되어 있어서 승합차나 SUV 같은 차량에도 ‘트렁크백미러’를 설치한 경우는 매우 드물다.
만약에 ‘후사경’과 ‘백미러’를 동의관계에 있는 말, 곧 동의어로 다루고자 한다면 우선 ‘후사경’에도 ‘백미러’처럼 세 종류가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하면 ‘룸미러’에 대응하는 ‘후사경’, ‘사이드미러’에 대응하는 ‘후사경’, ‘트렁크백미러’에 대응하는 ‘후사경’이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면 이 둘을 동의관계로 다루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더구나 ‘백미러’는 ‘뒤쪽을 비추어 볼 수 있게 하려고 차량 같은 데에 다는 거울’이라는 통칭적 의미로서의 기본의미 외에 ‘사이드미러’와 구별하여 차량의 실내에 설치하는 거울이라는 뜻에서 특별히 ‘룸미러’라고도 한다. 사실 우리말에서 ‘백미러’라고 한다면 대개는 ‘사이드미러’와 상대되는 ‘룸미러’를 가리키는 경우가 많다.
북한에도 ‘사이드미러’나 ‘룸미러’를 뜻하는 말이 있을 것은 분명한데 필자는 아직까지 ‘후사경’ 외에 북한 자료에서 ‘사이드미러’나 ‘룸미러’에 대응한 북한 어휘를 확인해 보지 못했다. 남북 대응어가 확인되는 대로 《겨레말큰사전》에 올림말로 싣고 남북한이 협의하여 뜻풀이를 확정하는 일이 필요하다.
외래어와 외국어
오래전부터 국내 일각에서 ‘백미러’, ‘사이드미러’, ‘룸미러’, ‘드렁크백미러’ 등을 모두 정식 영어 단어가 아닌 ‘쟁글리시’ 또는 ‘재플리시’라고 하여 그 정식 명칭은 각각 ‘Rear-view mirror’, ‘Outside Rear-view Mirror’, ‘Rear Under Mirror’라고 친절하게 설명하고 있는 자료를 종종 접한다. 사이비 영어 단어(?)인 쟁글리시를 청산하고 정식 영어를 쓰자는 의도에서 나온 것은 물론 아닐 것이다. 필자 또한 쟁글리시의 사용에 대해 옹호한다거나 논박할 생각은 전혀 없다. 다만 외래어와 외국어는 구분했으면 한다. 외래어는 대응하는 표현이 자국어에 없어서 다른 나라에서 불가피하게 빌려다 쓰는 말이고, 외국어는 말 그대로 다른 나라의 말일 뿐이기 때문이다. ‘백미러’, ‘룸미러’, ‘사이드미러’를 대신할 수 있는 마땅한 우리말이 있다면 국어를 위하는 마음에서라도 당연히 이런 말들은 쓰지 않아야 옳다. 그런데 현실은 그러지 않기에 여전히 불편한 것이다.
그러면, 끝으로 필자가 생각하는 ‘후사경, 백미러, 룸미러, 사이드미러’의 뜻풀이를 제시해 본다.
원어 앞에 ‘▼’ 표시를 한 것은 이 말이 일본이나 우리나라 등에서 만든 영어라는 뜻이다.
후사鏡). ② 차량에 달아서 운전자가 뒤쪽을 비추어 볼 수 있도록 한 거울을 통털어 이르는 말. 룸미러, 사이드미러 등이 있다, ③ = 룸미러(▼room mirror). 룸미러(▼room mirror) [명] 차량의 뒤쪽을 비추어 볼 수 있도록 차량의 실내에 다는 거울. 흔히 운전석과 조수석 사이 앞 유리창 상단 부근에 단다. [같은말] 백미러(▼back mirror)③. 사이드미러(side mirror) [명] 차량의 뒤쪽을 비추어 볼 수 있도록 차량의 외부에 다는 거울. 흔히 운전석 바깥쪽에 한 개, 조수석 바깥쪽에 한 개를 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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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정식 명칭은 ‘노트북 컴퓨터(notebook computer), 랩톱 컴퓨터(laptop computer)’이다.
2) 물론 그 이전의 문헌에 나타났을 가능성도 있고, 또한 이 말이 일본에서 들어왔을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이에 대한 확인 작업은 필자의 과제로 남겨 둔다.
김강출
겨레말큰사전 책임편찬원. 국민대학교 국어국문과를 나와 동 대학원에서 석사, 박사 학위를 받았다.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 편수원 및 개정 전문위원, 국어사전 정보보완 심의위원회 심의위원 등으로 활동했다. 2006년 사업회에 입사해 올림말부장, 연구기획팀장, 편찬실장, 남측 편찬위원 등을 지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