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레말 톺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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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정동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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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6.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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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회수
- 393
모롱지에서 건져올린 말들
글 정동철 시인
어느 땐가 정확히 기억이 나진 않는다. 아마 무슨 문인들 모임이었던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 자리에서 만화영화 〈뽀로로〉 얘기가 나왔다. 이 만화영화가 전 세계 어린애들의 아침을 깨워준단다. 참 잘 만들어진 모양이다. 다들, 우리 만화가 드디어 세계로 뻗어나가는 K-문화의 첨병이라고 입을 모았다. 그때 누군가, 그런데 ‘뽀로로’가 무슨 뜻이냐고 물었다. 다들 서로의 얼굴을 쳐다볼 뿐 시원스레 설명해 주는 사람이 없었다.
뽀로로라는 말은 의태어다. 어린 시절 내가 살던 ‘모롱지’라는 동네에서 흔히 쓰는 말이다. 굳이 의미를 얘기하자면 ‘어린아이가 종종걸음으로 부지런히 걷는 모양’을 말한다. 상황에 따라서 ‘뽀로롱’이라고 말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날 이후 이 글을 쓰는 사람은 그가 태어나 스무 살이 넘도록 살아온 모롱지에서 쓰던 말들이 기억날 때마다 시작 노트에 적었다. 명색이 시를 쓴다는 자가 태어나 살아온 동네 말을, 그 말의 아름다움을 잊고 있다는 것이 부끄러웠다. 더 기억이 망가지기 전에 기록하고 글로 써야겠다는 생각이 번쩍 들었다. 그렇게 해서 이 글을 쓰는 사람이 세상에 내놓은 시집이 『모롱지 설화』(걷는 사람, 2023)이다.
아 누가 웃동네 술도가 좀 뽀로로 허니 댕겨와 저 잡녀러 새깽이덜은 왜 잔치 음식을 두여쌌냐? 워따 저 자발시런 늠덜 보소 다리몽생이를 작신 분질러 버린다잉
- 「팥니, 모롱지 설화 5」 부분
조앙쇠라는 이름을 가진 친구 할아버지가 있었다. 허리가 ‘ㄱ’ 형태로 굽어서 늘 지팡이를 짚고 종종걸음으로 마을 안팎을 부지런히 돌아다녔다. 어릴 적, 할머니에게 물었더니 조앙에서 낳아서 조앙쇠라고 이름을 지었다고 했다. 조앙이 무슨 말이냐고 물었더니 부엌을 그 옛날에는 다 그렇게 불렀다고 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조왕’이 맞는 듯하다. 조왕신은 부엌을 지키는 토속 신이다. 조앙쇠 할아버지네 할머니는 ‘조앙니’라고 불렀다. 기억을 더듬어 보니 우리 동네엔 ‘덕쇠’ 할아버지가 있었고 그 집 할머니를 ‘덕니’라고 불렀다. 곱동쇠 할아버지가 있었고 그 집 할머니는 ‘곱동니’라고 불렀다.
「모롱지 설화 1」에 나오는 ‘소망쇠’ 할아버지의 혼인 얘기가 나온다. ‘소망’ 또는 ‘또망’은 화장실을 이르는 말이다. 가끔 그런 생각을 했다. 소망쇠 할아버지는 그럼 또망에서 낳았나? 이 말은 차마 할머니에게 물어보지 못했다. 흔히 택호라고 해서 시집오기 전 고향을 동네 아짐들의 별도 이름으로 부르는 경우도 있었다. 이글을 쓰는 사람의 큰어머니는 ‘배들이 덕’이라고 불렀다. 정읍시 이평면의 옛적 이름이 ‘배들’이었는데 배나무가 많은 동네라고 했다. ‘징기 덕’이나 ‘맹기 덕’이라고 불린 분도 있었는데 징기는 김제시의 옛 이름이고 맹기는 만경의 옛 이름이다. 모롱지에서는 이런 별호들이 섞여서 사용되었다.
영락읍써 닥알을 두여먹는 늠이 있당게로 안 그러먼 매칠째 달구새끼덜이 알을 안 놓을 수가 업당게로
호게나 히서 다른 디다 놓아놨나 내가 대밭 그늘 미티도 다 찾아봤당게로 틀림없이 머신가가 있어
조앙쇠 할아버지는 아침 일찍 조앙 문트매기로 닭기퉁가리를 지켜보고 있었다 아닌 게 아니라 아침이슬 내린 풀숲을 헤치며 그놈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놈 똥구녁-모롱지 설화 11」 부분
안도현 시인은 경상북도에는 ‘니껴체’라고 하는 독특한 말뽄이 있다고 얘기를 하곤 했다. ‘아침 잡샀니껴?’, ‘장에 가시니더’가 그 예다. 전라남북도를 통틀어서 ‘라우’체라는 말뽄도 있다. ‘진지 자셨어라우?’, ‘지양 지냈어라우’가 그 예라면 모롱지에서는 ‘게로체’1)가 있었다. 앞에서 제시한 「모롱지 설화 11」에서도 게로체가 나오지만 이 말뽄이 전주시 외곽 황방산 밑의 모롱지에서만 통용되었던 것인지 아니면 전주 지역 전체에서 사용되었던 것인지는 이 글을 쓰는 사람이 확인할 방법이 없다. 이미 이 지역 사람들 머릿속에서도 그 말들이 잊히고 있기 때문이다.
야! 이늠아! 구랭이는 업이여
업을 잡아서 묵으먼 벌받는 거여묵을 게 읎다고 업을 잡아 묵냐
성주신이 노하면 집안이 망하는 뱁여아 그라믄 안 된당게로당최 그러들 말랑게로- 「먹구렁이 업보-모롱지 설화 21」 부분
모롱지에는 지명에도 독특한 어휘들이 많았다. 모롱지라는 말 자체도 참 어여쁜 말이다. 모롱지라는 말은 무슨 뜻이냐고 물어봐도 속 시원하게 대답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그냥 그 옛날부터 그렇게 불러와서 우리도 그냥 그렇게 부른다고 했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 아마도 ‘모롱이’라는 말과 동의어가 아닐까 생각한다. 우리 동네는 아닌 게 아니라 산모퉁이를 돌아가며 마을이 자리를 잡았다. ‘꽃찰메’라는 곳도 그러하다. 앞산 너머 작은 분지를 그렇게 불렀다. 봄이면 진달래꽃이 가득 피어서 산 자체가 커다란 꽃밭이 되던 곳이었다. 어른들은 늘 “꽃찰메로 구름 들어가는 것이 큰비 오것다.”라든가 “꽃찰메 똥구먹에 해 걸릴 때까지 자빠져 잔다.”라는 식으로 얘기를 하곤 했다. 나중에 ‘메’가 산을 뜻한다는 것을 알았을 때, “아! 꽃이 차오르는 메라는 뜻이구나!” 하고 탄복을 했다.
뜻을 알만한 이름들도 있었지만 전혀 짐작이 안가는 이름들도 있다. 모롱지 윗동네 이름이 ‘성낭골’이었다. 모롱지가 열두 가구 정도의 작은 마을이라면 성낭골은 삼십여 가구가 살고 있어 제법 큰 마을에 속했다. 작은 점빵이 있어 막걸리도 팔고 애들이 먹을 수 있는 주전부리도 팔았다. 밭일을 하던 아버지 심부름으로 나는 자주 막걸리를 받으러 갔다2) 성낭골이라는 지명은 우리나라 곳곳에서 사용되기는 하지만 어원은 신통치 않다. 성안골이 어원이란 얘기도 있고, 석난골에서 온 말이란 얘기, 성황당이 있던 골짝이란 얘기도 있지만, 모롱지가 소재한 인근은 전주 부성에서 멀리 떨어져 있고 돌도 많이 나지도 않는다. 더군다나 성황당이 마을 한가운데 있다는 것도 이치에 맞지 않는다. 고향이 성낭골 너머 ‘버드랑죽’인 이병초 시인은 ‘성낭’이 ‘대장간’의 옛말이라고 하며 대장간이 있던 골짝이라는 뜻일 거라고 얘기해줬다. 모롱지 앞을 흐르는 삼천3) 옆 큰 산 아래 물가를 ‘뱀장소’라고 불렀는데 왜 그렇게 불렀는지 짐작이 가지 않는다. 동네 어르신들한테 물어봐도 모른다고 그냥 그 옛날부터 그렇게 불렀다고 했다. '소'는 한자어로 '못 소(沼)'가 아닐까 추정해 볼 뿐이다. 그곳에 이무기가 산다거나 물귀신이 살고 있어 뱀장소에서 시엄을 치면 머리끄댕이를 잡아댕긴다고 절대로 그곳에서 미역을 감지 말라는 얘기는 많이 들었다. 뱀장소에서는 사람이 가끔 빠져 죽어서 두어 해에 한 번씩은 당골들이 와서 넋을 건지는 굿을 하곤 했다.
굿소리를 하며 당골네는 흰 광목베를 풀어 얼음이 채 녹지 않은 물 속으로 밥중발을 흘려 보냈다
사램이 물에 빠져 죽으먼 넋도 빠져서 못 나온디야 그리서 물속으서 가매니 지다리다가 담 사램얼 물에다 빠쳐놓고 넋을 잡아 당군 담에나 나올 수 있댜 안 그러대? 물구신이라고? 물구신이 물속으서 잡아댕기면 오강단지에도 빠져 죽는다고 안 허대? 그리서 굿을 히서 넋을 건져주는 거시여 안 그러믄 인지 바라 저 자리에서 또 사램이 빠져죽는다는 것이여 저시기 저 광목베가 넋베라는 거셔 넋베로 싼 밥중발에 멀크락이 들어오면 넋이 건져진 것이여
-「석찬이 형-모롱지 설화 87」 부분
『모롱지 설화』를 출간하고 나서 원성을 많이 들었다. 전라도말4)을 모르는 사람은 이해하기 어려운 ‘난해시’라나? 시 끝에 주석을 붙이든지 아니면 시집 끝에 낱말 풀이를 해달라고 한 시인들이 몇 분 있었다. 고민을 안 해 본 것은 아니지만 하지 않았다. 이 시집의 추천사를 쓴 하상만 시인은 굳이 전주말을 설명하지 않아도 시집을 이해하는 데 무리가 없다고 했다. 하상만 시인은 마산이 고향이며 고등학교까지 마산에서 마쳤다. 주석을 붙이지 않은 것은 하상만 시인의 격려에 힘입은 바가 크다.
시집에 출몰하는 ‘전주말’, 그중에서도 ‘모롱지말’을 일일이 전부다 소개하고 싶은 마음은 한이 없으나 지면상 그럴 수가 없어서 아쉽다. ‘포도시’, ‘느릉거’, ‘옹구락지다’, ‘요시롱 캥’, ‘박적’, ‘마롱’, ‘통개’, ‘갠소롬’, ‘달롱개’, ‘소두방’, ‘매니로’, ‘그럭끼레’, ‘뫼똥’들이 그렇다.
흔히들 표준말과 사투리라고 한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단기간에 축약해서 성취해야 했던 우리에게 거침없는 소통이 필요했던 시절이 있었을 수도 있겠다. 표준말은 그래서 정해졌을 것이다. 사람에게 사람의 격이 있는 것처럼 동네에도 격이 있고 말에도 격이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이쯤에서 이제 우리도 표준말과 사투리 대신 ‘서울말’과 ‘전주말’이라고 써 보면 어떨까? 이 아름다운 전주말처럼 ‘마산말’도 ‘대구말’도 아름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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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글을 쓰는 사람이 임의로 붙인 이름이다.
2) 막걸리를 ‘사러 간다’고 하지 않고 ‘받으러 간다’라고 표현했다.
3) 개천을 ‘삼천’이라 불렀다.
4) 사실은 전라북도 ‘전주말’이다.
정동철
시인. 2006년 광주일보, 전남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나타났다』, 『모롱지 설화』 등이 있으며, 미얀마 민주화 연대시집 『붉은 꽃을 내 무덤에 놓지 마세요』를 영문으로 번역했다. 제16회 불꽃문학상과 제3회 《작가의 눈》 작품상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