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레말 톺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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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김강출,박샛별,남초록,이길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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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5.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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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회수
- 389
마중물
글 김강출 겨레말큰사전 책임편찬원
올여름은 여느 해보다 훨씬 더웠다. 지금이야 성능 좋은 에어컨이 있어서 그 무지막지한 무더위를 그나마 견뎌 낼 수 있었다지만 한때는 선풍기마저도 사치였던 시절이 있었다. 선풍기도 귀하던 그 시절, 필자가 국민학교에 다닐 때만 해도 집에 수도가 없어서 펌프(문화어로는 뽐프) 물로 등목(문화어로는 등미역)을 했는데 그 당시 등목은 더위를 쫓는 최고의 수단이었다. 펌프질할 때 물이 안 나오면 물 한 바가지를 떠다 펌프 안에 붓고 신나게 '뿌걱뿌걱' 펌프질을 해대면 신통하게도 물이 콸콸 쏟아졌다. 펌프질을 해도 물이 안 나올 때 펌프에 붓는 물을 ‘나중에 나올 물을 맞이하는 물’이라는 뜻에서 ‘마중물’이라고 한다.
‘마중물’은 《조선말대사전》(2017)에 올라 있지 않지만 북측 용례는 확인되는 말이다. 또 현재 남한의 일반사회에서는 “한중 교류 마중물”, “지역경제 회복의 마중물”처럼 기본의미 외에 비유적 의미로도 널리 쓰인다. 《겨레말큰사전》 원고에는 “어떤 좋은 결과나 행동을 이끌어내는 데 아주 요긴하게 쓰이는 것.”이라는 비유적 의미를 더하고 북한의 인용례도 함께 넣어서 ‘마중물’이 남북한이 함께 쓰는 말임을 보여주었다. 이만하면 남북한 언어문화 통합의 ‘마중물’로서 《겨레말큰사전》 ‘마중물’의 뜻풀이로 어떨지? 물론 다음 교열자의 손을 거쳐 더 좋은 원고로 재탄생하겠지만….
장마

글 박샛별 겨레말큰사전 선임편찬원
올해는 장마가 왔는지도 모를 만큼 조용히 지나가 버렸다. 많은 기후학자들은 앞으로 장마가 점점 더 짧아지거나, 아예 사라질 수도 있다고 예측한다. 어쩌면 우리는 장마를 직접 경험하는 마지막 세대가 될지도 모른다. 어린 시절 나는 ‘장마’라는 말이 당연히 한자어일 것이라 생각했다. ‘마’가 정확히 무슨 뜻인지는 몰라도 길게 내리는 비이니 ‘장’은 ‘길 장(長)’ 자일 것이라 짐작했던 것이다. 이런 이유로 사전을 찾아봤다가 ‘장마’의 원어가 한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적잖이 놀랐던 기억이 있다. 그렇다면 장마를 고유어라 할 수 있을까? 이는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다. 왜냐하면 ‘장마’의 어원은 ‘댱마←댱[<長]+맣’로, 한자어가 고유어화된 경우이기 때문이다.
‘장마’라고 하면 어릴 적 추억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부모님은 농사를 지으셨고, 여름철 농번기에는 늘 바쁘셨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집은 항상 텅 비어 있었고 나는 그 시간이 외롭고 싫었다. 하지만 장마가 시작되면 논으로 일을 나가지 못한 부모님이 집에 계셨고, 어린 나는 그 사실이 마냥 기뻤다. 나는 장마를 기다렸고 장맛비가 반가웠다. 그렇게 기다리던 장마가 어른이 된 지금은 달갑지 않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출근해야 하는 나에게 장맛비는 그저 몸과 마음의 피로감을 더하는 존재일 뿐이다. 어느새 나는 장마가 빨리 끝나기만을 바라는 어른이 되어 버렸다. 그런데 이제는 그 장마가 기후 변화로 사라진다고 한다. 여름이면 으레 찾아오던 장마가 사라진다고 하니 장마가 오기만을 기다렸던 어린 시절이 떠오르며, 마치 그 시절이 없어지는 것처럼 허전한 마음이 든다.
추석달

글 남초록 겨레말큰사전 책임편찬원
드높고 푸른 하늘 사이로 아침저녁 살랑살랑 부는 선선한 바람, 울긋불긋 단풍으로 물들기 시작한 아름다운 산자락과 둘레길, 길가에 핀 알록달록 어여쁜 꽃들까지. 바야흐로 가을이다. 주위의 풍경들이 온통 가을빛으로 물들고, 한여름을 잘 견딘 햇곡식과 햇과일들이 눈에 띄는 이맘때면 머지않아 맞을 겨레의 명절 추석(秋夕)을 떠올리게 된다. 글자 그대로 풀이하면 ‘가을 저녁’이라는 뜻의 추석은 시기적으로는 ‘가을의 달빛이 가장 좋은 보름날 밤’을, 상징적으로는 ‘수확의 결실과 기쁨’, ‘풍요’, ‘감사’ 등의 의미를 담고 있다. 그래서일까? 추석 하면 ‘한가위 보름달’, ‘추석 보름달’, ‘가윗달’로도 불리는 ‘추석달’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추석달'은 ‘추석에 뜨는 보름달’이라는 뜻으로, 현재 이 단어는 북의 사전에만 실려 있지만 쓰임과 용례를 살펴보면 남북이 공통으로 함께 쓰는 말이다. 분단의 세월만큼 남북의 추석 풍경은 같은 듯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추석달을 보며 소원을 비는 추석 달맞이 풍경과 그 풍경 속에 담긴 추석달의 상징적 의미는 남북이 결코 다르지 않다. 추석달은 풍요와 결실의 상징이며 우리의 소원과 기도를 담아내는 신비롭고 아름다운 존재인 것이다.
이제 며칠 후면 추석맞이를 하게 된다. 다가오는 추석에는 남북의 밤하늘에 뜬 크고 밝은 추석달을 올려다보며 마음속 간절한 소원을 빌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조가비떡

글 이길재 겨레말큰사전 수석편찬원
무릇 한가위 하면 떠오르는 것은 보름달도 있겠지만, 뭐니 뭐니해도 송편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송편'이란 이름은 송편을 찔 때 솔잎을 깔고 찌는 방법에서 유래한 말이다. 우리나라 양대 명절 중의 하나인 추석에 식구들이 죽 둘러앉아 송편을 빚는 모습은 이젠 세월의 뒤안길로 점차 잊혀가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그 이름만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전해져 내려온다.
송편의 명칭은 그것을 찌는 방법에 따라서 정해지기도 하고, 그것의 모양에 따라서 정해지기도 한다. 송편의 방언형 ‘생팬, 생펜, 생편, 성편, 센펜, 셍펜, 송핀, 쇙편, 쇵펜, 쇵편’ 등은 '송편'의 변한말들이다. ‘솔벤, 솔펜’ 등은 제주말 ‘솔편’이 변한 것인데, 한자어 ‘송(松)’ 대신에 고유어 ‘솔’이 쓰였다.
강원도의 ‘조개떡’이나 함경도의 ‘조가비떡’, ‘조개비떡’은 떡의 모양이 조개를 닮아서 지어진 이름이다. 경상남도에서 쓰이는 ‘귀떡’, ‘기떡’은 모양이 귀를 닮아서 붙여진 이름이며 ‘바지게떡’은 그 모양을 ‘바지게’*에 빗댄 것이다. 비록 소박한 이름들이지만 이름을 짓는 방식에서 우리 선조들의 지혜를 엿볼 수 있어 좋다. 올 한가위에는 식구들끼리 빙 둘러앉아 송편을 빚어보면 좋을 것 같다.
*바지게: 발채(짐을 싣기 위하여 지게에 얹는 소쿠리 모양의 물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