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풀이 깁고 더하기

인진쑥과 가창오리

이윤경 겨레말큰사전 주임편찬원

우리 주위에 흔하게 자라는 쑥은 단군 신화에 등장할 정도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풀로 인식되고 있다. 우리는 봄에 쑥을 캐서 쑥떡을 만들어 먹거나 쑥국을 끓여 먹고 약으로 쓰기도 한다. 《동의보감(東醫寶鑑)》에는 쑥은 따뜻한 성질을 지니고 있으며 위와 간, 신장의 기능을 강화해 배앓이 치료에 좋다고 적혀 있다.

인진쑥(茵蔯-)은 바닷가나 개울가의 모래땅에서 자라는 풀이다. 쑥은 국화과(菊花科)의 여러해살이풀에 속하는데 이 가운데에서 인진쑥은 생명력이 강한 풀로 널리 알려져 있다. 눈이 내리는 한겨울에도 죽지 않는다고 해서 사철쑥이라 불리기도 한다. 즉, 인진쑥은 사철쑥과 같은 말이다. 남측의 국어사전에서는 이 둘을 동의어나 유의어로 풀이하고 있다.

인진쑥(사철쑥)

기존 국어사전에 제시된 인진쑥의 뜻풀이는 아래와 같다.1)

사전 뜻풀이
《표준국어대사전》 =사철쑥.
《금성국어대사전》 =사철쑥.
《고려대한국어대사전》 국화과에 속한 여러해살이풀. [유의어] 사철쑥.

다음은 북측의 《조선말대사전》과 《조선말대백과사전》에서 인진쑥과 생당쑥을 뜻풀이한 것이다.

사전 뜻풀이
《조선말대사전》 인진쑥: ‘생당쑥’을 달리 이르는 말.
《조선말대백과사전》 생당쑥: 국화과의 잎지는 반떨기나무. 더위지기라고도 한다.

위의 내용을 볼 때 남측의 인진쑥은 여러해살이풀을 이르는 말인데 북측의 인진쑥은 생당쑥의 이칭어로서 관목인 떨기나무에 해당한다. 이를 통해 남북에서 ‘인진쑥’은 서로 다른 식물을 가리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조선말대사전》의 생당쑥은 남측의 더위지기와 학명이 유사하다.2) 남측의 더위지기는 관목으로 풀이하고 있어 북측의 생당쑥과 같은 식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몇 해 전 남북공동회의에 갔을 때 북측 편찬원 선생님으로부터도 이 인진쑥의 뜻풀이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일이 있다. 남과 북의 풀이가 서로 다르다고 했는데 확인을 해 보니 남과 북의 사전이 각각 서로 다른 식물을 풀이한 것이었다. 그때 몇몇의 동물명도 남북의 풀이가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그중 하나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가창오리였다.
가창오리는 오릿과의 물새이다. 가을에 우리나라의 큰 강이나 호수에 날아오는 겨울 철새로 오리 가운데 크기가 작다. 수컷은 얼굴에 노란색과 녹색이 태극 무늬처럼 어우러져 나타나는 것이 특징이다. 천수만, 해남, 금강호, 삽교호 등지에서 볼 수 있으며 수십만 마리가 함께 날아오르면 검은 구름이 흘러가는 것처럼 보인다. 전 세계 가창오리의 95%가 우리나라로 날아온다. 현재 가창오리는 국제적인 보호조(保護鳥)이다.3)

가창오리(수컷)
다음은 《조선말대사전》과 《조선말대백과사전》에서 가창오리를 뜻풀이한 것 가운데 일부이다.
사전 뜻풀이
《조선말대사전》 오리과에 속하는 물새의 한가지. 생김새는 오리와 비슷하나 가운데 꼬리깃이 특별히 길다.
《조선말대백과사전》 고방오리라고도 한다. … 한쌍의 검은 꼬리깃이 길고 뾰족한 것이 특징이다. 수컷은 대가리와 웃목이 밤색이며 등쪽은 밤색 바탕에 재빛이 도는 선명한 색이다.

위의 내용을 볼 때 남측의 가창오리 수컷의 얼굴색은 노란색과 녹색의 무늬가 있는데 북측의 가창오리 수컷의 얼굴은 밤색이며 길고 뾰족한 꽁지깃이 특징으로 풀이되고 있다. 고방오리는 남측 사전에 수컷의 머리가 갈색이며 꽁지가 긴 것이 특징이라고 풀이되어 있는데 이는 북측의 풀이와 같고 남북의 학명(Anas acuta)도 동일하다.

고방오리(수컷)

이와 같이 ‘가창오리’는 남과 북에서 서로 다른 오릿과 물새의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남측의 가창오리는 수컷의 머리가 태극 무늬처럼 아름다운 새이며 북측의 가창오리는 꽁지깃이 길고 뾰족한 것이 특징인 새인데 남북이 서로 다른 새를 가창오리라는 동물명으로 각각 풀이하고 있다. 북측에서는 남측의 가창오리를 감색과 풀색의 무늬가 반달무늬처럼 곱게 나 있다고 하여 그 무늬를 본떠 반달오리라고도 부른다. 이처럼 남과 북은 동일한 대상을 다르게 지칭하기도 하고, 서로 다른 대상을 같은 명칭으로 지칭하기도 한다.

지금까지 남북의 국어사전에서 인진쑥과 가창오리의 뜻풀이를 살펴보면서 동일한 동식물명에 대한 남북 언중의 쓰임 차이를 확인하였다. 앞으로 남북의 말을 아우르는 국어사전을 편찬한다고 하면 이와 같은 차이를 잘 드러낼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이를 통하여 남북 교류 시대나 통일 시대에 남과 북의 언중이 언어생활에서 서로 다른 점이 무엇인지 잘 이해하고 서로 오해 없이 소통하는 길이 열릴 것이다.
편찬 작업이 진행 중인 《겨레말큰사전》에서는 남과 북의 사전 이용자가 식물명과 동물명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풀이를 사전에 반영하기 위하여 남북이 함께 협의하고 있다. 세부 원칙과 내용은 그동안 남측과 북측의 사전 편찬자들이 몇 차례에 걸친 남북공동회의에서 협의하였으며, 그 최종 협의 결과를 식물과 동물 풀이에 반영하고 있다. 현재까지의 협의 결과를 토대로 하여 인진쑥과 가창오리의 뜻풀이를 보이면 아래와 같다.4) 겨레말

인진쑥(茵蔯-) [명]
① =사철쑥.
② =생당쑥.
가창오리 [명]
① 수컷의 머리에 노란색과 풀색의 무늬가 있는 오리.
② 다른 오리에 비하여 꽁지가 삐죽하게 긴 오리.
  • 1)《표준국어대사전》의 뜻풀이는 종이사전(1999년)을 기준으로 하였다. 웹에 실린 《표준국어대사전》 풀이도 동일하다.
  • 2)남측의 ‘더위지기’의 학명은 ‘Artemisia iwayomogi’, 북측의 ‘생당쑥’의 학명은 ‘Artemiaia messershmidtiana’이다.
  • 3)《한국민족문화대백과》, 《표준국어대사전》의 ‘가창오리’를 참조하였다.
  • 4)아래 풀이는 글쓴이의 견해이다. 겨레말큰사전남북공동편찬사업회의 의견과 다를 수 있음을 밝혀 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