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천리 방언곡곡

홀롱재

이길재 겨레말큰사전 부장

“거 한족 {홀로재들으} 멜대 좌우짝 나무 쾅재1)에 머리꽂개2)구, 그래모3)구, 동집게4)구 섹겨을5)르 빗을르 벨란 걸 다 가지구 댕깁데. 벨란 걸 다 팔아. 그 한족 {홀로재를} 하릇밤 재왔드니 벨난 냄새가 다 납데. 문우 열어놓고 개두 냄새가 메츨 가압데.”

숙부께서는 한어에 능했는데 그때 중국말을 잘하는 사람이 없었다는게지. 그때 {홀롱재랑} 상당히 우쭐했다는게지. 조선사람들이 중국말도 모르지 꼼짝못했다는겜다. 맏아바이가 중국말로 못사는 사람을 깔본다고 시비를 해서 중국사람들이 꼼작 못했다는게지. 《류연산: 중국 조선족 정초자-심여추》(중국)

홀로재 혹은 홀롱재는 집집을 찾아다니며 바늘이나, 실, 머리꽂이, 크림, 족집게, 거울 등 자질구레한 잡화를 팔던 중국 행상인을 압록강이나 두만강 유역 사람들이 이르던 말이다. 홀롱재는 우리의 보부상과 유사하나, 그 모습은 사뭇 다르다. 우리 보부상은 ‘봇짐장사’와 ‘등짐장사’가 있다. ‘봇짐장사’는 ‘봇짐을 가지고 다니면서 물건을 파는 사람’인데, 지역에 따라서 ‘봇짐당사, 봇짐당시, 포대깃짐장시, 폿짐장시’라고도 불린다. ‘등짐장사’는 ‘물건을 등에 지고 다니면서 파는 사람’인데, 지역에 따라서 ‘등짐장새, 목패’라고도 불린다. 그런데 중국의 홀롱재는 멜대을 외어깨에 메고 그 양쪽 가장자리에 나무 광주리를 달고 그 안에 물품을 넣어 다니면서 파는 행상인을 이르는 말이다.
홀로재, 홀롱재는 중국어 ‘货郎子[huòlángzǐ]’를 직접 차용했거나, 아니면 방물장수(혹은 황아장수)를 의미하는 ‘货郎[huòláng]’을 차용한 뒤에 ‘사람’의 뜻을 더하는 접사로 ‘-자(者)’가 결합된 말일 수도 있다. 왜냐하면 한자어 ‘货郎’은 중국 한자음으로 발음하고, ‘子’는 우리 한자음으로 발음했기 때문이다. 체언 어간 모음 ‘ㅏ’가 ‘ㅐ’로 바뀌는 소리의 변화는 우리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음운 현상이다. ‘감자>감재, 고구마>고무매, 임자>임재’ 등을 그 예로 들 수 있다.

깜재, 서방재, 따거재, 신랑재, 양구재, 얼르재…

남이야 어떻든 무슨 상관이요? 그런데 {서방재두} 왔답데? 《장춘식(1998): 아, 옛날이여》(중국)

어째 앙이 그러갰음? 첫날밤에 {신랑재} 되는 사람이 얼매나 홍(겁)이 났갰음메? 하눌이 무너지는 것 같앴을 게 아임메? 《안수길(1969): 통로》

위의 어휘들은 모두 접사 ‘-재’가 결합된 말이다. 깜재는 ‘피부가 검스레한 사람’을 말하며, 서방재는 ‘새서방’, 따거재는 ‘키다리’, 양구재는 ‘양키’, 얼르재는 ‘게으름쟁이’를 뜻하는 말이다. 따거재의 ‘따거’는 중국어 ‘大哥[dàgē]’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거즛부레재, 거짓말재, 게그름재, 깍재, 귀먹재, 니발재, 대장재, 등곱재, 떼나구재, 바디재, 버림재, 비렁재, 싸구재, 싸그재, 에눈재, 야장재, 이발재, 푸끼재6)

보시다싶이 싸움이 붙으면 몽땅 {귀먹재가} 되고맙니다. 괜히 아까운 희생만 내지 말고 제때에 돌아가는게 좋습니다. 《녀가수(2001)》(북)

위의 어휘들은 ‘깜재’나 ‘양구재’와 마찬가지로 접사 ‘-재’가 결합된 말이지만 그 성격은 전혀 다른 어휘들이다. 이 때의 ‘-재’는 일부 명사와 결합하여 〈그것이 나타내는 특성이나 그것과 관련된 기술을 가진 사람〉의 뜻을 더하는 접사 ‘-쟁이’가 결합된 말이다. ‘-쟁이’가 ‘-쟁이>-재이>-재’와 같은 소리의 변화를 경험한 형태라고 볼 수 있다.

오십 원 남기는 장사에 오십 원 깎아주면 헛장사였지만 최가는 이 {깍쟁이} 장꾼과 길게 실랑이하기 싫었다. 《박정애(2001): 물의 말》

서월 {깍재이들이} 촌눔 빼께 묵는 데는 소문이 났다.

할매 산에 갔어, 산에…. 아부지, 빨리 데려와! 다신 {깍재} 할매라구 하지 않을테야…. 《윤림호(1985): 호박꽃》(중국)

거즛부레재, 거짓말재는 ‘거짓말쟁이’, 게그름재는 ‘게으름쟁이’, 깍재는 ‘깍쟁이’, 귀먹재는 ‘귀먹쟁이’, 니발재는 ‘이발쟁이’, 대장재는 ‘대장쟁이’, 등곱재는 ‘등곱쟁이’, 떼나구재는 ‘떼쟁이’, 바디재는 ‘바디쟁이’, 버림재는 ‘대장장이’, 비렁재는 ‘비렁뱅이’, 싸구재, 싸그재는 ‘미치광이’ 또는 ‘잔소리쟁이’, 에눈재는 ‘외눈쟁이’, 야장재는 ‘야장쟁이’, 이발재는 ‘이발쟁이’, 푸끼재는 ‘거짓말쟁이’를 뜻하는 말이다.

필자도 아주 어렸을 적에 동네를 찾아오는 보부상 같은 아주머니들을 본 기억이 있다. 이제 우리 사회에서 ‘등짐장사’나 ‘봇짐장사’ 등의 보부상은 찾아 볼 수 없다. 한창 유행하던 ‘방판(방문판매)’도 인터넷 쇼핑과 배달 문화가 보편화된 지금은 그 자취를 감추었다. 압록강이나 두만강 유역에서 활동했던 홀로재홀롱재는 지금도 멜대를 메고 중국의 태산을 오르내리는 짐꾼들과 그 모습이 흡사하지 않았을까. 겨레말

  • 1)광주리.
  • 2)머리꽂이.
  • 3)얼굴에 바르는 화장품 ‘크림’. 영어 ‘cream’의 일본식 발음이다.
  • 4)족집게.
  • 5)석경(石鏡).
  • 6)‘푸끼’는 ‘거짓말’을 뜻하는 중앙아시아의 고려인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