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레의 창

다초점렌즈를 통해 오늘을 바라보면

- 2021년에 거는 기대

염무웅 겨레말큰사전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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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서 돌아보면 역사에는 변곡점이라 할 만한 시점이나 사건이 늘 있게 마련이다. 중요한 것은 변화의 징조를 옳게 읽어서 제대로 대처하느냐의 여부이다. 현실을 읽는 통찰의 눈이 강조되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가령, 우리 근대사에서는 1894년이 그런 결정적 전환의 해라고 할 수 있다. 그해 음력 1월 전라도 고부(古阜, 정읍)에서 동학 농민들이 처음 봉기를 일으켰을 때만 하더라도 그것이 그렇게 큰 사건으로 발전할 줄은 아무도 짐작하지 못했다. 하지만 동학군 진압에 실패한 조선 왕조의 요청으로 5월에 청나라 군대가 조선에 출병하고 이를 기다렸다는 듯이 일본군이 참전하자, 사태는 아연 동아시아의 패권질서 전체를 뒤흔드는 국제전으로 비화하였다.
이 와중에 일본군의 위협 하에 조선의 제도적 근대화 즉 갑오경장이 강행되고, 그 결과 조선에 대한 중국의 종주권이 폐지되었다. 조선으로서는 최소한 500년 동안 이어오던 정치체제가 붕괴한 것이었다. 어떤 의미에서 그로부터 오늘에 이르는 한반도의 125년은 ‘근대’라는 이름으로 지속되는 거대한 혼돈의 상황이라 할 터인데, 이 과정에서 우리 민족이 경험한 것은 식민지의 굴욕, 남북 분단의 비극, 전쟁의 참화, 그리고 산업화와 민주화였다.

먼 후일 돌아보면 2020년도 그런 중요한 해로 기억되지 않을까. 아니, 어쩌면 1894년보다 더 본질적인 변화가 지금 진행 중일지 모른다는 느낌도 든다. 누구나 알고 있듯이 2020년은 코로나19라는 전염병의 세계적 대유행의 해이자 자타가 공인하는 패권국가 미국에서 대통령선거가 치러진 해이다. 날마다 뉴스에서 보듯 코로나는 수그러들기는커녕 2021년을 눈앞에 둔 오늘 더욱 극성을 부리고 있다. BC(코로나 이전)/AC(코로나 이후)라는 시대구분까지 거론될 만큼 이 역병을 역사의 분기점으로 보는 사람도 있다.
12월 15일 현재 세계 전체의 확진자는 7300만 명, 사망자도 160만 명을 넘어섰으며 미국에서만도 1700만 명 이상의 확진자에 30만 명이 넘는 사망자가 나왔다. 어마어마한 숫자다. 과거 미국에서만 50만 명이 죽고 전 세계에서는 수천만 명에 육박하는 사망자가 나왔다는 ‘스페인독감’을 연상케 한다. 두려운 일이다.

문제는 이러한 전염병의 유행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제대로 해석하고 올바로 대응하는 일이다. 이미 많은 전문가들이 경고했듯이 코로나바이러스가 이유 없이 제 발로 걸어서 인간사회에 침입한 것은 아니다. 자본주의 산업문명은 자기증식의 본성에 따라 끊임없이 자연생태계를 파괴해왔고, 서식지를 잃어버린 각종 질병 바이러스는 야생의 터전에서 쫓겨나 인간사회로 진출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뜻에서 코로나19의 대유행은 인간의 침략에 대한 자연의 부득이한 반격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염병 유행은 백신과 치료제의 개발로 어느 정도 제어할 수 있을지 모른다.
이에 반해 생태계 파괴와 연동된 지구적 차원의 기후변화 그 자체는 지역적 또는 단기적 대책이 있을 수 없는 총체적 위기를 예고한다. 심지어 지금 여섯 번째의 대멸종이 진행 중이라지 않은가. 기후변화에 기인한 생물종의 종말을 막기에는 이미 때를 놓쳤다는 극도의 비관론도 있다.

그런데 우리가 염려해야 할 현실은 이러한 거시적 차원만 있는 것이 아니다. 30년 전 소련을 비롯한 동유럽의 사회주의 체제가 붕괴되었을 때 자유주의와 자본주의는 영원한 승리를 맞은 듯이 보였다. 그러나 실은 바로 그 순간부터 중국은 지나간 150년의 치욕을 뒤로하고 무섭게 성장하여 마침내 미국과 패권을 다투는 대국굴기(大國崛起)를 달성하고 있다. 문제는 우리 한반도가 마치 명청(明淸) 교체기의 조선 왕조처럼 미-중 갈등의 한복판을 통과해야 한다는 점이다. 지뢰에서 뇌관을 제거하듯 우리는 최대의 조심성과 과단성을 발휘하여 역사의 과도기를 헤쳐나가야 하는 것은 우리의 피할 수 없는 과제로 되었다.

다른 한편, 우리에게는 전후 체제의 종결과 남북분단의 해소라는 고유의 과업이 있다. 돌이켜보면 지난 70여 년 동안 우리는 남북 각각에서 분단병(分斷病)을 앓아왔다. 남쪽이 앓아온 병은 한마디로 ‘한미동맹’이란 이름의 주권 제약 상태에서 기원한 질환들이다. 북의 침략 위협으로부터 대한민국을 보호해 준다는 것이 미국이 노상 내세운 명분이지만, 사실 주한미군은 동아시아에서 미국 자신의 전략적 이익을 지키기 위한 점령일 뿐이다. 따라서 한반도에서 진정으로 종전(終戰)이 이루어졌다고 말할 수 있으려면 현행 ‘한미동맹’의 폐기와 함께 한국의 정치-군사적 주권이 완벽하게 확보되는 날을 기다려야 한다. 반면에 북한은 3대 세습 과정이 보여주듯이 정치적 일원 체제의 강행으로 국가 전체가 배타적으로 위계화되어 있다. 이에 따라 자율적 ‘시민사회’가 원천적으로 부재한 가운데 통제와 감시의 일상화로 인해 나라 전체가 지나치게 경직화되어 있다. 획일적인 개인숭배를 철폐하고 개인들의 자발성에 기초한 창의적인 토론문화가 살아나지 않는다면 그 어느 사회든 결국 멸망에 이른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한반도에서 분단 자체를 극복하는 일과 분단에서 생긴 각종 질환을 치유하는 일은 둘이면서 하나인 역사적 과업이다. 그 과업을 위해 실질적으로 첫걸음을 떼어놓은 것은 남의 김대중 대통령과 북의 김정일 위원장이었다. 그들이 2005년 6월 15일 평양에서 이루어낸 공동선언은 종래의 통일개념을 지양하고 남북이 평화적으로 공존하는 과정을 통해 점진적으로 통일에 접근한다는 데 합의한 것이었다. 그것은 이념과 체제를 달리하는 남과 북이 그 결정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공존 공영할 수 있다는 위대한 선언이었다. 뿐만 아니라 그것은 남북 각자의 내부적 질환을 치유하는 데도 극히 효과적인 방안이었다. 아니, 남과 북의 만남 자체가 치유의 출발이 될 수 있다. 그런 뜻에서 6·15 남북공동선언 전후에 겨레말큰사전의 남북공동편찬회가 열리고 공동편찬사업회 구성을 위한 법적 뒷받침이 국회를 통과한 것1)은 너무나 당연하다. 우리 말과 글은 남북 겨레가 수백 수천 년 공유하고 가꾸어온 민족의 영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알다시피 남북공동회의는 5년째 열리지 못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출범과 특히 2018년 4월 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판문점 선언으로 기대에 부풀었던 편찬사업은 기대와 달리 차질을 면치 못하고 있다.
아마 내년에는 조금 달라지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추측해 본다. 직접적 계기는 오랜 의회 경력을 지닌 조 바이든이 새로 미국 대통령에 취임하는 것이다. 그가 ‘전략적 인내’라는 미명 아래 아무것도 하지 않은 오바마 정부에서 부통령으로 있었던 것은 걱정스러운 점이다. 그러나 바이든이 미국 대통령으로서 부딪치게 된 세계의 현실은 오바마 시대와도 다르고 트럼프 시대와도 다르다. 이제 미국은 세계의 절대강자가 아니다. 한국도 1950~60년대와 같은 빈곤국가가 아니고 1970~80년대와 같은 독재국가도 아니다. 이제 한국은 정치적으로나 경제적 문화적으로 세계의 모범 소리를 들을 만한 중견국가로 성장했으며, 미국 앞에서든 중국 앞에서든 당당하게 자기를 주장할 실력을 갖추었다. 남과 북이 협력하기로 합의만 한다면 합의를 관철할 수 있는 객관적 조건은 마련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남측 지도자의 용기와 북측 지도자의 지혜가 한반도의 새로운 평화를 이끌어내기를 간절히 바란다. 겨레말

  • 1)편집자 주 : 2007년 4월 27일, ‘겨레말큰사전남북공동편찬사업회법’이 제정되었다.
염무웅
염무웅
문학평론가. 1941년 강원도 속초에서 출생하여 서울대 독문과 및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1964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문학평론으로 등단했다. 창작과비평사 대표, 민족예술인총연합 이사장, 민족문학작가회의 이사장을 역임했고, 현재 겨레말큰사전 이사장과 국립한국문학관 초대 관장, 영남대 명예교수로 있다. 저서로 평론집 『민중시대의 문학』(1979), 『모래 위의 시간』(2001), 『문학과 시대현실』(2010),『살아 있는 과거』(2015), 산문집 『자유의 역설』(2012), 『반걸음을 위한 현존의 요구』(2015), 대담집 『문학과의 동행』(2018)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