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찾은 겨레말

메뚜기

이길재 겨레말큰사전 부장

메뚜기치기놀이 방법에는 땅에 구멍을 파서 진을 정하고 채로 메뚜기를 치는 것과 둥근원을 긋고 거기에 메뚜기를 던져 나온 수자에 따라 채로 치는 것이 있었다.《4월의 민속놀이》(북)

‘메뚜기’는 우리에게는 참 친숙한 곤충의 이름인데, 위의 북측 용례에 등장하는 ‘메뚜기’는 논이나 들에서 흔히 보이는 그 ‘메뚜기’가 아닌 모양이다. ‘메뚜기’가 무엇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용례만으로 보면 ‘그것’을 치면서 하는 놀이가 있고, ‘그것’을 가지고 노는 방법도 여러 가지가 있는 것 같다. 같은 출전에서 한 문장을 더 찾아본다.

메뚜기치기는 긴 막대기로 작은 막대기를 치거나 튕기면서 노는 놀이였다.《4월의 민속놀이》(북)

위 용례에 따르면, ‘메뚜기치기’는 ‘긴 막대기로 작은 막대기를 치거나 튕기며 노는 놀이’이다. 그렇다! 이미 알아차린 분도 있겠지만, ‘메뚜기치기’는 ‘자치기’의 북녘말이다. ‘메뚜기’는 자치기를 할 때 쓰는 작은 막대기를 말하며, 긴 막대기는 ‘메뚜기채’라고 한다. 작은 막대기가 튀어 오르는 모습이 마치 메뚜기와 같아서 그렇게 부르게 된 것으로 보인다. 다른 지역에서 이것을 ‘토끼(토끼아들, 토깡이 등)’라고 부르는 것을 보아도 그렇다. ‘메뚜기치기’와 ‘메뚜기채’는 이미 《조선말대사전》에 실려 있는 ‘문화어’이지만 ‘작은 막대기’를 뜻하는 ‘메뚜기’는 아직 사전에 실려 있지 않다.

자치기를 할 때 쓰는 도구인 이 ‘메뚜기’는 지역에 따라 그것을 이르는 말이 아주 다양하다. 강원도에서는 ‘메띠기’, ‘자작대기’, ‘작은말’, ‘장방울’, 경기도에서는 ‘토끼아들’, 경상도에서는 ‘똥꼬작대이’, ‘짜린재’, ‘토까이’, ‘토깡이’, 전라도에서는 ‘꽁’, ‘꽁알’, ‘꼬쟁이’, ‘꽁매’, ‘땅꽁’, ‘작은자’, ‘장꽁’, ‘징’, ‘짱메’, ‘코팍기’, ‘코팝배기’, 충청도에서는 ‘고둥’, ‘대포’, ‘따콩’, ‘자’, 함경도에서는 ‘메떼기’, 황해도에서는 ‘호독’, 중앙아시아의 고려인들은 ‘꿀개’라고도 한다.

‘메뚜기채’는 강원도에서는 ‘큰말’, ‘막뚜기’, ‘메뚜기보’, ‘장낙때기’, 경상도에서는 ‘마때꼬쟁이’, 전라도에서는 ‘꿩막대기’, ‘때꽁막가지’, ‘뜰꽁대’, ‘뜰장’, ‘에미막대기’, ‘자막대기’, ‘장매’, ‘큰개’, ‘큰꼬쟁이’, ‘큰자’라고도 한다.

‘메뚜기치기’ 놀이

‘메뚜기치기’는 놀이를 시작할 때 ‘몇 자 내기’를 할 것인지를 미리 정하고 그 목표를 먼저 달성하는 편이 이기게 된다. 놀이의 구체적인 방법은 지역마다, 마을마다 조금씩 다를 것이나, 대체적으로는 북측의 용례와 같이 ‘구멍을 파서 하는 것’과 ‘둥근 원을 그리고 하는 것’의 두 가지 방법이 통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먼저, 구멍을 파서 하는 ‘메뚜기치기’이다. 땅 위에 10cm 가량의 구멍을 길게 파고 그 구멍과 수직이 되게 양옆으로 선을 긋는다. 전라도에서는 이를 ‘십자놀이’ 혹은 ‘십자치기’, ‘구멍자치기’라고 한다. 놀이에 참가하는 전원이 가위바위보로 편을 가르고 이긴 편이 먼저 공격을 시작한다. 첫 번째 순서는 파놓은 구멍과 수직으로 걸쳐 놓은 ‘메뚜기’를 들고 ‘메뚜기채’로 가능한 한 멀리 떠 던지는 것이다. 이때 수비하는 편이 날아오는 ‘메뚜기’를 손으로 받아내면 공격한 편이 지게 되고, 받아내지 못하면 ‘메뚜기’가 떨어진 지점에서부터 구멍과 수직으로 그어 놓은 선까지 몇 자가 날아갔는지를 ‘메뚜기채’로 잰다.

두 번째 순서는 ‘메뚜기’를 구멍 안에 비스듬하게 눕혀 놓고 땅 위로 올라온 부분을 ‘메뚜기채’로 때려서 공중으로 약간 떠오른 ‘메뚜기’를 다시 쳐서 날려 보내는 것이다. 이렇게 하는 것을 전남 방언으로는 ‘개잡는다’고 하는데, 이때도 마찬가지로 구멍으로부터 ‘메뚜기’가 날아간 거리를 잰다.

세 번째 순서는 일명 ‘한손잽이’라고 하는데, ‘메뚜기’와 ‘메뚜기채’를 한손에 잡고 ‘메뚜기’를 재주껏 공중으로 띄워 떨어질 때 ‘메뚜기채’로 쳐서 날려 보내는 것이다.

네 번째 순서는 ‘돌뱅이치기’, ‘돌레치기’, ‘팔랑개비’라고 하는데, 이는 ‘메뚜기’의 한 끝을 손으로 잡고 ‘메뚜기채’로 다른 한쪽 끝을 쳐서 팔랑개비처럼 빙빙 돌아가는 ‘메뚜기’를 때려서 날려 보내는 것이다. 이 ‘돌뱅이치기’가 끝나면 다시 맨 처음 순서로 돌아가 반복한다.

원을 그려놓고 하는 ‘메뚜기치기’는 훨씬 단순하다. 직경 40~60cm쯤 되는 원을 그리고 그 안에 들어가서 꼿꼿이 선 다음 ‘메뚜기’를 허리 높이에서 떨어뜨려 원 안에 들어오면 ‘메뚜기채’로 때려 날려 보낸다. 세 번의 기회가 있는데, ‘메뚜기’의 절반 이상이 원 안에 들어와 있으면 두 번,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한 번, 그리고 원 밖으로 아주 나가면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 목표에 먼저 도달하는 순으로 순서가 정해졌다.

어릴 적 자치기를 할 때면 어른들은 늘 성화였다. 자치기를 하다가 잘못하면 ‘눈깔이 빠진다’고 주의를 주던 동네 어르신들은 이미 세상을 떠나고 안 계신다. 지금 생각해 보면 조금 위험한 놀이였던 것은 분명하다. 간혹 막대에 이마를 맞고 엉엉 울면서 집으로 가는 아이들이 있기는 하였던 것 같은데, 그마저도 기억이 희미하다. 그때 그 아이들은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지내는지 문득 그리워지기도 한다. ‘메뚜기’ 단상(斷想)이다. 겨레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