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 탐구

남북 전통의학 협력 현황과 전망

김지은 대성한방병원 부원장

남에서 ‘한의학’이라고 하는 전통의학을 북에서는 ‘고려의학’이라고 부른다. 필자의 직업인 ‘한의사’도 북에서는 ‘고려의사’라 칭한다. 북에서는 고려의학을 ‘민족의 귀중한 의학유산’으로 규정하고 있다. 북에서 고려의학은 서양의학과 더불어 북한 주민들의 건강을 책임지고 관리하는 보건의료의 든든한 축이며, 일차 의료의 70%를 고려의학이 담당하고 있다는 통계도 있다.1) 최근 북한의 보건의료 현실이 열악해진 점을 들어, 북에서 고려의학을 대체의학(代替醫學)2)으로 내세울 수밖에 없었던 것이 아니냐는 견해도 있는 줄로 안다. 하지만, 북한의 의료, 진료 체계를 정확하게 이해한다면 이런 의견들이 설득력이 없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북한은 1954년 ‘내각결정’ 제76호, ‘인민보건을 개선·강화할데 대한 결정’ 이후 처음으로 동의사 자격시험을 실시하였고, 1956년에는 ‘내각명령’ 제37호, ‘동의학을 발전시켜 동의치료를 개선·강화할데 대하여’를 채택하여 국가치료기관에 동의과를 설치하게 된다. 1970년까지는 전국의 모든 의학대학에 동의학부를 설치하였으며, 1990년대 초반에 ‘동의학’이라는 명칭을 ‘고려의학’으로 전면 개칭한다.

북한에서는 매년 서양의학과 같은 인원수의 고려의학 전공의들이 배출된다. 한국의 제도와 비교했을 때는 고려의사 자격을 가진 졸업생들에게 양의사의 자격도 함께 주어진다는 것이 특히 주목할 만하다. 이는 사실상 북한에서는 서양의학과 고려의학이 진료 분야나 형식만 다를 뿐, 거의 같은 자격과 지위를 가지고 있으며 환자들도 그런 관점에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한방과 양방을 다소 다른 분야로 인식하거나, 사안에 따라서 한의사 집단과 양의사 집단이 대립각을 세우기도 하는 한국의 관점에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일 수 있다.

남북 전통의학의 같고, 다름

북에서 고려의학을 공부하고 왔다고 하니, 주변에서 가장 많이 하는 질문 중 하나가 ‘남과 북의 전통의학이 어떻게 다르냐’는 것이다. 답변하기에 여간 어려운 질문이 아니다. 얼마나 같고, 다른가를 떠나서 일단 정말 다른가에 대해서도 어떤 때는 판단하기가 어렵다. 분단 이전부터 조상 대대로 내려와 남과 북이 그 뿌리를 같이하는 것이니 다르면 또 얼마나 다르겠는가 싶으면서도, 반세기를 훌쩍 넘긴 시간 동안 서로 다른 체제와 의학 교육과정 속에서 생겨난 차이가 생각보다 크게 느껴질 때도 있다. 전통의학의 기본적인 이론이나 원리는 다르지 않더라도 그것을 표현하는 방법, 사용하는 용어 등을 생각한다면 남북의 의료진과 환자들이 서로 만나 소통할 때 오해가 발생할 요인도 적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같은 진단명이나 증상에 대한 변증(辨證)3)은 물론 사용하는 약재, 약물의 명칭이 다른 경우도 종종 있다. 한국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지인이 경동시장에서 약재를 구해 드신다기에 증상 치료에 도움이 되는 약재를 추천한 적이 있다. 그런데 어느 날 약재상한테서 전화가 걸려 왔다. 내가 지인에게 적어준 약재가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그 약재는 ‘만형자(蔓荊子)’라는 것이었는데 북에서는 흔히 ‘순비기나무 열매’라고 부르기에 그렇게 적어 보냈더니 얼른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물론 약재로서의 ‘만형자’도 아주 모르는 말은 아니다. 다만, 한국에서는 대학에서 약재명을 중심으로 학습하고, 북에서는 약재명과 식물명을 거의 함께 공부하기 때문에 실제 약 처방에 식물명을 사용할 때가 많으며 어느 것으로 써도 소통하는 데 어려움이 없다는 것이 달랐던 것이다.

깊이 찾아본다면 어찌 약재명 하나이겠는가. 진단명에서부터 변증 방법, 사용하는 침법, 진료실에서의 진찰, 상담 문화까지도 남과 북이 같은 언어를 사용하면서도 다르게 이해되는 것이 적지 않을 것이다. 진료, 의료 행위는 단순한 소통의 문제가 남북 주민의 건강과 생명에 중차대한 영향을 끼치는 것으로서, 남북 전통의학은 그 본질적인 문제를 감당할 수 있어야 한다. 현재 전 세계에 퍼진 바이러스 대유행 국면을 떠올린다면 남북 전통의학의 교류 문제는 어떤 면에서는 절실하기까지 하다.

남북 보건의료 협력이 필요한 이유

1945년 해방이 되던 때부터 70여 년의 분단 상황에서 남북은 서로 다른 보건의료 정책과 제도, 시스템을 구축해 왔다. 남에서 정부와 민간 주도의 보건의료 서비스를 모두 제공했다면, 북에서는 국가 주도의 국영체제를 중심으로 보건의료 정책을 폈다. 하지만, 최근 코로나19 유행과 방역 양상을 보면 보건의료 시스템의 개념과 범위는 이미 한 국가의 경계를 넘어서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남에서는 소수의 사람만 걸리는 ‘다제내성(多劑耐性) 결핵’4)의 만연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며, 말라리아를 비롯한 각종 전염병 감염에 대한 취약성, 북한의 위생 환경과 보건의료 실태를 생각했을 때 이제 이는 북한만의 질병이 아니며 한국도 결코 안전지대라 할 수 없다. 비무장지대와 같이 각종 질병과 바이러스가 넘나들 수 있는 공간은 결코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다. ‘우리만의’ 시스템 속에서 ‘우리를’ 온전히 보호할 수 있는, ‘우리만의’ 공간은 이제 없다.

그간 국내외 정세에 따라 남북 교류에 여러 부침(浮沈)이 있기는 했으나, 정치·경제·문화적 교류는 비교적 무르익은 측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에 비해 보건의료 분야의 교류는 남북 주민의 생명과 직결된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그 논의를 충분히 성숙시키지 못한 면이 있다. 남과 북이 그때그때, 자유롭게 정보를 주고받고 부족한 부분을 서로 보충·보완하면서 ‘건강한 한반도 공동체’를 함께 만들어 나가는 노력에 대해 고민할 때가 왔다.

남북 전통의학 협력 현황과 전망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북에서 고려의학이 보건의료 분야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크다. 이는 남북 보건의료 협력 및 통합에서 한국의 한의학이 가진 사명의 무게와 직결된다. 특히 북에서 온 ‘고려의사’이자 ‘한의사’인 필자에게 남북 전통의학 교류 사업은 매우 필요하며 절실한 문제로 다가온다.

대한한의사협회는 이미 오래전부터 협회 내에 ‘민족 의학 연구 및 협력’ 관련 부서를 만들고 고려의학 연구와 함께 남북 전통의학을 비교하고 북의 의료 상황을 개선하기 위한 사업들을 벌여왔다. 이런 노력으로 지난 7월에는 ‘남북 전통의학 비교 용어집 편찬 방법과 방향’에 대한 국회 토론회(이재정, 고영인 의원실 주최)를 개최하기도 했다. 이 자리에서는 ‘전통의학 용어 표준 과정 4단계’5)가 제시되었다. 이뿐만 아니라 남북의 전통의학 연구자 네트워크 구축 및 학술 교류의 활성화를 추진하고, 국제사회에서 우리의 전통의학의 위상을 굳건히 하기 위한 남북 전통의학 협력 체계 구축 방안을 논의하는 등 다방면의 활동을 계획하고 있다.

한국에서 한의학은 여전히 치료 그 자체보다는 일상에서 건강을 보충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방도로서의 목적이 강한 것 같다. 이에 비해 북한의 고려의학은 상대적으로 ‘치료 중심적’인 면이 강하다. 북에는 감염성 질환의 발병 비율이 높지만, 이에 대한 반대급부로 고려의학적 치료 효과는 상당한 수준에 올라 있다. 이번 코로나19 백신과 관련해서도 입증되었지만, 신약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가장 어려운 것이 임상시험, 그중에서도 3상 과정이다. 3상은 인체를 통한 효과를 입증해 내야 하기 때문에 가장 많은 자본과 시간이 투입되어야 한다. 북은 바로 이런 과정을 이미 넘어서서 약재의 효과를 입증해 내고 있다. 북의 고려약재에 대한 선행 연구와 임상 결과에 남의 과학적 검증 및 연구 시스템, 의학 정보들이 뒷받침된다면 세계적으로 주목받을 수 있는 한방 치료법과 약재 개발도 먼 훗날의 일은 아닐 것이다.

남북 전통의학 협력은 반드시 필요하며 이를 위해 남북은 교류의 새로운 장을 열 수 있어야 한다. 남과 북의 의료계가 함께 협력하는 과정에서 태어나게 될 ‘통일의학’. 노벨의학상이 한반도의 ‘통일의학’에서 나오는 상상은 어떠한가. 통일의학으로 이뤄낸 노벨의학상. 생각만 해도 마음 뿌듯하고 설레는 우리의 미래다. 겨레말

  • 1)한국한의학연구원(2020), 「고려의학 현황과 남·북 전통의학 교류·협력 방안」
  • 2)기존의 현대 의학 또는 의술을 대신하여, 다양한 자연 요법을 이용하여 병을 치료하는 방법을 연구하는 의학.
  • 3)한의학적 이론에 기초하여 병을 진단하고 이를 종합·분석하여 음양, 허실, 표리, 한열 따위로 병증을 가리는 것을 이른다.
  • 4)결핵 치료 약제인 ‘이소니아지드’와 ‘리팜핀’에 모두 내성인 결핵을 말한다. 이 약제에 모두 내성을 가진 경우 일반 결핵에 비하여 치료 성공률이 현저히 떨어진다.
  • 5)전통의학 지식 공유, 용어 데이터베이스화(1단계), 남북 전통의학 비교 용어집 편찬(2단계), 남북 전통의학 용어 표준안 마련(3단계), 전통의학 표준용어 사전 편찬(4단계)
김지은
김지은
대성한방병원 부원장. 1988년 함경북도 청진의학대학 고려의학부 7년 과정을 마친 뒤 청진에서 소아과 의사로 의료 활동을 시작하였다. 2002년 한국 입국 후 2009년 한의사 국가고시에 합격하여 ‘남북 통합 한의사 1호’로 이름을 알렸다. 현재 대한여한의사회 홍보이사, 남북보건의료교육재단 운영위원을 역임하고 있으며 2019년에는 고려대학교 김신곤 의과대 교수와 남북보건의료교육재단의 팟캐스트 〈남의북의(南醫北醫)〉를 진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