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레의 창

언론 분야의 남북 교류를 말하다

- 어문 교류를 중심으로

이경우 서울신문 어문부 전문기자

이제는 ‘멀다’ 하면 안 될 것 같은 북녘. 그러나 어쩐지 북녘은 여전히 멀게만 다가온다. 무의식적으로 멀리해 그리된 것도 있고, 만나지 못해 몰라서 멀어진 것들도 있다. 남과 북 사이에는 정신적인 장벽과 물리적인 장벽이 나란히 놓여 있다. 서로 안다고 하지만, 모르는 게 더 많고 남북 관련 현안이 많아질수록 언론도 오해와 추측과 오보를 반복한다. 산 사람이 죽었다고도 하고, 숙청됐다던 사람이 다음 날 멀쩡하게 등장하기도 한다. 작은 것, 뒤쪽에 있는 것, 쉽게 확인하기 어려운 것들은 그냥 묻히고 덮인다. 그러는 사이 북에 대한 오해는 더 커지고 언론이 남북 화해와 신뢰에 도움을 주지 못한다는 지적도 받는다.

평화통일과 남북 화해 협력을 위한 보도 제작 준칙

광복 50주년을 맞은 1995년 8월 15일, 언론 3단체(한국기자협회·전국언론노동조합·한국피디연합회)는 ‘평화통일과 남북 화해 협력을 위한 보도 제작 준칙(아래 준칙)’을 제정했다. 분단된 조국의 통일이 온 겨레의 염원이라는 것을 잘 알고 불신과 대결 의식을 조장하지 말자는 반성에서 비롯한 준칙이었다. 준칙은 남북의 평화적 공존과 민족 동질성 회복에 힘쓴다고 밝혔다. 나아가 민족 공동의 이익을 증진하고, 남과 북이 단결해 자주적·평화적 통일을 이루도록 노력한다고 선언했다. 준칙은 남북의 언어, 문화, 생활, 관습, 가치관의 차이를 인정하고 객관적으로 인식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내용도 담고 있다. 선언의 의미는 컸고 이후의 남북 언론 교류 과정에서 그 정신은 유용한 지침의 구실을 하고 있지만, 25년이 흐른 지금 아쉽게도 이 준칙의 존재는 퇴색해 있다.
준칙은 상대방의 국명과 호칭을 있는 그대로 쓰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고 했다. ‘대한민국(약칭 한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약칭 조선)’으로 쓰자는 것이다. 남북의 현실을 인정하고 상호존중과 평화통일을 준비하자는 의미가 담겨 있었다. 하지만, 남북은 상호존중의 시간을 충분히 누리지 못했고, 이는 언론도 마찬가지였다. 인용하는 문장 속이 아니라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도 ‘조선’도 낯설고, 어색하고, 멀리해야 하는 명칭이 되어 버렸다. 누구에게나 익숙한 ‘북한’이어야 했다. ‘조미 정상회담’, ‘조중 정상회담’은 당치도 않았다. ‘북미(북중) 정상회담’이 그 자리를 내주지 않았다. 북쪽의 언론 역시 그들 방식대로 ‘대한민국’이나 ‘한국’ 대신 ‘남조선’을 택했다.
준칙에서 호칭은 좀 더 구체화해서 우리 방식처럼 북쪽의 인물도 성명 다음에 직책을 붙인다고 했다. 호칭은 비교적 이런 방향으로 정리돼 가고 있다. 남북이 좋았던 시기의 분위기가 만들어 낸 결과다. 2018년 4차 남북 정상회담에서 대부분의 언론에서 ‘리설주 여사’라고 칭한 것은 준칙 때문이라기보다는 당시 분위기와 정부가 선택한 방식을 따른 것에 가깝다. 결론이 같았더라도 미리 만들어 둔 준칙이 기준이 됐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남북 언론 교류 활동

프레스카드본격적인 남북 언론 교류는 2000년 6·15 남북 정상회담 이후 시작됐다. 정상회담 직후 남측 언론사 대표단의 방북이 이뤄졌다. 8월 11일 남북 언론사 대표들은 ①민족 단합과 통일 실현을 위한 언론 활동 ②비방과 중상 중지 ③교류를 통한 신뢰 확보 ④남측은 ‘남북언론교류협력위원회’가, 북측은 ‘조선기자동맹중앙위원회’가 맡는 접촉 창구 마련 ⑤북측 언론기관 대표단의 서울 방문 등 5개 항의 공동 합의문을 발표했다.
같은 해 9월에는 KBS가 조선중앙TV와 공동으로 백두산, 한라산 정상과 KBS 스튜디오를 연결하는 ‘백두에서 한라까지’를 방송했다. 10월에는 SBS가 ‘8시 뉴스’를 평양에서 생방송으로 진행하기도 했다. 2001년 6월에는 MBC가 ‘6·15 남북 공동선언 발표 1주년 기념 민족통일 대토론회’를 취재하기 위해 방북했다.
2001년 3월에는 ‘남북이 함께하는 잡지’를 표방한 《민족21》 창간호가 서울에서 발간됐다. 창간호에는 북쪽 《민족대단결사》 기자들의 축사,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 기관지 《조선신보》 평양 주재기자의 평양발 기사가 실렸다. 같은 해 8월에는 남측 기자협회와 북측 조선기자동맹이 평양 고려호텔에서 분단 이후 첫 회담을 가졌다. 기자협회는 남북 공동 보도 준칙 마련 등을 제안했다. 이어 2003년 10월에는 방송위원회 주최 ‘1차 남북 방송인 토론회’가 평양에서 열렸으며, 2005년 8월 2차 토론회가 금강산에서 개최됐다. 2006년 11월에는 금강산에서 첫 ‘남북 언론인 통일 토론회’가, 이듬해 11월에는 평양에서 ‘남북 언론인 대표자 회의’가 열렸다.
이 밖에도 2010년 3월 천안함 사태가 발생하기 전까지 다양한 언론 교류가 활발하게 이어졌다. 그럼에도 어떤 방식으로 보도하고 표현할 것인지를 담은, 추가적인 남북 공동의 보도 준칙은 마련하지 못했다.

2006년 3월 금강산에서 열린 제13차 남북 이산가족 상봉 행사의 남측 공동취재단이 철수하게 된 일은 남북 공동의 보도 준칙 마련과 공유의 필요성을 느끼게 해준 사건이었다. 북측은 남측 방송사들이 ‘납북’, ‘나포’라는 단어를 사용했다는 이유로 취재를 제한했다. 남측 취재단은 이러한 조치를 받아들일 수 없었고, 결국 철수를 결정했다. 기자협회는 성명을 통해 “납북인지 아닌지를 사실로써 입증해야 하며, 그것이 불가능할 경우 남북 사이의 공감대를 넓혀 나가는 노력에 언론이 앞장서야 한다”고 밝혔다. 기자협회는 남북 언론 분과위원회 간 협의를 거쳐 공동의 준칙을 제정하자고 촉구했다. 그러나 이와 관련해서도 이후 더 나아간 것은 없고 그 자리에 그대로 머물러 있다.

당시 언론을 비롯한 각 분야의 남북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한국어문기자협회(전국 신문사와 방송사의 어문기자와 아나운서가 모인 단체)에서도 ‘남북어문교류특별위원회’를 설치해 언론 차원에서 남북 어문 교류를 위한 준비에 들어갔다. 2000년 9월 금강산으로 간 배, 봉래호에서 ‘남북 말글 동질성 회복’이란 주제로 세미나를 개최하고 남북 언어의 현실과 동질성을 회복하기 위한 방법을 모색했다. 다만, 북측의 기자나 아나운서가 참여하지는 못했다. 2001년에는 남북 언론 용어를 비교한 『남북 매스컴용어 사전』을 발간했다. 한국언론재단과 함께 펴낸 이 사전은 남북 언론 교류 활성화를 위한 준비 작업이었다. 이 분야에서는 남북 최초의 사전이었다. 모두 4,500여 개의 표제어를 실었는데, 남북이 언론 분야에서 같이 쓰는 말, 달리 쓰는 말들을 비교해 엮었다. 남쪽에서 구할 수 있는 문헌 조사를 통할 수밖에 없었다는 한계가 있었다. 이후 개정판을 약속했으나 다시 내지 못하고 있다. ‘남북어문교류특별위원회’는 이후에도 토론회 등을 개최하며 지속적인 관심을 보였으나, 경색된 남북 관계에 따라 실질적인 교류까지는 이어지지 않았다.

언론 분야의 남북 교류 전망

2018년 4월 판문점에서 남북 정상회담이 다시 열렸다. 일촉즉발의 살얼음판이었던 남북 관계는 급반전을 이뤘다. 언론은 연일 ‘평화’와 ‘협력 시대’를 말했고, 이를 위한 각 분야의 논의는 또다시 뜨거워졌다.
언론은 남북의 언어 문제에도 이전보다 많은 관심을 가졌다. ‘낙지와 오징어’는 수시로 뉴스의 소재가 됐다. 남북의 언어 이질화가 심해져 우려된다는 종류의 뉴스였다. 서울말과 평양말이 본래 다른 데가 있었다는 사실에서 접근하지 않는다. 남쪽에서도 흔히 쓰이는 단어가 국어사전에 ‘북한어’라고 돼 있으면 걱정 어린 시선을 보낸다. ‘연신’이 ‘북한어’라고 사전에 올라 있던 시절 언론은 가차 없이 ‘연방’으로 바꿔 쓰려고 했다. 이런 태도가 지금도 크게 사라진 것은 아니다. 언론은 국어사전의 ‘북한어’라는 게 남쪽에서는 쓰지 않는 말, 써서는 안 되는 말이 아니라 정확하게는 북한의 표준어인 ‘문화어’라는 사실을 담백하게 전해야 했다. 최근 논란이 됐던 ‘삐라’도 이런 차원에서 다뤄야 했다고 생각한다.
남북 언론 교류의 목적은 정확한 보도로 평화통일에 기여하는 것이다. 남북의 언론에서 사용하는 언어를 이해하고 정리하는 것은 남북 언론 교류에서 중요한 디딤돌을 놓는 일이다. 보도용어 가운데에서도 생소하거나 바로 이해하기 어려운 말들이 적지 않다. 전문가나 전문용어 사전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오해할 수 있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다. 보다 원활한 교류와 소통을 위해서는 서로 달라진 단어의 쓰임새와 용어를 이해하는 건 필수라 하겠다.
이런 차원에서 개정판 『남북 매스컴용어 사전』은 남북의 어문기자, 아나운서, 관련 분야 전문가가 참여하는 방향으로 진행하는 것이 좋겠다. 2001년 발간 당시의 한계를 극복하고 보완하고자 노력하는 과정에서 또 다른 교류가 이루어질 수 있다. 남북 언론 언어가 어떻게 다른지, 서로 배울 점은 없는지를 꾸준히 토론해 나가는 자리를 마련할 수도 있다. 우리에게는 ‘남북의 평화적 공존과 민족 동질성 회복’, ‘민족 공동의 이익 증진과 자주적·평화적 통일’이라는 거창한 목표에 앞서 다시, ‘남북의 언어, 문화, 생활, 관습, 가치관의 차이를 인정하고 객관적으로 인식하기 위해 노력한다’고 했던 ‘보도 제작 준칙’의 정신부터 되새기는 시간이 필요하다. 여전히 통일을 노래하고 화해와 협력을 말해야 하는 시대다. 겨레말

이경우
이경우
서울신문 어문부장, 한국어문기자협회장을 지내고 현재 미디어언어연구소장, 서울신문 어문부 전문기자로 일한다. 저널리즘이 공정하고 객관적이기를 바라는 차원에서 저널리즘 언어가 올바르게 구현되도록 노력하고 있다. 각 분야의 언어가 저널리즘에 어떻게 수용되는지, 그 언어들은 어떤 배경에서 나왔고, 어떤 문제와 연결되는지에도 관심을 갖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