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풀이 깁고 더하기

사자후(獅子吼)

안혜지 겨레말큰사전 편찬원

날은 더워지는데 어디로도 떠날 수 없으니 집에서 영화를 본다. 영화 〈라이온킹〉을 재생하면 감염의 위험 없이 아프리카 속 ‘동물의 왕국’까지 한걸음에 도착할 수 있다. 아기 사자의 모험과 성장을 그린 이 영화에서, 주인공 심바의 꿈은 동물의 왕인 아빠를 닮는 것이다. 심바는 아빠처럼 되기 위해 ‘으르렁’ 우는 법을 배우려 하고, 포효하는 법을 배우기 위해 계곡에 갔다가 곤경에 빠지기도 한다. 영화는 성장해서 돌아온 심바가 아빠를 꼭 닮은 모습으로, 아빠가 서 있던 자리에서 포효하는 장면으로 끝이 난다.

사자의 울음소리는 백수의 왕으로서 사자가 가지고 있는 위엄과 용맹함을 상징한다. ‘사자의 울부짖음’을 뜻하는 어휘인 ‘사자후’도 비슷한 뜻을 담고 있다. 《표준국어대사전》(1999) 에서는 ‘사자후’를 다음과 같이 풀이하고 있다.

  • 사자-후 (獅子吼) 「명사」

  • 『불교』 부처의 위엄 있는 설법을, 사자의 울부짖음에 모든 짐승이 두려워하여 굴복하는 것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

  • 사자의 우렁찬 울부짖음이란 뜻으로, 크게 부르짖어 열변을 토하는 연설을 이르는 말.

  • 질투심이 강한 아내가 남편에게 암팡스럽게 떠드는 일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불경에서 ‘사자후’는 석가모니 설법의 위엄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되었다. 《전등록(傳燈錄)》에는 “부처가 태어나자마자 … 사자후 같은 소리를 내었다”는 기록이 있으며, 《유마경(維摩經)》은 “석가모니 설법의 위엄이 사자후 같다”라고 적고 있다.

불경 밖으로 나온 ‘사자후’는 그 의미가 확대되어 ‘크게 부르짖어 열변을 토하는 연설’의 뜻으로 쓰이게 되었다. 아래는 그 쓰임을 확인할 수 있는 용례이다.

정오 무렵 백범은 베란다에 모습을 드러내 사자후를 뿜어냈다.

“내 나이 일흔이 되도록 나는 독립운동에 몸 바쳐 왔소. 더 살면 얼마를 더 살겠는가.

여러분은 나에게 마지막 독립운동을 허락해 주오. 이대로 가면 조국은 두 조각이 나고 서로 피를 흘리게 될 것이오.”《안도섭: 명동 시대》

눈길을 끄는 것은 세 번째 풀이이다. 이 낯선 풀이는 한글학회의 《큰사전》(1950)1)부터 《표준국어대사전》(1999)까지 이어져 온 것으로 볼 수 있는데, 송나라 시인 소동파(蘇東坡)가 그의 한시에서 친구 진계상의 부인 하동 유씨가 진계상에게 소리 지르는 모습을 기록한 것에서 그 기원을 찾는다.2) 한편, 북측의 《조선말대사전》에서는 이 뜻갈래를 찾아볼 수 없다. 3)

실제 우리말에서 ‘사자후’를 이러한 의미로 사용하고 있을까? 겨레말큰사전 말뭉치에서 이 쓰임을 확인해 보았지만 세 번째 풀이에 해당하는 용례를 찾기는 어려웠다.

인옥이 발을 구르며 소리쳤다.

“여기가 너희들 연애장소야? 보자보자 하니까, 이제부터 돈내고 커피 먹어! …(중략)… 이 모양이니 제대로 된 손님이 오질 않지!”

그동안 참고참았던 불만들이 한꺼번에 터져나왔다. 이성을 잃은 채 사자후를 토해내는 인옥을 말리는 일은 쉽지 않았다. 《이지민: 오늘의 커피》

위 소설 속 인물 ‘인옥’이 토해 낸 ‘사자후’는 ‘남편’을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닌 가게의 사장으로서 ‘친구’들을 대상으로 한 분노의 표현으로 보인다.

문학 작품 바깥을 찾아보아도 ‘질투심이 강한 아내가 남편에게 떠드는 말’을 뜻하는 ‘사자후’를 확인하기는 어려웠다. 다음은 인터넷에서 확인한 ‘사자후’의 쓰임 중 주어가 여성인 경우를 골라 묶은 것이다.4) 이 역시 대체로 ‘남편’이나 ‘질투’와는 상관없는, ‘분노로 인한 고함’을 뜻하고 있다.

아이 재울 때마다 사자후를 지르게 돼요.

애한테 사자후 날렸네요.

‘사자후’의 세 번째 풀이는 ‘아내가 남편’에게, ‘질투심’을 기제로 ‘소리치는 것’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다소 조건적이고 특수하다. 오늘날 ‘사자후’의 세 번째 의미가 일상생활에서 거의 쓰이지 않고 고시의 한 구절로만 남아 있다면, 이러한 뜻갈래를 사전에 남겨두어야 하는지를 한번쯤 고민해 봐도 좋지 않을까? 뜻풀이를 ‘깁고 더하는’ 것만큼 ‘풀고 덜기’는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사전 속 ‘사자후’는 앞서 살펴본 세 번째 풀이의 문제뿐 아니라, 훨씬 보편적으로, 두루 쓰이는 의미가 빠져 있다는 문제도 함께 안고 있다. 아래 용례를 살펴보자.

세계챔피언에 올랐던 한 복서가 파킨슨병으로 투병중이라는 짤막한 기사였다. …(중략)… 노회한 챔피언을 마지막 라운드에 무너뜨린 뒤 내 사전에 판정은 없다고 사자후를 토한 것으로 유명했다. 《김경욱: 허리케인 조의 파란만장한 삶》

적장 역시 번개같이 내달아 여노의 앞에 버텨선 채 사자후를 뿜었다. “오호, 여노라! 고구려 제일장의 목은 내가 따리라! 나는 번 나발이다!”《김진명:고구려》

위의 용례는 2011년에 출간된 문학 작품들에서 발췌한 것이다. 화자의 주장이나 청중의 존재를 전제하는 연설 상황에 제한되어 쓰이던 ‘사자후’가 ‘감정을 담아 외치는 큰 소리 전반’으로 확대되어 쓰이는 것을 볼 수 있다.

앞으로 새로 쓰이게 될 사전들에서는 이러한 쓰임의 변화를 반영하여, 아래와 같이 ‘사자후’를 풀이하면 어떨까.5) 겨레말

  • 『불교』 부처의 위엄 있는 설법을, 사자의 울부짖음에 모든 짐승이 두려워하여 굴복하는 것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

  • 사자의 우렁찬 울부짖음이란 뜻으로, 크게 부르짖어 열변을 토하는 연설을 이르는 말.

  • 격렬한 감정으로 크게 부르짖어 외치는 것.

  • 1) 《큰사전》(1950)의 ‘사자후’ 풀이는 다음과 같다.

    사자-후 (獅子吼) 【이】

    사자가 한 번 소리를 지르면 짐승이 다 항복함과 같이 부처님의 한 설법(說法)에 악마(惡魔)가 기뻐 항복하는 것의 비유.

    크게 부르짖어 열변을 토하는 연설.

    질투(嫉妒)가 많은 여편네의 성내어 암팡스럽게 떠드는 일.

  • 2) 조기형 외(2011), 『한자성어·고사명언구사전』, 이담북스.
  • 3) 《조선말대사전》(2017)의 ‘사자후’ 풀이는 다음과 같다.

    사자-후 (獅子吼) 「명사」

    사자의 우렁찬 울부짖음.

    《열변을 토하는 연설》을 비겨 이르는 말.

  • 4) 제시된 용례의 주어가 여성이라고 판단한 것은 여성만 가입할 수 있는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해당 용례를 발췌하였기 때문이다.
  • 5) 아래의 풀이는 글쓴이의 견해로, 겨레말큰사전남북공동편찬사업회의 의견과 다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