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길재 겨레말큰사전 부장
10여 년 전부터 각종 매체에서 ‘뺑때바지’, 또는 ‘땡빼바지’에 대한 기사가 나오기 시작했다. 위 자료들은 한국 드라마나 영화 같은 영상물의 영향으로 북한 여성들 사이에서도 다리에 딱 달라붙는 ‘스키니진(skinny jean)’1)이 유행하고 있음을 전하고 있다. 편찬사업회에도 이 단어가 사전에 올라 있는 말인지, 정확히 어떤 모양의 바지를 가리키는지 궁금해 하는 전화가 많이 걸려 왔다.
북한에서, 1970년대부터 금지되다가 일터 밖에서 여성의 바지 착용이 허용된 것은 2009년 8월께이다.2) 그러나 여성의 바지 착용에는 ‘보기 좋고 점잖은 바지’를 입어야 한다는 조건과 ‘몸에 달라붙거나 꽉 끼는 바지, 아랫단이 넓은 바지’의 착용은 삼가라는 단서가 함께 붙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한에서 유행하는 청바지, 스키니진, 칠부바지 등을 입고 다니는 여성은 계속해서 늘었고 5년 만인 2014년, 다시금 여성의 바지 착용 금지 캠페인이 부활하기 시작했다. 미풍양속을 해친다는 이유로 옷차림에 제약이 많은 북한 사회에서 다리에 딱 달라붙는 ‘뺑때바지’를 입는 것은 꽤나 충격적이었을 것이다. ‘뺑때바지’, ‘땡빼바지’의 유행과 위력을 새삼 확인할 수 있는 단면이다.
‘뺑때바지’, ‘땡빼바지’의 ‘뺑때’, ‘땡빼’는 어디에서 온 말일까? 외래어일 가능성을 열어 두고 중국어, 일본어, 프랑스어 등을 찾아보았지만 이렇다 할 답을 얻지는 못했다. 그러던 중 1942년에 간행된 문세영의 《수정증보 조선어사전》에서 그 실마리가 될 단어를 찾을 수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뺑때쑥’이라는 식물명이었다. ‘뺑때쑥’은 ‘자라서 줄기가 길게 나온 쑥’이라고 풀이되어 있다. 이 ‘뺑때쑥’은 현재 ‘뺑대쑥’으로 그 표기는 달라졌지만3), 《표준국어대사전》(웹)과 《조선말대사전 증보판》(2017)에도 실려 있는 말이다. ‘뺑쑥’이라고도 한다.
이 ‘뺑대쑥’, ‘뺑쑥’의 줄기가 곧 ‘뺑대’이다.
남과 북의 두 대사전에서 ‘뺑쑥’의 풀이는 아래와 같이 풀이되어 있으며, ‘뺑대’는 모두 ‘뺑쑥의 줄기’라고 풀이되어 있다.
《표준국어대사전》(웹)
뺑-쑥 [뺑ː-] 「명사」 『식물』국화과의 여러해살이풀. 줄기는 높이가 1미터 정도이고 두툼하고 단단하며 자주색이다.
《조선말대사전 증보판》(2017)
뺑-쑥 [명]국화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풀의 한가지. 뿌리줄기는 가늘며 옆으로 뻗는다. 줄기는 곧추 자라며 높이는 70∼120㎝정도이다.
‘뺑때바지’는 그 바지를 입었을 때 다리에 딱 달라붙은 모습을 곧게 뻗어 자란 ‘뺑쑥’의 줄기, ‘뺑대’를 통해 형상화한 것으로 보인다. ‘뺑때바지’는 ‘뺑대’와 ‘바지’가 결합된 ‘뺑대바지’를 소리 나는 대로 표기한 것, 그리고 ‘땡빼바지’는 이 단어에서 음운 도치가 일어난 어형으로 설명할 수 있다. 외래어 ‘스키니진’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재치 있게 바꾼 ‘뺑때바지’와 ‘땡빼바지’. 새로운 문화와 함께 생겨난 이 새말처럼 북한의 여성들도 다시 다양한 디자인의 바지들을 자유스럽게 입고 다닐 수 있는 날을 누리기를 바라본다.
청바지를 이르는 말. 종아리와 발목 부분의 폭이 좁은 것이 특징이다.’로 풀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