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레의 창

제1회 유네스코·겨레말큰사전 국제학술포럼을 준비하며

홍종선 겨레말큰사전 남측 편찬위원장

2019년은 유네스코가 토착어의 보전에 커다란 관심을 가지고 선포한 ‘토착어의 해(International Year of Indigenous Languages)’이다. 유네스코는 이와 관련하는 사업을 앞으로 10년 동안 지속한다고 한다. 세계에는 약 7,000개의 언어가 있는데, 이 가운데 세계인 97%가 사용하는 언어는 고작 4% 정도에 못 미치고 토착어의 40% 정도가 소멸 위기에 놓여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제주어도 소멸 바로 전 단계에 속한다. 지역어(방언)를 포함하여 모든 언어는 각기 그가 속한 사회의 문화적 성취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으므로 인류의 언어는 곧 인류의 문화적 총체를 뜻하는 것이다. 겨레말큰사전에서는 남과 북 그리고 해외의 우리 민족이 사용하고 있는 우리말의 표준어/문화어는 물론 각 지역어, 현장어, 문헌어 등을 망라하는 조사를 하여 올림말로 거두는 사전을 편찬함으로써 소외되어 있는 각 지역과 영역의 언어까지 모으며 민족어의 자산을 넓히고 있다.

언어는 일상적인 사회생활은 물론 거의 모든 전문적인 영역에 이르기까지 문화를 축적하고 서로 간에 소통하는 기본적인 수단이다. 이러한 언어가 지리적, 정치적 또는 사회적 요인으로 제대로 소통 기능을 하기 어려운 조건에 놓이면 그 구성원들은 그만큼 위축되고 불행해질 수밖에 없어 이를 극복해 내는 일이 하루빨리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는 지구상에서 이러한 문제에 관한 한 어느 나라나 지역보다 심각한 상태이다. 겨레말큰사전은 남북으로 분단되어 서로 단절해 온 70여 년을 극복하는 데에 가장 적극적으로 앞장서서, 남북의 우리말을 모은 사전을 만들어 우리 겨레말을 통합 보전함은 물론 이를 기반으로 남북통일을 앞당기는 토대를 쌓아가고 있다.

유네스코와 겨레말큰사전남북공동편찬사업회는 이와 같이 언어의 보전에 대하여 뜻을 같이 하여 작년 말에 이와 관련하는 학술 포럼을 갖기로 합의하였다. 이에 따라 겨레말에서는 금년 11월 제1회 포럼을 프랑스 파리에서 개최하기 위해 곧바로 준비위원회를 구성하여 발표 주제들을 논의하고 해당 분야의 전문가들을 세계에서 찾아 발표자로 초빙하기 시작하였다. 3월 초 현재 발표자와 토론자 및 사회자 등 참여 인원을 대부분 확보한 상태이다.

제1회 유네스코·겨레말큰사전 국제학술포럼은 유네스코와 겨레말이 추구하는 공통의 과제인 ‘토착 언어의 보전’을 중심으로 세부 주제들을 선정하여 2020년 11월 10-11일 이틀간 진행할 예정이다. 첫날에는 토착 언어의 보전/소수 언어에 대한 조사와 연구, 둘째 날에는 ‘분단 언어의 통합과 겨레말큰사전’이라는 주제로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내용을 갖는 발표와 토론이 계획되어 있다. 발표자는 기조 강연을 포함하여 현재 9개국의 12명이며, 토론자와 사회자를 포함하면 모두 10개국 이상이 되는 커다란 논의의 장을 마련하는 것이다. 세부적인 계획은 앞으로 유네스코 측과 논의를 더 진행하면서 다소 수정이 있겠지만, 발표와 토론의 내용은 대략 아래와 같다.

  • 1. 토착 언어의 보전/소수 언어에 대한 조사와 연구

    • (1) 글쓰기를 통한 라틴아메리카 선주민 언어의 보전
    • (2) 글쓰기를 통한 남아프리카공화국 선주민 언어의 복원 운동
    • (3) 프랑스의 소수언어 정책
    • (4) 동남아 및 중앙아시아, 중국 지역의 소멸 위기어 조사 : 서울대 언어학과
    • (5) 소수자 언어 캠프 사례 : ‘숲속의 호수’(한국어) 등 15개 언어
    • (6) 겨레말큰사전 편찬사업의 지역어 조사와 채집
  • 2. 분단 언어의 통합과 겨레말큰사전

    • (1) 독일 통일 이후 동·서독 지역어의 실태
    • (2) 중국과 대만의 언어 통합 사전 : 양안 사전
    • (3) 겨레말큰사전 편찬사업에서 해외 교민의 한국어 조사와 채집
    • (4) 남한과 북한의 언어 통합 사전 : 겨레말큰사전
    • (5) 겨레말큰사전의 편찬과 민족어의 미래

‘토착 언어의 보전/소수 언어에 대한 조사와 연구’ 주제는 세계의 다양성 존중 기반에서 소수 언어를 보전하려는 취지를 살리는 것이며, ‘분단 언어의 통합과 겨레말큰사전’에서는 문화적/정치적 단절 상황을 언어를 통해 극복하면서 서로 간에 이해와 소통을 높이는 문제에 유의한 주제이다. 특히 겨레말큰사전에 관해서는 사전의 성격과 편찬 의의, 그리고 국내와 해외 지역어의 수집 등을 중심으로 하는 사전 편찬 진행 상태 등 여러 면을 남과 북의 발표자들이 조명한다. 각 발표와 토론은 대부분 이론을 앞세우기보다 실제 사례에 근거하여 논의함으로써 현실감을 높인 실질적인 내용이 될 것이다.

이와 같은 ‘유네스코·겨레말큰사전 국제학술포럼’은 한국어도 자유로울 수 없는 소수자 또는 소멸 위기어 언어에 관하여 다른 언어권을 관찰하면서 국제적인 관심에 동참하는 의미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그것은 개별 언어 차원과 더불어 지역어에 이르기까지 조사와 보존을 위한 적극적인 정책과 연구 그리고 사전에서의 수용 등을 어떻게 해 나갈 것인가에 근거를 마련하는 것이다. 또한, 분단 상황에 놓인 우리말의 실태를 국제 사회에 알리고 미래지향적인 통합 발전의 방향도 모색하게 된다. 겨레말큰사전으로서는 이러한 학술 포럼을 통해 우리의 사전 편찬 내용을 국제 학계에 소개하면서 국내외 호응의 동력을 더 확보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이번 국제학술포럼은 일회성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연차적으로 2회, 3회 계속 이어나갈 것이다. 학술 발표와 토론에서도 남과 북은 자주 만나서 함께 논의하는 기회를 많이 가져야 한다. 국내에서도 그렇지만 이렇게 해외에서 남과 북이 같은 주제를 놓고 고민하면서 발표와 토론을 함께하는 장면은 국내외에 긍정적인 인상과 효과를 크게 보일 것이다. 이렇듯 겨레말큰사전 편찬사업은 단순히 남과 북의 우리말을 모아 내는 작업을 넘어서 우리 민족이 가진 우리 언어문화의 총화를 충실하게 가꾸어 우리말과 문화의 내일을 풍성하게 열어 가고 남북통일을 이끄는 민족적 사업이다. 이를 이번 기회에 그리고 앞으로 기회를 더 가져서 국내외에 널리 알리고 외부의 지혜를 받아 보태는 일에 우리는 게으르지 않을 것이다. 겨레말

홍종선
홍종선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 학사, 고려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석사/박사, 전주대학교 국어교육과 교수,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를 역임했으며 현재 고려대학교 명예교수, 겨레말큰사전 남측 편찬위원장으로 재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