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덕 겨레말큰사전 선임편찬원
해마다 봄이 되면 함께 사는 노모가 근처 꽃집에 가서 여러 종류의 씨와 모종을 사와 옥상에 마련한 자그마한 밭에 뿌리고 심어 가꾼다. 주로 봄, 여름 식구들이 먹을 상추, 고추를 기른다. 덕분에 봄, 여름에는 누구보다도 싱싱하고 파릇파릇한 상추와 고추를 맛볼 수 있다. 때로는 가족이 먹기에 차고 넘쳐서 이웃들과 나누어 먹기도 한다. 어느 해인가는 생강도 심어 김장 때 요긴하게 쓴 적도 있다.
요즘은 옥상이나 베란다 한구석에 텃밭을 가꾸는 가정이 많다. 내 아이들이 먹는 것은 좀 더 자연에 가까운 것으로 먹이고 싶어서, 생명이 자라는 것을 보며 소소한 행복감을 느끼려고…. 다양한 이유로 텃밭을 가꾼다.
할머니는 텃밭에 배추와 무를 심어서 김치를 담가 시장에 나가 파는 일을 하셨습니다.《김채원: 겨울의 환》(남)
정원에는 터밭도 푼푼하여 감자와 무우, 배추, 고추를 비롯한 신선한 남새가 풍성하게 자랐고 다행스럽게도 건강하고 부지런한 마누라는 돼지, 닭, 염소를 애착을 기울여 길러서는 식탁을 기름지게 했다.《조인영: 생명》(북)위의 용례는 하나는 남쪽 작품이고 하나는 북쪽 작품이다. 용례를 보면 남북이 같은 의미로 쓰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 남, 북 국어사전의 풀이는 거의 같다. 아래는 《표준국어대사전》(웹사전)과 《조선말대사전》(2017)의 ‘텃밭’ 풀이이다.
《표준국어대사전》
《조선말대사전》 1)
《표준국어대사전》과 《조선말대사전》의 첫 번째 풀이를 보면 거의 같은 의미로 사용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조선말대사전》의 두 번째 풀이는 북에서만 쓰이는 의미이다.) 그런데 최근 신문, 잡지 등을 보면 위의 뜻 외에 사용되는 경우를 꽤 볼 수 있다.
위의 글귀는 다음 달에 있을 4.15 총선을 앞두고 심심찮게 볼 수 있는 기사이다. 시사에 조금만 관심이 있다면 자주 보게 되는 문구일 것이다. 위 기사에서의 ‘텃밭’은 사전에 나와 있는, 채소나 곡식을 심어 가꾸는 밭의 의미와는 다르다.
당원단합 및 경제살리기 결의대회에 함께 참석, ◯명예총재 텃밭을 공략했으며…. <조선일보 1997.11.22.>
따라서 ◯◯의 이번 대전행은 지역정서를 다소나마 되돌려 보겠다는 ‘텃밭 지키기’ 행보로 해석된다는 것. <동아일보, 1999.10.13.>본래 실물로 존재하는, 내 소유의 밭이라는 의미로 쓰였던 것이 나에게 우선권이 있는 것이라는 추상적 의미로까지 확대되어 쓰이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쓰임은 최근에 갑자기 나타난 것은 아닌 것 같다. 위의 기사를 보면 20년 이상 쓰여 온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이 쓰임을 인정하여 새로운 뜻갈래 자격을 주어도 좋지 않을까 한다. 3)
《겨레말큰사전》에서는 기존에 사전에 실렸던 풀이와 함께 새로운 뜻을 추가해서 아래와 같은 방식으로 ‘텃밭’을 풀이하면 어떨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