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길재 겨레말큰사전 부장
北매체 "남조선당국 푼수 없는 자랑질…미국 눈치만 살펴"
올 연초에 발표한 우리 정부의 남북 대화 및 협력 의지에 대한 북 매체의 반응을 인용한 한 인터넷 신문의 헤드라인이다. 이 기사의 본문에는 헤드라인 말고도 북 매체의 보도 내용을 인용하여 전하고 있는데, 두어 군데에서 ‘자랑질’의 쓰임을 더 찾아볼 수 있다.
‘자랑질’은 남에서뿐만 아니라 북에서도 비하의 뜻을 가지는 모양이다. 겸손의 미덕을 중요시했던 우리 사회에서 자신을 남에게 드러내어 뽐내는 ‘자랑’은 이미 남에서나 북에서나 가치중립적인 말이 아닌가 보다. 접사 ‘-질’은 원래는 명사와 결합하여 ‘행위의 반복’을 나타내는 말이었다(가위질, 도마질, 양치질, 칼질 등). 그러나 부정적 의미를 갖는 명사와 결합하게 되면 비하의 뜻을 더하게 된다.
‘선생’이나 ‘목수’는 사전적 의미로만 보면 분명 가치중립적인 말이다. 그러나 ‘선생’에 대한 사회적 낙인은 결국 ‘-질’이 결합된 ‘선생질’에 비하의 의미를 더하게 된다. ‘목수질’이 그렇고 ‘자랑질’도 마찬가지이다. 남에서는 비하의 의미를 갖는 ‘교원질’이나 ‘목수질’이 북에서는 비하의 의미를 갖지 않았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요즘 들어 ‘선생질, 목수질’과 같은 부류의 어휘들이 북에서도 점차 비하의 의미를 갖게 된 것으로 보인다.
한중 수교 이전까지 북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았던 중국 동포 언어사회에서는 여전히 비하의 의미를 갖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몇 해 전인가 연변대학을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당시 만남의 자리에서 동행했던 국립국어원 원장에게 “선생은 원장질을 몇 년이나 하셨습네까?”라고 묻는 대학 관계자 말에 적잖이 당황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북이나 중국 동포 사회에서는 남에서는 전혀 볼 수 없는 ‘어머니’나 ‘삼촌’ 등과 같은 친족 관련 호칭어에도 ‘-질’이 결합되어 사용되기도 한다.
이뿐 아니다. 중국 동포의 소설에서는 ‘남편질, 동생질, 부모질, 사촌질, 아빠질, 엄마질, 오빠질’과 같은 말들도 자연스럽게 쓰이고 있다. 그런데 ‘어머니질’이나 ‘아버지질’ 등이 남에서는 마치 입에 올려서는 안 될 금기어처럼 느껴지는 까닭은 뭘까? 이는 남에서 ‘-질’이 부정적인 뜻으로 너무 많이 쓰이기 때문은 아닐까. 북에서 쓰인 용례는 찾아볼 수는 없었지만 북의 ≪조선말대사전≫에는 ‘일정한 노릇’의 뜻을 더하는 접사 ‘-질’의 풀이에서 그 예로 ‘며느리질’과 ‘삼촌질’을 들고 있다. ‘어머니질’ 등에 쓰인 ‘-질’은 ‘짓’이나 ‘짓거리’가 아니라 ‘노릇’을 뜻한다.
요즘 우리 시대의 화두 중 하나는 다문화이다. 비록 북이나 남, 중국 동포 사회에서 우리는 하나의 언어를 사용하고 있는 것 같지만 그 언어가 담아내는 문화는 서로 이질적일 수도 있다. 이러한 언어문화가 갖는 이질성을 정확히 들여다보는 것도 앞으로 통일시대를 살아가는 큰 힘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김동환의 시 ‘국경의 밤’의 한 구절이 언뜻 머리를 스쳐 지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