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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 탐구

90년대생 언어 트렌드

_ 노지영 / 문학평론가

“선생님께선 인싸십니까, 아싸십니까? 이런 용어를 아십니까?” 지난 학기 수업에서 어떤 학생이 대뜸 발표를 하다 물었다. 화법 수업을 할 때 대화가 단절된 사례를 찾아보는 과제를 내주면 학생들은 급식체니, 야민정음이니, 당대에 유행하는 각종 신조어와 은어 등을 곧잘 찾아서 발표하곤 했다. 그날의 수업도 그런 소재를 선택한 발표였다. 소위 ‘인싸력(‘인사이드’로 진입한 이들을 뜻하는 말의 콩글리시 약칭인 insider에 한자 ‘력(力)’을 결합한 말로, ‘무리의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능력치’란 의미로 사용)’을 테스트한다면서 학생들이 흥미로워할 만한 신조어들을 나열해놓고 이전 세대라 여겨지는 선생에게 즉흥적으로 질문하여 발표의 주목도를 높이려는 것 같았다. 나는 공연히 학생 세대에게 밀릴세라 급작스러운 질문에 다음과 같이 대답한 것 같다. “물론입니다. 십여 년도 전에 ‘아싸’ 문화와 ‘인싸’ 문화에 대해 글을 쓴 적도 있습니다만 그에 대해서는 ‘할많하않(할 말은 많지만 하지 않겠다)’입니다.” “오오….” 학생들이 감탄사로 반응해준다. 저 반응발화로서의 리액션은 발표 주제와 단절되지 않으려고 용을 쓰는 기성세대의 노고를 존중해주는 것인지, 신조어를 허세스럽게 사용한 것에 대한 야유인지, 아니면 그렇게 안 봤는데 제법이라는 인정인지 알 수 없다.

최근 인터넷 사회관계망을 중심으로 “이거 알면 인싸 ㅇㅈ(인정)”이라는 말이 대유행하며, 신조어를 대상으로 한 인정 투쟁이 심화되는 느낌이다. 기원을 유추하기 힘든 신조어, 축약어들이 각종 예능의 자막에서 횡행하고, 이러한 언어는 인스타나 유튜브와 같은 다변화된 미디어를 통해 교정 자체가 어려운 ‘짤’과 같은 형태(meme)로 전파된다. 초성어나 낯설고 난해한 신조어들을 퀴즈로 맞춰보는 교양 콘텐츠도 방영되면서, 일상생활의 언어는 인터넷 언어처럼 끊임없이 탐색해야 할 링크들을 포함한 언어가 되었다. 익스플로러 상용 시대, 이젠 언어생활에서도 모두가 익스플로러들이 된 것 같다. 그 속에서 흥미로운 퀴즈에 답해가며 문화적 동질성을 인정받고 함께 어울리려는 ‘인싸족’들이 있지만, 동시에 새로운 신조어를 광대무변하게 생성해내는 ‘핵인싸족(인사이더 중의 인사이더)’들의 창의적 원심력으로 인해 새로운 세대와의 극심한 언어장벽을 고백하는 사람들도 덩달아 늘어가고 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생활세계 어디서나 신조어는 생멸하고 있었고, 풍속적 금칙어를 통해 언어의 변형적 사용도 공공연하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특히 디시인사이드 갤러리 등에서 활동하는 ‘덕후’들의 은어로 번지기 시작한 하위문화의 신조어들은 지엽적이고 전문적인 것들에 대한 설명들과 그것들의 신박한 활용에 경탄하면서 탄생한 언어들이 상당수라 태생 자체가 반 의사소통적 특성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의 출현 이후, 비주류의 하위문화 언어들이 주류의 언어들로 전환되고 유통되는 속도가 매우 빨라지며, 그 언어들의 지위가 격상되었다. 원래는 아웃사이더를 자처하던 소수들이 공유하던 언어들이었지만, 이제는 그것에 대한 이해와 소통이 어려울수록 해독의 욕망을 불러오는 인사이더들의 코드가 된 것이다. ‘핵아싸족’의 언어가 ‘핵인싸족’의 언어로 변신하는 마법 앞에서, 이러한 언어 사용에 능통하고, 때로 기성사회에 문화번역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현재의 청년층의 언어적 위치가 더욱 중요해졌다.

이러한 청년층이 보여주는 세대적 특징을 미국의 세대 전문가인 닐 하우(Neil Howe)와 윌리엄 스트라우스(William Strauss)는 일찍이 밀레니얼 세대라는 범위를 통해 이야기한 바 있다. 밀레니얼 세대란 198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출생한 세대, 즉 새로운 밀레니엄 이후 성인이 되어 트렌드를 선도하는 세대로, 어린 시절부터 디지털 언어를 자유롭게 사용하여 자기표현을 해온 세대를 일컫는다. X세대 이후에 출현하여 2000년대의 주역이 될 이러한 세대를 다른 이름으로 Y세대라고 칭하기도 하고, 또 Y세대 이후 1995년 이후부터 2000년대 90년생이온다책중반까지 출생한 그룹들을 Z세대로 묶어 미디어 민감도가 강해진 세대의 자기표현적 특성을 일별하는 움직임도 있다. 이러한 논의의 연장에서 디지털 네이티브를 넘어 아예 앱 네이티브(App Native) 세대로 살아온 90년대생 청년층의 언어문화를 상세히 관찰한 저서도 최근 들어 더욱 화제가 되고 있다. 사회 각 층의 리더들에게 다양하게 인용되고 있는『90년생이 온다』(임홍택)라는 책에는 30대 이하, 90년대생의 언어 사례가 비교적 우호적으로 제시되어 있어, 굵직한 기존의 세대론과는 달리 이들 세대가 차지한 문화적 위상을 언어 특성의 틀을 통해 조감할 수 있게 해준다.

위의 책의 저자인 임홍택은 90년대생의 공통적인 첫 번째 특징으로 ‘간단함’을 추구하는 경향을 꼽는다. 이러한 경향은 줄임말을 사용하는 90년대생들의 언어습관에서 잘 드러나는데, 저자는 이를 크게 축약형, 초성형, 합성형, 오타형으로 유형화하여 설명한다. 위에서 언급한 ‘할말하않’이 일반적인 문장을 줄여 쓴 ‘축약형’이라면, 인정을 ‘ㅇㅈ’과 같이 ‘초성형’으로 표기하는 것이 극단적인 축약형의 사례가 될 것이다. ‘인싸력’과 같이 기존에 있는 단어와 용어(외국어나 한자 포함)들을 둘 이상 조합하여 ‘합성형’의 단어가 나오기도 하고, ‘덕후’와 같이 기존의 오타쿠란 말을 고의적으로 변형하거나 실수를 무교정한 ‘오타형’ 언어들이 출현하기도 한다.

이 글에서 위의 언어 사례들을 다 활용해가며 서술한 것처럼, 90년대생들이 간단하게 줄여 사용하는 이러한 언어들은 단지 학령 시대의 은어로 사용되다 소실되는 것이 아니다. 90년대생이 경험하고 활동하는 모든 영역에서 이어지며, 일상생활에 전방위적으로 침투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소위 ‘병맛’으로 불리는 하위 언어가 탐색적 재미와 오락적 요소들을 통해 일상언어로 편입되며 기성의 언어 체제를 위협하기도 한다.

괄도네넴띤 세대별 은어와 신조어라는 문화사적 상수(常數)를 두고 최근에 대놓고 우려하는 목소리가 많아진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90년대생의 언어사용방식이 또래 세대의 아웃사이더 문화에 그치지 않고 다양한 사회문화적 현상들을 견인하고 있다. 이러한 언어는 또 재밌기까지 하여 신자유주의의 소비시장과 결합했을 때 파급력도 높다. 즉 그들의 언어는 차별성과 특이성을 가진 하나의 아이템이 되어 기성의 멘토들이 역멘토링 받아야 할 사업기획의 새로운 방향들을 제시한다. 초성을 활용한 마케팅이 실시간 검색창에 오르고, 신세계의 ‘쓱(SSG)닷컴’이나 ‘괄도네넴띤(팔도비빔면)’ 등 ‘야민정음(모양이 비슷한 글자들끼리 서로 바꿔 쓰는 것)’에 기반한 마케팅들이 연타로 흥행에 성공하면서 이러한 소비 문법은 기성세대가 외면할 수 없는 새로운 소통 체계로 등극했다.

90년대생들은 이전 세대들의 언어에 대한 사용방식의 차별성을 드러내며 문화적 정체성을 드러내고 있다. 물론 한쪽에서는 이들을 비판하며, 가상 세계에서 자기 취향을 자랑하는 일이 전부인 세대라고 독설을 퍼붓기도 하지만, 이들 새로운 세대는 그런 담론들을 ‘라테이즈홀스(latte is horse, ‘나 때는 말이야’)’라고 발랄하게 응수하며, 기성세대의 경험자산을 조롱하기도 한다. 이러한 B급 ‘갬성’을 가진 언어들은 대문자 진리나 A급의 공인된 경제가치 등을 비웃으면서 더욱 특이하고 희소한 언어적 감각에 열광한다. 욕망의 변동 속에서 새로운 ‘인싸’의 장을 개방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지금의 90년대생들은 자기 스스로의 언어를 차별화하며 자아실현을 하는 동시에 그 언어를 기성세대에 문화 번역하며 기성의 사회적 규범에 순응하기도 하는 이중적 존재다. 그리하여 기성체제 안에서 ‘인싸족’이 된다는 것은 언어의 차별화와 정상화(normalization)의 경계를 오갈 수 있는 문화자본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반면 규범에서 벗어난 일탈을 문화적 정체성으로 삼으며 스스로를 유폐시키는 ‘아싸족’들이 있다. 더더욱 특이한 것을 추구하려는 욕망 속에서 이들은 외계어를 실험하고, 언어유희와 기호놀이 자체에 탐닉한다. 어떤 소설가의 말처럼, “기의와 기표의 약속이 무참히 깨지는” 장면들을 지속적으로 목격한 세대이기 때문일까. 대문자 진리를 상실하고 초월적 시니피에가 부재한 오늘날의 사회에서 이들은 소통의 규칙을 중시하지 않고, 자신이 즐기는 언어놀이 자체에 주력한다. 그리하여 이들이 사용하는 조롱과 풍자의 B급 언어는 맥락과 심층이 없이 부유하기 일쑤다. 때로 혐오언어와의 경계를 넘나들며 사용자 스스로를 고립시킬 때도 많다. PC(Political Correctness) 언어를 냉소하며 과잉의 언어 실험이 이어질수록, 이들은 주류 문화에서 추방되며, 윤리적으로까지 지탄받는 것이다.

‘아싸’ 문화에서 기원한 이러한 신조어들을 ‘인싸’의 장이 훔쳐가면서 대중들에게 불통의 피로도가 심해지는 것은 정해진 수순이다. ‘인싸족’들이 시장에서 신조어를 활용하여 ‘대세’의 트렌드를 획득할 때 한편에서는 시장에 전시되는 언어에서 일탈하며 비주류의 울분을 토로하는 ‘아싸족’들의 문화적 투쟁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의미’ 대신 ‘재미’를 선택한 이들이 있고, ‘재미’를 통해 ‘의미’를 추구하는 이들이 있다. 전자는 의미를 환멸하고, 후자는 언어의 정서적 기능이 재미에 한정되지 않는다는 것을 입증하며 대세의 신조어를 의미 있는 문화자본으로 등록한다. 뭐든지 양극화되어가는, 여기도 ‘인싸독식’의 세계다. 겨레말

노지영



| 노지영 |

문학평론가. 2010년『내일을 여는 작가』,『시인』지를 통해 평론 활동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