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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찾은 겨레말

누가 나에게 이익을 가져다줄까

_ 이상배 / 동화작가

‘사소한 일에 목숨 건다’는 말이 있습니다.
동물들이 중요하지 않는 일을 가지고 서로 다투고 있습니다.

동물들이 소풍을 가고 있습니다. 소와 말, 당나귀는 어깻바람이 났습니다. 평소에 너나들이로 지내는 사이입니다. 하지만 다툴 때도 있지요.
소 너른 버덩을 지나 가파른 고개티를 넘자 양쪽에 물이 흐르는 좁은 길이 나왔습니다.
세 동물은 갑자기 앞장서 가려고 몸싸움을 벌였습니다.
무엇 때문에 서로 한 발이라도 앞에 가려고 하는 것일까요?
세 동물 다 이런저런 이유가 있습니다.
먼저 소가 나섰습니다.
“나는 사람들이 기르는 집짐승 중에서 가장 몸집이 크고 힘도 세지. 힘든 농사일 다하고, 무거운 짐 져 나르고, 내가 하는 모든 일은 생산적인 거야. 또 값으로 쳐도 가장 비싸고. 이 정도면 내가 맨 앞에 가도 되지 않겠나.”
말 “점잖은 소답지 않게 무슨 억보소리 인가?”
말이 나섰습니다.
“똑같은 일을 해도 질적인 차이가 있지. 내가 하는 일은 고귀한 일에 속하지. 주인이 행차를 할 때 나를 타고 가지 않는가. 또 빨리 달리는 재주를 가졌으니 당연히 내가 앞에 가야지.”
“고귀하다고? 숫되기가 어린 강아지 같군.”
당나귀가 나섰습니다.
“둘 다 구성없는 소리 말게. 길을 가는데 떡심이 있고 고귀하면 무엇 하겠나. 평소에 가장 부리기 좋은 동물이 누군가. 작은 짐, 큰 짐 할 것 없이 등에 지고 발 빠르게 져 나르는 게 누구냐고. 나는 안 가본 길이 없어. 이 길도 눈 감고 갈 수 있으니 내가 앞장서 길을 열겠네.”
당나귀가 앞으로 나가자, 소와 말이 큰 소리로 을러댔습니다.
당나귀 “음매, 당나귀가 그러면 안 되지.”
“히힝, 그러면 정말 재미없어.”
당나귀는 주춤거렸습니다.
“이 문제는 우리가 판단할 일이 아니네. 공정한 판정을 사람에게 맡기자.”
말이 말하자 소와 당나귀가 찬성했습니다.
그때 마침 장터에 가는 세 사람이 걸어오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하자고. 자기가 왜 맨 앞에 걸어가야 하는지를 설명해서 두 사람의 찬성을 얻는 동물이 앞에 가는 것으로.”
말이 의견에 소와 당나귀가 좋다고 하였습니다.
세 동물과 세 사람이 마주 보고 섰습니다. 소가 먼저 말했습니다.
“저희들이 소풍을 가고 있는데, 한 가지 문제가 생겼습니다.”
“어떤 문제인데?”
밀 농사를 짓는 농부가 물었습니다.
“보다시피 앞에 길이 좁아서 나란히 줄을 서 걸어야 하는데 누가 맨 앞에 걸어가고, 그 뒤에 누구, 또 그 뒤에 누가 따를 것인지를 두고 다투고 있습니다.”
“후후, 그래서 누가 앞에 가기로 했나?”
논밭 농사를 짓는 농부가 물었습니다.
“그야 물론 덩치 큰 소가 맨 앞에 가야 한다고 했지요.”
소는 자신이 앞에 가야 하는 이유를 말했습니다. 소의 말을 듣고 난 농부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당연히 소가 앞에 가야지. 소는 농가의 큰 재산이야.”
그러나 다른 두 사람은 고개를 가로저었습니다.
“그렇게 두남두면 안 되지요.”
세 사람 중, 말 목장 주인이 말에게 물었습니다.
“현명한 말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방금 말씀하신 대로 현명한 말이 맨 앞에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고말고. 모름지기 지혜로움이 최고지. 말이 맨 앞에 가는 것은 정해진 순서일세.”
그러나 농부와 밀밭 주인은 고개를 저었습니다.
당나귀가 나섰습니다.
“다른 것보다 누가 이 길을 잘 아느냐. 나는 밀가루 짐을 지고 이 길을 수십 번도 더 가보았지요.”
“내 생각도 그러네. 길을 잘 아는 당나귀가 앞에 가는 것이 당연하지.”
밀밭 주인이 거들고 나섰습니다.
세 동물 중 어느 동물도 두 사람의 찬성을 얻지 못했습니다.
그러자 말이 벌컥 화를 냈습니다.
“사람들도 벅벅이 우리와 똑같아.”
말 목장 주인이 그 말을 받았습니다.
“이런 투미한 동물 같으니. 그럼 너는 내가 소의 의견을 따르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느냐?”
결국 세 동물은 소풍 길에서 뒤돌아섰습니다.

참참, 사람들도 굴퉁이지요. 무조건 자신에게 이익을 가져다주는 쪽 편을 들고 나서니 말입니다. 겨레말

동화에 나오는 순우리말 뜻풀이
어깻바람: 신이 나서 어깨를 으쓱거리며 활발히 움직이는 기운.
너나들이: 서로 너니 나니 하고 부르며 허물없이 말을 건넴. 또는 그런 사이.
버덩: 높고 평평하며 나무는 없이 풀만 우거진 거친 들.
고개티: 고개를 넘는 가파른 비탈길.
억보소리: 억지가 센 사람의 소리라는 뜻으로, 쓸데없이 내세우는 고집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숫되다: 순진하고 어수룩하다.
구성없다: 격에 어울리지 않다.
떡심: 억세고 질긴 근육.
으르다: 상대편이 겁을 먹도록 무서운 말이나 행동으로 위협하다.
두남두다: 1) 애착을 가지고 돌보다. 2) 잘못을 두둔하다.
모름지기: 사리를 따져 보건대 마땅히. 또는 반드시.
벅벅이: 그러하리라고 미루어 헤아려 보건대 틀림없이.
투미하다: 어리석고 둔하다.
굴퉁이: 겉모양은 그럴듯하나 속은 보잘것없는 물건이나 사람.

이상배


| 이상배 |

동화작가. 한국아동문학인협회 회장을 지냈으며, 현재 도서출판 좋은꿈 대표이다. 대한민국문학상, 윤석중문학상, 방정환문학상, 한국동화문학상 등을 수상하였으며, 저서로는『책읽는 도깨비』,『책귀신 세종대왕』,『부엌새 아저씨』,『우리말 동화』,『우리말 바루기』, 『맛있는 순 우리말』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