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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보물찾기

도담도담

_ 강순예 / 동시작가

소복소복쌓인아침이미지 밤새 내린 눈,
소복소복 쌓인 아침.

“춥다, 고뿔들라.”
할머닌 걱정하지만

“겨울이 다 그렇지.
그러면서 도담도담 자라는 게야.”
할아버지 말씀에 어깨를 쫙 펴요.

덴바람 높바람 씽씽 분대도
저프지 않아요, 터럭만큼

눈사람 만들고
눈싸움 할래요
포대 자루 깔고
미끄럼도 탈거예요.

“야, 볼 빨간 애. 놀자!”
봐요, 친구들이 밖에서 부르는 걸요.

동시 속 우리말

고뿔: ‘감기’를 일상적으로 이르는 말.
도담도담: 어린아이가 탈 없이 잘 놀며 자라는 모양.
덴바람: 뱃사람들의 말로, ‘북풍’을 이르는 말. [같은 말] 된바람.
높바람: 매섭게 부는 바람.
저프다: ‘두렵다’의 옛말.
터럭만큼: 아주 작거나 사소한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동시 풀이

‘저프다’는 ‘두렵다‘의 옛말이다. 터럭은 ‘사람이나 길짐승의 몸에 난 길고 굵은 털’을 말하기도 하며 ‘아주 작거나 사소한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로 주로 쓴다.
아무리 큰 추위가 닥쳐도 두렵지 않은 아이들. 밤새 내린 눈이 온 누리를 덮은 날, 아이들 놀이마당이 펼쳐지는 날이다. 아이들에게 추위쯤은 두렵지 않다. 소북이 쌓인 눈을 굴려 눈사람을 만들고, 눈싸움을 하고, 마음껏 뒹굴고, 미끄럼도 타며, 함박꽃처럼 웃는 아이들 모습을 하얀 도화지속 그림처럼 담고 싶었다. 덴바람 높바람 씽씽 불어도 도담도담 잘 자라는 우리 아이들 모습이 길고 추운 겨울을 따뜻하게 한다.

섣달그믐밤


섣달그믐밤이미지 “오늘밤에 온단다, 신 없는 아이.
고샅마다 집집마다 들어가
이 신발 저 신발 죄다 신어보곤
맞갖은 걸 골라, 하무뭇 해낙낙
홀딱 신고 가버리는…….”

할머니 말씀에
동생 눈 내 눈 똥그래진다.
“정, 정말요?”

“이렇게 문 앞에 체를 걸어두면
수 세기 좋아하는 그 아이,
촘촘한 구멍을 세다가, 세다가, 세다…,
동살이 잡힐 무렵 ‘아이코, 내 신발!’ 하며 돌아간단다.”

“밤 오면 또다시 안 오나요?”
“안 오긴, 이듬해에 또 오지!”

깊은 밤 문 앞에 살며시
내다 놓았다.

“작아서 안 신는 신발이야. 맘에 들면 가져가렴.”

동시 속 우리말

섣달그믐: 음력으로 한 해의 마지막 날.
고샅: 시골 마을의 좁은 골목길. 또는 골목 사이.
맞갖다: 마음이나 입맛에 꼭 맞다.
하무뭇: ‘매우 하무뭇하다(마음에 흡족하여 만족스럽다)’의 뿌리 말(어근).
해낙낙: ‘해낙낙하다(마음이 흐뭇하여 만족한 느낌이 있다)’의 뿌리(어근).
촘촘하다: 간격이 매우 좁거나 작다.
동살이 잡히다: 동이 터서 훤한 햇살이 비치기 시작하다.
이듬해: 바로 다음의 해.

동시 풀이

‘섣달그믐’은 음력으로 한 해의 마지막 날이다. 해마다 섣달그믐 밤이면 하늘에서 내려와, 잠을 자는 아이들의 신을 신어 보고 제 발에 꼭 맞는 것을 가져간다는 귀신이 있다. 바로 ‘야광귀’라고 부르는 신발귀신이다. 예로부터 전해오는 우리 세시풍속을 담은 이 시에는 할머니 옛이야기에 귀를 쫑긋하는 아이들 모습을 담았다. 이 시에서 신발귀신이 제 발에 꼭 맞는 신을 찾은 기쁨을 표현하기 위해 ‘하무뭇’과 ‘해낙낙’을 썼다.
신발귀신이 하늘로 돌아가야 할 시간은 동이 트기 전. 체 구멍 하나하나를 세고 또 세다가, 결국 다음해에 또다시 신을 찾으러 온다는, 신발귀신. 신을 뺏기지 않으려면, 신발귀신이 들어올 수 없는 안방에 숨겨두거나, 밤을 하얗게 새워야 한다.

잠은안오고


오늘은까치설날이미지 창밖엔 애기별꽃 소록소록
별이 내려요, 꽃이 내려요.

아침이 오면
알록달록 색동옷 입고
타래버선 복주머니
곱게 땋은 귀밑머리
배씨댕기 도투락댕기 드리고
언니랑 오빠랑 세배 가요.
숫눈길 사박사박 함께 가요.

오늘은 까치설날
잠은 안 오고
머리맡 설빔
잠은 안 오고

동시 속 우리말

소록소록: 비나 눈 따위가 보슬보슬 내리는 모양.
귀밑머리: 이마 한가운데를 중심으로 좌우로 갈라 귀 뒤로 넘겨 땋은 머리.
숫눈길: 눈이 와서 쌓인 뒤에 아직 아무도 지나가지 않은 길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사박사박: 모래나 눈을 잇따라 가볍게 밟는 소리. 또는 그 모양.
까치설날: 어린아이의 말로, 설날의 전날 곧 섣달 그믐날을 이르는 말.
머리맡: 누웠을 때의 머리 부근.
설빔: 설을 맞이하여 새로 장만하여 입거나 신는 옷, 신발 따위를 이르는 말.

동시 풀이

창밖에 애기별꽃 같은 눈이 별처럼 꽃처럼 내리고, 이 밤이 지나면 설날이다. 이 시는 설빔을 입고픈 마음에 설날 아침이 빨리 오길 손꼽아 기다리는 아이 모습을 담았다.
새해 첫날을 맞는 밝고 맑은 마음을 나타내기 위해 이무도 밟지 않은 깨끗한 눈길을 뜻하는 ‘숫눈길’을, 다정하게 속삭이듯 가볍게 걷는 모습을 표현하기 위해 ‘사박사박’을 썼다.
새해 첫 명절인 설날. 가지런히 놓는 머리맡 설빔, 타래버선과 꽃신을 신고 또 신어 보았을 아이, 예쁜 배씨댕기는 얼마나 만지작거렸을까. 머리 위 배씨댕기와 머리끝에 곱게 드릴 도투락댕기도 한껏 나풀대며 뽐낼 나들이 설렘으로 오늘밤 잠이 안 온다.

타래버선, 배씨댕기, 도투락댕기

타래버선은 양 볼에 수를 놓고 코에 색실로 술을 단, 돌 전후의 어린이가 신는 누비버선의 하나이며, 배씨(뱃씨)댕기는 배의 씨 모양으로 만들어 여자아이의 머리 위를 장식하는 머리 꾸미개, 도투락댕기는 머리 끝에 드리는 자줏빛 댕기이다. 예전에는 어린 여자아이들이 타레버선을 신고 배씨댕기를 드리웠으나, 그 모양이 예뻐 지금은 어른들 한복차림에도 많이 쓰인다.

강순예동시작가


| 강순예 |

동시작가 | 국어문장사 | 문화산업학 석사 | 아리랑포크 팀 ‘해사한’으로 활동, 2018 우리말 지킴이 선정. 국립국어원 <쉼표 마침표>에 ‘우리말 동시’를 연재했으며, 토박이 우리말글, 우리문화를 시와 노래로 담아 널리 알리는 일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