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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에 깃든 생물이야기

_ 권오길 / 강원대학교 명예교수

   미리 말하지만 필자가 쓴 책 ‘우리말에 깃든 생물이야기’가 여태껏 6권이 출간되었고, 앞으로 3권이 더 출판될 예정이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우리말’이란 ‘속담(잠언)’, ‘고사 성어(사자성어)’, ‘관용구(관용어)’를 뜻하고, ‘생물이야기’란 속담이 품은 동식물을 세세히 설명함이다. 그리고 이들 ‘우리말’ 구석구석에는 그 옛날의 역사·사회·인간상과 그들의 관찰·경험·지혜·삶의 땟자국까지 넉넉한 해학과 날카로운 재치로 오롯이 비유, 은유되고 있다.
   일례로 ‘고사 성어(한자성어)’하나를 든다. 사마귀(버마재비)는 한자어로 당랑(螳螂)인데, 사마귀가 수레바퀴를 막는다는 뜻인 ‘당랑거철(螳螂拒轍)’이 있다. 이는 제 분수나 역량을 생각하지 않고 힘센 상대이거나 되지 않을 일에 감히 덤벼드는 무모한 행동거지를 빗댄 말이다.
   춘추시대 제(齊)나라 장공(莊公)이 어느 날 수레를 타고 사냥터로 가던 중 웬 벌레 한 마리가 도끼 같은 앞다리를 휘두르며 수레를 쳐부술 듯 덤벼드는 것이 아닌가. 마부에게 그 벌레에 대해 묻자, 마부는 “저것은 사마귀라는 벌레로 나아갈 줄만 알고 물러설 줄을 모르며, 제 힘은 생각하지도 않고 적을 가볍게 보는 버릇이 있습니다.” 그러자 장공은 “이 벌레가 사람이라면 반드시 천하에 용맹한 사나이가 될 것이다.”라면서 수레를 돌려 피해 갔다고 한다.
   다음은 감에 얽힌 속담이다. 내 고향 경남 산청은 감 곳이라 속절없이 어릴 때부터 감나무, 감과 어울려 살았다. “감나무 밑에 누워서 홍시(연시) 떨어지기를 기다린다.”란 아무런 공도 들이지 않으면서 좋은 결과가 이루어지기 바람을, “홍시(곶감) 먹다가 이 빠진다.”란 전혀 그렇게 될 리가 없음에도 엉뚱한 일이 벌어짐을, “익은 감도 떨어지고 선감도 떨어진다.”란 늙어서 죽는 사람도 있고 젊어서 죽는 사람도 있다는 뜻으로, 사람은 자기 명에 따라 죽게 마련임을 비꼰 말이다. 이렇게 속담 바탕엔 권유, 체험, 빗댐 따위가 깔렸다 하겠다.
   그런데 속담을 파고들라치면 놀랍게도 기발한 옛말(고어)나 순우리말(고유어)들을 참 많이 본다. “감나무 밑에 누워도 삿갓미사리를 대어라.”란 말은 “절로 떨어지는 홍시를 얻어먹으려거든 미사리를 입에 대고 있어야 한다.”는 뜻으로, 의당 자기에게 올 기회나 이익이라도 그것을 놓치지 않게 애써야함을 비유한 말이다. 여기서 고유어인 미사리(접사리)란 우비삿갓이나 상제가 쓰던 방갓 안에 댄, 머리에 쓰는 둥근 테두리를 이른다.
   익은 감을 깎아 말린, ‘호랑이보다 무서운 건시(곶감)’속담이다. ‘곶감꼬치에서 곶감 빼 먹듯’이란 알뜰히 모아 둔 재산을 조금씩 헐어 써 없앰을 풍자한 것이고, “우선 먹기는 곶감이 달다.”란 앞일은 생각치도 않고 당장 좋은 것만 취함을 비꼬아 이르는 말이다. 그런데 실제로 곶감을 많이 먹으면 곶감의 타닌(tannin)이 대장 수분흡수를 도와 변비가 된다. 이렇게 속담에는 비유와 체험과학이 들어있다.
   다음은 달걀 이야기다. ‘계란이나 달걀이나’란 관용구(관용어)는 ‘이것이나 저것이나 다 마찬가지’라는 뜻으로 쓰인다. 하지만 계란(鷄卵)은 한자어고, 달걀은 ‘닭의 알’이 준 고유어다. 모름지기 ‘계란’보다 ‘달걀’을 즐겨 쓰자구나. ‘국어사랑 나라사랑’이니 말이다.
   그리고 “달걀(계란)에도 뼈가 있다.”란 한자성어인 ‘계란유골(鷄卵有骨)’에서 온 말로 늘 일이 잘 안 되던 사람이 모처럼 좋은 일을 만났건만, 그 일마저 잘 안됨을, ‘달걀로 바위치기’란 대항해도 도저히 이길 수 없음을, “달걀로 치면 노른자다.”란 가장 중요한 부분임을, ‘고양이 달걀 굴리듯’이란 무슨 일을 능란하고 재간 있게 함을, ‘술 취한 놈 달걀 팔듯’이란 일하는 솜씨가 거칠고 어지러움을, ‘조막손이 달걀 놓치듯’이란 물건이나 기회를 잡지 못하고 떨어뜨림을 비아냥거린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 턱없이 많은 달걀 속담을 죄다 쓰지 못했다. 이렇게 달걀처럼 인간과 가까운 것일수록 속담 가짓수가 종잡을 수 없이 많다.
   다음은 ‘우리말’(속담/관용어)과 관련 없는 허접스런 달걀이야기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Which came first, the chicken or the egg?)”란 문제가 서로 꼬리에 꼬리를 물고 돌아가는 것을 이르는데, 사실 기독교창조설에선 닭이 먼저이고, 생물진화설은 달걀을 먼저로 친다.
   그리고 ‘누란(累卵)의 위기(危機)’란 층층이 쌓아 놓은 알이 무거지기 쉽다는 뜻으로, 몹시 위태로운 형편을, ‘달걀 한 판의 나이’란 나이 서른임을 이른다. 또한 영어속담인 “병아리가 까이기 전에는 세지 마라(Do not count your chickens before they are hatched.)”란 떡 줄 사람은 생각지도 않는데 김칫국부터 마시지 말라는 뜻으로, 품은 달걀이 모두 부화한다는 보장이 없으니 말이다. 이렇듯 달걀이야기 하나만 해도 무궁무진하다.
   끝으로 식물이야기 둘만 덧붙인다. ‘청출어람(靑出於藍)’이란 “푸른색(제자)은 쪽에서 나왔지만 쪽빛(스승)보다 더 푸르다.”란 뜻으로, 제자가 스승보다 더 나음을 비유한 성어다. 여기서‘쪽’이란 마디풀과의 한해살이풀로 한자이름은 남(藍)이고, 잎은 짙은 청색인 인디고를 지니고 있어 그것으로 남빛물감(쪽물)을 만든다. 책에서는 쪽의 여러 이야기를 상세히 논한다.
   또 떠돌이 인생을 ‘부평초인생(浮萍草人生)’라고 하는데, 사람이 산다는 것이 마치 부평초처럼 덧없고 보잘 것 없음을 일컫는다. 여기서 부평초는 ‘개구리밥’으로 개구리밥과의 여러해살이물풀로 수평·머구리밥이라 한다. 개구리밥은 무논이나 연못에 얼키설키, 바글바글 잔뜩 모여서 둥둥 떠 살기에 물꼬(논꼬)를 틔우는 날에는 물살에 몸을 맡기고 논길 따라 떠내려간다. 그래서 이렇게 정처 없이 떠도는 신세를 개구리밥에 견주었다.
   우리는 정녕 보물 같은 우리글을 만들어주신 조상님들에게 감지덕지해야한다. 법정(法頂)스님은 ‘무소유’ 책에서, “혹시 내 죽은 뒤에 다시 돌아 올수 있다면 우리나라에 다시 태어나고 싶다, 우리 한글이 너무 예뻐서다.”라는 투로 썼다. 평생 글을 먹고 사는 필자도 가슴 깊이 공감하는 바이다. 거듭 말하지만 정말로 우리말, 우리글이 더없이 아름답고 예쁘다. 그러기에 마땅히 줄기차게 절차탁마(切磋琢磨)해야 할 것이다.

| 권오길 |

강원대학교 명예교수. 서울대학교 생물학과 및 동 대학원 졸업하고, 1981년부터 2005년까지 강원대학교 생명과학과 교수로 재직하였다. 2000년 강원도 문화상(학술상), 2003년 대한민국과학문화상, 2016년 동곡상(교육학술 부문) 등을 수상하였으며, 저서로는 꿈꾸는 달팽이, 인체기행, 손에 잡히는 과학교과서 동물, 괴짜 생물이야기, 우리말에 깃든 생물이야기 등이 있다. 1994년부터 <강원일보>에 생물이야기를 비롯해 2009년부터 <교수신문> 등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