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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풀이 깁고 더하기

밀월여행(蜜月旅行)과 소면(素麵)

_ 권혜진 / 겨레말큰사전 연구원

≪겨레말큰사전≫에서는 용례를 남과 북 및 재외동포들의 문학작품 등으로 구축해 놓은 용례검색자료에서 찾아 되도록 풍부하게 제시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이러한 지침에 따라 올림말의 의미와 용법을 이해하는 데 적절한 인용례를 찾아서 제시하고자 집필자들은 많은 노력과 시간을 들이고 있다.
   그런데 용례 검색을 하다보면 기존 국어사전의 올림말 뜻풀이가 언중들의 실제 쓰임을 모두 다 담아내지 못한 경우를 종종 발견하게 된다. 게다가 이러한 문제점이 언중들의 잘못된 이해나 착각으로 시작된 것으로 추측될 때, 집필자는 한 번 더 고민을 하게 된다. ‘밀월여행(蜜月旅行)’과 ‘소면(素麵)’이 이러한 고민을 하게 한 올림말 중의 하나이다.
우리는 “○스타와 ○스타가 오늘 해외로 밀월여행을 떠나….”와 같은 기사를 접할 때가 있다. 이 가십 기사를 접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머, 둘이 사귀는 거였어?”라며 수군거리기는 하지만, “둘이 결혼하고 여행을 가나봐.”와 같은 말을 하는 경우는 드물다. 또한 소면은 슈퍼마켓의 면류 진열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상품이며, 식당의 차림표에 적힌 ‘골뱅이소면무침’은 가는 면을 삶아서 골뱅이무침에 곁들인 먹을거리이다. 그런데 ‘밀월여행’과 ‘소면’을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이러한 경우들에 딱 들어맞는 뜻풀이가 없어서 당황할 때가 있다.
   기존의 국어사전들에 제시된 ‘밀월여행’과 ‘소면’의 뜻풀이는 다음과 같다.
사전의 뜻풀이
올림말 표준국어대사전 웹 조선말대사전 증보
밀월려행#밀월여행 밀월여행(蜜月旅行) 「명사」
=신혼여행.
밀월려행(蜜月旅行) [명]
《신혼려행》을 달리 이르는 말.
소면 소면2 [소ː-] (素麵) 「명사」
고기붙이를 넣지 않은 국수.
소면1 (素麵) [명]
고기붙이를 넣지 않은 국수.
먼저 ‘밀월여행’에 대해 살펴보자. 기존 국어사전들에서 밀월여행은 신혼여행과 같은 말로, ‘결혼을 마친 신혼부부가 같이 가는 여행’으로 풀이되고 있다. ‘밀월(蜜月)’은 ‘허니문(honeymoon)’을 의역(義譯)한 것이다. 이 말은 본래 스칸디나비아 지역에서 신혼부부에게 결혼 후 한 달 동안 꿀로 만든 술을 마시게 했던 결혼 풍습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단어의 근원을 모르는 일반 언중들에게 ‘밀월여행’은 ‘달콤한 꿀(蜜)’이 아닌 ‘비밀(秘密)의 밀(密)’일 것이라고 추측되어 쓰이고 있다. 이러한 뜻으로 쓰인 용례들을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몇 달 전에 대현이 얘 기사 난 거 알아? 가수 이지은이랑 발리 {밀월여행} 갔다, 뭐 이런 추측성 기사 말이야.《김태희 외: 쇼를 하라》
▸아버지가 서점의 거래처 여자와 {밀월여행을} 떠났다가 들켰다. 어머니는 하루에도 수차례씩 죽고 싶다고 말했다. 《김미월: 여덟 번째 방》
▸우리 어머니 아버지, 내가 이렇게 선생님과 함께 {밀월여행} 하고 있는 것 알면 기절하실 거야.《한승원: 항항포포》
아무리 살펴보아도 용례 속의 여행이 결혼한 남녀, 즉 신혼부부가 떠나는 여행으로는 해석되지 않는다. 오히려 여행의 주체는 ‘결혼을 하지 않은 남녀’로, 여행의 성격은 ‘공개적이지 않은’ 것으로 해석된다. 즉, 결혼의 여부와 관련이 없이 ‘친밀한 관계에 있는 사람들’이 주체가 될 여지가 있다.1) 이러한 점과 실제 언중들의 쓰임을 고려한다면 ‘밀월여행’의 뜻풀이는 수정되는 것이 좋겠다. 아래와 같이 뜻풀이를 수정해 보았다.
밀월려행#밀월여행 [미뤌려행] (蜜月旅行) [명]
① =신혼려행#신혼여행. | 육촌누이동생이 화촉을 밝히고 {밀월여행을} 온다.《최현식: 홍상》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이 남몰래 함께 가는 여행. | 사랑에 빠진 그들은 둘만의 {밀월여행을} 떠났다.
다음으로 ‘소면’에 대해 살펴보자. 기존 국어사전의 ‘소면’은 만드는 방법에 따른 요리로서의 뜻풀이만 있다. 즉, 양념을 가하지 않은 국수, 혹은 고기양념을 넣지 않은 간단한 채소류 정도를 넣은 국수를 가리킨다. 올림말 ‘소(素)’는 ‘고기와 생선 등을 넣지 않고 나물 등으로만 만든 음식’을 뜻하므로, 이 한자에 ‘면(麵)’이 결합한 것이 소면의 기본 뜻이 된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단어의 근원을 모르는 일반 언중들에게 ‘소면’은 ‘흴 소(素)’가 아닌 중면(中麵)보다는2) 가늘고 세면(細麵)보다는 굵은 면을 나타내는 ‘작을 소(小)’로 추측되어 쓰이고 있다. 다시 말해서, 언중들에게 ‘소면’은 면의 굵기나 규격에 따라 나눈 면의 종류 중의 하나라는 뜻으로 쓰이고 있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크기에 따라 큰 것, 중간 것, 작은 것으로 나눌 때 대(大), 중(中), 소(小)를 쓰는데, 여기에 면(麵)이 결합하여 이루어졌을 것으로 생각한 언중들의 착각이 반영된 말이다. 기존 국어사전의 뜻풀이와는 다른 뜻으로 보이는 ‘소면’의 용례는 다음과 같다.
▸그 냄새는 기계로 뽑아 말린 {소면이} 삶아지면서 풍기는 냄새와는 또 다릅니다.《김숨: 국수》
▸빠빠는 … 단골식당에 들어가 설렁탕에 {소면을} 듬뿍 넣어달라고 주문하는 것 같았다.《박형서: 새벽의 나나》
▸아버지가 골뱅이무침의 {소면을} 젓가락으로 돌돌 말았다.《윤성희: 구경꾼들》
▸퇴근길 마트에 들러 {소면과} 갖가지 채소를 샀다.《김희진: 옷의 시간들》
역시나 실제 쓰임에 딱 들어맞는 뜻풀이가 기존 국어사전에는 없다. 그렇다면 언중들이 쓰고 있는 ‘소면’의 뜻은 단순히 잘못 쓴 말인가? 하지만 아무런 근거가 없는 쓰임 같지는 않다. ‘소면’을 제면 방식에 따른 국수의 한 종류로, 밀가루 반죽을 길게 늘려서 막대기에 면을 감아 당긴 후 가늘게 만드는 국수로 보기도 한다.3) 이러한 점과 실제적인 용례들을 근거로 아래와 같이 뜻풀이를 수정해 보았다.
소면 [소ː면] (素麵) [명]
① 고기붙이나 양념 등을 넣지 않은 국수.
밀가루로 가늘게 만든 국수. ∥ 멸치 국물에 {소면을} 말아 먹다. | 나는 앞치마를 찾아 입고 물을 끓이고 {소면을} 삶아 소쿠리에 받쳤다.《조경란: 우리는 만난 적이 있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과 같이, 기존 국어사전의 ‘밀월여행’과 ‘소면’은 언중들 사이에서 실제로 쓰이는 의미를 충분히 드러내지 못한 뜻풀이이기 때문에 수정이 필요하다. 기존 국어사전의 뜻풀이와 다른 이러한 의미는 원어에 대한 언중들의 착각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단순히 잘못된 말로 치부해버리고 마는 것은 타당하지 않은 것 같다. 왜냐하면 그러한 의미와 쓰임이 이미 언중들 사이에 꽤 자리를 잡았다는 점, 그리고 기존 국어사전의 뜻풀이와 전혀 관련이 없다고 볼 수 없다는 점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국어사전은 언중들에게 바른 언어생활의 길잡이로서 도움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때로는 언어를 사용하는 언중들의 실제적인 쓰임과 요구를 신중히 검토하고 받아들이는 것도 국어사전 편찬자들에게 필요한 자세라고 생각한다.
※ 이 글은 《겨레말큰사전》의 공식 입장이 아닌 필자 개인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1)
올림말 ‘밀월(蜜月)’은 경제적, 정치적 집단 사이에서 ‘우호적이고 친밀한 관계’라는 뜻갈래도 있다. 이를 고려한다면 ‘밀월여행’의 주체를 재고할 만하다.
2)
‘중면(中麵)’은 기존 사전들에는 미등재된 올림말이다. 이에 대한 검토도 추후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3)
위키백과, 두산백과에서는 국수를 제면 방식(면 제조법에 따른 분류)에 따라 납면, 압면, 절면, 소면 등으로 나누고 있다. 소면(素麵)은 밀가루 반죽을 길게 늘려서 막대기에 면을 감아 당긴 후 가늘게 만드는 국수이다. 그리고 국수 반죽을 양쪽에서 당기고 늘려 만든 납면(拉麵), 국수 반죽을 구멍이 뚫린 틀에 넣고 밀어 끓는 물에 넣어 끓여 만든 압면(押麵), 밀대로 밀어 얇게 만든 반죽을 칼로 썰어 만든 절면(切麵) 등으로 구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