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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하루를 기억하는 법

_ 홍서현 / 겨레말큰사전 연구원

나무에 돋아난 푸른 잎사귀처럼 기운차고 생동감 넘치는 계절의 여왕 봄, 그리고 5월입니다. 지난 4월 27일, 11년 만에 남북 두 정상이 손을 맞잡은 ‘한반도의 봄’은 더욱 따뜻해지고 있습니다.
5월은 우리에게 어린이날, 어버이날과 함께 스승의 날, 근로자의 날, 석가탄신일(음력 4월 8일)까지 유독 기념일이 많은 달이기도 하지요. 새로 5월의 달력을 펼치며 문득 남과 북의 5월이 궁금해졌습니다.

[사진] 남한/북한 5월 달력 비교1)

'가정의 달’로 불릴 만큼 기념일이 많은 우리와 달리 북한은 ‘오일절(5.1절, 로동절)’ 정도가 5월에 들어있습니다. 남과 북의 언어와 생활이 달라진 만큼 기억하고 기념해야 하는 ‘어떤 날’들도 달라졌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남과 북의 민속 명절은 대체로 분단 이전부터 지금까지 같은 날, 같은 이름으로 기념하고 있습니다.
설명
설(명절)
신정/양력설 양력설/신정
구정/음력설 음력설/구정
(정월) 대보름 남 공휴일 아님
북 공휴일
한식
단오/수릿날 수리날/단오
추석/한가위

<남과 북의 민속 명절>2)

겨레말 말뭉치에서 민속 명절과 관련된 문장을 찾아보면 그 날을 기념하고 즐기는 방식도 남과 북이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절기로 청명이 되면 그 다음날이 한식인데 원래 한식날에는 부엌에 불을 지피지 않고 찬밥을 먹는 풍속이 있었다. <3월과 4월의 민속>

대보름날 이른아침에 날밤, 호두, 잣, 은행 같은 굳은나무열매와 무우를 먹었으며 약밥도 특별음식으로 만들어 먹었다. <정월대보름풍습>

바줄당기기는 대체로 정월대보름에 진행하였으며 지방에 따라 5월 수리날, 7월 백종 또는 8월 한가위에 하는 곳도 있었다. <바줄당기기>
하지만 분단 이후의 남과 북의 기념일은 그 양상이 달라진 것이 많습니다. 우선, 북은 명절의 개념이 우리보다 더 포괄적입니다. 남에서 ‘명절’은 주로 민속 명절을 가리키지만, 북에서는 국가적 명절과 여러 기념일 등을 포함하는 개념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해의 마지막 명절인 헌법절을 하루 앞두고 나는 주유치원에 다니는 딸애를 데리려 창광유치원으로 갔다. <고마움에 대한 생각>
설명
삼일절 삼일 인민봉기의 날 북 국경일 아님
제헌절 헌법절 남 7/17 공휴일 아님
북 12/27 공휴일
광복절 조국해방의 날/해방기념일
개천절 개천절/개천일 북 국경일 아님
스승의 날 교육절 남 5/15
북 9/5
어린이날 국제아동절/륙일절 남 5/5 공휴일
북 6/1 공휴일 아님

<남과 북의 주요 기념일>3)

나무를 아껴 가꾸고 많이 심기를 권장하는 4월 5일 ‘식목일(植木日)’은 북에서는 3월 2일을 ‘식수절(植樹節)’로 정하여 기념하고 있는데요. 1971년까지는 우리와 비슷한 4월 6일이었으나 좀 더 많은 나무를 일찍부터 심어야 할 필요성에 따라 3월로 당겨 기념하고 있습니다. 겨레말 말뭉치에서는 북의 ‘식수절’ 풍경을 다음과 같이 엿볼 수 있습니다.
승용차가 지나가는 산릉선에서는 식수절을 맞으며 군인들이 나무를 심고있었다. <삼봉풍경>

나무심기는 봄가을에 많이 하였는데 주로는 식수절을 계기로 3월 25일부터 4월 10일까지의 기간에 집중적으로 하였다.<조국의 미래를 키우는 마음으로>
한편, 부모님의 사랑과 은혜를 기념하는 날인 ‘어버이날’은, 우리는 1956년 ‘어머니날’로 처음 기념하던 것을 1973년 지금과 같이 ‘어버이날’로 변경하여 5월 8일에 기념하고 있는데요. 북에서는 2012년부터 ‘어머니날’로 부르고 11월 16일을 공휴일로 지정하여 기념하고 있습니다. 기념일의 명칭만으로 보기에 기념하는 의미가 비슷할 것 같지만 북의 ‘어머니날’은 효의 전통적 의미를 고취하기보다 북한 체제 하에서 당의 사업을 충실히 수행하는 사회주의적 여성의 의무를 더욱 강조하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남북의 기념일을 언급할 때 빠뜨릴 수 없는 것이 바로, 한글의 창제와 반포를 기념하는 날입니다. 1926년 11월 4일(음력 9월 29일) 한글날 기념식을 처음으로 치르는 자리에서 정해진 ‘가갸날’은, 지금은 남에서 10월 9일 훈민정음 반포일(세종 28년 음력 9월 10일), 북에서 1월 15일 훈민정음 창제일(세종 25년 12월 30일)로 추정되는 즈음인 1월 15일로 다르게 기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느 날이든 우리말을 적을 수 있는 우리 문자의 탄생을 축하하고 자랑스럽게 여기는 마음만은 한가지라는 생각이 듭니다.
얼마 전, 어버이날을 공휴일로 지정하는 일로 찬반양론이 엇갈린 일이 있었습니다. 지정을 검토하는 시간이 충분하지 않고 그 경제 효과가 미미할 것이라는 점 등을 이유로 올해는 공휴일로 지정되지 않았지만 기념일을 대하는 우리의 생각을 엿볼 수 있는 쟁점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우리에게 기념일은 달력 속 검은 숫자들 사이에 끼인 ‘빨간 날’처럼 고단한 일상에 더러 찾아오는 공식적인 휴식이거나 때로는 나서서 챙겨야 하는 부담스러운 날과 같은 의미가 된 것 같기도 합니다.
기념일은 어떤 민족이나 국가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와 정신의 척도이고, 그 역사와 문화에 대한 후세대의 평가를 함축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수많은 날들 가운데 어떤 하루에, ‘그 날’을 잊지 않고 오래 기억하려는 마음을 담은 것이지요.
통일 이후의 기념일은 어떻게 달라질까요? 분단 이전에 함께 누린 전통과 그 이후 달라진 역사와 문화를 우리는 어떻게 함께 기념해야 할까요? 섣불리 예측하기도 가늠하기도 어렵지만 적어도 ‘통일의 날’4)을 기념하게 될 것이라는 것은 짐작해볼 수 있겠습니다. 월 초에 새로 넘긴 달력에서 기념일과 공휴일을 찾아보는 마음처럼 즐거운 상상을 해봅니다.
1) 한겨레(2017.12.27.), [포토뉴스] 북한의 2018년 달력
2),3) 겨레말큰사전남북공동편찬사업회(2017), 『한눈에 들어오는 남북생활용어』, 한국문화사
4) 독일에서는 통일조약규정에 의해 1990년 10월 3일을 통일기념일(독일 통일의 날)로 기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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