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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 만월대 남북공동발굴조사를 통해 본 남북간 문화유산 분야 용어차이

_ 박성진 / 문화재청 학예연구사

남과 북은 해방 이후 지금까지 지속되는 분단 현실을 거치며 정치체제를 비롯한 사회구조와 일상의 대부분을 다른 모습으로 발전시켜왔다. 이러한 차이는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에서도 분명하게 드러난다. 특히 몇몇 단어를 알아듣지 못해도 말과 글의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는 일상 언어와는 달리 전문적 영역이라 할 수 있는 학술분야에서는 각각의 단어가 가지는 함축적 의미로 인해 서로 소통하기 어려울 수 있다.
문화유산 분야 역시 남과 북이 사용하는 용어가 상당히 다르다. 남측은 주로 한자 중심의 용어를 사용하는 반면 북측은 순우리말 용어를 사용하는데 이러한 점은 남북 간 일반적인 언어 사용의 특징일 것이다. 남과 북의 문화유산 용어 사용은 서로의 장단점이 있는데 남측의 한자 중심 사용은 특유의 함축성으로 세밀한 부분까지 설명이 가능 한 반면 전문지식을 습득하지 않은 사람들이 한 번에 이해하기 쉽지 않다. 반면 북측의 우리말 중심 사용은 전문가와 일반인 모두 쉽게 알 수 있는 표현 방식이지만 한자에 비해 단어수가 늘어나는 경우가 있고 일부 함축적이고 세밀한 표현을 하는데 어려움이 있다. 예를 들면 ‘마제석촉(磨製石鏃)’은 ‘간돌화살촉’, ‘적석목곽분(積石木槨墳)’은 ‘돌무지덧널무덤’, ‘적색마연토기(赤色磨硏土器)’는 ‘붉은간토기’, ‘전축분(塼築墳)’은 ‘벽돌무덤’, ‘패총(貝塚)’은 ‘조개무지’ 등으로 동일한 대상을 각각 한자와 순우리말로 다르게 표현하고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문화유산 분야의 한자와 순우리말 표기는 남과 북, 서로가 그 뜻을 이해하는데 큰 어려움이 없다. 이미 남측 학계에서는 상당기간 이전부터 한자와 순우리말 표기를 학자 개인의 취향에 따라 편리하게 섞어 사용하고 있으며, 북측의 경우에도 ‘조선고고연구’ 등 정기 학술간행물에서 순우리말로 풀어내기 어려운 단어의 경우 한자 용어를 우리글로 표기하고 있다.
그렇다면 실제 남과 북의 문화유산 분야 전문가들이 만나 서로의 학술적 견해를 나누는데 어려움은 없을까? 필자의 경험으로는 ‘전혀 문제없음’이다. 굳이 차이가 있다면 남측의 ‘자기편’(磁器片)을 북측은 ‘자기쪼각’으로 남측의 ‘시굴갱’(試掘坑) 또는 'Trench'를 북측은 ‘시굴홈’으로 표현하는 정도의 차이만을 느낄 수 있었다. 물론 세부적으로 따지고 들면 곧바로 이해 못할 표현들도 있을 수 있고 남북 각각의 학술적 관점이나 집중도에 따라 매우 구체적으로 발전한 분야들의 경우 상대측에는 사용하지 않는 개념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 또한 남과 북이 동일한 언어를 사용하므로 매우 간단한 설명만으로 쉽게 소통할 수 있었으며, 오히려 다른 개념과 관점으로 정리되어 있는 경우도 많아 서로의 학술적 역량을 키워주기도 한다.
개성 만월대 남북공동 발굴조사 현장에서 경험한 남북 간 의사소통의 문제는 서로가 사용하는 용어보다 남측 사투리를 북측이 잘 알아듣지 못한 부분이 더 컸었던 것 같다. 특히 몇몇 남측 조사단원들의 ‘쎈’ 경상도 사투리는 북측 조사단원들에겐 정말 알아듣기 어려웠던 듯 했다. 남측 조사단인 필자도 가끔 알아듣기 어려운 부분이 있었으니 북측 조사단은 어떠했을지 짐작이 간다. 경상도 사투리 특유의 빠르고 강한 억양에 발굴조사 전문용어까지 섞어서 이야기하면 남측 사람들도 전공자들이 아니면 알아듣기 어려울 것이다. 북측과의 대화에서는 남측의 문제였던 억양이나 발음 보다는 사용하는 단어의 생소함으로 약간의 어려움이 있었던 듯하다. 남측에서는 특정 안건에 대해 ‘이야기’ 하자라고 표현하는 반면, 북측에서는 ‘토론’하자라고 표현하는 등 소통에 문제는 없었으나 남측 사람들에겐 생소한 표현이 다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난 기간 동안 남북이 각자 살아온 세월을 생각한다면 이 정도의 차이는 너무도 당연한 것이며 오히려 더 큰 차이가 없음이 신기할 따름이었다.
북측지역에서 일을 하면서 느껴지는 남북 간의 언어차이는 학술적인 부분보다 일상용어에서 더 크게 다가왔다. 남측의 일상화된 외래어 사용은 조사의 여러 부분에서 크지 않은 어려움을 가져왔다. 특히 대부분 외래어로 된 조사 물품 목록은 북측 세관원들에겐 상당한 골칫거리여서 다음번부터는 순우리말로 된 목록으로 가져오라는 핀잔을 듣기도 했으며, 발굴조사 초반에는 포클레인 등 남측에서는 일상화된 고유명사들을 설명할 순우리말을 한참 동안 생각하기도 했다. 남측만큼은 아니었겠지만 북측도 자신들이 사용하는 외래어를 순우리말로 남측에 어떻게 이야기해야할지 고민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결국 ‘포클레인’은 ‘굴삭기’로 남북이 통일하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식음료류 공산품들의 순우리말 제품명이었다. 아마도 남측의 경우 최근 순우리말 제품명이 늘어나기는 했으나 비슷한 대부분 상품들의 명칭이 외국어, 외래어 또는 비슷한 느낌의 우리말이기 때문에 더욱 북측의 이러한 특징이 도드라져 보였다. 필자를 비롯한 남측 조사단원들은 북측 상품명을 보면서 자연스레 남측식으로 바꿔보기도 했다. ‘소젖크림겹빵’은 ‘우유크림빵’, ‘소젖맛 에스키모’는 ‘우유맛 아이스크림’, ‘탄산단물’은 ‘사이다’ 등 맛도 비슷하고 한눈에 어떤 제품인지 알 수 있지만 그것을 표현하는 것은 남과 북이 적지 않은 차이가 있었다. 요즘 같은 시대에 우리글만을 고집하는 것이 지금의 남측 정서와는 다소 거리가 있을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 이러한 북측의 상품명을 보면서 우리글 사용에 대한 북측의 일관된 의지를 느낄 수 있었다.
2007년부터 2015년까지 7차에 걸쳐 진행된 개성 만월대 남북공동발굴조사는 《겨레말큰사전》 편찬사업과 함께 사회문화 분야 남북교류를 대표하는 사업으로 자리하게 되었다. 사업이 시작된 후 많은 일들이 있었고, 10년의 시간이 지나 강산은 많이 변했지만 유적은 언제나 그 자리를 지켜오고 있다. 덥고 추운 날에도 항상 웃으며 반겨주는 북측 조사단과 송악산 자락에서 편하게 토론하고 함께 땀 흘리며 조사할 날이 그리 멀지 않은 듯하다.
1), 2) 사진 출처: (사)남북역사학자협의회 제공

| 박성진 |

동아대학교에서 고고미술사학 석사학위를 취득한 뒤 북한대학원대학교 사회문화 분야 박사과정을 수료하였다. 현재 문화재청 신라왕경핵심유적복원정비사업추진단에서 근무하고 있으며, 2007년부터 2015년까지 개성 고려궁성 남북공동발굴조사에 7차례 참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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