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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백오) 탱크와 105(백공오) 탱크

_ 변정훈 / 여명학교 국어교사

탈북청소년을 위한 학력인정 대안학교에서 북한출신의 학생들을 11년 동안 가르치면서 남한에서 나고 자란 학생들이 사용하는 언어의 차이를 발견하고는 한다. 이 학생들을 통해 남한과 북한의 언어차이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많이 얻는다. 아마도 이들이 통일 이후 남북의 격차를 좁혀나가는데 필요한 비용과 시간을 줄여줄 수 있을 것이다.
남한과 북한의 어휘나 문법, 발음상의 차이 등을 비교, 분석함에 있어 대개 고려하는 요소는 양(兩) 언어의 특징적 차이이다. 하지만 북한출신 학생들과의 경험을 바탕으로 알게 된 사실은, 남북한 두 언어 자체의 차이와는 별개로 제 3의 언어의 영향에 의한 차이는 발생하기도 한다는 점이다. 남한말과 북한말 사이에 나타나는 차이가 남-북한 말의 차이라기보다는, 중국어와 같은 외부 언어의 영향에 의해서도 생긴 차이이다.
학생들이 북한에서의 국어 수업시간에 대해 나누던 이야기 속에서 상기 언급된 차이를 발견할 수 있었다. 학생들이 국어수업시간에 배웠던 동시(童詩)의 내용은 이렇다.
“꼬마땅크 나간다. 우리 땅크 나간다. 미국놈 쳐부시며 꼬마땅크 나간다”
북한출신 학생들은 이 꼬마 땅크를 “105(백공오)땅크1)” 라는 고유명사로 학습하였다고 한다. 초등학교 국어시간에 탱크로 동시를 배우는 것도 이상했지만, 그것을 “105(백오)”가 아니라 “105(백공오)”라고 읽는 것이 더욱 이상했다. 처음에는 소수의 학생이 잘못 알아, 제대로 읽지 못한다고 판단하여, 핀잔을 주고 바른 읽기로 수정해주었다. 이후 상당한 기간 동안 다수의 학생들이 반복적으로 “105(백공오)”로 읽는 현상이 발생하여 어떤 이유에서 남한의 그것과 차이가 나는지 분석해보았다.
이상의 원인을 분석하는 초기에는 남북 두 언어 사이에 숫자 읽기방법의 차이가 있을 것이라고 예측했었다. 하지만 북한에서도 숫자를 읽는 방법 자체가 남한과 다르지는 않았다. 북한의 국어교사들도 학생들과 다름없이 105(백공오)라고 읽었으며, 명확하지는 않지만 어느 시점 이후로는 105(백오)라고 바르게 읽도록 지도를 했다는 학생들의 증언이 이를 반증해주었다. 이러한 차이가 발생하는 원인은 남북 두 언어가 아닌 외부 언어의 영향이었다. 남한과는 달리 북한은 중국과 물적, 인적 교류가 잦다. 뿐만 아니라 북한 국경에 인접한 중국의 동북 3성에는 북한 주민들과 친인척 관계인 조선족들이 거주하고 있으며, 남북 분단 이후에도 중국 친인척의 북한 방문은 제한적으로라도 이루어지고 있다. 이러한 중국과의 지속적인 교류로 인해 중국의 말과 글이 현재의 북한 주민들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이러한 영향의 비슷한 예는 연도(年度)를 읽는 방법에서 찾을 수 있다.
사전의 뜻풀이
국가 표기 발음 국가 표기 발음
중국 105 yi bai ling wu 중국 2017年 er ling yi qi nian
북한 백공오 북한 이천공십칠련
남한 백오 남한 이천십칠련
중국어로 숫자 105나 2017年을 읽을 때, ‘ling’이라는 음가를 주어 발음을 한다. 마찬가지로 북한 학생들도 이러한 중국어의 영향으로 숫자 105나 2017년에 ‘백’이나 ‘천’ 외에 ‘공’이라는 음가를 더해 발음하고 있다. 물론 100%의 북한 주민들이 위와 같은 읽기 방법을 취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남과 북이 ‘현상적’ 차이를 보인다고 인식할 수 있는 수준이다. 남북의 단절과 고립이 지속적으로 이어진다면 이러한 수준의 차이는 고착화되고, 종국에는 차이의 원인을 분석하기 어려운 상황을 초래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이상에서 알 수 있듯이 남과 북의 숫자를 읽는 방법에 차이를 보이는 현상의 원인은 두 언어 간의 차이에서만 기인한 것이 아니라, 제 3의 언어에 의한 외부적 영향 때문이기도 하다. 정치 외교적 관계로 남한말은 미국과 일본의 영향을, 북한말은 중국과 러시아의 영향을 받아 서로 다른 모습으로 이화(異化)되고 있다. 따라서 남북 언어의 차이를 이해하고 그 원인을 분석하는 방법으로 외부 영향 요인을 주목할 필요가 있겠다. 남북한 언어의 차이를 이해하는데 기존에 주로 사용되었던 분석 방법에, 이상에서 언급한 방법을 보완한다면 더욱 그 차이를 이해하고 격차를 줄여나가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1)
105 땅크는 6.25 전쟁 전이었던 1947년 5월 16일 평양에서 창설된 북한군 최초의 기갑부대인 제 115 탱크연대가 근원이다. 이후 1949년 5월 기존의 연대를 여단급으로 개편하였고 1950년 6월 25일 새벽 6.25전쟁 당일 조선인민군 1군단 예하 1,3,4,6사단에 연대 4개로 따로 배속되어 서울로 진격하게 된다. 여기에는 107 연대, 109 연대, 203 연대, 206 연대가 존재했는데, 107, 109 연대는 3, 4사단의 진격로를 따라가 국군 7사단을 격파했고 당시 여단장이자 김일성의 항일 빨치산 중 한명인 류경수 여단장의 지휘로 4개 연대를 통솔해 서울을 점령하게 된다. 그리하여 그해 7월 5일 김일성으로 부터 "서울" 칭호를 수여받고 같은 달 27일 근위대로 승격되면서 "근위 서울 제 105 땅크사단" 으로 승격되게 된다. 그리고 이후 2001년 당시 특별명령으로 지휘관 류경수의 업적과 명예를 기려 최종적으로 "근위 서울 류경수 제 105 땅크사단" 으로 명명되었다.

| 변정훈 |

연세대학교 석사. 북한이탈청소년 대안학교인 여명학교에서 국어교사로 11년째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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