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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의 언어 차이가 있나요?

_ 권순희 / 이화여자대학교 국어교육과 교수

2015년 독일 모 잡지 회사에 근무하는 한 기자가 남북 언어의 차이를 알고 싶다며 인터뷰를 요청해 온 적이 있다. 통역관이 함께 해 준 자리였는데, 의미 있는 자리였다. 그 때 답변했던 것 중 몇 가지를 소개하고자 한다.
1. 독일어 버전의 위키피디아를 보면, 북한어(평양 방언)와 남한어(서울 방언)의 차이가 그리 크지 않기 때문에 한반도 전체적으로 한국어가 잘 이해되고 있다고 나온다. 정말 차이가 없는가?
문법적 구조 측면에서 볼 때 남한과 북한의 한국어의 구조는 대체적으로 동일하다. 예를 들면, 주어+목적어+서술어 어순이나 조사나 어미를 사용하는 형태 등은 동일하다. 그 점에서 '남한어와 북한어의 차이'는 문법 구조가 다른 ‘한국어와 독일어의 차이’와는 성격이 다르다. 그러나 문법이 모두 같은 것만은 아니다. 문법에서 차이가 나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면, 남한에서는 ‘못 알아듣고’라고 표현하는 데, 북한에서는 ‘알아 못 듣고’라고 표현한다. 부정어의 위치가 다르다. 특히 남한과 북한에서 발음 및 억양, 어휘, 화용적 차이(언어 문화의 차이로 발생하는 언어 사용 양상의 차이)가 존재한다. 남한과 북한 언어 차이의 대표적인 사례를 들면 다음과 같다.
   발음에서 보면, 남한에서는 ‘노동’이라 발음하는 것을 북한에서는 ‘로동’으로 발음한다.
   억양에서 보면, 남한에서는 부정문에서 부정을 나타내는 ‘안’이라는 어휘를 낮은 억양으로 발음하는데 비해 북한에서는 ‘안’이라는 어휘를 높은 억양으로 발음한다. 예를 들면, 남한 사람들은 ‘안 먹겠습니다’라는 말을 할 때, ‘안’보다는 ‘먹’부분을 더 높게 발음하는데, 북한 사람들은 ‘먹’보다는 ‘안’부분을 더 높게 발음한다. 그 결과 ‘안’이 들어간 부정어를 북한이탈주민이 말했을 때, 남한 사람들은 북한이탈주민이 불친절하고 무뚝뚝하다고 오해를 한다. ‘안’을 높여 발음하면 ‘먹지 않겠다’는 거절의 의미보다 ‘먹기에 적절하지 않아 먹지 않는다’는 거부의 의미로 이해되기 때문이다.
   어휘에서 보면, 남한에서는 ‘소시지’라고 표현하는 것을 북한에서는 ‘칼파스’ 또는 ‘고기떡’이라고 표현한다. 남한에서 ‘오징어’라고 부르는 것을 북한에서 ‘낙지’라고 부르고, 남한에서 ‘낙지’라고 부르는 것을 북한에서는 ‘오징어’라고 부른다.
   화용적 측면에서 보면, 남한에서는 명함을 주고받으면서 “언제 한번 식사라도 해요.”라고 인사말을 전한다. 이 때 이 표현은 정말 식사를 하자는 의미라기보다는 식사할 기회가 있기를 바란다는 의미로 해석해야 한다. 만약 식사를 정말 하려는 의도로 말하려면 약속 날짜를 잡으면서 식사를 하자고 할 것이다. 그런데 북한이탈주민은 이 표현을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인사말로 받아들이지 않고, 표면적 의미로 해석하여 식사를 하자고 말했다고 해석한다. 즉 명함을 주고받은 사람이 “식사를 하자”고 말해 놓고 전혀 이를 실천하지 않는다고 오해를 하는 것이다.
   이러한 차이는 분단 후 긴 세월 동안 교류가 없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남과 북은 지난 70년 동안 문화적, 인적, 통신적 교류가 없이 분단되어 살아왔다. 40여년 분단 국가였던 동독과 서독에서는 분단 이후 상호간 문화적, 인적, 통신적 교류가 있었다. 그 상황에서도 동독과 서독의 어휘적 차이가 있었다는 얘기를 들은 바 있다. 분단 독일보다 더 오랜 세월 교류 없이 남한과 북한이 서로 다른 체제를 유지하고 살았기 때문에 언어적 차이가 독일의 경우보다 더 심하다고 이해하면 될 것이다.
2. 콩글리쉬(또는 외래어) 단어를 포함하여 남한과 북한의 한국어가 다른 점은 무엇인가?
북한과 남한의 한국어의 다른 점은 콩글리쉬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영어, 프랑스어, 이탈리어 등 서유럽 계통의 외래어, 신조어, 한자어, 전문 용어 등에서 차이가 존재한다.
   첫째, 외래어의 유입이 달라 발생하는 외래어 차이가 있다. 남한은 서유럽, 북미 위주의 문물 및 기술, 무역 교류가 이루어지는 반면 북한은 러시아, 중국을 통해 문물, 기술, 무역 교류가 이루어진다. 그 결과 남한에서는 영어, 프랑스어, 이탈리어에서 유래하는 외래어를 많이 사용하고, 북한은 러시아어, 중국어에서 유래하는 외래어를 많이 사용한다. 예를 들면, 남한에서는 ‘샌들’이라는 영어식 외래어를 사용하지만 북한에서는 ‘산따’라는 러시아식 외래어를 사용한다. 또 남한에서 ‘롱부츠’라는 영어식 외래어를 사용하지만 북한에서는 ‘왈렌끼’라는 러시아식 외래어를 사용한다.
   둘째, 새로운 제도, 생활 문화의 창조, 새로운 기술 등으로 발생하게 되는 신조어의 차이가 존재한다. 예를 들면, 남한에서는 초등학생의 학교 등교시간에 어머니들이 나와서 아이들의 안전을 위해 횡단보도 건너기를 지도한다. 이 때 안전하게 횡단보도를 건너도록 지도하는 어머니를 ‘녹색어머니’라고 부른다. ‘녹색어머니’는 녹색(green)과 어머니(mother) 각각의 뜻을 안다고 이해할 수 있는 어휘가 아니다. 생활 문화 내에서 새롭게 만들어진 어휘이기 때문이다.
   셋째, 한자어에서 차이가 난다. 북한에서는 언어 정책상 한자어를 고유어로 대체하여 사용하도록 하였으며 고유어로 문화어(North Standard Korean)를 지정하였다. 그 결과 많은 한자어가 언어 사용에서 사라지게 되었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남한에서는 여전히 한자어가 많이 존재하며 한자어를 많이 사용하고 있다. 게다가 남한과 북한에서 한자어의 어순이 다르게 사용되는 사례가 꽤 있다. 예를 들면, 남한에서 사용하는 ‘왕래’라는 어휘를 북한에서는 ‘래왕’으로, 남한에서의 ‘창제’를 북한에서는 ‘제창’으로, 남한에서의 ‘상호’를 북한에서는 ‘호상’으로 표현한다.
   넷째, 전문어의 차이가 존재한다. 예를 들면, 학생들이 사용하는 교과서가 다르고 학문적 풍토가 다르기 때문에 발생하게 되는 학습어의 차이가 있다. 남한에서는 ‘가감법’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만 북한에서는 ‘더덜기법’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3. 어떤 전문가들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언어 장벽’이란 것이 언어 자체보다는 같은 단어라도 다른 의미를 갖게끔 하는 문맥(컨텍스트)이나 상이한 정치제도(사회 제도의 영향도 포함) 때문에 생겨난다고 한다. 사실인가?
사실이다. 언어 장벽을 일으키는 큰 요인으로 언어 어감도 차이를 들 수 있다. 언어 어감도란 같은 어휘인데도 사람마다 문화마다 다르게 받아들이는 언어적 감각을 의미한다. 언어 어감도에 따른 문제는 어휘 차이에서 오는 문제 이상의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한 가지 사례로, 북한이탈주민이 사용하는 ‘밀다’와 남한 사람이 사용하는 ‘밀다’의 차이로 인해 감옥까지 갈 뻔한 북한이탈주민의 사연을 소개하고자 한다(강보선, 2013: 146 참조). 북한이탈주민 A가 주차 문제로 어르신 B와 실랑이를 하게 됐다. 당시 B는 만취한 상태에서 A의 멱살을 잡으려고 하였으나 A가 B의 손을 뿌리치는 과정에서 B가 실수로 뒤로 넘어졌고 이로 인해 뇌진탕을 일으켰다. B는 바로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만취로 인해 술이 깰 때까지 수술을 못하고 있다가 이내 사망하고 말았다. A는 경찰서에서 “당신이 B를 밀었습니까?”라는 경찰관의 질문에 “네”라고 대답하였다. 나중에 남한에서는 ‘밀다’와 ‘뿌리치다’가 전혀 다른 의미로 사용된다는 것을 안 A는 재판 과정에서 B를 민 것이 아니라 뿌리친 것이라고 다시 진술하였다. 함경도가 고향인 A는 자신의 고향에서는 ‘밀다’를 ‘뿌리치다’는 의미로도 사용하기 때문에 경찰관의 “밀었습니까?”라는 질문에 “네.”라고 대답한 것이라고 하였다. 이처럼 남한과 북한의 어휘 차이는 단순히 남한 정착의 어려움을 넘어 인간관계 갈등과 사회 문제로까지 이어지게 된다.
   또한 형태나 발음이 같은 단어라도 의미가 다른 사례가 존재한다. 예를 들면, 수갑, -질, 소행이라는 단어의 의미는 남한과 북한이 다르다. 남한에서는 ‘수갑’이 ‘죄인의 손에 끼우는 고리’를 뜻하지만 북한에서는 ‘손에 끼는 장갑’을 의미한다. 남한에서는 ‘-질’이 ‘직업이나 직책에 비하하는 뜻을 더하는 접미사’를 뜻하지만 북한에서는 비하하는 뜻이 없는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된다. ‘소행’ 역시 남한에서는 1.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는 데 비해 북한에서는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된다. 남한에서 ‘이게 누구 소행이지?’라고 하면 착한 일이나 칭찬 받을 만한 일을 하지 못했다고 상대방을 꾸짖는 표현이 된다. 그러나 북한에서는 ‘착한 소행이다’, ‘소행상을 타다’, ‘소행이 얌전하다’처럼 표현하여 ‘소행’을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한다.

| 권순희 |

서울대학교 국어교육과 박사, 현재 이화여자대학교 국어교육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저서로는 새터민을 위한 한국어 어휘 교육, 북한이탈주민의 대한민국 정착을 위한 생활 어휘 , 북한이탈주민의 대한민국 정착을 위한 생활 말하기, 다문화가족 자녀의 학교생활 실태와 교사ㆍ학생의 수용성 연구, 사이버 의사소통과 국어교육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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