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DF인쇄 지난호보기
겨레말은 겨레얼 입니다 겨레말큰사전 누리판

남녘말 북녘말

남과 북의 어미 적기

_ 이대성 / 국립국어원

남에서는 ‘봄이 되어 진달래가 활짝 피었다’로 쓰고, 북에서는 ‘봄이 되여 진달래가 활짝 피였다’로 쓴다.
<한글맞춤법> 총칙 제1항은 “한글 맞춤법은 표준어를 소리대로 적되, 어법에 맞도록 함을 원칙으로 한다.”이다. <한글맞춤법 해설>에는 “어법에 맞도록 한다는 것은, 결국 뜻을 파악하기 쉽도록 하기 위하여 각 형태소의 본모양을 밝히어 적는다는 말”이라고 하면서, “이 원칙은 모든 언어형식에 적용될 수는 없는 것이어서, 형식형태소1)의 경우는 변이형태2)를 인정하여 소리 나는 대로 적을 수 있도록” 한 것이라고 설명해 놓았다. 형식형태소인 어미는 소리 나는 대로 적는다는 뜻이다.
<조선말맞춤법> 총칙은 “조선말맞춤법은 단어에서 뜻을 가지는 매개 부분을 언제나 같게 적는 원칙을 기본으로 하면서 일부 경우 소리나는대로 적거나 관습을 따르는것을 허용한다.”이다. ‘뜻을 가지는 매개 부분을 언제나 같게 적는다’는 것은 실질형태소는 본모양을 그대로 밝혀 적는다는 말이고, ‘일부 경우 소리나는대로 적는다’는 것은 주로 형식형태소를 염두에 둔 것이다. 맞춤법의 대원칙은 남과 북이 별 차이가 없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왜 남에서는 ‘되어, 피었다’로 적고, 북에서는 ‘되여, 피였다’로 적을까?
<표준발음법> 제22항: 다음과 같은 용언의 어미는 [어]로 발음함을 원칙으로 하되, [여]로 발음함도 허용한다. (예) 되어[되어/되여], 피어[피어/피여]
우리말에서는 /ㅣ/와 같은 전설모음 뒤에 /ㅏ, ㅓ, ㅗ, ㅜ/와 같은 중설모음이나 후설모음이 오면 /ㅑ, ㅕ, ㅛ, ㅠ/로 바뀌는 현상이 곧잘 일어나는데, <표준발음법> 제22항은 원칙적으로는 그렇게 바꾸어 발음하지 않되, 바꾸어 발음하는 것도 허용한다는 내용이다. 즉, ‘되어’는 [되어]로 소리 내는 것이 원칙이고 [되여]로 소리 내는 것도 허용되는 것이다. 그리고 남의 표기는 원칙 발음을 따라서 ‘되어’로 적는 것이다. 북에서는 같은 음운 환경에서 /ㅑ, ㅕ, ㅛ, ㅠ/로 반드시 바뀌어야 한다. 즉, [되여]로만 소리가 나므로 ‘되어’로 적을 까닭이 없는 것이다. 바로 이 소리의 차이가 어미 적는 법에서 차이가 생기게 된 근본 원인이다. 형식형태소는 소리를 따라 적는다는 맞춤법의 총칙을 각자 충실하게 따랐지만, 결과는 반대로 나타난 셈이다.
남에서 ‘기어가다, 개어, 되었다’로 쓰는 것을 북에서는 ‘기여가다, 개여, 되였다’로 쓰는 이유도 어미의 형태를 서로 다르게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글맞춤법> 제16항: 어간의 끝 음절 모음이 ‘ㅏ, ㅗ’일 때에는 어미를 ‘-아’로 적고, 그 밖의 모음일 때에는 ‘-어’로 적는다.
<조선말맞춤법> 제11항의 3): 말줄기의 모음이 ≪ㅣ, ㅐ, ㅔ, ㅚ, ㅟ, ㅢ≫인 경우와 줄기가 ≪하≫인 경우에는 ≪여, 였≫으로 적는다.
<한글맞춤법>을 따르면, ‘기다, 개다, 되다’ 등은 어간의 끝 음절 모음이 ‘ㅏ, ㅗ’가 아니므로 어미를 ‘-어, -었-’으로 적어야 하지만, <조선말맞춤법>을 따르면 ‘기다, 개다, 되다’ 등은 말줄기의 모음, 즉 어간의 끝 음절 모음이 각각 ‘ㅣ, ㅐ, ㅚ’이므로 어미를 ‘-여, -였-’으로 적어야 한다. 남북의 원칙 발음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남에서는 [기어가다]와 [기여가다] 둘 다 가능하지만 [기어가다]가 원칙적인 발음으로 인정되므로 ‘기어가다’로 적고, 북에서는 [기여가다]만 인정되므로 ‘기여가다’로 적는 것이다.
활용형의 축약형에도 남북 간에 차이가 나타난다.
남&북간의 차이
쓰이어 → 쓰여
          → 씌어

쓰이여 → 씌여
고이어 → 고여
          → 괴어 → 괘

고이여 → 괴여
되어 → 돼
되였다 → 됐다
되여      
되였다      
남의 ‘쓰이어’에서는 앞의 두 음절을 축약하면 ‘씌어’가 되고, 뒤의 두 음절 ‘이[i]’와 ‘어[ə]’를 축약하면 ‘쓰여[-yə]’가 된다. 반면에 북의 ‘쓰이여’에서는 앞의 두 음절을 축약하면 ‘씌여’가 되는 것은 가능하지만, 뒤의 두 음절 ‘이[i]’와 ‘여[yə]’는 축약이 가능한 음운 환경이 아니다. 축약의 결과로 나타나야 할 반모음 [y]가 이미 두 모음 사이에 끼어 있기 때문이다.
남의 ‘고이어’는 ‘고여’와 ‘괴어’ 두 가지로 줄어들 뿐만 아니라 ‘괴어’는 ‘괘’로 한 번 더 줄어들 수 있다. 하지만 북의 ‘고이여’는 오직 ‘괴여’로만 줄여 쓸 수 있을 뿐이다. 북의 문헌에서 ‘되여’나 ‘되였다’만 눈에 띄고 ‘돼’나 ‘됐다’는 나타나지 않는 까닭이 여기에 있는 것이다. ≪겨레말큰사전≫에서 ‘되다’의 활용 정보를 ‘되어/되여[돼]’로 제시한다면 재고할 필요가 있다. ‘돼’는 ‘되어’만의 축약형이므로 ‘되어[돼]/되여’와 같이 제시해야 정확한 정보가 될 것이다.
‘ㅂ’ 불규칙활용을 하는 용언의 어간에 ‘-어/-아’가 붙은 활용형을 적는 방식에서도 차이가 나타난다. 남에서는 ‘고맙다, 평화롭다’가 ‘고마워, 평화로워’로 되는 것만 인정하고 ‘고마와, 평화로와’로 되는 것은 인정하지 않는다. 어간 끝 모음이 양성모음이더라도 음성모음인 ‘-어’가 결합하는 언어 현실을 반영한 것이다. 그러나 북에서는 ‘고마워, 고마와’, ‘평화로워, 평화로와’를 모두 인정하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조선말대사전≫(1992)에서는 ‘고마와, 평화로와’만 인정하던 것을 ≪조선말대사전(증보판)≫(2007)에서는 ‘고마워, 평화로워’도 인정하는 쪽으로 바뀌었다는 점이다.3) 이 변화는 남쪽에서 ‘고마와, 평화로와’로 쓰던 것을 1988년에 <한글맞춤법>을 개정하면서 ‘고마워, 평화로워’로 바꾼 것과 맥을 같이한다. 수십 년을 갈라져 살아왔지만 비슷한 언어 변화를 거치고 있음을 보여 주는 사례이다.
‘-스럽다’에 어미 ‘-은’이 결합할 때, 남에서는 ‘사랑스러운, 영광스러운’이 맞고 ‘사랑스런, 영광스런’은 틀리지만, 북에서는 둘 다 인정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아래 두 예문은 ≪조선말대사전≫의 용례로 실려 있는 것인데, ‘-스러운’과 ‘-스런’이 다 쓰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행복에 겨워 기쁨의 노래를 저마다 목청껏 부르는 복스러운 얼굴들이 공연무대를 장식하고 있다.
허치성은 방금전까지 눈물을 흘리던 가긍스런 태도는 어디에다 줴던지고 대번에 헤벌쭉해졌다.
실제 남에서도 ‘사랑스런, 영광스런’과 같은 표기가 널리 쓰이고 있으니 규범상으로는 차이를 두고 있지만 언어 현실에서는 남북이 별로 다르지 않다고 할 수도 있겠다.
어간이 ‘ㅎ’ 받침으로 끝나는 색깔 형용사에서도 다름이 있다. 남에서는 ‘벌겋다’에 ‘-어’나 ‘-었-’이 결합하면 ‘벌게, 벌겠다’로 적지만 북에서는 ‘벌개, 벌갰다’로 적는다. 남에서는 색깔 형용사의 어간 끝 모음이 양성이냐 음성이냐에 따라 ‘퍼렇다, 허옇다’는 ‘퍼레, 허옜다’가 되고, ‘파랗다, 하얗다’는 ‘파래, 하앴다’가 된다. 그러나 북에서는 양성이냐 음성이냐에 관계없이 ‘-애’ 형태를 취한다. 즉, ‘퍼렇다, 허옇다’는 ‘퍼래, 허앴다’가 되고, ‘파랗, 하얗다’는 ‘파래서, 하앴다’가 되는 것이다. 통일이 되면 꼭 하나로 합쳐야 할 대상이다.
1)
실질형태소에 붙어 주로 말과 말 사이의 관계를 표시하는 형태소. 조사, 어미 따위가 있다. ≪표준국어대사전≫
2)
한 형태소가 주위 환경에 따라 음상을 달리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때 달라진 한 형태소의 여러 모양을 이르는 말. 각각 자음과 모음으로 끝나는 말 뒤에 나타나는 주격조사 ‘가’와 ‘이’, 목적격조사 ‘을’과 ‘를’ 따위가 있다. ≪표준국어대사전≫
3)
같은 유형의 낱말 중에도 ‘맵다’나 ‘차갑다’의 활용형은 여전히 ‘매와, 차가와’만 인정하고 있다. 증보판을 내는 과정에서 실수로 누락한 것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그렇지 않다면 개별 낱말마다 한 가지 활용형으로만 쓰이는 것도 있고, 두 가지 활용형이 두루 쓰이는 것도 있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 이대성 |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현재 국립국어원 학예연구관으로 재직하고 있다.


북녘말 배그네, 물스키의 뜻은 무엇을까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