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DF인쇄 지난호보기
겨레말은 겨레얼 입니다 겨레말큰사전 누리판

새로찾은 겨레말

옥상녀

_ 이길재 / 겨레말큰사전 새어휘부 부장

지나친 허영심과 소비성으로 자신의 존재를 부각시키려는 여자가 {된장녀라면} 지나친 인색함과 절약성으로 자신의 존재를 부각시키려는 남자가 {간장남이다}. <문화일보, 2006, 9. 25.>
위 신문 기사에 보이는 ‘간장남’과 ‘된장녀’는 최근에 만들어진 신조어로, 아직 사전에 실리지 않은 말이다. 이 두 어휘가 앞으로 사전에 실릴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지만, ‘된장녀’나 ‘간장녀’와 같은 유형의 말들이 만들어진 것은 최근의 일만은 아닌 것 같다. 놀랍게도 이러한 방식으로 만들어진 어휘들은 지금부터 80여 년 전인 일제강점기 때의 신문 기사에서도 발견된다.
  乙密臺의 {屋上女} 姜周龍遂死亡
  (중략)
  그는 작년 三월 평원(平原) 고무쟁의 당시 을밀대(乙密臺) 집웅 우에 올라가 하로밤을 새고 검속 三일간 八十여 간을 물 한목음 먹지 안코 단신한 것으로써 세상에 알려젓거니와 쟁의가 결국 로동자의 승리로 도라간 는 (중략) <동아일보 1932. 8. 17.>

  위의 신문 기사는 을밀대 지붕 위에 올라가 단식 농성을 벌였던 고무 공장 노동자 강주용씨가 사망했다는 소식을 실은 기사의 일부이다. ‘옥상녀’는 <동광> 23호(1931년 7월호)에서는 ‘체공녀(體空女)’로 불리기도 하였다. 한국에 ‘옥상녀’ 강주용이 있었다면, 일본에는 ‘연돌남’ ‘다나베 기요시’가 있었다.

  住宅侵入罪로 煙突鬪士告發
  [동경 二十二일발 전통] 천긔 체공(體空) 백三十二 시간의 긔록을 남기고 二十一일에 하계(下界)의 사람이 된 {연돌남(煙突男)} (중략) <동아일보 1930. 11. 24.>
‘연돌남, 옥상녀’는 각각 접사 ‘-남’과 ‘-녀’가1) 결합된 말들이다. 이러한 어휘들은 최근에 훨씬 더 다양한 방식으로 만들어지는데, 이는 현대 사회가 갖는 복잡성 때문에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X+-남(男)]
결혼남, 구혼남, 기혼남, 내연남, 연상남, 연하남, 독신남, 맞선남, 매춘남, 미혼남, 불륜남, 사별남, 순정남, 신혼남, 약혼남, 재혼남, 초혼남 등
간장남, 개념남, 근육남, 대세남, 도시남, 된장남, 반품남, 재고남, 직장남, 초식남, 추접남, 폭탄남, 품절남, 허세남 등
까칠남, 깔끔남, 느끼남, 능글남, 살뜰남, 엉뚱남, 훈남 등
까도남, 꼬돌남, 꼴불남, 뇌섹남, 돌싱남, 따도남, 엄친남, 완소남, 완판남, 차도남 등
매너남, 미팅남, 솔로남, 스마트남, 시크남, 싱글남, 썸남, 터프남 등
[X+-녀(女)]
결혼녀, 구혼녀, 기혼녀, 내연녀, 엽기녀, 윤락녀, 막말녀, 맞선녀, 매력녀, 매춘녀, 미혼녀, 불륜녀, 불임녀, 사별녀, 억척녀, 연상녀, 연하녀, 재혼녀, 초혼녀, 환향녀 등
간장녀, 개념녀, 대세녀, 도시녀, 된장녀, 반품녀, 복근녀, 삽질녀, 완벽녀, 왕자녀, 의리녀, 인기녀, 종결녀, 직장녀, 진상녀, 집착녀, 폭탄녀, 허세녀 등
까칠녀, 깔끔녀, 날씬녀, 발랄녀, 생뚱녀, 알랑녀, 엉뚱녀, 촌녀, 털털녀, 훈녀 등
까도녀, 돌싱녀, 따도녀, 엄친녀, 완소녀, 완판녀, 차도녀 등
매너녀, 미팅녀, 섹시녀, 솔로녀, 시크녀, 싱글녀, 썸녀, 터프녀 등
유형 ①은 모두 [사람의 행위]나 [사람의 속성]을 나타내는 명사가, 유형 ②는 [사람의 행위]나 [사람의 속성]을 나타내지 않는 명사가, ③은 [사람의 속성]을 나타내는 형용사 어근이, 유형 ④는 두자어가, 유형 ⑤는 외래어가 각각 접사 ‘-남/-녀’와 결합한 어휘들이다.
이미 80여 년 전에 만들어진 ‘옥상녀’와 ‘연돌남’이 사전에 실리지 못한 까닭은 무엇일까? 다시 말해 ‘-남’과 ‘-녀’가 결합된 어휘들 중 어떤 것은 사전에 등재되고, 어떤 것은 사전에 등재되지 못하는 것일까?
≪표준국어대사전≫(1999)에 실린 ‘-남’과 ‘-녀’가 결합된 어휘들 중 신화 관련 어휘와 불교 관련 전문어2)를 제외하면 다음과 같다.
[X+-남(男)]
고애남, 과방남, 동거남, 동정남, 불초남, 열혈남, 울남, 유부남, 이혼남
[X+-녀(女)]
가봉녀, 가장녀, 과방녀, 관상녀, 독신녀, 동거녀, 동정녀, 매음녀, 미가녀, 밀매음녀, 불초녀, 수양녀, 수유녀, 쌍생녀, 야생녀, 야성녀, 약혼녀, 양가녀, 왜장녀, 울녀, 유복녀, 유부녀, 이혼녀, 친생녀,
하종녀
위의 예들에서 동사 어간에 접사 ‘-남’과 ‘-녀’가 결합된 ‘울남’과 ‘울녀’를 제외하면 모두 유형 ①과 같은 어휘들이다. ‘-남’과 ‘-녀’는 각각 ‘남자’와 ‘여자’를 뜻하는 접미사이다. 즉, ‘-남’은 [+사람, +남자], ‘-여자’는 [+사람, -남자]와 같은 의미 자질을 갖고 있다. 그러므로 ‘-남’과 ‘-녀’는 공통적으로 [+사람]이라는 속성을 부여 받는다. 따라서 [+사람]이라는 속성을 갖는 ‘-남’과 ‘-녀’는 [+사람의 행위]나 [+사람의 속성]를 갖는 어휘 부류들과 결합될 때, 또한 결합되는 어휘 부류들이 한자어일 때 그 결합력이 극대화된다고 볼 수 있다. ≪표준국어대사전≫(1999)에 ‘-남/-녀’가 결합한 어휘 부류들은 이러한 사실을 뒷받침해 준다. 유형 ①에서 ‘맞선남/맞선녀, 막말녀’ 등의 ‘맞선’과 ‘막말’은 [+사람의 행위]라는 의미 속성을 갖는 어휘이지만 [고유어+-남/-녀]의 단어 구조를 갖기 때문에 [한자어+-남/-녀]의 단어 구조를 갖는 어휘 부류들보다 사전에 등재될 확률이 낮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은 유형 ① 중 2009년에 간행된 ≪고려대 한국어대사전≫에서 실린 어휘들을 보면 더욱 분명해진다.
① 유형: 기혼남/기혼녀, 내연남/내연녀, 미혼남/미혼녀, 사별남/사별녀, 억척녀, 혼혈녀, 환향녀
위의 예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억척녀’를 제외하면 모두 [한자어+-남/-녀]의 구조를 갖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고려대 한국어대사전≫에는 유형 ①이 아닌 유형 ③의 어휘 부류 중에서 ‘훈남/훈녀’가 실려 있다. 유형 ③은 [형용사 어근([+사람의 속성])+-남/-녀]와 같은 단어 구조를 갖는 어휘 부류로 유형 ①과 의미적으로 [+사람의 속성]을 지닌다는 유사성이 있다. 다만, 형태적으로 ‘-남/-녀’와 결합하는 선행 요소가 한자어가 아닌 고유어이기 때문에 [한자어+한자어]와 같은 단어 구조를 갖는 유형 ①보다 그 결합력이 다소 떨어진다. 이러한 이유로 아직 유형 ③은 단어로서의 지위를 부여 받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유형 ②와 ④, ⑤ 부류에 속한 어휘들은 어떤 사전에도 실려 본 적이 없는 말들이다. 유형 ②는 [명사([-사람의 행위, -사람의 속성])+-남/-녀]와 같은 단어 구조, 유형 ④는 [두자어+-남/-녀]와 같은 단어 구조를 갖는 어휘들로 단어 구조가 생성해 내는 어휘적 의미보다는 특정 시대 혹은 특정 계층의 사회적 흐름을 읽어 내는 사회적 의미가 강한 말들이다.
‘옥상녀, 연돌남’이 사전에 등재되지 않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볼 수 있다. 당시 자본주의 사회의 노동력 착취라는 사회적인 사건의 한 단면을 담고 있는 ‘옥상녀’와 ‘연돌남’은 당시 사건에 대한 맥락과 사회적 상황의 전제 없이는 그 의미를 정확히 알 수 없다. 따라서 사회적 상황이 소멸되거나, 사건이 해결되거나, 사회적 갈등이 해소되면 그와 관련된 단어들도 자연스럽게 쓰이지 않게 되면서 그 생명력을 잃게 되는 것이다. 생명력을 담보할 수 없는 어휘를 사전에 싣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표준국어대사전≫과 ≪고려대 한국어대사전≫에 실린 어휘들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유형 ①과 ③을 제외한 유형 ②, ④, ⑤는 아직은 사전의 올림말로서 등재되어 있지 않다.
유형 ① [명사/어근([+사람의 행위] 또는 [+사람의 속성])+-남/-녀]
유형 ② [명사/어근([-사람의 행위] 또는 [-사람의 속성])+-남/-녀]
유형 ③ [형용사 어근([+사람의 속성])
유형 ④ [두자어+-남/-녀]
유형 ⑤ [외래어+-남/-녀]
유형 ①과 ③의 어휘들이라고 해서 모두 사전에 오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비록 ①과 ③의 유형이라고 하더라도 사회적인 수용 과정을 통해 용인된 어휘들만 사전에 등재가 가능하다. 유형 ③의 촌녀는 아직 어떤 사전에도 올라 있지 않지만 ‘촌에 사는 여자’의 의미보다는 ‘세련된 맛이 없고 어수룩해 보이는 여자’의 의미로 사전에 실을 수 있을 것 같다. 유형 ③의 어휘들 중 말뭉치에서 그 용례를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촌녀’와 ‘훈남/훈녀’뿐이다.
그 칠칠한 듯한 {촌녀의} 투가 어쩐지 싫지는 않았다.《이호철: 소시민》
지원 이유는 종합병원에 {훈남}, {훈녀만이} 존재한다고 여기는 착각 때문이다.《정수현: 페이스 쇼퍼》
사전 편찬 과정에서 어떤 어휘가 사회적으로 용인되었는지를 판단하는 것은 순전히 사전 편찬자의 몫이다. 다만, 객관적 근거를 확보하기 위해 가장 먼저 참고하는 것은 사전 편찬용 말뭉치에서 산출되는 빈도수이다. ≪겨레말큰사전≫에서도 유형 ①과 ③의 부류들 중 말뭉치에서 빈도 높게 나타나는 어휘들을 새어휘로 실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1)
‘-녀’는 대부분의 국어사전에 접미사로 등재되어 있지만, ‘-남’은 아직 어떤 사전에도 접미사로 등재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남’도 ‘-녀’와 관련하여 접미사로 처리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2)
신화나 불교 관련 전문어는 다음과 같다.
[-남] : 근사남, 근책남, 이생남, 청신남
[-녀] : 근사녀, 근책녀, 나차녀, 나찰녀, 도화녀, 아수라녀, 이질녀, 정학녀, 청신녀, 하백녀, 학계녀, 학법녀, 흑암녀,
         흑암천녀

| 이길재 |

겨레말큰사전남북공동편찬사업회 새어휘부 부장. 전북대학교 대학원 국어학 박사. 전북대 인문과학연구소 책임연구원, 호남문화정보시스템 책임연구원 등을 지냈으며 논문으로는 <전이지대의 언어 변이 연구>, <전라방언의 중방언권 설정을 위한 인문지리학적 접근> 등이 있고, 저서로는 『언어와 대중매체』, 『지명으로 보는 전주 백년』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