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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풀이 깁고 더하기

명사 <악>과 동사 <악쓰다>

_ 김수현 / 겨레말큰사전 선임연구원

   관용구를 집필하다 보니 단어와 동사구, 이와 관련된 합성용언의 풀이를 사전에서 어떻게 다룰 것인지를 고민하게 된다. 명사 <악>과 동사구 <악을 쓰다>, 합성용언 <악쓰다>에 대한 사전적 처리도 그 한 예이다. 북측에도 <관용구>라는 말이 있기는 하지만 사전 편찬 현장에서는 <성구>라는 말을 더 많이 쓴다. 북측의 <성구> 개념은 <관용구>보다 훨씬 넓은데 실제로 북측 사전에는 <연어>로 다룰 수 있는 표현들이 <성구>에 포함되어 있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다. <관용구>와 <성구>의 구분, <관용구>와 <일반구>의 구분, <관용구>와 <연어>의 구분 문제는 사전 편찬에 있어서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사전 편찬의 실제에서는 이 문제가 결코 녹록지 않은 골칫거리이다.
   <악쓰다>는 ≪표준국어대사전≫을 비롯한 남측 국어사전에 모두 합성용언으로 올라 있지만, 북측의 ≪조선말대사전≫에서는 성구 <악을 쓰다>로 올라 있다. 두 사전의 뜻풀이를 보이면 아래와 같다.
사전의 뜻풀이
표준국어
대사전(1999)
악1 [명사]
   있는 힘을 다하여 모질게 마구 쓰는 기운.
악-쓰다 [동사]
   악을 내어 소리를 지르거나 행동하다.
조선말대사전(2007) 악1 [명사]
   ① 몹시 기를 쓰며 나타내는 모진 기운.
   ② 모질게 일어나는 성.
   ③ 모질거나 독하게 먹는 마음.
악(을) 쓰다 [성구]
   있는 힘을 다하여 기승스럽게 애쓰다.
   한쪽에서는 합성용언으로 처리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성구로 처리하고 있는 말을 ≪겨레말큰사전≫에서는 어떻게 처리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일까?
   <악쓰다>와 같이 일음절 명사와 <쓰다>가 결합한 합성용언으로는 <힘쓰다, 손쓰다, 애쓰다, 꾀쓰다, 용쓰다> 등이 있다. 이들 중 대부분은 <악쓰다>처럼 남측의 사전에만 합성용언으로 올라 있는데, <힘쓰다>는 ≪조선말대사전≫에서도 합성용언으로 올라 있다. 북측 사전에서 유일하게 <힘쓰다>만 합성용언으로 처리한 까닭을 확실하게 알 수는 없지만, 늘 한 단어처럼 붙여 쓰는 빈도가 높아 그리 처리한 게 아닌가 싶다. 실제로 북측 인용례를 보면 <일음절 명사+쓰다> 형을 대부분 붙여 쓰고 있는데 <애써서, 용쓰는, 떼써> 등이 그것이다. <악쓰다> 역시 <악쓰는 소리, 악쓰듯 부르짖다>로 나타난다. 물론 이를 <악 쓰는 소리, 악 쓰듯 부르짖다>와 같이 띄어 쓰고 <악을 쓰다>에서 조사가 생략된 것으로 처리할 수도 있다. 그러나 ≪조선말대사전≫에서는 <손(을) 쓰다, 애(를) 쓰다, 용(을) 쓰다>의 예를 보듯이 조사를 괄호로 묶고는 있지만 이 조사를 생략하고 띄어쓰기한 예는 따로 보이지 않고 있다.
   그러면 성구 <악을 쓰다>는 어떻게 처리하는 것이 좋을까? 우선 <악을 쓰다>를 연어로 보고 명사 <악>의 인용례로 제시하는 방법이 있고, 다른 하나는 넓은 의미의 관용구로 제시하는 방법이 있다. 그런데 후자의 방법은 재고가 필요하다. 북측에서 성구로 보고 있는 <꿈을 꾸다, 꾀를 부리다, 심술이 나다> 등을 선행 명사가 대체될 때마다 모두 짝 맞추어 관용구로 올릴 수도 없거니와 주표제어의 뜻풀이에서 보이는 예구나 인용례와 중복될 가능성도 높기 때문이다.
   결국, <악쓰다>처럼 일음절 명사와 결합하여 만들어진 것은 합성용언으로 간주하여 주표제어로 처리하고 <악을 쓰다>와 같은 연어 또는 일반구는 주표제어의 인용례로 보여주는 것이 타당할 듯하다. 물론 이에는 북측과의 합의가 전제되어야 한다.
   그러면 뜻풀이는 어떻게 이루어지는 것이 좋을까? 위에서 제시했듯이 명사 <악>을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있는 힘을 다하여 모질게 마구 쓰는 기운’으로 풀이하고 있고, ≪조선말대사전≫에서는 ‘① ~기운. ② ~성. ③ ~마음.’으로 나누어 풀이하고 있다.
   단순하게 <악>이라는 단어를 머릿속에 떠올리면 직관적으로 <아이가 악을 쓰며 울다>와 <힘든 상황에서 악으로 버티다> 정도가 그려진다. 전자는 <~소리 또는 기운>의 의미를 후자는 <~마음(?)>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듯하다. 이를 명사 <악>의 풀이에 적용하고 동사 <악쓰다>에는 행동성의 의미를 추가하여 뜻풀이를 보완하면 어떨까 한다. 이를 정리하여 명사 <악1>과 동사 <악쓰다>를 수정해 보면 다음과 같다.
1[명]
   ① 기를 쓰며 사납고 독하게 내지르는 소리, 또는 거기에서 느껴지는 기운. ∥ 아이가 {악을} 쓰며 울다. | 그들은 돼지 멱따는 소리로 {악을} 쓰면서 군중을 해산시키려고 미쳐 날뛰였다.(≪질소비료공장≫) / 최 사장은 박산슈퍼를 향해 연방 삿대질을 해가며 고래고래 {악을} 써댔다.≪김한수: 만년설≫
   ② 모질고 독한 마음. ∥ {악만} 남다. {악으로} 버티다. {악이} 나다. {악이} 치받쳐 오르다. | 노파는 … 칠십이 훨씬 넘은 나이지만 {악으로} 살아온 일생이라 그런지 강단은 있어보였다.≪서동훈: 정교수의 어느 하루≫ / {악밖에} 남지 않은 그가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몹시 두려운 배두천이 부랴부랴 그의 앞을 막아선다.≪강효근: 바람은 가슴속에 멎는다≫(연)

악쓰다 [악써, 악쓰니] [동](자)
   ① 기를 쓰며 사납고 독하게 소리를 내지르다, 또는 그런 기운을 내뿜다. ∥ {악쓰는} 고함 소리. {악쓰며} 싸우다. {악쓰면서} 덤벼들다. | 개들이 지나가는 행인들을 보자 {악쓰며} 짖어댔다.≪리근전: 고난의 년대≫(연) / 이봐, 웨이터. 여기 맥주 더 줘.” 길수는 밖을 향해 {악써} 외쳤다.≪박범신: 물의 나라≫ / 현장에선 감독 놈들이 {악쓰는} 소리가 그치지 않았다.(≪눈석이꽃≫)
   ② 모질고 독하게 마음먹고 악착같이 행동하다. | 가난에 치가 떨려 {악쓰며} 벌어온 돈, 그 돈이 갖다주는 것은 기막힌 현실이였다.≪손룡호: 확인≫(연) / “매사를 순리대루 풀어야쥬. 장사란 게 {악써서} 되는 게 아니잖유.”≪김용만: 능수엄마≫
※ 이 글은 글쓴이의 견해로 ≪겨레말큰사전≫의 공식 입장이 아님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