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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언어 통합, 탈북민의 몫?

_ 한정미 / 통일부 하나원 우리말상담실

   하나원에서는 한 달에 한 번 수료식이 진행된다. 입소 후 3개월만의 수료다. 벅참, 슬픔, 긴장, 두려움이 섞인다. 신분증이 생긴다는 벅참, 탈북여정을 같이 한 ‘우리 사람들’과 헤어져야 한다는 슬픔, 낯선 땅에 발을 딛어야만 한다는 긴장, 잘 살아낼 지에 대한 두려움.
   이런 저런 복잡한 심정으로 며칠 동안 불면의 밤을 보냈는데, 북한관련 좋지 않은 뉴스라도 있으면 수료를 앞둔 북한이탈주민들의 얼굴은 수심이 더 짙어진다. 탄도 미사일 발사와 북한이탈주민은 아무 상관이 없는데 북한이탈주민들은 마치 죄인이라도 된 듯 움츠러든다. 사실 그들도 피해자인데 말이다.
   지난 달, 국립국어원은 ‘2016년 남북 언어의식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일반국민, 북한이탈주민, 북한이탈주민 접촉국민, 남북관계 전문가 등 총 2,376명을 대상으로 조사를 했는데, 북한이탈주민 10명 중 7명이 남한에서 북한 말씨를 사용하는 것이 본인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고 응답했다. 10명 중 4명이 말씨 때문에 남한에서 무시나 차별을 받은 적이 있다고도 답했다.
   무시나 차별을 받는다고 인식하는 것은 화자의 주관적인 판단이라고도 할 수 있으니 청자 혹은 제 3자인 남한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확인해 보았다. 일반국민 10명 중 5명, 접촉국민 10명 중 8명이 북한이탈주민들이 언어적인 문제로 차별이나 무시를 받고 있는 것 같다는 점에 동의를 했다. 전문가의 경우는 조사대상 50명 중 49명이 북한이탈주민이 남한에서 북한 말씨를 쓰는 것 때문에 부정적인 영향을 받는다고 답했으며, 구직활동이나 이웃과의 교류 등에서 불이익이나 차별을 받고 있다고 했다. 북한이탈주민 접촉국민, 남북관계 전문가 등 북한이탈주민 가까이에 있어 그들의 생활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기회가 많으면 많을수록 언어 때문에 겪는 그들의 불편함에 크게 동감하고 있는 것이다.
   경상도, 전라도 등 다른 방언 사용자들은 본인의 말씨를 어떻게 생각할까? 다른 방언 사용자들은 말씨로 인해 무시나 차별을 받은 경험이 없다고 한다. 10명 중 9명이 그렇게 응답했다. 오히려 10명 중 5명은 방언 사용자들이 편하고 친근하다고 응답했다. 남한의 다른 방언은 무시나 차별을 받지 않는데 북한 방언은 불이익을 받고 있는 것이다.
   북한, 북한핵개발, 북한이탈주민, 북한말을 동일시 한 결과가 아닐까? 북한 당국에 대한 불편한 감정이 북한이탈주민, 북한말에 오버랩 된 것은 아닐까? 하나원을 수료하는 북한이탈주민들이 북한의 대남공세가 강화될수록 수심이 짙어지고, 심리적으로 위축되는 것은 기우가 아니라는 말인가?
   남한 사회에 정착한 지 한 달 가량 되는 북한이탈주민에게 가장 힘든 점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사람들의 시선이라고 했다. 말없이 있으면 아무도 쳐다보지 않는데 가격을 묻는 한 마디, 길을 묻는 한 마디, 휴대전화에 답하는 한 마디에 모든 시선이 본인을 향한다고 한다. 적대감까지는 아닌 것 같기는 하지만 왠지 구경거리가 된 것 같은 묘한 기분이 느껴진다고 한다. 동정하는 것 같기도 하고, 무시하는 것 같기도 하고 정말 묘하다고 한다. 중국에서 말 때문에 사는 것이 힘들었기에 남한 땅에 들어서면 적어도 말 때문에 힘들어지는 상황은 없을 것이라고 기대했는데 말이 발목을 잡은 것이다.
   언어는 남과 북이 한민족, 한 민족임을 확인시켜 주는 징표와 같은 것인데 ‘같은 조선말인데도 왜 이리 다를까’ 안타깝다고 한다. 외래어는 물론 여당, 귀경, 출산, 음치, 유기농, 정찰제, 갱년기 등 초등학생도 아는 어휘를 공부해야 하고, 땅의 분단・체제 분단・환경 분단이 가져다 준 남과 북의 언어문화와 언어감성 차이도 익히고 느끼고 체화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묘한 시선을 받지 않기 위해 ‘남자들도 살랑살랑’ 말하는 남한식 발음, 남한식 억양으로 교정해야 한다. 남한 사람들과 소통을 하기 위해 남한 말을 공부해야 하는데, 소통보다도 무시・차별을 받지 않기 위해서, 북한에서 왔다는 것을 숨기기 위해서 남한 말을 학습해야 하는 것이다.
   북한이탈주민들은 하나원에서 3개월 동안의 언어적응을 위한 교육과 반복 학습을 통해 최소한의 준비를 하고 사회에 진출한다. 말 그대로 최소한의 준비다. 완벽하게 구사할 형편은 절대 되지 못한다. 한국어가 모국어라고 하더라도 습관으로 굳어진 발화특성을 쉽게 바꿀 수 없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그 당연한 것이 사회 진출의 큰 장애로 작용하고 있기에 북한이탈주민들 10명 중 8명이 남한 사람처럼 말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문제의 원인은 오직, 북한이탈주민에게만 있는 것처럼 말이다.
   북한이탈주민이 남북 언어 통합을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남한 사회에 편입을 했다는 이유로 남북 언어차이를 고스란히 북한이탈주민이 감내하고 있다. 현재의 상황에서는 소수인 북한이탈주민이 다수인 남한 주민이 향유하는 남한식 언어문화에 흡수될 수밖에 없다는 것, 일면 맞을 수도 있다. 그러나 남북 언어 통합을 위한 학습의 부담, 시선의 부담을 북한이탈주민에게만 넘길 수는 없지 않은가.
   남북 언어 통합의 궁극적인 목표는 북한이탈주민의 언어 이해를 통해 북한이탈주민과 오해 없이 원활한 대화를 하는 것이다. 말해 무엇 하겠는가? 그런데 북한이탈주민의 언어 이해보다 더 시급한 것이 있다. 인식의 전환이다. 경상도, 전라도 방언과 북한 방언이 다르지 않다는 사회적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먼 길 돌고 돌아 우리의 이웃으로 다가온 북한이탈주민들이 말씨 때문에 또 한 번 묘한 시선을 감내해야 하는 피해자가 되지 않도록 무시, 차별의 시선을 거두어들이는 사회적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북한에서는 배고파서 못 살고, 중국에서는 신분증이 없어서 못 살고, 한국에서는 몰라서 못 살겠다고 한다. 학습의 부담, 터득의 부담을 고스란히 안고 있는 우리의 이웃 북한이탈주민들이 더 이상 무시와 차별의 불이익까지 감내하지 않도록 말이다.
   남한 출신, 북한 출신이 자연스럽게 서로의 고향을 확인할 수 있는 그 날을 기대해 본다.

| 한정미 |

숙명여자대학교 대학원에서 북한 문예정책 연구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장 확인 없이 북한을 논하는 것에 한계를 느끼고 있던 중 남한에서 가장 북한스러움을 간직하고 있는 하나원을 찾았고, 2005년부터 이 곳에서 북한이탈주민의 언어・문화적응을 돕고 있다. 그리고 현장에 바탕을 둔 북한 언어, 북한이탈주민 언어・언어 적응 교육 방법론, 북한어 번역 등 남북 언어 통합에 관한 강연활동과 글쓰기 작업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