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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레말은 겨레얼 입니다 겨레말큰사전 누리판 2017.01

뜻풀이 깁고 더하기

자료에 기댄 뜻풀이 수정 몇 가지

_ 최정도 / 국립국어원 학예연구사

   지금 현재 사전 표제어에 대한 뜻풀이를 할 때에는 ‘말뭉치(Corpus)’라고 하는 언어 자료를 참고하는 것이 일반화되었다. 지난 시간 동안은 집필자의 직관에 의존하여 뜻풀이를 하거나, 언어 자료를 사용하여도 용례를 만들기 위하여 참조하는 정도로 이용해 왔을 뿐이다. 하지만 지금 편찬되는 사전에서는 해당 표제어의 용례에 대한 의미 분석을 통하여 좀 더 객관적인 뜻풀이를 제시하거나 보완하고 있다. 이에 언어 자료를 이용한 『표준국어대사전』의 뜻풀이 수정 관련 사례를 몇 가지 제시해 보고자 한다.

먼저 사전 내용이 수정된 것이다.

· 운항하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동사 ‘운항하다’는 아래와 같이 풀이되어 있었다.

운항-하다(運航--)「동사」【…을】배나 비행기가 정해진 항로를 따라 다니다.

   즉 우선 타동사로만 풀이되어 있는 ‘운항하다’가 자동사로서의 쓰임은 없는가 하는 것이 문제가 되었다. 그리하여 약 1억 5천만 어절에 해당하는 시기별 말뭉치(비공개용 말뭉치)에서 동사 ‘운항하다’의 용례를 모두 찾으니 18개의 용례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이 중에 11개(61%)가 타동사로, 7개(39%)가 자동사로 쓰인 것이다.
(1) 파라다이스호는 원광해운이 올 초에 도입한 초쾌속 여객선, 승선 정원 380명에 시속 70킬로미터 이상의 속력으로 운항하고 있는 478톤급 연안 여객선이다.
(2) 서해 페리호 침몰 사건으로 유명한 위도를 가려면 이곳 격포항에서 하루 2회 운항하는 여객선을 이용하면 된다.
(3) 간판에 비행기를 그려 넣은 것은 그런 고민의 결과였고 또 가끔씩 악천후로 비행기가 운항하지 않았을 때엔 어김없이 가게 문을 열지 않는 손해도 감수한다.
(4) 라인강의 범람을 막고 배가 운항할 수 있도록 2세기에 걸쳐 쌓아 왔던 제방을 뜯어내고 있는 것이다.
(5) 양국은 또 중국의 북경, 상해, 하얼빈 등을 거쳐 상대국까지 운항할 수 있도록 하고, 상호 취항 항공사 수는 2개까지 가능하도록 합의, 아시아나 항공도 소련 취항의 길이 열렸다.
   따라서 ‘운항하다’의 자동사적 쓰임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인정하여 자동사·타동사 정보를 함께 주는 것으로 수정되었다. 하지만 여기서 ‘배나 비행기가 정해진 항로를 따라 다니다’라는 뜻풀이가 다소 아쉽다는 점이 지적되었다. 아래 용례를 살펴보면 ‘김해공항~옥포, 포항~울릉, 후포~울릉, 서울~사이판’ 등이 항로보다는 목적지에 가깝다는 의견에 제시되었다. 그리하여 ‘항로를 따라 다니다’보다는 ‘목적지를 오고 가다’라는 풀이가 더욱 정확하다는 점이 지적되어 뜻풀이도 함께 수정하게 되었다.
(6) 8인승 12인승 S76B 헬기와 미국 벨항공사의 벨212기 등 3대를 보유한 대우그룹은 김해공항과 옥포간을 주로 운항하고 있다.
(7) 경북에서는 동해안 일대의 높은 파고로 포항~울릉, 후포~울릉 등 2개 항로를 운항하는 3척의 정기 여객선이 운항을 중지, 포항항에 정박했다.
(8) 이용한 항공편은 서울과 사이판을 논스톱 운항하는 콘티넨탈 마이크로네시아였다(국내 항공사 중에선 아시아나가 사이판에 취항하고 있다).
(9) 대한항공은 주 1회 중동 지역을 운항하다 걸프전 발발 직전인 지난 1월 15일 중단했었다.
   한편 아래의 예들을 살펴보면 단지 ‘배나 비행기가 정해진 항로나 목적지를 오고 가다’라는 풀이로 끌어안기가 어렵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배, 비행기’나 특정 항공사의 기종인 ‘KAL기, 보잉기, 에어버스’를 운항하는 것도 ‘운항하다’의 일상적인 쓰임으로 보이기에, 이에 해당하는 뜻풀이를 추가해 주었다.
(10) 이것은 보다 편한 사회 ― 영국의 어느 정치학자는 국가 경영의 문제를 종착의 항구가 없는 배를 운항하는 것이라고 말한 바가 있는데 이러한 말로 설명될 수 있는, 보다 편한 사회의 느슨한 삶에 우리 사회를 비교하여 보면 금방 알 수 있는 것이다.
(11) 한국항공은 지난해 8월까지 제주~추자도, 제주~서귀포, 김해~거제 등 자동차운행이 어렵거나 관광객이 많은 극히 일부지역에 정기노선을 운항했지만 지금은 계속적인 적자로 운항권을 반납한 실정이다.
(12) KAL기를 운항하다, 보잉기를 운항하다, 에어버스를 운항하다
   그리하여 최종적으로 수정되어 현재 공개되어 있는 ‘운항하다’의 뜻풀이는 아래와 같다.

운항-하다(運航--)「동사」
   [1]【(…을)】배나 비행기가 정해진 항로나 목적지를 오고 가다.
   [2]【…을】배나 비행기 따위를 운용하다.

   이번에는 사전에서 뜻풀이 수정 논의가 이루어질 만한 것이다.
· 대여하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동사 ‘대여하다’는 아래와 같이 풀이되어 있다.

대여-하다(貸與--)「동사」【…에/에게 …을】=빌려주다「1」.
대여02(貸與)「명사」빌려줌. ≒대급02(貸給).

빌려-주다「동사」【…을 …에/에게】
   「1」물건이나 돈을 나중에 도로 돌려받거나 대가를 받기로 하고 얼마 동안 내어 주다.
           ≒대여하다ㆍ대급하다02.
   「2」어떤 장소나 시설물을 얼마 동안 쓸 수 있도록 내어 주다.

   현재 ‘대여하다’는 고유어 ‘빌려주다’와 같은 말로만 풀이되어 있다. 언뜻 직관을 떠올려도 두 말이 공통적으로 함의하는 바가 ‘발려주다’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대가’가 따를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는 ‘빌려주다’에 비하여 ‘대여하다’가 상업적인 측면에서 항상 ‘대가’가 따르는 행위라는 차이가 존재할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대여하다’와 ‘빌려주다’의 차이가 뜻풀이에 반영되는 것이 논의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한편 여기서 중점적으로 언급하고자 하는 것은 ‘대여하다’와 ‘빌려주다’의 뜻풀이상의 차이점이 아니라, ‘대여하다’에 ‘빌려주다’의 의미 외에 ‘빌리다’라는 의미가 존재하지 않느냐 하는 것이다.1) 역시 약 1억 5천만 어절에 해당하는 시기별 말뭉치(비공개용 말뭉치)에서 동사 ‘대여하다’의 용례에서 ‘빌리다’의 의미로 사용되는 용례를 아래에 제시한다.
(13) 미도파는 스키를 4세트 이상 대여하면 캐리어를 공짜로 빌려준다.
(14) 기가비트 컴퓨팅에서는 파일 서버가 동일한 사무실 내에 있을 필요가 없기 때문에 파일 서버는 파일 서버 대여회사에서 대여하여 사용하는 것이 일반화된다.
(15) 참고로 이용요금은 공유림의 경우 텐트장 1조 1일에 2천원이며 텐트를 대여해 사용할 때는 3천원이다.
(16) 대여점에서는 육아용품을 대여해 쓰다가 소비자가 망가뜨리거나 고장이 난 경우 대부분 수선비용을 물게 하고 있다는 점을 유념하는 게 좋다.
(17) 아직까지 서비스 지역에 제한이 있고, 대부분 별도의 장비가 필요하기 때문에 초기에 많은 비용을 들여 이 장비를 구입하거나 매달 일정액을 내고 대여해야 한다.
   (13)에서는 ‘대여하다’와 ‘빌려주다’가 서로 대비되어 있어 이때 ‘대여하다’가 ‘빌리다’의 뜻으로 사용되었다는 것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14)와 (15)에서는 ‘대여하다’에 이어 나타나는 ‘사용하다’가 ‘대여하다’와 함께 같은 행위자 주어를 공유해야 하기 때문에 ‘대여하다’가 ‘빌리다’로만 해석이 가능하다. (16)의 경우도 (14), (15)와 마찬가지이다. (17)에서도 ‘매달 일정액을 내고’ 대여하는 것은 ‘빌려주다’가 아니고 ‘빌리다’로 해석되어야 할 용례이다. 따라서 이러한 용례를 살펴보면 ‘대여하다’가 ‘빌리다’의 의미로 자연스레 사용되고 있는 것을 분명히 관찰할 수 있다.
   다만 이러한 풀이가 사전에 반영되기 전에 다시금 이것이 오용인지의 여부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가 필요할 것이다. 왜냐면 우선 ‘대여하다’의 원어인 한자가 ‘貸與’이기에 이것을 우리말로 그대로 풀면 ‘빌려주다’가 되는데, 여기에 ‘빌려주다’와 반대의 뜻인 ‘빌리다’를 함께 풀이한다는 것이 부담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는 각 사전의 성격에 따라 결정될 것으로 판단된다.
   이처럼 현재의 사전 뜻풀이 보완은 말뭉치라는 언어 자료를 이용하는 것이 일반적인 일이 되었다. 하지만 역시나 이러한 언어 자료를 선정하여 검색하고, 용례를 추출하여 용례 하나하나를 일일이 분석해야 하는 고된 작업이 반드시 병행되기에 이러한 작업이 진정 ‘행복한’ 일인지는 의문이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결과에 뒤따르는 보람은 ‘행복한’ 일이기에 오늘도 말뭉치 용례를 분석하는 것이 지금 시대의 사전편찬자의 업 중 하나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1) 이것은 동료인 이윤미 학예연구사가 지적해 준 것임을 밝힌다.

| 최정도 |

연세대 국어국문학과 박사과정 수료, 현재 국립국어원 학예연구사로 재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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