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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레말은 겨레얼 입니다 겨레말큰사전 누리판 2017.01

남녘말 북녘말

걸음마차와 보행기

_ 최부자 / 회사원

   인터넷쇼핑몰에서 일할 때였다. ‘아기 체육관’, ‘러닝 테이블’, ‘쏘서’, ‘점퍼루’, 보행기 등 아기들의 성장발달에 유용한 유아용품들을 조립할 때 나의 눈앞에는 우리 아이들의 귀여운 어린 시절들이 주마등처럼 흘러갔다.
   우리 아이들은 보행기를 타며 남보다 걸음마준비를 자유롭게 시작 할 수 있었다.
   아들은 보행기에 앉혀주면 착하게 혼자 우유 마시며 빙글빙글 온 집안을 잘 돌아다녔고, 딸은 오빠와 달리 보행기에 오래 앉아 있으려 하지 않았다.
   보행기는 아이들이 엄마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면서 걸음마를 남보다 수월하게 배울 수 있게 해주었고 바쁜 나의 일손을 덜어주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따르릉~ 유아용품 대여 문의 전화가 왔다. 보행기를 문의하는 전화였다. 문의 전화를 받는 나에게는 보행기가 아직도 귀에 설고 걸음마차가 먼저 이중으로 들려왔다.
   북한에는 장난감이나 아기용품들은 중국산이 제일 많고, 일본산, 태국산 등이 판매되는데 북한은 ‘보행기’를 ‘걸음마차’라고 부른다.
   화창한 5월의 어느 날 출근길에 나섰다. 버스에 오르는 순간 어디선가 향기로운 냄새가 내 코를 물씬 찔렀다.
   어디서 날까. 버스 안을 둘러보니 연한 보라빛 라일락 꽃 묶음이 걸이대에 꽂혀 있었다.
   아~ 저기서 나는 향기구나! 라일락 꽃다발은 버스 안에 은은하고 상쾌한 향기를 한껏 내뿜으며 사람들의 마음을 정화시키는 것 같았다.
   일부러 라일락 꽃을 가져다 놓았을 버스 운전수 아저씨의 따뜻한 마음이 느껴졌다.
   그윽한 꽃향기와 아름다운 라일락을 본 내 마음이 다 즐거워지고 오늘 하루는 그 꽃향기에 밀려 행복한 하루가 될 것 같다.
   나는 회사 문을 열기 바쁘게 친한 선배님에게 아침 출근길에 버스 운전수의 아름다운 소행을 보았다고 떠들었다. 그런데 선배님은 두 눈을 크게 뜨고 ‘소행’이 뭐냐고 되물었다. 나는 “소행이 소행이지, 뭐 겠냐.”고 오히려 되받았다.
   선배님은 한국에선 소행이 나쁜 뜻으로 쓰인다고 말해주었다. 그 말에 한껏 기분이 들떠있던 나는 마음이 상했다.
   북한에선 착한 일을 ‘아름다운 소행’이라고 말하는데, 그 뜻을 이해 못한다고 하니 머리가 멍멍해졌다.
   같은 하늘에서 같은 공기를 마시며 사는 단일민족이 분단 70여 년이 지난 오늘에 와서 언어가 정반대로 해석된다는 것이 너무나 마음이 아팠다.
   그러면서도 한편 서글펐다. 남북이 통일 되어도 한 민족 같은 언어가 아니라 서로가 다르게 공존하는 나라처럼 느낄 것이라는 불안감과 서운함이 밀물처럼 내 마음 속에 흘러들었다.

| 최부자 |

평양에서 전문학교 졸업, 2010년 서울로 입국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