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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레말은 겨레얼 입니다 겨레말큰사전 누리판 2017.01

남녘말 북녘말

드라마 표현으로 보는 남북의 언어

_ 전영선 / 건국대 통일인문학연구단 HK연구교수

   강의 시간에 북한 영화나 드라마를 보여주면 처음부터 제대로 알아듣는 학생들은 많지 않다. 억양이 다르고, 어휘가 다르기도 하지만 예상치 않은 표현을 만나게 되기 때문이다. 영어를 배울 때 으레 ‘굿모닝’하면 ‘파인 땡큐. 하알유’라고 하는 공식 같은 대화가 있었다. 그런데 예기치 않은 표현을 하면 당황하게 되고 들리지 않게 된다. 이런 표현들은 생생하고 재치 있게 상황의 맛깔스러움을 살려준다. 동시에 남북의 언어 차이를 알려준다.
   속담이나 관용적 표현에서도 남북의 차이가 있다. ‘말갈랭이 같은 여자’, ‘족제비도 낯을 붉힐 추태’, ‘개는 짖어도 기차는 간다’, ‘처마 끝의 붉은 댕기 보고 불이야 하는 격’, ‘소가 웃다가 꾸러미가 터질 소리’, ‘까마귀 하루아침에 아흔아홉 가지 소리 한다’, ‘미꾸라지 국 먹고 용트림한다’, ‘나중에 나는 뿔이 우뚝하다’, ‘따스한 땅에 물이 고인다’, ‘병에 가득찬 물은 저어도 소리가 안 난다’, ‘이마에 땀을 내고 먹어라’ 등의 표현은 북한에서 익숙한 속담이나 표현들이다. 드라마에서는 어떤 것이 있을까. 몇가지 소개한다.
   □ “아침에 미뤄두었던 청어토막 점심 밥상에 또 올라와 깨꾸 한다더니….”
   핸드폰의 올바른 사용을 주제로 텔레비죤극창작단에서 제작한 10분짜리 토막극 <철이 아버지였군요>의 한 장면이다.
   아침 출근길에 버스 안에서 한 여성이 어린 아이를 달래고 있었다. 버스 안에서 쌔근쌔근 잠자고 있는 아이의 얼굴을 보면서 옆에 있던 할머니도 “아이가 참 귀엽다”고 말을 건넨다. 그때였다. 앞에 있던 한 남성의 핸드폰이 이상한 동물소리를 내면서 울린다. 전화를 꺼내 든 남성은 다른 사람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큰 소리로 통화를 한다.
   “오 너 박춘갑이로구나. 아. 아버지 환갑. 잘 치루었지. 늙으면 잔소리만 늘어….”
   얼마나 큰소리로 통화를 하는지 곤히 잠들었던 아이가 깨어나서 칭얼거렸다. 아이의 칭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던 모양이다. 통화를 하던 남성이 돌아서서 한 마디 한다.
   “아. 아주머니 아이를 좀 달래시구려. 어디 시끄러워 통화를 하겠소.”
   적반하장! ‘뭐 이런 황당한 경우가 다 있어.’ 아침부터 이게 무슨 상황이람.
   아침부터 황당한 일을 당했던 여성이 오후에 공연장에 가게 되었다. 직장에서 관람조직이 있었다. 공연장에 자리를 잡고 앉았는데, 글쎄 바로 앞자리에 한 남성이 앉는데, ‘아뿔싸’ 아침 버스 안에서 만난 적반하장이다.
   불길한 예감은 빗나가는 적이 없다. 공연이 끝나갈 무렵이었다. 조용한 공연장에 난데없이 울리는 이상한 동물울음 소리. 적반하장의 핸드폰 소리였다. 핸드폰을 잡아든 남자는 통화를 했다.
   “아 왜? 글쎄 알았다니까….”
   이쯤되면 참을 수 없지. 요즘 같은 시대에 저런 매너없는 사람이라니. 여성이 한마디 한다.
   “공연이나 대중관람 장소에서는 핸드폰을 꺼두시는 게 어떨까요. 아직 공연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핸드폰을 끄십시오.”
   최대한 예의를 차려 점잖게 타일렀다. 그런데 반성은 커녕 돌아온 이 남성의 한마디.
   “아니. 아침에 버스 안에서 아이 하나 달랠 줄 모르던 그 동무 아냐.” 적반하장도 기억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어지는 말에 기가 막힌다.
   “아침에 미뤄두었던 청어토막 점심 밥상에 또 올라와 깨꾸 한다더니. 극장에서 또 만날 줄이야….”
   청어는 예로부터 흔하디흔한 생선 중의 하나였다. 지금은 청어도 제법 귀해지고, 대접도 받게 되었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청어는 서민들이 먹던 국민 생선이었다. 그래서 귀하지도 않고 좋아하지도 않아 먹기 싫어 미루어 두었던 청어토막이 점심 밥상에 올라왔으니 기분이 썩 좋을 리 없다. ‘좋지 않은 만남이 이어질 때’ 쓰는 표현으로 청어가 등장한 것이다.
   □ “우리가 수재를 키우는 교육은 에돌아가는 교육이 아니라 지름길 교육이예요.”, “그러니까 직선
       교육을 해야한다는 것이지요.”
   2013년에 제작한 텔레비전 토막극 <기다리던 아버지>는 경상유치원에 다니는 ‘장혁’이라는 예술영재를 어떻게 교육시킬 것인가를 소재로한 토막극이다. 북한에서도 교육문제는 사회적 개혁과제의 하나로 2000년대 중반부터 교육개혁을 추진하였다. 김정은 체제의 첫 사회개혁도 교육이었다. 초등교육 확장과 중등교육의 분리를 골자로 하는 의무교육 제도를 개편하였다.
   <기다리던 아버지>는 교육 개혁의 필요성과 방법이 무엇인지를 줄거리로 한 드라마이다. 드라마에서는 경상유치원의 원장과 영미선생님이 예술적인 재능이 있는 아이들을 어떻게 교육시킬 것인가를 두고 이야기를 나눈다.
   음악을 담당하는 영미선생의 고민은 처음 입학하여 음계도 잘 모르는 유치원 아이들에게 어떻게 하면 음계를 쉽게 배워줄까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벽보에다 딸기며 사과를 오려서 도레미파솔라시도 자리에 붙였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과일을 악보에다 붙이면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그런 영미선생을 본 원장이 같이 퇴근하자며 말을 건넨다.
   퇴근길에 원장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낸다.
   “아이들에게 그렇게 할 필요가 있을까?”
   “무슨 말씀입니까?”
   “생각해봐요. 처음 애기들이 ‘엄마’라는 말의 뜻을 알고 말할까요. 처음에는 그 뜻을 모르고 말하지만 후에는 생활 속에서 저절로 그 뜻을 이해하게 되지요. 마찬가지예요. 음계의 이름을 도레미파솔라시도 직방 그대로 외우게 해도 일없어요. 우리가 학년전 유치원교육에서 수재를 키우는 방법은 에돌아가는 교육이 아니라 지름길 교육이예요.”
   “그러니까 원장선생님 우리들은 직선교육을 해야 한다는 거지요.”
   “우리들은 기성교육의 도식과 틀에서 벗어나 새것을 탐구해야 해요.”
   원장선생님이 말하는 영재교육 방법은 직선교육이었다. 아이들이 음계가 무엇인지를 충분히 이해할 때까지 교육시키려 하지 말고 바로 ‘도레미파솔라시도’를 교육시키라는 것이다. ‘에돌아가는 교육’을 하지 말고 ‘지름길 교육’, ‘직선교육’을 하라는 것이다. 영재가 아닌 우리 아이에게는 ‘에돌아 교육’, ‘직선교육’ 어느 것이 더 좋을까.
   □ “연속전화하기요.”
   시대가 달라지면 표현하는 방식도 달라진다. 예전에는 전화를 할 때 ‘다이얼을 돌린다’고 하였다. 전화를 하기 위해서는 다이얼을 돌려야 했다. 전화 번호에 손가락을 넣고 끝까지 돌려서 전화를 하였다. 그런데 전화기 번호를 누르면 되는 시대가 되었다. ‘다이얼을 돌린다’고 하면 ‘아재’가 분명하다.
   ‘연속전화’를 듣고 나면 무슨 뜻인지 이해할 수 있지만 생소한 표현임은 분명하다. 교환수를 통해 전화를 하는 시스템에서 사용했던 표현이었으니 이런 표현도 사라지게 되는 것은 아닐지 모르겠다.
   텔레비전 토막극 <누구 때문에>는 ‘이런 현상을 없앱시다’라는 텔레비전 교양방송 시리즈의 하나이다. 회의만 하는 형식주의를 버리자는 것이 주제이다. 같은 주제와 내용의 회의만 되풀이 하다가 당에서 제기한 과업은 뒷전으로 한다는 스토리이다.
   관내 사업을 총괄하는 총국장은 아침부터 바빴다. 어제 저녁에 끝난 회의가 오늘 아침부터 또 시작되었다. 총국장은 당에서 제기한 전력문제 해결을 위해서 회의를 소집한다. 회의를 소집하는 총국장의 전화에서 불이 났다.
   어제도 회의가 있었지만 당에서 제기한 전력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긴급회의가 불가피하였다. 전력소비량이 부족한 상황에서 교차 생산에 관한 내용을 설명하기 위한 회의를 직접 소집한다. 총국장의 전화는 관내 주요 공장으로 이어진다. 차단기생산공장, 병마개생산공장…. 그렇게 출근 전부터 시작된 회의는 오후까지 이어진다.
   회의를 소집하기 위해 전화를 집어 든 총국장이 교환수에게 내린 명령이 바로 “연속전화 하기요”였다.
   □ “그 도깨비단물 때문에 또 일을 쳤군요.”
   텔레비죤토막극 <되돌아 온 아버지>는 흑백으로 제작된 18분 길이의 드라마이다. 제작한지는 좀 오래되었지만 2014년 3월 23일에도 방영된 토막극이다.
   평소 술을 좋아하던 철이 아버지가 장기 출장을 가게 되었다. 기차에서 마주 앉게 된 건너편 좌석에 남녀가 타고 있었다. 점심시간이 되었다. 마주 앉았던 남자가 ‘같이 드시지요’하면서 음식을 꺼냈다. 철이 아버지는 속이 불편해서 생각이 없었다. 앞자리에 손님도 ‘저도 체기가 있다’면서 불편해 하였다. 옆에 앉은 여인이 ‘체기에는 술 한잔이면 편해진다’고 하면서 술을 꺼냈다. 철이 아버지에게도 한 잔을 권하였다.
   철이 아버지는 ‘그럼 딱 한 잔만…’하면서 잔을 받았다. 그리고는 안주를 먹으려고 보았더니 잔치음식이었다. 두 사람은 잔치를 막 마친 신혼부부였다. 철이 아버지는 ‘이거 축하합니다’고 축하를 했고, 축하를 이유로 또 한잔을 하였다. 그러면서 새신랑에게 ‘진심으로 말하건데 술이란 지나치면 안된다’면서 충고까지 하였다.
   하지만 정작 평소 술을 몹시도 좋아했던 철이 아버지는 자기도 모르게 점점 술에 취했고, 이런 저런 이유로 한잔씩 하다 술에 취했다. 정차 역에서 물을 마시려고 내린 철이아버지는 엉뚱하게 건너편 기차에 오른다. 반대편 기차에서 주사를 부리다 크게 망신을 당한 철이아버지에게 부인이 한 마디 한다.
   “그 도깨비단물 때문에 또 일을 쳤군요.”
   “야. 술이 사람을 마신다더니….”
   후회해도 소용이 없었다. 엎지러진 물이었다.
   ‘도깨비 단물!’ 술이 사람의 감정을 통제하지 못하게 하니, 마치 도깨비 같은 물이라는 뜻이리라. 남이나 북이나 도깨비 같은 단물은 기분을 좋게도 하고 흥도 나게 하지만 지나치면 패가망신의 지름길이니 조심할 따름이다.

| 전영선 |

한양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박사. 현재 건국대학교 통일인문학연구단 HK연구교수로 겨레말큰사전 이사, 통일부 정책자문위원(교육분과), 통일준비위원회 전문위원(사회문화분과)으로 활동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북한의 언어–소통과 불통 사이의 남북언어(경진출판, 2015), 북한의 정치와 문학: 통제와 자율사이의 줄타기(경진출판, 2014), 북한 애니메이션(아동영화)의 특성과 작품세계(선인, 2014), 문화로 읽는 북한(유니스토리, 2009), 북한 예술의 창작지형과 21세기 트렌드(역락, 2009)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