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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레말은 겨레얼 입니다 겨레말큰사전 누리판 2016.03

겨레의 창

- ‘우리말 보존을 위한 지역어 조사 연구서 ≪정선 지역어≫’ 출간한 김유범 교수

선생님께서는 지난 5월, 오재혁 건국대 교수, 고려대 대학원생들과 함께 우리말 보존을 위한 지역어 조사 연구서인 『정선 지역어』를 출간하셨습니다. 우선 책에 대해 간단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이 책은 1990ㆍ91년과 2013년에 조사된 정선 지역어를 비교하고 분석하여 이를 체계적으로 정리한 연구서입니다. 정선 지역어의 말소리와 어휘, 문장의 특징과 20여 년 동안의 변화를 살펴볼 수 있도록 했습니다. 또한 단순히 정선 지역어에 대한 보고서의 성격만을 지니는 것이 아니라 방언 조사를 어떻게 계획하고 준비하며 현지 조사와 자료 정리는 어떻게 진행해야 하는지를 구체적으로 정리해 두었습니다.
   이런 점에서 이 책은 ‘방언 조사 야전 교범’의 성격도 지니고 있습니다. 더불어 소멸 위기에 놓인 지역어의 보존과 교육 방안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고민해 본 성과도 수록하고 있습니다.
지역어 조사를 학생들과 함께 정선 지역을 직접 돌면서 방언을 채록하고 자료를 모으셨는데요. 여러 지역의 지역어 중에 정선 지역어를 조사하신 동기는 무엇이며, 정선 지역어가 가지는 방언적 특징에 대해 소개해 주시기 바랍니다.
   정선 지역어 조사는 1990ㆍ91년 학과에서 진행한 2년간의 정선아리랑 조사가 계기가 되었습니다. 당시 학부생이었던 저는 정선 지역어 조사의 책임을 맡아 민요 조사반과 별도로 활동했었는데, 이것이 20여 년 후 정선 지역어를 다시 조사하고 연구하게 된 인연이었습니다.
   정선 지역어는 정선 지역이 지리적으로는 영서 지역에 속해 있으면서도 언어적으로는 영동 방언의 특징이 강하게 나타난다는 점에서 특별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경상 방언과 영서 방언의 특징도 혼재해 있는 모습을 보여 줍니다. 이런 점 때문에 정선 지역어는 이른바 ‘전이지역(轉移地域 transition zone)’*의 특성을 보인다고 언급되는데, 이것이 정선 지역어가 지닌 언어학적 매력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 편집자 주)
  전이지역: 두 방언권의 언어 특징들이 뒤섞여 나타나는 접촉 지역
정선 지역어의 특징이 묻어 있는 어휘나 기억에 남는 어휘가 있다면 소개해주시기 바랍니다.
   ‘요ㅣ식’, ‘바우옷’, ‘햇언나’, ‘밭갈애비’와 같은 어휘들이 기억에 남습니다. 먼저 “끼니 때 외출한 사람을 위해 떠놓는 밥”을 뜻하는 ‘요ㅣ식’은 특이한 이중모음 ‘ㆉ[jø]’의 존재를 보여 줍니다. 그리고 이끼를 뜻하는 ‘바우옷’, 갓난아기를 뜻하는 ‘햇언나’, 쟁기 또는 극젱이를 모는 사람을 뜻하는 ‘밭갈애비’ 등은 이 지역 사람들의 사물 인식이나 단어 형성 방법을 잘 보여 주고 있는 흥미로운 어휘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1990~91년과 2013년에 특정 지역어를 시간차를 두고 조사·연구한 것이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20여 년 전과 비교하여 정선 지역어가 어떻게 변화되었는지 궁금합니다.
   지역어의 표준어화는 모든 지역어들에서 공통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변화 양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정선 지역어 역시 이러한 표준어화의 경향이 강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더 이상 정선 지역의 전통적인 어휘들을 알고 있지 못합니다. ‘탯상’, ‘흙젱이’처럼 더 이상 사용되지 않는 소멸 어휘들뿐만 아니라, 상추를 일컫는 ‘부루/불기’나 자두를 뜻하는 ‘꽤/꼬야’처럼 화자의 머릿속에만 있고 잘 사용되지 않는 어휘들도 있습니다. 음운에서 특별한 이중모음들의 소멸 및 후설모음화* 경향, 문법에서 조사와 어미 형태의 표준어형화 경향도 20여 년 사이의 변화라고 이야기할 수 있겠습니다.
* 편집자 주)
  ㅔ→ ㅡ/ㅜ, ‘ㅐ→ㅏ/ㅓ’ 등과 같은 전설모음의 후설모음화 경향
  예) ‘뜨레박→뜨르박’, ‘베레기→베루기’, ‘쟁끼→장끼’, ‘택→턱’
20여 년 전과 비교하여 조사 방법도 많이 변했을 것 같습니다. 20년 전과 조사 방법의 차이점을 소개해주시기 바랍니다.
   조사 방법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일단 기존에 조사된 어휘 자료들을 데이터베이스화함으로써 새로운 조사를 위한 다양한 기초 자료들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또한 카세트녹음기를 이용한 아날로그 방식의 녹음이 아닌 디지털녹음기를 통해 바로 음성 파일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또한 그림책 형식의 질문지가 아닌 태블릿 PC를 활용해 생생한 사진 자료를 조사에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것들은 모두 기술의 발달에 의한 것이지만, 질문지의 질문 방식을 정밀화하고 다양한 답변 가능성에 대비할 수 있었던 새로운 조사 방법은 20여 년간 축적된 방언 조사의 노하우 덕분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20년 전에 조사하신 정선 지역어 자료는 어떻게 활용하셨는지요.
   1990·91년 2년 동안 녹음한 카세트테이프를 다 가지고 있었는데, 마침 잘 보관한 덕분에 20여 년 후에 다시 디지털화해서 파일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이 작업을 하면서 정선 지역어의 말이 지금은 어떻게 변했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2013년에 이번에는 교수로서 학생들과 함께 조사하러 가게 되었습니다.
   91년도의 지역어 조사 질문지 자료도 잘 보관된 덕분에 그것을 활용해 연속성 있게 작업을 할 수 있었습니다. 조사할 어휘 항목들을 91년 조사했던 그대로 하고, 거기다 덧붙여 더 많은 항목들을 조사해서 20여 년 사이에 나타난 정선 지역어의 어휘 차이를 비교할 수 있었습니다.
   정선 지역어 문장의 음성 예문들과 2013년 정선 지역어 답사 과정을 유투브 사이트에 올렸습니다. ‘정선지역어’로 검색하면 자료를 보실 수 있습니다.
지역어는 우리가 지키고 보존해야 하는 문화유산입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지역어가 점차 사라져가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런 점에서 선생님의 지역어 연구가 더 뜻깊은 것 같습니다. 사라져가는 우리말 보존을 위한 방법이 있다면 소개해주시기 바랍니다.
   우리말에서 지역어들의 소멸 위기 상황은 전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언어 소멸 위기 상황과도 연결이 되어 있는 문제입니다. 1990년대 초 미국에서 이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학자들이 본격적으로 논의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이후에 진행된 양상을 살펴보니까 언어학자들이 크게 두 가지 방향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습니다.
   첫 번째는 ‘다큐멘테이션(documentation)’, 즉 언어를 자료화해서 남기는 방법입니다. 녹음·녹화 기술을 활용하여 사라지고 있는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언어 사용 장면을 되도록 많이 찍어 자료로 남기려는 노력입니다. 이것은 언어 보존을 위한 소극적인 노력에 해당됩니다.
   두 번째는 보다 적극적인 방법인데요, 휴면상태에 있는 언어와 지금 막 소멸 위기에 처해 사라지고 있는 언어들을 다시 활성화시키려는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노력입니다. 예를 들면, 지역 공동체와 학교에서 그 언어를 다시 잘 사용할 수 있도록 다양한 프로그램을 만들고 교육을 하는 것이죠.
   우리 지역어의 경우에도 이 두 가지 모두 유효한 것 같습니다. 한 예로, 지역에 노년 인구가 많은데 손자, 손녀들이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통해서 자기 지역의 전통적인 언어를 접할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겁니다. 할머니, 할아버지의 말을 듣고 학교에서 지역어에 대한 사전을 만들어 보거나, 그런 활동을 통해 지역어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킨다면 계속해서 지역어를 유지할 수 있는 방향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직접 학생들과 함께 지역어를 조사하고, 책을 출판하기까지 과정이 쉽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가장 힘들었던 점이 있다면 무엇인지요.
   자료를 정리하는 것도 어려웠지만 1장부터 6장까지의 글들을 과연 어떤 수준에서 어떤 사람들이 읽을 수 있게 해줘야 하는지, 처음에 그것을 결정하는 데 논란이 있었습니다. 아주 전문적인 전공 서적으로 갈 건지, 아니면 일반인들도 펼쳐 봤을 때 다 읽을 수 있는 쉬운 책으로 갈 건지, 거기에 대한 고민이 있었는데 결론적으로는 두 상반된 의견의 접점을 찾았습니다.
   결국 고등학교 정도의 학력을 가진 사람이 이 책을 읽었을 때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초점을 두었습니다. 전공서적이라면 별로 밝히지 않아도 될 내용들이 있는데, 책의 날개 부분에 국어학의 개념들을 친절하게 제시하여 국어학적인 기초가 없는 독자라고 할지라도 쉽게 읽어갈 수 있도록 했습니다. 문체도 가급적 쉽게 다듬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이처럼 여러 편의 글들을 통일성 있게 맞추어 가는 과정이 어려웠습니다.
앞으로 정선 지역 외의 다른 지역어 연구 계획이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다양한 지역어를 다 조사하면 좋겠지만, 제가 국어의 역사에 관심이 있기 때문에 제주방언을 특히 중세 국어와 연결될 수 있는 부분에 초점을 두고 연구를 하고 싶습니다. 몇 년 후에 중세국어 연구를 위한 제주방언 조사를 진행할 예정입니다.
≪겨레말큰사전≫ 편찬에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겨레말큰사전≫의 집필 과정에 대해 자세히는 알지 못하지만, 어쨌든 남북한 각 지역의 중요한 지역어들이 분명히 있을 텐데, 어떤 어휘가 중요하고 어떤 어휘가 안 중요한지 판단하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것 같지만, 그래도 우리가 나중에 자료를 모아놓고 사전을 봤을 때 다른 사전에서는 볼 수 없었던 여러 지역의 어휘들이 ≪겨레말큰사전≫에 나와 있다면 굉장히 좋은 자료가 될 것 같습니다.
   국어의 역사는 주로 문헌자료를 가지고 연구를 할 수밖에 없으므로 문헌에 나타나지 않으면 그 어휘에 대한 것은 전혀 알 수가 없습니다. 현재 문헌에 나와 있다고 해도 중세국어나 근대국어의 어휘들을 다 보여 주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런 비어있는 공백에 대한 것들은 실제로 지역어에서 찾을 수 있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지역어가 사라지는 것은 지나간 시대의 더 풍부한 언어 자료를 잃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지역어의 어휘들이 사전에 수록되는 것이 꼭 필요할 것 같습니다. ≪겨레말큰사전≫이 이런 역할을 해줄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