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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레말은 겨레얼 입니다 겨레말큰사전 누리판 2015.06

우리말 보물찾기

용이의 의성어 여행

_ 이상배 / 동화작가

   사전 속에 숨어 있는 순우리말을 ‘아름답다’라고 표현하지요.
그런데 ‘예쁘다’고 표현하고 싶은 순우리말이 있습니다. 바로 의성어, 의태어입니다.
사람이나 사물의 소리를 흉내 낸 말인 의성어, 사람이나 사물의 모양이나 움직임을 흉내 낸 의태어. 이 말들은 처음에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세종대왕이 한글 창제를 연구하면서, 잠시 머리를 식히려고 후원을 산책하다가 숲에서 우는 새 소리를 들었을까요?
“깍깍.”
“저 새는 ‘깍깍’ 하고 우니까 까치라고 부를까?”
“뻐꾹뻐꾹.”
“저 새는 ‘뻐꾹뻐꾹’ 하고 우니 뻐꾸기로 부를까?”
새의 이름이 먼저인지, 울음소리가 먼저인지 모르지만, 처음 이렇게 지어지지 않았을까 하고 상상해 봅니다. 예쁜 의성어, 의태어로 동화 한 편을 읽으며, 어린 시절로 돌아가 봅니다.
   캄캄한 밤입니다. 모두가 쿨쿨 잠들었습니다. 하늘에 별들만 반짝반짝 빛납니다.
   새벽이 왔습니다. 닭장에서 수탉이 꼬끼오 하고 웁니다. 부엌에서 잔 바둑이도 멍멍 하고 짖었습니다. 따뜻한 부뚜막에서 잔 고양이는 야옹야옹 하고 기지개를 켭니다.
   찍찍. 고양이가 기지개를 켰는데도 쥐들이 겁없이 웁니다. 어디 숨었는지도 모르는데 찍찍 소리가 자꾸 들립니다. 귀가 번쩍 뜨인 고양이가 귀를 쫑긋 세우고 살금살금 다가갑니다.
   외양간의 황소는 벌떡 일어나며 목을 흔듭니다. 딸랑딸랑 방울이 울립니다.
   아함 잘 잤다. 음매음매! 황소가 소리치자 목소리가 비슷한 염소가 음매 하고 따라 소리칩니다. 겅중겅중 제자리 뛰기도 합니다.
   오리들은 꽉꽉, 뒤뚱뒤뚱 사립문으로 나갑니다.
   우리는 냇물에 물놀이하러 가요.
   늦잠꾸러기 병아리들은 삐악삐악 더 자고 싶어 칭얼댑니다. 안 돼, 어서 일어나 모이를 많이 먹어야 큰단다.
   암탉이 꼬꼬 신호를 보내며 두엄터로 나갑니다. 먹보 돼지는 주인아저씨 들으라고 큰 소리로 소리칩니다. 꿀꿀꿀꿀, 아이고, 배고파 밥 줘요.
   부지런한 아버지와 엄마도 하루 일을 시작했습니다. 아버지가 빗자루로 마당을 싹싹 쓸었습니다. 엄마는 부엌에서 밥을 짓습니다. 똑똑 도마 소리와 딸그락딸그락 그릇 소리가 들립니다.
   마당 빨랫줄에 나란히 앉아있던 참새들이 짹짹 우짖었습니다. 언제 먹이를 사냥해 왔는지 제비들도 나타났습니다. 지지배배, 지지배배. 처마 밑 제비집에 있던 새끼 제비들이 입을 찢어지게 벌리며 소리칩니다.
   엄마, 엄마, 나 먼저 주세요.
   찍찍, 그 소리가 시끄럽습니다.
   쟤들도 우리랑 똑같은 소리로 우네?
   참새들은 폴폴 장난을 치며 다른 데로 날아갔습니다. 제비새끼들은 아빠 엄마가 물어다준 먹이를 냠냠 맛있게 먹었습니다. 그때 감나무에서 까치가 깍깍 하고 울었습니다.
   안녕하세요. 오늘 반가운 소식이 올 거예요.
   감나무를 올려다본 엄마가 벙글벙글 웃었습니다. 아버지도 싱글싱글 웃었습니다.
용아, 어서 일어나라.
   마당질을 다 한 아버지가 소리칩니다. 늦잠꾸러기 용이는 이불 속에서 꿈틀꿈틀 거립니다.
   시계는 재깍재깍 쉬지 않고 갑니다. 빨리 일어나지 않으면 또 지각입니다. 엄마가 올려놓은 된장찌개가 보글보글 끓기 시작했습니다. 냄비 구멍에서 김이 무럭무럭 올라왔습니다.
   음! 맛있는 냄새.
   맛있는 된장찌개 냄새가 온 집안에 솔솔 풍겼습니다.
   용이는 비틀비틀 걸어 수돗가로 갔습니다. 아직 잠이 덜 깨었습니다. 수도꼭지를 틀었습니다. 솨솨, 물이 나왔습니다. 푸드득푸드득 세수를 했습니다. 찬물에 세수하자 눈동자가 반짝반짝 빛났습니다.
   아침을 먹은 용이는 책가방을 메고 학교에 갑니다. 용이 아버지는 황소를 몰고 일하러 나갑니다. 용이는 뛰어 갑니다. 등에 멘 책가방이 출렁출렁 흔들립니다. 발걸음에 놀란 개구리들이 펄떡펄떡 뛰어 연못으로 들어갑니다.
   첨벙첨벙. 개구리들은 시원하겠다.
   학교 가는 길은 멀고멀었습니다. 구불구불 들길을 지나 산길을 걸어갑니다. 산모퉁이를 지날 때는 박새 한 마리를 만났습니다.
   호르르 노래를 부릅니다. 산골짜기에서는 뻐꾸기 웁니다.
   뻐꾹뻐꾹.
   수꿩도 외칩니다.
   꿩꿩.
   비둘기도 노래합니다.
   구구.
   용이는 개울둑에서 잠시 멈췄습니다. 맑은 개울물이 굽이굽이 흘러갑니다. 길가에는 노란 꽃들이 피어 있습니다. 벌이 붕붕 날아와 꽃에 앉았습니다. 살랑살랑 바람이 불자 꽃이 움직입니다. 벌은 그네를 타듯 기분 좋은 모양입니다.
   풀숲이 흔들립니다. 꽃뱀이 스르르 기어갑니다. 용이는 깜짝 놀랐습니다. 가슴이 두근두근 뛰었습니다. 한숨을 폭폭 내쉬었습니다. 뱀은 볼 때마다 놀랍니다.
   노랑나비가 나풀나풀 날아왔습니다. 나비를 보자 마음이 진정되었습니다.
   산자락에 진달래가 울긋불긋 피었습니다. 마치 불을 지른 것처럼 활활 피었습니다.
   산길은 고불탕고불탕 나 있습니다. 용이는 익숙하게 짚어 달립니다. 가파른 고갯길도 휙휙 바람처럼 넘어버렸습니다. 저 멀리에 학교가 보입니다. 소방서의 높은 망루가 가물가물 보입니다.
   고갯길을 벗어나 신작로를 걸어갑니다. 아지랑이가 아른아른 피어오릅니다.
   용이는 두 주먹을 쥐고 달리기 시작합니다. 이따금 자동차가 빵빵 소리를 내며 씽씽 앞장서 달립니다.
   용이가 학교 교문에 들어서자 땡땡땡 종이 울렸습니다. 수업을 시작하는 종소리입니다.
   용이는 간신히 지각을 면했습니다. 학교길이 멀어서입니다. 아니, 이것저것 구경하느라 늦은 것입니다.
   용이는 수돗가로 달려가 얼굴을 푸드득푸드득 씻었습니다. 등줄기에도 땀이 줄줄 흘렀습니다. 용이는 교실로 들어갔습니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용이는 싱글싱글 웃었습니다. 예쁜 선생님만 보면 저절로 벙글벙글 입이 벌어집니다.
   용이도 안녕!
   선생님도 방긋방긋 웃었습니다. 선생님도 용이만 보면 웃었습니다.
   3학년 1반 교실에는 웃음꽃이 피었습니다.

| 이상배 |

동화작가. 한국아동문학인협회 회장을 지냈으며, 현재 도서출판 좋은꿈 대표이다. 대한민국문학상, 윤석중문학상, 방정환문학상, 한국동화문학상 등을 수상하였으며, 저서로는책읽는 도깨비,책귀신 세종대왕,부엌새 아저씨,우리말 동화,우리말 바루기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