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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레말은 겨레얼 입니다 겨레말큰사전 누리판 2015.06

우리말 보물찾기

그게 꿈이었거든요

_ 이상배 / 동화작가

   유월 가뭄이 극심합니다. 논바닥이 쩍쩍 갈라지듯이 농부들의 마음도 쩍쩍 갈라졌습니다.
   옛날 백성들은 가뭄이 들면 나랏님이 덕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나랏님 스스로도 덕이 없음을 한탄하고 끼니를 거르고 기우제를 지냈다고 합니다.
   하지만 언제까지 손을 놓고 하늘바라기가 되어서는 안 되겠지요.
   나랏님과 백성들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짧은 이야기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어진 임금이 있었습니다.
   임금은 늘 근심에 싸여 하루 하루 괭이잠을 잤습니다.
   “배고프고 병든 백성은 없을까?”
   “농사는 잘 되고 있는지?”
   “고기는 잘 잡히고 있는지?”
   “힘 센 자가 힘없는 백성을 억누르지 않는지?”
   “도둑은 없는지?”
   “역병이 돌지는 않을지?”
   임금은 한시도 나라 걱정을 잊지 않고 있었습니다.
   임금은 대궐에서만 머무르지 않았습니다.
   아무도 모르게 평민 옷으로 갈아입고 저잣거리로 나갔습니다. 백성들이 사는 모습을 살펴보고 싶은 것입니다. 좋은 일을 보면 아무도 모르게 상을 내리고, 나쁜 것을 보면 미루지 않고 고쳤습니다.
   어느 해, 오랫동안 가물이 들었습니다.
   마른하늘에 구름 한 점 없었습니다.
   임금은 매일같이 하늘을 올려다보며 한숨을 쉬었습니다.
   “하루 빨리 비가 내려야 할 텐데, 농사가 걱정이구나.”
   임금은 온 나라에 영을 내렸습니다.
   “백성들은 모두 샘을 파도록 하여라.”
   그날부터 나라 안은 밤낮 없이 샘 파는 일로 바빴습니다.
   그런데, 어느 마을에서 물싸움이 벌어졌습니다. 샘에서 길어 올린 물을 서로 차지하려고 큰 싸움이 벌어진 것입니다.
   이 소식을 임금이 들었습니다. 임금은 당장 그 마을로 달려갔습니다.
   “상감마마 납시오.”
   농부들은 땅바닥에 엎드렸습니다.
   “다 함께 더 많은 샘을 파서 물을 길읍시다. 나도 샘을 파러 왔소.”
   임금은 그날부터 마을의 한 오두막에 머물면서 농부들과 같이 샘 파는 일을 하였습니다.
   “상감마마께서 어찌 이런 일을….”
   농부들은 황송하여 어쩔 줄을 몰랐습니다.
   어떤 사람은 임금이 하루 이틀 샘 파는 시늉을 하다가 돌아갈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임금의 샘 파는 일은 열흘, 스무 날, 계속 이어졌습니다. 그뿐 아니라 힘든 논밭 일을 농사꾼처럼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제 누가 봐도 임금은 농사일에 이골이 났습니다. 호미나 괭이를 다루는 다룸새가 농부 같았습니다.
   그제야 사람들은 임금의 깊은 뜻을 알고 자신들의 어리석음을 깨달았습니다. 본새가 순박한 농부들은 금방 이웃들과 힘을 합하여 샘을 팠습니다.
   가을이 되었습니다. 가물이 들었어도 임금과 농부들이 땀 흘려 일한 노력으로 풍년이 들었습니다.
   수확이 끝날 무렵, 다른 소식이 임금에게 전해졌습니다.
   “어부들이 고기잡이 터를 서로 차지하려고 싸움을 벌였습니다.”
   임금은 곧 싸움이 벌어진 강 마을로 달려갔습니다.
   “저렇게 넒은 강을 두고 싸울 것이 뭐 있는가.”
   임금은 그날부터 어부들과 같이 고기 잡는 일을 시작했습니다. 배를 저어 강에 나가 그물질을 하였습니다. 그물 가득 잡힌 고기는 어부들에게 고루 나눠주었습니다.
   임금은 고추바람이 부는 겨울에도 고기잡이를 나갔습니다. 겨울 동안에는 빈둥거리며 놀기만 하던 어부들이 임금을 따라 고기잡이를 하였습니다.
   “상감마마. 이 못난 백성들을 꾸짖어 주십시오.”
   어부들은 지난날 자신들의 이기심과 게으름의 잘못을 깨닫고 열심히 고기잡이를 하였습니다.
   이렇게 어진 임금은 백성을 위해 샘 파고 논밭 일을 하는 농부가 되고, 고기 잡는 어부가 되었습니다. 백성들은 임금을 어버이처럼 따르고 섬기었습니다.

*동화에 나오는 순우리말 뜻

하늘바라기: 빗물에 의하여서만 벼를 심어 재배할 수 있는 논. 천둥지기.
괭이잠: 깊이 들지 못하고 자주 깨면서 자는 잠.
저잣거리: 가게가 죽 늘어서 있는 거리.
마른하늘: 비나 눈이 오지 아니하는 맑은 하늘.
물싸움: 논이나 우물에서 물 때문에 일어나는 다툼질. 이 글에서는 가뭄 때 귀한 물을 서로 차지
           하려고 벌인 싸움.
이골: 아주 길이 들어서 몸에 푹 밴 버릇.
다룸새: 다루는 솜씨나 모양새.
본새: 1) 어떠한 동작이나 버릇의 됨됨이. 2) 어떤 물건의 본디의 생김새.
그물질: 그물을 써서 고기를 잡는 일. 그물은, 물고기를 잡기 위해 노끈이나 실 따위로 여러 코의
           구멍이 나게 얽은 물건.
고추바람: 살을 에는 듯 매섭게 부는 차가운 바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 이상배 |

동화작가. 한국아동문학인협회 회장을 지냈으며, 현재 도서출판 좋은꿈 대표이다. 대한민국문학상, 윤석중문학상, 방정환문학상, 한국동화문학상 등을 수상하였으며, 저서로는책읽는 도깨비,책귀신 세종대왕,부엌새 아저씨,우리말 동화,우리말 바루기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