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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레말은 겨레얼 입니다 겨레말큰사전 누리판 2015.03

우리말 보물찾기

그게 꿈이었거든요

_ 이상배 / 동화작가

   웃음이 보약이라고 하지요. 특히 하하하, 호호호, 푸하하하 하고 크게 웃으면 몸에 좋고 기분도 가벼워집니다. 요즘 크게 웃을 일이 없다고요? 그래도 이 동화를 읽고 크게 웃어 봐요. 아름다운 순 우리말도 익히고요.
   어느 마을에 찐빵을 좋아하는 영감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는 재산을 곳간에 쌓아두기만 하는 구두쇠이고 옹춘마니에 떠세 부리기 좋아했습니다.
   어느 날, 영감은 찐빵이 먹고 싶었습니다. 곁에서 잔심부름을 하는 막둥이를 불렀습니다.
   “얘야, 가서 찐빵 여덟 개만 사 오너라.”
   “예, 주인님.”
   열 살인 막둥이는 꾀가 있고 보짱이 큰 아이었습니다. 막둥이 아버지는 구두쇠 영감네의 밭을 빌려 농사를 지어 주고 있었습니다.
   막둥이는 찐빵가게로 달려가다가 골목에서 놀고 있는 동무들을 만났습니다.
   “얘들아, 조금 있다가 내가 구두쇠 영감이 먹을 찐빵 다섯 개를 얻어먹을 건데 너희들 구경하러 와라.”
   “뭐, 구두쇠 영감한테 찐빵을 얻어먹는다고? 에이, 정말 그러면 해가 서쪽에서 뜨겠다.”
   구두쇠 영감의 마음보를 잘 아는 동무들은 믿지 않았습니다.
   “꼭 얻어먹을 테니 와서 구경이나 해.”
   막둥이는 찐빵가게에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찐빵 여덟 개를 사 가지고 달려갔습니다.
   구두쇠 영감은 찐빵을 보자 군침을 흘리며 한 개를 통째로 입안에 넣었습니다.
   “음, 맛있구나. 그런데 너는 왜 나가지 않고 보고 서 있는 거냐.”
   “주인님께 꼭 전할 말이 있거든요.”
   “어린 네가 나한테 무슨 할 말이 있느냐?”
   “어제 낮에 저희 아버지께서 밭을 갈았는데요 땅속에서 번쩍거리는 것이 나왔거든요. 그런데 그게 황금이라고 하던데요.”
   “뭐, 네가 지금 황금이라고 했느냐?”
   “예, 황금덩이요.”
   막둥이는 대답하면서 눈길이 찐빵 접시에 가 있었습니다. 구두쇠 영감은 얼른 찐빵 한 개를 집었습니다.
   “찐빵 고물이 아주 맛있구나. 너도 한 개 먹어라.”
   “고맙습니다, 주인님!”
   막둥이는 찐빵 한 개를 게눈 감추듯이 먹어치웠습니다.
   “그래서 그 금덩이를 어떻게 했느냐?”
   구두쇠 영감이 찐빵 두 개째를 입에 넣으며 물었습니다.
   “아버지께서 이렇게 말했어요.”
   “뭐라고?”
   “금덩이를 주인님한테 바쳐야 한다고요.”
   “오, 그래. 그거 아주 잘한 일이구나.”
   구두쇠 영감은 얼굴이 환해지면서 또 찐빵 하나를 집어 주며 먹으라는 시늉을 하였습니다. 막둥이는 이번에도 한 입에 먹어치웠습니다.
   “네가 아주 먹음새가 좋구나. 그래서 금덩이를 어떻게 했느냐?”
   “그런데 아버지 말을 듣고 어머니께서 금덩이를 팔자고 하셨어요. 큰돈이 생기면 반은 땅을 사고 반은 주인님께 드리자고 하셨어요.”
   “뭐라, 반반 나누자는 것이냐?”
   구두쇠 영감은 세 개째 찐빵을 자기 입에 넣고, 막둥이에게도 하나를 집어 주었습니다. 막둥이는 이번에도 빵을 한 입에 넣었습니다.
   “그래서 황금을 팔았느냐?”
   “아버지께서 그러셨어요. 이 밭은 주인님의 밭이니 금덩이는 당연히 주인님 것이라고요.”
   “오, 그거 아주 옳은 말이구나!”
   구두쇠 영감은 맘 좋은 아저씨처럼 찐빵 네 개째를 막둥이에게 주며 어서 먹으라고 눈웃음을 지었습니다.
   막둥이는 네 개째 찐빵을 받아먹었습니다. 이제 접시에는 찐빵 한 개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담장 너머에서 구경하던 아이들은 거짓말하는 막둥이가 혼이 나지 않을까 마음이 소마소마하였습니다.
   막둥이는 네 개째 찐빵을 다 먹고 쩝쩝 소리를 냈습니다.
   “먹어도먹어도 뱃속이 구쁘네요.”
   구두쇠 영감은 하나 남은 찐빵을 자기 입에 넣으려다가 멈추었습니다.
   “자, 이것도 네가 먹어라.”
   막둥이는 다섯 개째 찐빵을 먹다가 캑캑거렸습니다.
   “천천히 먹어라, 체한다. 여기 물 마시고.”
   구두쇠 영감이 물 사발을 주었습니다. 막둥이는 물을 벌컥벌컥 들이켰습니다.
   “아, 이제 배가 부르네. 주인님, 잘 먹었습니다.”
   “오냐. 그래 아버지가 언제 금을 가져온다고 하더냐?”
   구두쇠 영감이 은근한 목소리로 물었습니다.
   “글쎄요, 그게…….”
   막둥이는 슬그머니 일어나면서 도리머리를 쳤습니다.
   “엄마가 못 가져가게 하더냐?”
   “그게 아니고요, 저하고 우리 엄마하고 너무 기뻐서 껴안고 펄쩍펄쩍 뛰었거든요. 그 바람에 꿈이 깨버렸지 뭐예요.”
   “뭐, 뭣이라 꿈이라고…….”
   그제야 구두쇠 영감은 속은 것을 알았습니다.
   그때 담장 너머에서 구경하던 아이들이 하하하, 호호호 하고 배를 잡고 웃어댔습니다.

*동화에 나오는 순우리말 뜻

옹춘마니: 소견이 좁고 융통성이 없는 사람.
떠세: 재물이나 힘 따위를 내세워 젠체하고 억지를 씀. 또는 그런 짓.
막둥이: 잔심부름을 하는 사내아이.
보짱: 마음속에 품은 꿋꿋한 생각이나 요량.
마음보: 마음을 쓰는 속 바탕.
눈길: 눈이 가는 곳. 또는 눈으로 보는 방향.
먹음새: 음식을 먹는 태도.
눈웃음: 소리 없이 눈으로만 가만히 웃는 웃음.
소마소마: 무섭거나 두려워서 마음이 초조한 모양.
구쁘다: 배 속이 허전하여 자꾸 먹고 싶다.(구뻐, 구쁘니)
도리머리: 머리를 좌우로 흔들어 싫다거나 아니라는 뜻을 표시하는 짓.

| 이상배 |

동화작가. 한국아동문학인협회 회장을 지냈으며, 현재 도서출판 좋은꿈 대표이다. 대한민국문학상, 윤석중문학상, 방정환문학상, 한국동화문학상 등을 수상하였으며, 저서로는『책읽는 도깨비』,『책귀신 세종대왕』,『부엌새 아저씨』,『우리말 동화』,『우리말 바루기』등이 있다.